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훈시종통에 대한 훈시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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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7.06 조회464회 댓글0건본문
타 종교, 다른 종파에서 ‘진사성인출(辰巳聖人出)’이라 해서 무진(戊辰), 기사(己巳)에 꼭 때가 된다고 하는 곳이 있으나, 우리 도인들이 이 말을 하면 어리석은 것이다. 성인(聖人)이 나왔으면 벌써 나왔지 지금 나와서 어떻게 하겠느냐! 지나간 것이다. 그 말은 도주님의 봉천명(奉天命) 봉신교(奉神敎)를 의미하는 것으로, 도주님께서 기유년(己酉年)에 만주에 가셔서 구궁도수(九宮度數)로 9년 만에 득도하신 해가 정사년(丁巳年)임을 뜻하는 것이다. 비결에 ‘육대구월해운개(六大九月海運開)’라 한 것은 그때를 말한 것이다.
도는 음양이고 사상, 오행이며 1년, 12월, 360일이다. 모든 조화⋅법칙은 음양에서 나온다. 음양의 원리에 의해 1년 12월에 사철이 다 들어가 있으며, 또 여기에 72후(侯)가 들어있어 모든 조화가 그 안에 다 있다. 음양의 이치로 변화하니 그것이 도이다.
구천상제님께서는 신미년(辛未年) 9월 19일 객망리에 오셨고, 도주님께서는 을미년(乙未年) 12월 4일 회문리에 오셨다. 신미에서 을미까지 25년이다. 25는 24를 빼면 1이 남는다. 24는 24절후이며 24는 24장이 들어가지 주인은 못 된다. 1은 시작이고 주인을 의미하니 옥황상제님이 되는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기유년(己酉年) 6월 24일에 화천하셨다. 6수(數)는 6⋅6해서 36으로, 36은 360을 뜻하고 360은 도(道)를 말한다. 360에는 24절후가 들어있으니 그러므로 24일에 화천하신 것이다. 이는 ????옥추보경????에도 있다. 신미년부터 기유년까지 해서 39세이시다. 일제 때 ‘3대 9년 만에’ 혹은 ‘39년 만에’라는 동요가 유행했는데, 이 동요는 이를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 동요가 없어졌다.
도주님께서는 무술년 3월 6일에 화천하셨다. 3수(數)는 천지인(天地人)이고 6수(數)는 6⋅6해서 36, 36은 360일이다. 360에는 12월이 있다. ‘十二月 二十六日 再生身’01이니 여기에 4가 들어가면 30일이다. 도주님께서 12월 4일에 탄강하셨으니, 12월 30일 해서 1년 12달 꽉 찬다. 이것이 도이다. 기유년부터 무술년까지 50년이다. 50년 공부종필(工夫終畢)이 되는 것이다.
5일을 1후(侯)라 하고 후가 셋이 모인 3후를 1절후(節侯)라 하니, 360일이 72후이고 72후가 24절후이다. 24절후가 1년이니 72후가 1년이다. 이것이 우리 도의 법이다. 공부도 이것을 가지고 한다. 공부 시 봉심들 때 12명씩 3줄을 선다. 12명 서는 것은 12월을 뜻하고, 12는 우리 도를 상징한다. 12명 3줄이면 36명이 되고 36은 360일이다. 이것은 자연(自然)의 도(道)에 맞춘 것이다. 72명을 세우는 것도 72후를 맞추는 것이니 숫자를 맞추는 것도 도의 법인 것이다. 지금 여주에서 공부방에 3명씩 7군데서 21명을 수련시키고 있다. 21은 3⋅7이다. 21로 한 것은 기도주 법에 맞춘 것이다. 숫자 맞추는 것이 공부시키는 것이다. 무엇을 해도 도법의 숫자를 잘 맞춰서 해야 한다. 이것이 도의 기본법이다. 그게 공부이고 도다.
다른 곳에는 도주님을 인정하지 않으니 진리가 없다. 상제님을 모시는 다른 교파에는 진리라는 것이 없다. 단지 상제님께서 기이하고 다른 사람과는 달랐기 때문에 이 어른만 믿으면 잘 될 것이라는 것이지 진리가 없다. 상제님 한 분만 가지고서는 안 이루어진다. 도주님이 들어가야 한다. 도주님이 안 들어가면 맞지 않는다. 상제님⋅도주님 두 분 법이라야 한다. 자연의 이치, 수리를 두 분의 법에 맞추어 쓰고, 맞추는 것이 도다. 이것이 우리 도의 기본법이 되고 강령이 된다. 옛 성인들의 글이나 말도 전부 이것이다. 미리 알고서 예언 같은 것으로 써 놓은 것이다. 생각에서 생각이 나고 깨닫는다는 것이나, 과학⋅철학도 모두 우주의 짜여진 것을 아는 것이다. 우주가 짜여져 있는데 늘 생각해도 벗어날 수 없다. 옛날에 글을 많이 배운 분들이 글만 배운 게 아니다. 앞으로를 많이 연구하여 생각이 나는 것을 적게 되면 많이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전부 연구⋅예언해 놓았던 것이다.
죽산 박씨 17대조02께서는 영의정을 지내셨던 어른이다. 이분이 아들03에게 글을 한 수 전하셨는데, 장차 내(도전님)가 하는 일에 관하여 아시고 전해주신 것 같다. 아들 나이 36세 때인데, 36이란 숫자가 이상하지? 전하신 말씀이 이조실록에 있는데, “오늘 밤에 너를 대해 술을 한 잔 돌리니 너의 생이 36춘(春)이다. 내가 너에게 전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있다면 청백(靑白)뿐이다. 이것을 한없이 사람들에게 전해 내려가라.”04는 것이다. 술잔 돌리는 것을 순배(巡杯)라 하니 대순이다. 36춘은 36궁에 산다는 뜻이다. 비결에 “옥토(玉免)는 만월(滿月)이요 백토(白免)는 소월(小月)이라 수종(須從) 백토(白兎) 주청림(走靑林)”이라 했다.05 파자(破字)로 풀면 백토는 소월(小月)이므로 주(走)+소월(小月)은 조씨(趙氏)가 된다. 도주님이 틀림없지 않은가! 청림(靑林)의 청(靑)은 十二月이고 림(林)은 十八十八이니 36을 의미한다. 36은 360일이다. 그러니 조씨의 도를 일 년 12달 좇으라는[須從] 말이 된다. 우리같이 도를 아는 사람이 도에 맞추어보면 다 맞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른다. 더 넓혀서 생각하고 연구해봐라. 재미있고 조금도 빈틈이 없다. 좋고 옳은 것을 알면 어려울 게 없다. 그것을 모르면 모든 게 어렵다. 다른 교파에서 상제님 옆에 도주님 모신 것을 두고 욕을 한다고 한다. 강석환06씨와 대담 중에도 “상제님보다 조금 아랫분이라면 아랫분이 윗분을 모시고 앉아 있는 게 무슨 잘못이냐?”고 했다.
01 공사 3장 41절
02 문헌공(文憲公) 박원형(朴元亨, 1411~1469). 조선 전기 세조⋅예종 때의 문신. 세조 때 호조⋅형조⋅이조⋅예조의 판서를 거쳐 우찬성을 지냈다.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좌의정으로 승진하였고, 예종 때 익대공신 2등에 책록, 연성부원군에 봉해졌고 영의정에 올랐다. 성품이 청렴했고, 시문에 능했으며, 과문(科文: 율법의 조문)에 특히 뛰어났다. 또한 사체(事體: 사리와 체면)에 통달하고 전고(典故)에 밝아 명나라 사신들의 접대에는 항상 뽑혔다. 그로 인해 그의 이름이 중국에까지 알려질 정도였다고 한다.
03 박안성(朴安性, 1434∼1512). 영의정 박원형의 아들. 1459년(세조 5) 식년문과에 정과로 합격한 뒤 부정(副正), 경차관(敬差官), 봉상시정(奉常寺正), 대사간, 충청도 관찰사, 형조참의, 이조참의, 황해도 관찰사, 호조판서, 전라도 관찰사, 한성부좌윤, 예조판서, 평안도 관찰사, 공조판서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504년 갑자사화 때 진잠(鎭岑)에 유배되었다가 연산군 폐위로 방면되었다. 1506년에는 좌찬성이 되었고, 그 뒤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가 되었다. 시호는 정안(靖安)이다.
04 박원형은 몸을 돌보지 않고 밤낮으로 국사를 수행하다가 결국 병석에 눕게 되었는데, 1469년 1월 8일 저녁에 아들 박안성(1434년 1월 8일생, 당시 36세)을 불러 놓고 “오늘은 너의 생일이니 술을 들고 나에게 축수(祝壽)해야 할 것이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한 수 읊었다고 한다. ‘今夜燈前酒一巡(오늘 밤 등불 앞에서 한 순배의 술을 드니) 汝生三十六靑春(너의 나이 서른여섯 청춘이라) 吾家舊物惟淸白(우리 집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은 청렴결백 그것뿐이니) 好把流傳無限人(잘 유지해 끝없이 사람에게 전해주라)’ 그로부터 십 수 일이 지난 1월 22일, 박원형은 향년 5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예종 3권 1년, 1월 22일 2번째 기사;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권 1 「상신(相臣)」 참조.
05 “달아달아 밝은달아 이태백이 놀던달아, 보름달은 온달이오 나흘달은 반달일세, 섣달이라 초나흗날 반달보고 절을하세, 대월이라 삼십일 소월이라 이십구일, 옥토는 만월이오 백토는 소월이라, 수종백토 주청림은 세상사람 누가알고” (????채지가???? 「달노래」); ‘수종백토주청림(須從白兎走靑林)’은 ????鄭鑑錄秘訣集錄????의 《鑑訣》 〈無學傳〉의 「五百論史秘記」와 《附錄 擬似稿本》의 「秘訣」, ????鄭鑑錄????의 《鑑訣》 「五百論史秘記」와 《鑑寅錄》의 「七言古訣」, ????批難鄭鑑錄眞本???? 제5장의 「五百論史秘記」에 있는 한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이 구절은 조선총독부가 수집한 ????無學秘記????의 《五百論史秘記》 마지막 구절인데, 조선총독부가 수집된 비결서를 모두 모아 정감록으로 편집하는 과정에서 정감록에 포함된 것이다. ????無學秘記???? 필사본 원본은 조선총독부를 거쳐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예언으로 읽는 우리 역사-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0)현대판 정본 정감록의 배후를 찾아라 《서울신문》, 2005.5.26, 26면 참조.
06 상제님께서 화천하신 후 강씨 문중에서 들인 상제님의 양자.
<1989년 음3월 7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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