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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동묘(萬東廟) Ⅱ
상제께서는 중국의 일을 신도로부터 바로 잡고자 종도들의 생각을 물어 공사를 처결하시고 우리가 부흥하리라고 예시하셨다.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의 조공을 받아왔으므로 이제 보은신은 우리에게 쫓아와서 영원한 복록을 주리니 소중화가 곧 대중화로…
오랜 역사와 함께 찬란한 문화유산을 간직하며 한족(漢族)의 자부심으로 동양 문화권의 선두자리를 견지해 왔던 중국은 대륙이 광활한 만큼 이민족에 의해 많은 시달림을 당해 왔다. 중국이 외세의 침략을 당하면 이웃나라인 우리나라도 그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그래서 상제께서는 중국이 편안해야 우리나라가 안정을 찾고 부흥할 것이라는 관점에서 중국의 일을 신도(神道)로부터 바로잡고자 종도들의 판단을 들어 공사를 처결하셨다.
상제께서 원일과 덕겸에게「너희 두 사람이 덕겸의 작은 방에서 이레를 한 도수로 삼고 문밖에 나오지 말고 중국 일을 가장 공평하게 재판하라. 너희의 처결로써 중국일을 결정하리라」이르시니 두 사람이 명하신 곳에서 성심성의를 다하여 생각하였도다. 이렛날에 원일이 불리워서 상제께「청국은 정치를 그릇되게 하므로 열국의 침략을 면치 못하며 백성이 의지할 곳을 잃었나이다. 고서(古書)에 천여불취 반수기앙(天與不取反受其殃)이라 하였으니 상제의 무소불능하신 권능으로 중국의 제위에 오르셔서 백성을 건지소서. 지금이 기회인줄 아나이다」고 여쭈어도 상제께서 대답이 없었도다. 덕겸은 이렛동안 아무런 요령도 얻지 못하였도다. 상제께서「너는 어떠하뇨」하고 물으시는 말씀에 별안간 생각이 떠올라 여쭈는지라.「세계에 비할 수 없는 물중지대(物衆地大)와 예락문물(禮樂文物)의 대중화(大中華)의 산하(山河)와 백성이 이적(夷狄:오랑케)의 칭호를 받는 청(淸)에게 정복되었으니 대중화에 어찌 원한이 없겠나이까. 이제 그 국토를 회복하게 하심이 옳으리라 생각하나이다.」상제께서 무릎을 치시며 칭찬하시기를 「네가 재판을 올바르게 하였도다. 이 처결로써 중국이 회복하리라」하시니라. 원일은 중국의 해원공사에만 치중하시는가하여 불평을 품기에 상제께서 가라사대「순망즉치한(脣亡卽齒寒)이라 하듯이 중국이 편안하므로써 우리는 부흥하리라.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의 조공을 받아 왔으므로 이제 보은신은 우리에게 좇아 와서 영원한 복록을 주리니 소중화(小中華)가 곧 대중화(大中華)가 되리라」일러 주셨도다. (공사 3장 18절)
이러한 중국해원공사의 취지하에 상제께서는 김 일부를 청국명부에 앉히시고 「청주 만동묘(萬東廟)에 가서 청국 공사를 행하려 하나 길이 멀어 왕래하기 어렵고 불편하므로 청도원(淸道院)에서 공사를 행하리라」하시고 청도원 류찬명의 집에 이르러 천지대신문을 열고 공사를 행하셨다. 그리고 『상제께서 어느날 고부 와룡리에 이르사 종도들에게 「이제 혼란한 세상을 바르려면 황극신(皇極神)을 옮겨와야 한다」고 말씀하셨도다.「황극신은 청국 광서제(淸國 光緖帝)에게 응기하여 있다」하시며 「황극신이 이 땅으로 옮겨오게 될 인연은 송우암(宋尤庵)이 만동묘(萬東廟)를 세움으로부터 시작되었느니라」하시고 밤마다 시천주(侍天呪)를 종도들에게 염송케하사 친히 음조를 부르시며「이 소리가 운상(運喪)하는 소리와 같도다」하시고 「운상하는 소리를 어로(御路)라 하나니 어로는 곧 군왕의 길이로다. 이제 황극신이 옮겨져 왔느니라」고 하셨도다. 이때에 광서제가 붕어하셨도다 』(공사 3장 22절), 위의 공사는 청국의 황극신을 운상하는 소리를 내어 만동묘에 응기케 함으로써 청국 광서제가 붕어하는 공사의 실제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공사는 도주님에 의해서도 연결되었고 실제로 신명의 감응이 있었음을 아래의 구절에서 엿볼 수 있다.
갑오년 삼월에 도주께서 안 상익(安商翊)외 네 명을 대동하고 청천에 가셔서 황극신(皇極神)이 봉안되어 있는 만동묘 유지(遺趾)를 두루 살펴보고 돌아 오셨는데 돌아서실 때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밤중에 폭풍과 뇌성벽력이 크게 일어 산악이 무너지는 듯 하니라. 다음날에 숭정황제어필(崇禎皇帝御筆)의 비례부동(非禮不動)이 새겨 있는 첨성대 아래쪽 암벽의 좌편에 닫혀 있던 석문(石門)이 두쪽으로 갈라져 내리고 그 안의 옥조빙호(玉藻氷壺)의 네자와 만력어필(萬曆御筆)의 네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전하였느니라. (교운 2장 50절)
이제까지 중국을 대국이라 일컬으며 모화사상에 심취해 있던 약소민족이 상제님의 해원도수에 따라 만동묘를 기점으로 하여 황극신이 모셔짐에 따라 대중화가 되고 보은신이 우리에게 옴으로써 영화와 복록을 얻게 되었다. 원시반본의 대원칙에 따라 중국이 한족(漢族)을 중심으로 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상제님의 덕화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사는 단순히 중국의 해원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순망즉치한이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이 제 위치를 찾아 편안해야 우리나라가 안정을 갈구할 수 있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여 동북아시아가 평화로워지면 세계 또한 화평의 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따라서 만동묘에 행해진 공사의 의의는 지대하며 이러한 개개의 공사가 도수에 따라 하나하나 이루어질때 우리나라는 만국을 활계하고 문명이 크게 개화하여 도화낙원(道化樂園)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대순회보》 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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