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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세이일폭십한(一暴十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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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2.19 조회3,3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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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강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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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폭십한은 『맹자(孟子)』 「고자상(告子上)」에 있는 말로서 초목을 기르는데 하루만 볕에 쬐고 열흘은 응달에 둔다는 뜻으로, 일을 꾸준히 하지 못하고 중단됨이 많으면 공(功)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맹자는 제(齊) 선왕(宣王)이 그의 타고난 어진 성품과 총명을 제대로 발휘 못하고 잠시 희망이 엿보이다가는 다시 제자리걸음을 치는 것을 안타까워 이런 말을 한다. “왕이 지혜롭지 못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세상에 쉽게 자라는 식물이 있다 하더라도 겨우 하루 동안 햇볕을 쬐어 주고 열흘씩이나 추운 곳에 두어 둔다면 능히 자랄 식물이 없습니다(雖有天下易生之物也  一日暴之十日寒之 未有能生者也). 내가 왕을 뵈옵고 인의(仁義)로서 권면하여 양심을 싹트게 해주는 기회는 드물고, 내가 물러나면 곧 불의와 부정을 가지고 왕의 양심을 상실케 하는 인간들이 모여드니, 비록 양심의 싹이 텄다 하더라도 그 양심이 온전히 유지가 되고 길러지겠습니까?”
 
  여기서는 식물이 잘 자라지 않는 까닭을 기후와 주위 환경 때문이라고 말한 것이나 실은 왕 자신의 노력이 부족함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노력하지 않고 쉽게 결과를 얻으려는 것을 욕속부달(欲速不達)이라 한다. 무릇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부단한 공(功)을 드려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수도 과정에서도 조금 정성들이다 말고 생각나면 하는 식으로는 큰 발전이 없다. 원래 하늘의 도는 정성 그 자체로 부단(不斷) 불식(不息)하여 쉼과 틈이 없이 꾸준하다. 그러므로 면이수지(勉而修之)하고 성지우성(誠之又誠)하여야 마침내 정성이 도에 합치될 것이다.
   우리는 본래 타고난 본성이 있다. 우주의 진리를 내 안에 품고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안에 잉태한 씨앗을 발아시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마치 물을 백도(百度)로 끓이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가열이 필요한 것과 같다. 가열을 지속적으로 하지 않고 간헐적으로 한다면 오랜 시간이 지난다 할지라도 물은 끓지 않을 것이다. 또한 불을 지속적으로 때더라도 너무 약한 불로 하여도 물은 끓지 않는다. 그러므로 물이 끓기 위한 조건은 일정한 수준의 불의 세기와 일정한 수준의 지속시간이라 할 것이다. 여기서 불의 지속성은 시간적 연속성의 의미를, 불의 세기는 불의 조밀(稠密)한 정도로 공간적 연속성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대순진리회요람』의 ‘성(誠)’에 대한 구절에 의하면 ‘정성이란 늘 끊임없이 조밀하고 틈과 쉼이 없이 오직 부족함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이름이다’라고 하는데 틈과 쉼이 없다는 것은 시간적 연속성을, 조밀함은 촘촘하고 빽빽하다는 뜻으로 공간적 연속성을 의미한다. ‘부족함을 두려워하는 마음’이란 일정 수준의 시간적·공간적 연속성에 도달하지 못할까 염려한다는 것으로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위 이야기에서 왕이 양심의 싹을 키우고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이 사심이 들지 않도록 매 순간 살피는 일과 동시에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사심이 없도록 하는 두 가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대순회보> 1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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