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훈시종통에 대한 훈시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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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7.10 조회415회 댓글0건본문
진리, 진리 하지만 자기의 생각에 따라 자기의 소견이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진리야 다 찾지만 어떤 이는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한다. 누구나 다 자기가 진리라고 그러는 것이다. 상제님을 믿는 데도 여러 종파가 있는데, 각자 다 진리가 있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는 상제님을 추종하는 것이지 꼭 믿어야 한다는 것은 없다. 상제님의 인격이나 해 오신 행적을 봐서 존경하는 것뿐이다. 그들에게는 진리가 없다. 그 사람들대로라면 연운도 체계도 법도도 없다.
상제님께서 강씨 가문에 강세하셨는데 상제님께는 아들이 없었다. 상제님께서도 조부님과 부모님이 계셨으므로 인세(人世)의 풍습으로 화천 후 양자를 들였는데, 그 강석환 교장이라는 사람도 부친께서 많이 알고 계신다고 생각해서 추종하는 것뿐이었다. 다른 사람이 하느님이라고 하니까 따라서 그렇다고 믿는 것이다.
하느님이 계시고 하느님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은 도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하느님이라 증거할 수 있는 것, 그것을 진리라고 한다. 진리는 이론인데 이론은 끝이 없다. 이것이 바로 진리다. 그래서 믿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것에 우리 이상은 없다. 그래서 하느님이심을 자신하고 나가는 것이다.
상제님 재세 시 종도들에게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다.『전경』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재세 시 종도들과 다른 사람에게 하신 말씀과 행하신 내용을 적은 책이다. 물론 『전경』에 빠진 말씀도 있다. 『전경』에 당신이 하느님이라 하셨다. 천지신명들이 구천에 겁액을 하소연하였으므로 내가 이 세상에 왔노라 하셨고,01 삼계대권을 쥐고 계시며 상도(常道)를 잃은 천지를 바로 잡으려고 이 세상에 왔노라 하셨으니02 하느님이신 것이다.
하느님이 계시면 창도하시는 분인 도주님이 계셔야 한다. 상제님께서 화천하신 해에 도주님께서 만주 봉천(奉天)으로 가셨다. 그 해 도주님 천수(天壽) 15세셨다. 15는 진주(眞主)라 한다. 『전경』에도 진주노름이란 말이 있다.03 10을 무대라고 하고 무대는 수 중에 제일 높은 수이다. 진주노름에서 무대를 잡으면 아무도 못 먹는다고 한다. 무대는 무극대도(無極大道)이다. 거기서 참 주인이심을 알 수 있다. 봉천(奉天)이니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받든다.
도주님께서는 나라를 구하고 창생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입산수도하시다가 우리 도의 진리를 깨달으셨다. 정사년(丁巳年, 1917년) 2월 10일 23세 되시던 해에 득도를 하셨다. 23수는 태을주의 수와 일치한다. 그 주문으로 도를 받으셨다. 자신이 서시자 상제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으시고 조선으로 나오셨다. 이것만 알아도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지만 그때는 허령(虛靈)이었다. 배를 타고 나오시다 풍파를 만나 배가 뒤집힐 것 같았는데도 기분이 좋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뚫고 나오셨다고 한다. 금방 통할 것 같으니까 그러셨다. 내리신 곳이 태안(泰安)이었고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안면도(安眠島)에 가셨다. 안면도는 편안할 안(安), 졸 면(眠) 즉 잠시 쉬어가시는 곳이라는 뜻이다. 농사지을 때도 잠시 쉬었다가 일하지 않는가. 잠깐 쉬고 전라도 태인(泰仁)으로 가야 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꼭 필요한 과정으로, 안면도는 반드시 경유를 하셔야 되는 곳이었다. 모든 일들은 때가 있고 거칠 것은 거쳐야 한다. 농사일에 김맬 때는 김매고 뽑을 때는 뽑듯이 우리도 부산과 중곡도장을 경유하여야 한다. 여주수도장을 먼저 지으면 되지 않는다.
상제님께서는 태인을 찾으라고 하셨는데 도주님께서는 태인을 태안으로 아시고 태안 안면도에 내내 계셨다. 식구들을 창기리(倉基里)에 두시고 공부도 하시고 난민구제사업과 간척사업도 하셨다. 하시다 보니 이것이 아니므로 전라도로 내려가셨고 결국 김제 원평 마동(馬洞) 김기부의 집에 있는 선돌부인을 만나시고 봉서를 받으셨다. 조씨(趙氏)를 말[馬]이라 했다. 안면도의 가족들을 황새마을로 옮기시며 통사동(通士洞) 이씨 재실을 얻어 공부를 하셨다.
도주님께서 만주로 가신 것이 기유년(己酉年, 1909년) 4월 28일인데, 4는 춘하추동 사계절, 28은 28수를 의미한다. 득도하신 정사년(丁巳年, 1917년) 2월 10일에서 2는 음양이고, 10은 수(數) 중에서 가장 높은 수를 뜻한다. 득도하시고 도를 펴시려고 물길을 통해 조선으로 나오셔서 태안을 거쳐 태인으로 가셨다. 도주님께서 겪으신 자체는 지나가며 모두 겪어야 하는 것을 겪으신 것이다.
해방 후는 마치 지금과 같이 뭐든지 마음대로 해도 되는 때였기에 보통 사람 같으면 전라도 태인에 가셔서 도장을 지으셨을 텐데 도주님께서는 부산에 가셔서 보수동에 도장을 세우셨다. 부산(釜山)은 팔금산(八金山)이다. 상제님께서 군산(群山)에서 수륙병진도수를 보셨는데,04 군산은 부산을 의미한다. 그 당시 사회는 종교도 자유, 모든 것이 자유였는데 우리 도는 음도수(陰度數)로 들어갔다. 도장을 보수동에서 감천으로 옮기시고 그 시대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유행하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므로 여기에서 파란곡절을 다 겪으셨다.
인공위성에서 내려다 본 부산 감천도장의 모습. 도장의 모습이 부산 감천 앞바다로 나가는 형국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인공위성에서 내려다 본 부산 감천도장의 모습. 도장의 모습이 부산 감천 앞바다로 나가는 형국임을 확인할 수 있다.
지성이라 그래서였는지 나(도전님)도 겪었다. 태극도 말엽에 한 3년간 파당이 생겨서 아무리 수습을 하려고 해도 안 되었다. 결국은 나 혼자 나왔다. 그때 심정이 참말로 내가 죄를 지어서 이렇게 된 건가 그랬다. 그때의 최고 간부들, 포장⋅호장들 나에게 참 잘했었다. 그러나 마음이 돌아가니 안 돌아오더라. 그런데 보니 내가 떠날 때 감천도장의 지형지세는 뱃머리가 바다 쪽으로 나오게 돌아간 모양이 되었고, 축대(축대 위의 집들)는 마치 뒤에서 파도치는 형상과 같았다. 그래서 내가 부산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고, 내가 떠나니 신명들도 아미동 산 고개를 넘어 다 떠나가더라.
01 교운 1장 9절.
02 공사 1장 2절.
03 행록 3장 65절.
04 공사 1장 17절∼19절 참조.
<1989년 음4월 4일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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