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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사동 재실

교무부    2017.01.26    읽음 :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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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사동 재실
       
   

<연구소>

                           
  김제군 금산면 원평에서 용호리(龍湖里)를 지나 남쪽으로 5분정도 달리면 행정구역상 감곡면(甘谷面) 통사동(通士洞)이 왼쪽 시야로 들어온다. 통사동이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통사는 선비가 공부를 하여 통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학문적 성취이든 수도를 통한 도통이든 지명이 갖는 신비로움은 지명이 곧 인사(人事)에 실제로 연관되어 있다는데 있다.
  마을을 거슬러 올라 좌측 나지막한 고개를 넘으면 적막하기 이를 데 없는 재실 한 채가 길손을 반긴다. 마당 앞에는 칡넝쿨이 얽히고 설켜 있는데 주변 경관을 둘러보면 재실의 입지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금방 느끼게 한다. 좌우의 산이 병풍처럼 감싸 안은 이 재실에서는 원래 통사동에 살았던 이준세의 재실이었지만 도주께서 도수를 보신 곳이다. 그리고 상제님의 성골을 모시고 치성을 올렸으며 상제님께서 남기신 둔궤를 비치하시어 공부를 하셨던 매우 중요한 재실이다.
  도주께서는 구천상제님의 「김제 원평에 가라」는 명을 받으시고 무오년(1918) 원평 황새마을 권씨의 집에서 가족들과 머무시다가 황새마을과 가깝고 인적이 드문 통사동 재실을 공부 처로 삼으셨다. 하루는 도주께서 통사동 재실에서 도수를 보고 계실 때 선돌부인이 「구릿골 약방에 비치하셨던 둔궤가 천지도수의 조화둔궤라 하루바삐 그것을 찾도록 함이 어떠하겠나이까?」라는 간청에 따라 정읍 대흥리 차경석의 보천교에 둔궤를 가져다 둔 것을 확인하시고 그것을 재실로 옮기고자 하셨다. 기미년(1919) 9월 4일 새벽 한 시에 조용의(趙鏞懿)와 권태로(權泰魯), 권영문(權寧文), 이정두(李正斗), 김사일(金士一), 박붕래(朴朋來)외 두 명을 데리고 대흥리로 가셨다. 본부의 사람들이 모두 잠든 틈을 타 한 방의 병풍으로 가리워진 둔궤와 약장을 찾아가지고 나왔으나 약장은 도중에 놓고 나왔기에 옮기지 못하였다. 둔궤는 경신년(1920) 2월 17일 도주께서 재실에서 밤낮으로 불면불식의 공부를 하시던 중 벼락소리가 나면서 저절로 열렸다. 둔궤 속에는 호피 한 장과 반쯤 핀 국화 한 송이가 그려있고 양피(羊血) 스물넉점이 궤에 찍혀 있고 오강록(烏江錄) 팔문둔갑(八門遁甲) 설문(舌門)이란 글자가 궤에 쓰여 있었는데 함안 반구정(伴鷗亭)에서 공부할 때 옮겨가셨다. 신유년(1921) 9월 5일에 권태로와 그외 네 사람이 도주의 분부를 받고 상제의 성골을 구릿골에서 통사동으로 모시고 돌아왔는데 갑자기 뇌성이 일고 번개가 번쩍였다고 한다. 성골이 옮겨진 후 15일이 되는 구천상제님의 강세일에 재실에 모여 치성을 올린 후 도주께서 「시시묵송공산리(時時默誦空山裡) 야야한청잠실중(夜夜閑聽潛室中) 분명조화성공일(分明造化成功日) 요순우왕일체동(堯舜禹王一切同)이라」고 말씀하셨다.(교운 2장 23절) 도주께서는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길 「임술년(1922년) 섣달에 이르면 납월도수(臘月度數)에 북현무도수(北玄武度數)가 닥쳐서 금전이 아니면 일이 풀리지 않을 것이라」하시고 소액의 금품을 남겨 놓으셨는데 쫓던 무리 중 한 사람이 문공신과 합세하여 섣달 그믐날 밤 재실에 침입하여 난동을 부린 끝에 상제의 성골과 약간의 금품을 훔쳐갔다.
  『도주께서 통사동(通士洞) 재실에서 어느날 「오도자 금불문 고불문지도야(吾道者今不聞古不聞之道也)라 믿고 닦기가 어려우니라」하시고 다시 추종하는 여러 사람들을 앞에 모으고 무극대운(無極大運)의 해원상생 대도(解冤相生大道)의 진리를 설법하시여 도(道)를 밝혀주셨도다.』(교운 2장 18절) 오도자 금불문 고불문지도야라고 말씀하신 것은 상제께서 말씀하신 「대개 나의 공사는 옛날에도 지금도 없으며 남의 것을 계승함도 아니오. 운수에 있는 일도 아니오. 오직 내가 지어 만드는 것이니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전혀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믿고 따르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그 진리는 구천상제님의 무극대운이다. 무극대운이란 곧 구천상제이신 무극신(无極神)의 크나큰 운수이다. 운수는 곧 도통이니 도를 닦음으로써 대도의 진리를 깨우칠 수 있고 깨달음과 일심의 결과로써 도통진경에 이르는 것이다. 
  『도주께서 태인에 계시다가 정묘년(1927년) 九월부터 배문걸을 데리고 통사동의 재실에 가셔서 주(籌)를 놓는 공부를 석 달동안 보시고 그후에도 계속하셨도다. 주의 판을 오동목으로, 숫가지를 대나무 조각으로 하셨도다. 숫가지 놓는 소리가 그치지 아니하고 숫가지가 이리저리로 옮겨질 때마다 불빛이 번쩍이었도다.』(교운 2장 40절) 주(籌)는 셈을 하는 젓가락 모양의 댓개비인데 새로운 도수를 짜기 위한 수리적 법방이 아닌가 추측된다.
《대순회보》 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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