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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湖南)

호남(湖南)


전라남도와 전라북도의 총칭


◎ 해당 『전경』  구절
 
  경석으로 하여금 양지에 “전라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 강 일순 호남 서신 사명(全羅道古阜郡優德面客望里 姜一淳湖南西神司命)”이라 쓰게 하고 그것을 불사르게 하시니라. 이때에 신 원일이 상제께 “천하를 속히 평정하시기 바라나이다”고 아뢰니 상제께서 “내가 천하사를 도모하고자 지금 떠나려 하노라” 하셨도다. (행록 5장 33절)
 
  천도교 손 병희(孫秉熙)가 호남 일대를 순회하고자 전주에 내려와서 머물렀도다. 상제께서 공우에게 “네가 전주에 가서 손 병희를 돌려보내고 오라. 그는 사설로 교도를 유혹하여 그 피폐가 커지니 그의 순회가 옳지 않다”고 분부를 내리셨도다. 이에 그가 복명하였으되 이튿날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씀이 계시지 않으므로 이상히 여겼느니라. 며칠 후에 손 병희는 예정한 순회를 중지하고 경성으로 되돌아갔도다. (권지 1장 33절)

 

◎ 지명 유래와 변천사

  호남의 명칭은 호수 남쪽에 있다는 데서 유래 되었다. 이 호수는 김제(金堤)의 벽골제(碧骨堤)호라고 하기도 하고, 금강(錦江)이라고도 한다.
  호남지역은 삼한(三韓)시대에는 마한(馬韓)에 속하였고 삼국(三國)시대에는 백제(百濟)의 영토가 되었다. 후삼국(後三國)시대 견훤은 완산주[完山州: 지금의 전주(全州)]에 후백제(後百濟)를 창건하였으며, 고려(高麗)시대 993년(성종 14)에 전라북도는 강남도(江南道), 전라남도는 해양도(海陽道)라 불렀다. 그 뒤 현종 9년에 전주(全州)의 전(全) 자와 나주(羅州)의 나(羅) 자를 따서 전라주도(全羅州道)라고 하였다. 조선시대부터 전라도를 호남이라고 불렀으며, 그 뒤 1896년(고종 32)에 전국을 13개 도(道)로 개편하는 과정에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46년 제주도(濟州道)가 도(道)로 승격되면서 제외되어 이 지방의 실질적 범위는 반도부(半島部)와 연안도서(沿岸島嶼)에 이르고 있다.
  호남의 인구는 3,603,832명(2005년 조사)이고 지리적으로는 동쪽의 소백산맥, 북쪽의 금강을 경계로 하는 그 이남지방을 가리킨다. 노령산맥과 소백산맥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어 서해와 남해로 몰입하면서 동고서저(東高西低)지형을 형성하고, 도서지대에는 진도(珍島)·완도(莞島)·지도(智島)·신안군도(新安群島)등을 비롯한 약 400여 개 섬들이 있다.

  

◎ 문화 유산

  불교의 문화 지역이었던 호남은 백제의 멸망과 조선의 숭유억불정책으로 그 유산이 많이 소실되었다. 내장사(內藏寺), 금산사(金山寺), 선운사(禪雲寺), 송광사(松廣寺), 화엄사(華嚴寺) 등 많은 사찰이 곳곳에 산재하고 불전, 불상, 사탑 등 국보로 지정된 불교문화의 유물 및 유적들이 보존되어 오고 있다.

참고문헌
『전경』
『한국의 발견 전라북도』, 뿌리깊은 나무, 1988.
『두산세계대백과사전』, EnCyber, 2002.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CD GX, (C)한국브리태니커회사, 2002.
『파스칼세계대백과사전』, 동서문화, 2002.
한글학회,『한국지명총람 11』(전북편 上), 한글학회, 2003.
이병운, 『한국 행정지명 변천사』, 이회, 2004. 
송호열, 『한국의 지명 변천』, 성지문화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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