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훈시종통에 대한 훈시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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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7.12 조회349회 댓글0건본문
감천도장으로 옮겨서 대강전 올리고 영대 봉안했을 때 모든 행사는 감천에서 이루어졌다. 보수동에서는 행사가 없었다. 도주님 재세 시 을축년(乙丑年, 1925)에 태인에 도장을 건립하셨다가 일제에 의해 해산되고, 광복을 맞이하여 종교 자유가 시행되었지만 다시 태인으로 가지 않으셨다. 다른 종교 같으면 원래 그 자리인 태인에 다시 도장을 세우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도주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다. 그곳은 끝난 것이다. 도수다.
허령(虛靈) 때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이 나고 무극도장에서 나오신 뒤, 회문리 회룡재(회룡도장)에 지내시다가 광복 후에 도시인 부산으로 나오셨다. 나중 6ㆍ25 때 회룡도장은 불이 나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면 거기도 다 끝난 것이다. 한 번 넘어간 뒤에는 그만인 것이다. 회문리는 도주님께서 강세하신 곳이니 사회에서 볼 때 대순진리회가 회룡재에 관심을 둘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상제님께서도 객망리에서 동곡으로 가셨다가 다시 객망리로 가지 않으셨다. 그러니까 도라고 하는 것이다. 도라는 것은 변화가 있는 것이다. 변화가 없으면 도가 아니다.
도주님께서 부산 감천에서 화천하실 때 임원들을 모두 모아놓으시고 내게 도를 맡긴다고 분부하셨다. 해오던 대로 해나가라는 분부를 모셨다. 못된 사람들이 생각할 때 대순진리회로 개명하고 부산을 떠난 것이 명을 어긴 것이니 잘못이 아니냐고 하는데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다. 그런 선전을 부산(태극도)에서 하고 있다. 대순진리회를 세운 것은 도주님을 배신한 것이 아니다.
변화가 없으면 도가 아니다. 그대로라야 한다면 도인 수도 늘리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 가령 사람이 앉으면 전후(前後)가 있어야 된다. 그게 없으면 안 된다. 좌(左)가 있으면 자연 우(右)가 있으며, 동(東)이 있으면 서(西)가 있듯이 변화가 있다. 당연히 그래야 되는 것이다. 그게 도다. 변화가 있어야 되는 거다. 그게 없으면 도가 아니다.
도주님 화천하시고부터 지금까지 32년을 모든 것은 내가 맡아서 내려오고 있다.01 원래 부산에는 도주님 계시던 내정인 정사(精舍)와 2층 대강전, 그 두 채뿐이었다. 모두 학고방(작은 판자집)으로 도주님의 손때가 묻어 있는 곳이었으나 그것도 변화가 없으면 안 된다. 그냥 내버려두면 썩어 없어져 버린다. 그래서 대강전과 정사에 시멘트를 새로 바르고 철망도 쳤다. 도장에도 청학관(靑鶴館), 백학관(白鶴館), 진양원(眞養院), 수진각(守眞閣) 등을 더 지어 증축했다. 다 지어놓고 보니 도장 형세가 완전히 배 모습이었다. 감천에서 바다로 배가 나가는 형상이었다. 바다로 뱃머리를 돌리는 형(形)이 되고 내가 나왔다. 내가 자주 얘기하지만 태극도 사람들이 도에 대해서는 공로자다. 그 사람들이 나를 서울로 보내지 않았으면 발전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사람들이 공로자들이다.
지금은 서울 중곡동이 본부지만 모든 행사가 거기서 안 된다. 만약 할 만한 곳이어서 그곳에 가만있었다면 발전이 없다. 그래서 여주수도장을 지었다. 하느님께서 비밀로 감추어 두셨던 것을 때가 되니까 내어주셨다. 그것이 변화다! 도다!
01 1958년부터 1989년까지 32년이 됨.
<1989년 음5월 22일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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