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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문인(忍)방편(方便)의본분(依本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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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0.04 조회5,3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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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교무부

  

   태백진인(太白眞人)이 말하기를, 세상 사람들이 경(經)을 외우는 것은 모두가 복을 구하고 재앙을 면하고 싶어서다. 왕왕 입과 마음이 일치하지 않고 단지 읽기만 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이것은 밖에서 구하는 것이지 안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경만을 외워서 무슨 도움이 있게 된다면 도사(道士)는 모두 신선을 이루고, 화상(和尙)은 모두 부처를 이룰 것이다.
  나에게 삼부경(三部經)이 있는데, 다만 6개의 글자일 뿐이다. 경문(經文)은 비록 간결하나 공덕은 매우 크니, 다만 지극한 마음으로 봉행하기를 요할 뿐이다.
  어떤 사람이 와서 묻기에 나는 일자경(一字經)은 ‘인(忍)’이 그것이요, 이자경(二字經)은 ‘방편(方便)’이 그것이며, 삼자경(三字經)은 ‘의본분(依本分)’이 그것이라 하였다. 
  이 삼부경은 대장경(大藏經) 속에 있지 않고 오직 영대(臺) 사방 한 치 속에 사람마다 모두 지니고 있는 것이다.01 현명하거나 어리석거나, 글자를 알거나 모르거나를 불문하고 모두 외울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이를 마음으로 받아들여 지니면 병이 생기지 않고 재앙 또한 있지 않아 저절로 복을 얻게 되는데, 그 자신에 있지 않으면 반드시 자손들에게 있게 된다.
 


   이 글은 퇴계 선생의 『활인심방(活人心方)』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활인심방』은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아들 주권(朱權, 1378~1448)의 저작으로 중국 도가의 양생 지식이 집약된 『구선활인심법(臞僊活人心法)』을 원본으로 삼아 필사한 유작입니다. 퇴계 선생은 젊은 시절부터 고질병에 시달렸는데, 그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고, 그 과정에 건강을 되찾게 해준 『활인심방』을 남겨 주위 사람들에게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책은 현대인들의 건강생활에도 매우 유용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위의 글에서 태백진인이 말한 삼부경인 인방편의본분은 우리가 한번 그 뜻을 음미해볼 만합니다. 참을 인(忍)은 칼날 인(刃)에 마음 심(心) 자를 받친 글자입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칼로 심장을 찌르는 듯한 아픔도 참고 견딘다는 뜻입니다. 좀 더 그 의미를 궁구해보면 마음자리에 칼날이 세워져 있는 것인데 칼이란 것은 본디 뭐든지 베어내는 것이 재주입니다. 마음에 칼날이 서 있으니 마음을 움직이다가는 베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忍)이란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꼼짝없이 있는 것이니, 부동심(不動心)입니다. 천하 부동심이 인입니다.
  어찌하면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을까요? 마음에는 하늘로부터 받은 천품성(天品性)인 양심(良心)이 있고, 물욕에 의해서 일어나는 욕심인 사심(私心)이 있습니다. 인성(人性)의 본질은 정직과 진실이며, 인간의 마음은 본시 맑고 깨끗한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물욕에 의한 사심에 물들게 되면 도리(道理)에 어긋나는 언동(言動)을 감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하 부동심을 얻는 비결은 다른 데 있지 않고 하늘로부터 받은 천품성인 양심을 회복하는 일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양심을 회복하는 첩경은 무자기(無自欺)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훈회, “마음을 속이지 말라.”에서 그 마음은 양심을 뜻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에 분통을 하나씩 차고 있는데,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습니다. 외부의 일을 겪으면서 분한 마음이 분통을 가득 채우면 분통을 터뜨리게 됩니다. 그 사람이 무슨 일로 분통을 터뜨리는가를 살펴보면 그 사람의 성향을 알 수 있습니다. 도인은 어지간한 일에는 분통을 터뜨리지 않고, 천하 창생이 진멸지경에 이르게 된 것을 애통해 하는 수준이어야 합니다.
  성낼 분(忿)은 나눌 분(分)에 마음 심(心) 자를 받친 글자입니다. 성낸다는 것은 이미 마음이 움직여 나누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부동심에서는 일으킬 수 없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인(忍)함을 넘어서 사분오열된 상태가 분심(忿心)입니다. 사심의 영역에 머물고 있는 분통은 아예 마음에서 치워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맹자』에 하늘이 장차 그 사람을 쓰고자 시련을 주는 것도 바로 참을성을 키우기 위함이라 하였습니다.02 『명심보감』 「계성편(戒性篇)」에는 “한때의 분함을 참으면, 백일의 근심을 면할 수 있다(忍一時之忿 免百日之憂).” 하였습니다. 당(唐) 나라의 장공예(張公藝)라는 사람의 집안은 9대가 함께 살았으므로 제나라, 수나라, 당나라 때 모두 나라에서 정려문(旌閭門)을 세워 표창하였습니다. 당나라 고종이 그의 집에 행차하여 9대가 함께 잘 사는 비결을 묻자, 장공예가 백여 개의 인(忍) 자를 써서 올리니, 고종이 감동하여 비단을 하사하였다고 합니다.03 모두 참을 인(忍) 자의 공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을 참고 견디는 것으로 보는 것은 단편적인 지식이고, 진정한 인은 내 마음이 인성의 본질인 양심자리에 거하여 너그럽게 용납하는 마음 상태라 하겠습니다. 『활인심방』의 본문에도 인(忍)을 “마음 위에 칼이 있다. 군자는 용납함으로써 덕을 이룬다(心上有刃 君子以含容成德).”고 하였습니다. 이  대목에서 “인류의 평화는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여 인보상조(保相助)의 미덕으로 밉고 고움이 없이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도(道)의 무한대한 진리에 있음을 이해하라.”04 하신 도전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방편(方便)의 방(方)은 방법(方法), 편(便)은 편의(便宜)이니 방편은 편리한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방편(方便, 산스크리트어: upaya)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접근하다’, ‘도달하다’라는 의미가 있고, 여러 가지 뜻 모두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된 의미는 ‘향상진보의 방법’입니다. 주로 불가(佛家)에서 보살이 중생을 깨침으로 인도할 때, 그 근기에 따라 사용하는 상대편에 알맞은 편의적 수단이나 방법의 의미로 쓰입니다. 중생을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하여 잠정적으로 마련한 수단으로 지붕에 올라가는 데 필요한 사다리와 강을 건너는 데 쓰이는 뗏목과 같은 것이 방편입니다.
  우리 도에서도 지정(知情)이나 실정(實情), 심정(心情)을 잘 파악하여 적절하게 교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05 도전님께서도 평소에 “도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도인 각자의 심리부터 잘 파악하여 맞추어 주도록 하라. 한날한시에 난 손가락도 길고 짧은 것이 있듯이 사람의 마음은 다 다르다.”06 하시며, 사람마다 심리가 다르고 상황이 다른데 한 가지 방법으로는 한 사람밖에 기르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의 여의주가 천변만화의 조화를 부리듯 하나의 진리(대순진리)를 구체적인 실정에 맞게 창조적으로 적용하여 합덕(合德)과 조화(調化)를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가르치고 배울 때는 대순진리에 의거하여 자모지정(慈母之情)을 가지고 상대의 심리를 잘 파악하여 적절하게 교화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와 자식 간보다도 어머니와 자식이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윗사람은 자모지정으로 아랫사람을 대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은사지의(恩師之義)로 공경하고 예를 갖출 줄 알아야 체계 안에서 화합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의본분(依本分)은 본분에 의거한다는 뜻으로 쉽게 본분을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본분은 자기에게 알맞은 신분(身分)이나 의무(義務)로 마땅히 하여야 할 직분(職分)입니다. 도인의 본분이라 한다면 도인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를 말합니다.
  우리 도인은 본분을 지켜 매사에 바르게 처신처사해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도전님께서는 “우주 대원(宇宙大元)의 진리가 도이며 도는 사람만이 깨달아 닦을 수 있으므로 도인으로서 본분에 알맞은 참된 말과 참된 행위를 준행하여야 한다.”07 하시고, “공사(公私)의 분(分)과 상하(上下)의 의(義)를 바로 지켜서 도인의 본분을 다하고, 자기를 반성하여 상극(相克)을 막도록 하라.”08 하시며, “도인들은 항상 어디서나 신명의 수찰이 있음을 명심하고 속임과 거짓이 없이 도인의 본분을 바로 지켜야 한다.”09 하셨습니다.
  수도인은 도를 닦고 있는 것이고 체계를 바르게 세워나가는 것이 도를 닦는 것이니, 공사의 구분과 상하의 의리를 바르게 지켜 은의(恩義)로써 체계를 세우고, 예로써 체계를 지키며, 덕화로 체계를 유지하고, 진리를 바르게 알고 가르쳐 체계를 정립(正立)해 나가야 하며, 도인 상호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체계를 확립하여야 합니다.
  태백진인이 삼부경이라 하며 그것을 외우고 실천하면 그 공력이 무궁하다고 한 인방편의본분은 우리가 기억해둘 만한 경구입니다. 인방편의본분은 양심에 거하여[忍] 진리를 창조적으로 적용하며[方便], 때와 장소에 따라 자신의 도리를 다하는 것[依本分]입니다.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에도 도(道)로써 병을 치료한다[以道療病]고 하면서 태백진인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병을 치료하려면 먼저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반드시 마음을 바르게 한 연후에야 도(道)에 터전을 잡을 수 있다. 환자로 하여금 마음속에 있는 의심과 걱정, 그리고 일체 헛된 잡념과 불평, 자기 욕심을 다 없애 버리고 지난날의 죄과를 뉘우치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서 자기의 생활방식이 자연의 이치에 부합되게 한다. 그렇게 오래 하면 결국 정신이 통일되어 자연히 마음이 평안해지고 성품이 화평해진다. 그러면 세상만사가 모두 공허하다는 것과 종일토록 영위하는 바가 모두 망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내 몸이 모두 비어 있는 환상이라는 것과 화(禍)와 복(福)이 모두 실재하는 게 아니라는 것과 살고 죽는 것이 다 한갓 꿈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홀연히 깨달아 한순간에 풀리면 마음이 자연히 청정해지고 질병도 자연히 낫게 된다. 이렇게 된다면 약을 먹기 전에 병은 벌써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진인(眞人)이 도(道)로써 마음을 다스려 병을 치료하는 큰 법이다.” 우리 도에서도 몸은 마음의 표현이라 하는데, 깊이 음미해볼 만한 내용입니다.
  태백진인의 인용문에서 “영대(臺) 사방 한 치”는 마음이 거하는 심장의 처소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주권은 『활인심』의 「치심(治心)」이라는 부분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심(心)10은 신명(神明)이 머무는 집이다. 지름이 불과 한 치에 지나지 않는 빈 곳에 신명이 머물고 있다(心者神明之舍, 中虛, 過徑寸, 而神明居焉).”
  이어 “심이 고요하면 가히 신명에 통할 수 있어 일이 이르지 않아도 먼저 안다. 이는 집을 나서지 않아도 천하를 알고 창밖을 내다보지 않고도 하늘의 운행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대체로 마음은 물과 같아서 오래도록 어지럽지 않으면 맑고 깨끗해져서 그 바닥이 환히 보이게 되는데, 그러함을 가리켜 영명(明)하다고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한 생각이라도 싹트면 신(神)이 밖으로 달려나가고, 기(氣)가 안으로 흩어져 피가 기를 따라가서 생리기능에 혼란을 초래하고 백 가지 병이 서로 쳐들어오게 되는데, 모든 것이 마음을 원인으로 하여 생긴다고 하였습니다. 대개 마음의 근원처인 천군(天君=臺)을 기쁘게 하여 기르면 질병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것이 마음을 다스리는 법이라 하였습니다. 도주님께서 말씀하신 ‘심령(心靈)의 통일(統一)’과 관련하여 깊이 숙고해볼 만한 내용입니다.11
  끝으로 태백진인이 말한 삼부경이 이조 효종, 인조 때의 학자였던 홍만종(洪萬宗, ?~?)이 지은 『순오지(旬五志)』에도 나오는데, 착간이 있어 이 지면을 빌려 바로잡고자 합니다. 『순오지』는 제목과 같이 저자가 1647년에 서호(西湖)에서 병으로 누워 있을 때 15일 만에 탈고한 평론집으로 내용이 주로 유(儒)불(佛)선(仙) 삼교(三敎)에 대한 해박한 논설이 많이 실려 있어 많은 사람이 애독하는 역작입니다.
  『순오지』에는 “삼부경이란 무엇인가? 방편을 참아야 하며[忍方便], 본방에 의거해야 한다[依本方].”이라 서술되어 있습니다. 삼부경(三部經)은 삼부로 된 경, 즉 일자경[忍], 이자경[方便], 삼자경[依本分]을 의미하는바, 『순오지』 본문에는 이 부분이 누락되어 있고 분(分) 자를 방(方) 자로 잘못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앞뒤 문맥의 정황으로 보아 태백진인의 삼부경에 대한 언급은 『순오지』에 착간이 있고, 주권의 『활인심』에 정확히 인용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순회보> 175호


 참고문헌
ㆍ『맹자』
ㆍ『명심보감』
ㆍ『통감 절요』
ㆍ『동의보감』
ㆍ퇴계 이황 편저, 『활인심방(活人心方)』, 이윤희 역해, 서울: 예문서원, 2006.
ㆍ홍만종, 『순오지(旬五志)』, 전규태 옮김, 서울: 범우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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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這三部經, 不在大藏, 只在臺方寸中, 人人皆有. 여기서 영대는 신명이 살고 있는 집으로서 지름이 한 치 되는 심장의 어떤 공간을 가리킨다. 이른바 ‘강자(腔子)’라는 곳이다. 일반적으로 강자와 같은 의미를 갖는 용어로는 심원(心源), 성해(性海), 영부(府), 영관(關), 방촌(方寸), 천군(天君), 영대(臺) 등이 있다.
02 『맹자』 「고자 장구 하(告子章句下)」: 天將降大任於是人也 必先苦其心志 勞其筋骨 餓其體膚 空乏其身 行拂亂其所爲 所以動心忍性 曾益其所能
03 『통감 절요』, 권39, 「唐紀 高宗」
04 『대순지침』, p.20.
05 지정(知情): 남의 사정을 앎, 실정(實情): 실제의 사정이나 정세, 심정(心情):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나 감정.
06 도전님 훈시(1988. 10. 26)
07 『대순지침』, p.23.
08 『대순지침』, p.26.
09 『대순지침』, p.39.
10 이곳은 앞의 각주 1)번에서 언급한 ‘강자(腔子)’ 또는 영대(臺)로 신명이 살고 있는 지름이 한 치 되는 심장의 한 처소를 가리킨다.
11 교운 2장 41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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