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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 도를 닦는 의미와 시련의 극복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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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은선 작성일2018.12.06 조회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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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36 방면 교정 이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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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자본주의 체제를 통해서 만들어진 이해관계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능력이 뛰어나길 바라고 더 잘살기를 바랍니다. 주변 사람과 자신을 비교했을 때 능력이 부족하고 뒤처지는 것 같으면 열등감에 휩싸이면서 가지지 못한 것들을 좇습니다. 자기 자신을 모른 채 허상을 좇으면서 자신의 욕심이 채워지지 않으면 마음이 병들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니 요새는 각종 정신질환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데 마음의 고통이나 상황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그것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이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이유를 깨닫지 못한다면 괴로움을 잊을 수 있는 외부적인 것에 중독되거나,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탓하며 살아갈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각자마다 삶의 의미가 다 다른데 자기만의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해서 공허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세태 속에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은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정말 큰 것 같습니다.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의학박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3년 동안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정신분석 방법인 ‘로고테라피’를 완성하여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선구자 역할을 하게 됩니다.
  빅터 프랭클 박사는 강제수용소에서 있었던 일을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하면서 담담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첫 페이지를 풀어나갑니다. 저자는 대량학살이 자행되었던 수용소에서 수백만 명의 수감자들의 일상이 어땠는지, 그리고 이름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시련이 헛되지 않도록 그들의 체험을 오늘날의 시각에서 설명합니다. 또한, 그곳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 아직도 삶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수용소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당했던 일들에 대해서 알리고 그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이 글을 쓰게 됐다고 설명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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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가 있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한 1,500명 중 90%는 가스실에 보내져 죽임을 당하고, 일할 능력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은 강제 징집되어 노역에 시달리게 됩니다. 강제 징집에 뽑혔다고 해서 목숨을 보장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할 능력이 없어 보이면 무참히 가스실로 보내지기 때문에, 수용소에서의 생활은 매일이 생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이었습니다. 그들은 목숨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가능하다면 유리 조각으로라도 매일 면도를 하고, 더 젊어 보이려고 뺨을 문질러서 혈색이 좋아 보이게 해서라도 일할 능력이 있어 보이게 해야만 했습니다. 인간이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음식조차도 자신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였고, 사랑하는 친구를 구하기 위한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통해서라도 얻어 내야만 하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심리학자였던 저자는 수용소에 도착한 첫날, 그때까지 심혈을 기울여 써온 정신분석에 관한 원고를 나치에게 빼앗기면서 인생 전부를 박탈당한 느낌을 경험합니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압수당하고 몸에 있는 털이란 털은 다 깎여져서 서로를 거의 알아볼 수 없게 될 지경까지 가게 되면서, 벌거벗은 몸뚱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말 그대로 벌거벗은 실존과 마주하게 됩니다. 저자의 아버지, 어머니, 형제, 그리고 아내가 모두 강제수용소에서 죽임을 당하거나 가스실로 보내졌습니다. 그리고 강제수용소에서는 추위와 굶주림, 잔혹함, 시시각각 다가오는 몰살의 공포 등등 모든 상황이 가지고 있는 전부를 상실하게끔 하였습니다.
  그런 처참한 환경 속에서 저자는 수용소에서도 인간이 자기 행동의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강제수용소라는 벗어날 수 없는 똑같은 환경 속에서 사람들의 모습은 여러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같은 상황 속에서도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그 개인의 내적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는 최악의 환경에 놓여있는 사람도 스스로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나온다고 합니다. 실제로 수용소 내에서 사람들은 예상치 못하게 극과 극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수감자 중 관리자로 뽑힌 사람을 ‘카포’라고 하는데, 그들은 자신만 살기 위해서 양심을 저버리는 선택을 합니다. 그들은 같은 민족(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동료를 감시하고 무시하고 멸시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강제 노역을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오물이 가득한 바닥에 가혹한 폭력에도 꿈쩍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만 있었는데, 말 그대로 삶을 자포자기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반대로 다 같이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빵 한 조각을 다른 사람에게 기꺼이 내주는 사람도 있었고, 사랑하는 가족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 매일 가족과 다시 만날 것을 상상하면서 버티는 이도 있었습니다. 또 빅터 프랭클 박사처럼 인생의 고통과 시련으로 받아들여서 그것을 승화시킴으로써 전혀 다른 새로운 가치로 만들어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나 혼자 살아남기도 힘든 수용소에서 남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이러한 시련은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었습니다. 삶을 의미 있고 목적이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자기 자신이며, 그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빼앗길 수 없는 고유한 영혼의 자유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도를 닦으면서 접하게 되는 상황도 수용소에서 상황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도의 진리에 대해서 후각에게 똑같이 이야기해도 사람마다 갖는 마음과 태도는 다른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수도인은 도의 진리에 큰 가치를 느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해서 남을 잘되게 해주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겁액을 극복해서 많은 사람에게 귀감이 되고 후각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서 매일 열심히 살며 모범을 보입니다. 하지만 어떤 수도인은 도를 닦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면하고 피하기만 해서 몇 년이 지나도 제자리에 머뭅니다. 또 어떤 수도인은 자기 잘못은 없고 환경, 상황, 선각들 탓을 하며 원망만 합니다. 그리고 자기 상황이 잘 풀리면 도를 찾지 않다가, 상황이 안 풀리고 힘들어지면 그때만 선각들을 찾는 수도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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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를 닦는 수도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떠올리면서 저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수도하면서 어떤 상황과 내면의 변화를 계기로 도를 닦는 의미를 생각해보게 되는데, 수도의 단계에 따라서 도를 닦는 의미가 바뀌는 것 같습니다. 입도를 했을 때는 부족한 성격을 고치고 후천을 준비하기 위해서 자신을 스스로 변화시키는 것에 의미부여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수도를 하다가 잠시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도에서 벗어난 상황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사회에 대한 마음이 많아서 인생의 의미를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서 능력을 키우고 인정받는 것에서 찾았습니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갖춰야 할 외부적인 조건에 저 자신을 맞추려고 아등바등하면서 여유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인생을 이렇게밖에 살아갈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고, 더 큰 가치를 추구하고 싶은 마음에 만족감을 느낄 수 없어서 항상 공허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결국에는 과거에 도를 닦으면서 느꼈던 내면의 만족감이 컸으므로, 다시 제대로 수도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도를 닦게 되면 내면의 공허함은 사라질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다시 도를 닦으니 완전히 버리지 못한 사회에 대한 미련이 수시로 올라왔고,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많은 데 비해 일꾼의 현실은 너무 바쁘고 힘들었습니다. 도 안에 있으면서 포덕을 하고, 공부나 수강·연수를 가고, 후각들을 만나면서도 욕심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마음을 비우지 못하다 보니까 도를 닦는 삶을 받아들이지 못해 다시 방황했습니다.
  도를 닦으면서 인생의 의미에 관해서 교화를 많이 들었지만, 막상 그것을 현실에 적용해서 실천한다는 것은 너무 거창하고 막연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돈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현실적인 부모님 밑에서 성장하며 돈과 능력 외에는 다른 중요한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자라온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았을 때 제대로 된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했고 또 저의 겁액을 인정하지 않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수도하고 있었습니다. 도를 닦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면서도 고생하기 싫어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인 정 때문에 차마 선각들을 뿌리치지 못해 마지못해 닦으면서 선각분들을 힘들게 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한 것도 결국 제가 선택한 것인데, 그동안 제 선택에 대한 책임을 선각들에게 떠넘기고 저는 아쉬운 게 없는 사람처럼 어리게만 행동했던 것 같습니다. 조상님께서 60년 동안 공에 공을 들여서 어렵게 태어난 것을 생각해보니 저의 잘못된 행동을 반성하게 됩니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자기 혼자 만족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事之當旺在於天地 必不在人
然無人無天地 故天地生人 用人
以人生 不參於天地用人之時 何可曰人生乎
일이 마땅히 흥성함은 천지에 있는 것이지 반드시 사람에게 있지 않다. 그러나 사람이 없으면 천지도 없다. 그러므로 천지가 사람을 낳아서 쓰고자 한다. 사람의 삶으로써 천지가 사람을 쓰고자 할 때 참여하지 않는다면 어찌 사람의 삶이라 하겠는가

교법 3장 47절

 

  천지가 사람을 쓰려고 하는 데 쓰임이 되지 않는다면 사람으로서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저 역시 지난날 잘못 먹었던 마음을 반성하고 인생의 의미를 제대로 받아들여서 책임감을 가지고 수도를 해나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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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저자는 아우슈비츠에서 보낸 3년이란 시간을 통해서 시련의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이 자신의 운명과 그에 따른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삶에 더욱 깊은 의미를 부여할 폭넓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아니면 이와는 반대로 자기 보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잃고 동물과 같은 존재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선택권은 인간에게 주어졌고 그 결정은 자신의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느냐 아니냐를 판가름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수감자는 그전까지는 제멋대로인 삶을 살고 정신적인 성취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하지 못하다가, 수용소에서의 체험을 통해 내적인 세계와 마주한 뒤 죽음조차도 평화롭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내면세계가 간직하고 있는 도덕적, 정신적 자아가 무너지도록 내버려둬서 결국 수용소의 타락한 권력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같은 환경 속에서도 시련의 의미에 대한 선택은 자신이 내릴 수 있습니다. 만약 삶에 어떤 목적이 있다면 시련과 죽음에도 반드시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 줄 수 없습니다. 각자가 스스로 이것을 찾아야 하며 그 해답이 요구하는 책임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만약 그것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어떤 모욕적인 상황에서도 계속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니체의 말을 인용하여 더 설명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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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은 빅터 프랭클 박사에게는 인생의 시련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겁액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수용소에서 일생의 연구를 기록한 원고를 잃어버린 것이 빅터 프랭클 박사에게는 큰 시련이었지만, 다시 그 원고를 쓰기 위해서 수용소에서 고통을 견디면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습니다. 겁액을 피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총동원해서 그 상황을 극복하였기 때문에 새로운 심리학 이론을 발견해 낼 수 있었습니다. 도인들도 마찬가지로 수도를 하다 보면 자신의 겁액을 마주하게 됩니다. 도통으로 가는 과정 속에는 어려움, 장애, 시험이 반드시 있다고 하는데. 이것을 시련과 역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련과 역경 없이는 결코 운수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시련과 역경에 대처하는 3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첫 번째 유형은 자신의 겁액을 감당하지 못해서 포기하고 도망가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처한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없고 가만히 있으면서 겁액에 굴복당하여 크게 성장할 기회를 포기하고 삶을 힘겹게 살아가게 됩니다. 두 번째 유형은 겁액을 극복하기보다 적당히 현실에 안주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 유형은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총동원하여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사회에서도 크게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시련과 역경이 자신을 발전시키고 성장시켰다는 이야기를 공통으로 합니다. 역경지수(Adversity Quotient, AQ)는 수많은 역경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해 목표를 성취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러한 능력을 IQ처럼 지수화한 것입니다. 앞으로는 IQ(지능지수)나 EQ(감성지수)보다 AQ(역경지수)가 높은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가 되리라 예측을 합니다. 인간이 얼마나 발전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머리가 좋고 나쁜 것과는 상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 성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표를 이루는 과정까지 참고 견디는 자세입니다. 참을성과 인내심이 없다면 결코 목표한 바를 달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해 성공을 이룬 인물 중에 대표적인 인물로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내셔널 파나소닉의 창업자 마스시타 고노스케가 있습니다. 그는 “나는 하나님이 주신 3가지 역경 때문에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자신이 가난했기에 그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세상살이에 필요한 다양한 경험을 얻을 수 있었고, 둘째는 몸이 몹시 약해서 항상 운동에 힘썼기 때문에 늙어서도 건강을 유지하여 많은 일을 할 수 있었고, 셋째는 초등학교도 못 다녔으므로 모든 사람을 스승으로 삼고 배우는 것에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역경지수가 높은 사람은 자신의 환경을 비관하지 않고 긍정적인 생각과 마음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는 데 집중합니다. 그리고 어려움 속에서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돕고 이끌어주면서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노력합니다. 『전경』에도 역경에 관해 말씀해 주신 구절이 있습니다.

  

상제께서 어느 날 종도들에게 맹자(孟子) 한 절을 일러 주시면서 그 책에 더 볼 것이 없노라고 말씀하셨도다.
天將降大任於斯人也 必先勞其心志 苦其筋骨 餓其體膚 窮乏其贐行 拂亂其所爲 是故 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
하늘이 장차 이 사람에게 큰 임무를 맡기려 하실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수고롭게 하고 근육과 뼈를 괴롭게 하며,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길을 떠남에 궁핍하게 하여 그 하고자 하는 바의 일을 어그러뜨리고 어지럽게 한다. 이러한 까닭에 마음을 분발하고 성질을 참아 내면 그가 능하지 못한 것들을 더 잘할 수 있게 된다.

행록 3장 50절

 

  빅터 프랭클 박사도 수용소에서의 체험이 없었다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이은 정신요법 제3 학파라 불리는 ‘로고테라피 학파’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수용소에서의 고난을 극복하여 얻은 깨달음을 많은 사람의 인생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승화시켰습니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 상황 속에서 곳곳에 만연한 고통과 악의 세력을 몸소 경험한 사람으로서 곤경을 이겨내고 자신을 올바르게 이끌어 줄 진리를 찾아내어 오늘날 ‘죽음조차 희망으로 승화시킨 인간 존엄성의 승리’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의 이론은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인생의 길을 잃고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나침반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도를 닦는 과정이 힘들지만, 그 과정을 선택한 것은 결국 자기 자신입니다. 우리는 그 선택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수도를 해나갔을 때 운수와 가까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하늘에서 사람을 낼 때 헤아릴 수 없는 공력을 들인다고 하셨는데, 자신의 삶에 책임을 다하는 자세는 천지와 조상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제가 처한 상황이 나를 더 크게 성장시키고 발전시켜서 기국을 키워주시려는 상제님의 뜻임을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빅터 프랭클 박사처럼 인생의 시련과 역경을 외면하지 않고 긍정적인 자세로 견뎌내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우선 해원상생·보은상생을 실천하여 남을 잘되게 하고 척을 잘 풀고, 받은 은혜에 대해서 반드시 보답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선각들께는 성·경·신으로 체계를 잘 세워서 받들어 나가고, 후각들에 대해서는 포용하는 마음으로 도를 잘 닦아 나갈 수 있도록 올바르게 이끌어주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련과 역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인 것 같습니다. 도전님께서도 “모든 일에 그 목적을 달성하려는 과정에서 반드시 장애가 있으니 이것을 겁액이라 한다. 이 겁액을 극복해 나가는 데 성공이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도하는 과정에서 겁액이 없다면 제대로 수도를 할 수가 없습니다. 올바르게 수도를 하고 있으므로 겁액도 오고 시련도 오는 것입니다. 겁액을 잘 풀어내면 내면의 힘이 생겨서 어떤 어려움이 와도 잘 넘길 수가 있습니다. 수도하는 과정에서 오는 어려움을 잘 극복하여 저와 비슷한 겁액을 겪고 있는 수도인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한, 이제는 저의 삶을 저 스스로가 선택하고 책임지며, 시련과 역경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극복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순회보> 2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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