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성인들이 말씀하신 무자기(無自欺)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 Q&A

본문 바로가기

Q&A
HOME   >  교화   >   교리   >   Q&A  
Q&A

옛 성인들이 말씀하신 무자기(無自欺)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9.04.29 조회775회 댓글0건

본문

Q: 옛 성인들이 말씀하신 무자기(無自欺)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A: 무자기(無自欺)란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수칙(守則)의 세 번째가 ‘무자기(無自欺)는 도인(道人)의 옥조(玉條)니, 양심(良心)을 속임과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언행(言行)과 비리괴려(非理乖戾)를 엄금함’이므로, 무자기 즉 스스로 속이지 않는 것이란 구체적으로 첫째 양심을 속이지 않는 것이요, 둘째 사람들을 속이지 않는 것이며, 셋째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중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역시 양심을 속이지 않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대순진리회 요람』에 따르면 마음에는 양심(良心)과 사심(私心) 두 가지가 있는데 양심은 천성 그대로의 본심이요, 사심은 물욕에 의하여 생기는 욕심이라 합니다. ‘양심을 속이는 것’이란 양심을 저버리고 사심에 사로잡히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인간의 모든 죄악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어 결국 사람들을 속이고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심을 버리고 양심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것을 곧 무자기라 합니다. 옛날 성현들 중에서 남송(南宋) 사람 주희[朱熹: 1130~1200, 주자(朱子)] 선생도 ‘무자기(無自欺)’에 대해 언급하신 바가 있습니다. 송나라 시대에 일어난 성리학(性理學)을 집대성시킨 주자는 상제님에 의하여 유교의 종장(宗長)으로 임명을 모신 사람입니다. 주자는 그가 저술한 『대학장구』의 「경일장(經一章)」 각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명명덕어천하(明明德於天下者)라는 것은 천하 사람에게 모두 그 밝은 덕을 밝혀주는 것이다. 마음은 몸을 주재하는 것이다. 성(誠)은 성실함이고 의(意)는 마음이 발(發)하는 바이니, 그 마음이 발하는 바를 성실히 하여 반드시 스스로 만족하고 스스로 속임이 없고자 하는 것이다. 치(致)는 미루어 다함이고 지(知)는 식(識)과 같으니, 나의 지식을 끝까지 추구해서 그 아는 바에 다하지 않음이 없고자 하는 것이다. 격(格)은 이르는 것이고 물(物)은 사(事)와 같으니,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사물의 극처(極處)에 이르지 않음이 없고자 하는 것이다. 이 여덟 가지는 대학의 조목(條目)이다.(明明德於天下者 使天下之人 皆有以明其明德也. 心者 身之所主也. 誠 實也. 意者 心之所發也. 實其心之所發 欲其必自兼 而無自欺也. 致 推極也. 知 猶識也. 推極吾之知識 欲其所知 無不盡也. 格 至也. 物 猶事也. 窮至事物之理 欲其極處 無不到也. 此八者 大學之條目也.)”

 

  이것은 주자가 『대학』을 세밀하게 분석하여 명명덕(明明德 : 밝은 덕을 밝힘), 신민(新民 : 백성을 새롭게 함), 지어지선(止於至善 : 지극한 선(善)에 도달함)을 삼강령(三綱領)이라 이름 짓고 이를 『대학』이 추구하는 목표라고 밝히고, 또한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여덟 항목을 팔조목(八條目)이라 명명하여 이것이 『대학』의 목표인 삼강령을 이루기 위한 실천과정이라고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무자기’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부분을 좀 더 세밀히 살펴보면 ‘마음이 발하는 바를 성실히 하여 반드시 스스로 만족하고 스스로 속임이 없고자 하는 것’입니다.

 

  주자는 수양을 통해 마음을 맑게 가지면 마음의 본체인 허명(虛明)이 드러나게 된다고 하면서 그 상태를 ‘도심(道心)’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에 반해 물욕(物慾) 등의 사사로움에 사로 잡혀서 마음의 본체인 허명(虛明)이 드러나지 못하는 상태를 ‘인심(人心)’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본시 하나이나 도심과 인심이라는 두 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인간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본래적 천성(天性)인 본연(本然)의 성품이 있지만 또 제각각 하늘로부터 저마다의 독특한 기질(氣質)도 같이 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주자는 대개 이 기질이라는 것이 편중되어 있기 때문에 수양이라고 하는 부단한 노력이 없다면 도심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끊임없는 수양을 통해 기질을 변화시키고 마음의 작용을 도심에 맞추도록 하여 본연의 성품을 드러내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통해 스스로 만족함을 얻게 되고 결국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무자기에 도달한다고 주자는 본 것입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주자도 ‘무자기’와 관련된 설명을 한 바 있으며 크게 보았을 때 대순사상에서 말하는 ‘무자기’와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무자기를 이루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대순사상에서 사람의 마음을 ‘양심’과 ‘사심’으로 구분한 것에 비해 주자는 사람의 마음을 ‘도심’과 ‘인심’으로 구분한 데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인심이 선으로도 악으로도 흐를 수 있기 때문에 도심이 인심을 잘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 주자가 말하는 수양론의 요지라면, 대순사상에서는 사심을 버리고 양심을 회복한다는 것이 수양론의 요지입니다.

 

  도심이 인심을 다스리고 통제하는 행위의 실천을 위해서는 도심과 인심의 상호 관계를 규명하는 또 다른 작업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므로 ‘인심이 도심을 포함하느냐 아니냐’하는 문제로부터 비롯된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 등의 더 많은 복잡한 고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심을 버리고 양심을 회복하는 행위의 실천에는 ‘사심과 양심의 구분’이 ‘인심과 도심’의 구분보다는 훨씬 더 명확하기 때문에 사심과 양심의 관계를 따지는 복잡한 작업이 덜 필요하게 됩니다. 즉 물욕으로부터 비롯된 욕심에 빠지지 않도록 마음을 잘 다스리면서 덕을 닦기를 힘쓴다면 이것이 곧 사심을 버리고 양심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수행자의 입장에서는 주자의 ‘도심-인심’ 설명보다는 대순사상의 ‘양심-사심’ 설명이 이해하기도 쉽고 실생활에의 적용도 보다 쉬운 것입니다. 결국 실제 수양에서는 대순사상의 가르침이 더 현실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12616)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강천로 882     전화 : 031-887-9301 (교무부)     팩스 : 031-887-9345
Copyright ⓒ 2016 DAESOONJINRIHO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