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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 名穴, 聖德과 富의 길지 승달산에 무안 胡僧禮佛穴

교무부    2017.01.25    읽음 : 1672


본문

천하 名穴, 聖德과 富의 길지 승달산에 무안 胡僧禮佛穴 

 

사명당 갱생이란 「明」자를 쓴 四明堂이라 

조화는 佛法, 호승예불(胡僧禮佛)을 쓴다. 

      

 

연구실

  

  전남 광주(光州)와 목포(木浦)사이에 있는 무안(務安)에 이르면 목포대학교(木浦大學校)가 있고 그곳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5km쯤 떨어진 곳에「승달산(僧達山:318m)」이 있다. 이 산은 목포에 있는 유달산(儒達山:223m)과 쌍벽을 이루는 산으로 그렇게 크지도 높지도 않은 아담하고 청초(淸楚)한 산이다. 이 산을 승달산(僧達山)이라고 한 것은 1122년(고려 인종때) 원(元)나라 원명(圓明)이 이산에서 교세(敎勢)를 크게 떨치고 그의 제자 5백여명이 모두 달도(達道)한 후부터라고 한다. 이 산에는 법천사(法泉寺), 목우암(牧牛庵) 그리고 총지사(摠持寺)등이 있는데 법천사는 신라 성덕(聖德)여왕 24년 금지국(金地國)의 스님 정명(淨明)이 창건 했고 고려 현종조인 1030년 화재가 난 후 일백여년 뒤인 인조대왕 때(1122년) 이 자리를 청계(淸溪)쪽으로 옮겨지었으나 또 다시 임진왜란(壬辰倭亂)에 의한 불로 겨우 불상과 불구(佛具) 일부만 목우암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목우암은 성명스님이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승달산 정기를 받은 목동(牧童)이 득달(得達)때 지은 절이라고도 하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법천사에서 20여리를 송정마을 쪽으로 가면 총지사 절터가 있는데 신라(新羅)때 혜통(惠通)이란 중이 당(唐)나라에 건너가 3년간 공부한 뒤 665년에 개산(開山)하였다하며 총지종파(摠持宗派)로서 1424년에는 전남지방의 천태, 조계(天台, 曹溪)등과 합쳐 90여동에 달하는 거찰(巨刹)이었으나 1810년경에 폐찰(廢刹)되어 절터만 남아 있고 500m거리에 석장승(石長僧) 2개가 입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이 절이 폐찰된 것은 당시 충북 석성현감(忠北 石成顯監)을 지낸 임면수(林勉洙)라는 인물의 세도 때문이었는데 그의 부친 묘를 절 뒷층에 쓰자 중들이 사찰경내에 묘를 썼다고 직접적인 항의는 못하고 참나무 말뚝을 묘지 가운데 박아 버렸다. 후에 이를 안 임면수가 중들을 쫓아버리고 절에 불을 질러 버렸다고 한다. 또한 이 절이 세워진 유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조선조 중엽 신적리(新積里)마을에 박(朴)씨와 이(李)씨가 살았었는데 두 성씨는 평소 사이가 나빴으나 이씨의 아들과 박씨의 딸은 부모들의 관계와는 달리 서로 사랑했고 이를 안 박씨는 딸을 죽이려하므로 박씨의 딸은 이씨에게만 알리고 승달산속 암자에 몸을 숨겼는데 이곳 암자의 주지승이 이 처녀를 겁탈하고 말았다. 박씨 딸로부터 고백을 들은 이씨 아들은 이 암자로 쫓아가 중을 죽이고 암자에 불을 지른 뒤 남녀가 함께 불속에 뛰어 들어가 죽었다. 그 후 서로 원수처럼 지내던 이씨와 박씨는 비로소 화해한 뒤에 마음을 합쳐 법천사를 짓고 두 남녀의 원혼을 위해 빌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유적을 담고 있는 승달산은 상제님께서 궁을가에 있는 사명당 갱생이란 말은 중 사명당이 아니라 밝을 명자를 쓴 사명당이니 조화는 불법에 있으므로 호승예불을 쓴다(행록 5장 15절)하신 곳으로 지금까지도 누가 이 혈을 썼다는 확인을 할 수 없는 채 다만 넓은 지역을 두고 「여기일 것이다 저기일 것이다」하는 막연한 공론만 있을 뿐이다. 다만 각자 나름대로 많은 사람들이 여러 곳에 호승예불이라 하여 썼을 뿐인 것이다.

  그러면 「호승예불혈」에 대한 내용을 보기로 하자. 호승예불혈은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탄생을 전후한 시기에 고승 도선(道詵)대사의 비결에 나타나며, 일지승(一指僧)같은 명사들이 남긴 비결록에 의하여 유명해진 것이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호승예불혈을 찾으려고 답사하였으나 지금까지도 미궁에 쌓인 보물을 찾는 것처럼 되어 있다. 이 혈은 대간룡(大幹龍)등의 일대간룡(一大幹龍)이 진(盡)하여 맺어진 혈이기 때문에 천하명혈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산맥은 곤륜산 제4지맥이 입우동해하여 백두산이 생겼고 여기서 발원하여 금강산을 거쳐 태백산에 이르러 두 갈래로 갈라져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되어 이대간룡(二大幹龍)은 동해(東海)와 서해(西海)로 흘러들어 갔다. 소백산맥은 내장산(內藏山)을 거쳐 방장산(方丈山) 불갑산(佛甲山)을 지나 연등(淵燈) 산하(山下) 승달산에 이르러 천리여장(千里旅裝)을 풀고 머무른 것이다. 옛부터 「간룡진처(幹龍盡處) 필시대결(必是大結)이라 한 말처럼 반드시 대혈이 이곳에 있음은 사실인 것 같다.

  옥룡자의 비결록 중 일부만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사십삼절(四十三節) 건해맥(乾亥脈)의 승달산이 특립(特立)하니, 금수병창(錦繡屛搶) 들렀는데 우리스승 계시도다. 건곤간손(乾坤艮巽) 특립(特立)하니 왕자사전(王子師傳) 혼이 나고, 병정손신(丙丁巽辛) 높았으니 장원급제(壯元及弟) 대대(代代)로다. 호로산(葫蘆山)이 나타나니 여락궁비(女洛宮妃)할 것이요, 운무귀지(雲霧貴地) 하였으니 응천상지(應天上之) 삼광(三光)이라. 토불토이(土不土而) 작금(作金)하니 현혹심(眩惑心)되오리라. 북진천주(北辰天柱) 높았으니 각우주지무궁(覺宇宙之無窮)이라」

  여기에서 내장산(內藏山)이 태조산(太祖山)이요 방장산지기백(方丈山之氣魄)이며 소조산(小祖山)이 승달산(僧達山)인데 그 성덕(聖德)은 천하에 으뜸이요 부(富)는 천하에 무적(無敵)이고 성현(聖賢)이 탄생할 수 있는 기상을 지니고 있다 한다.

  이와같은 대혈이기에 상제님께서 공사를 행하실 때 무병장수(無病長壽)는 선술(仙術)에 있으니 오선위기(五仙圍碁)혈이요. 국태민안(國泰民安)은 군신봉조(君臣奉照)혈이요, 선녀직금(仙女織錦)혈로 창생에게 비단옷을 입힌다(행록 5장 15절)고 하실 때 무안의 호승예불(胡僧禮佛)을 말씀하신 것이라 여겨진다. 이번의 답사를 통해 우리 선조들은 참으로 명당에 대해 관심이 많았음을 알 수 있었다. 승달산을 가보니 너무나 많은 묘가 여기 저기 빽빽하게 있고 심지어는 아주 높은 산정(山頂)까지 비석을 세워 나름대로 호승예불이라고 자처하고 있었다. 진짜 그 혈이 어디인줄은 잘 알지 못하지만 그곳에 사는 할아버지의 말을 들어보면 일제(日帝)시대에 왜인(倭人)들이 그 혈을 잘라 버리기 위해 움막을 짓는다 속이고 혈을 파헤쳤다고 한다. 당시 왜인들 중에는 지리학에 통달(通達)한 사람이 있어 한국에 인물이 배출(輩出)되면 한민족(韓民族)을 영구히 자기들의 식민지(植民地)로 만들 수 없으리라는 이유에서 우리나라 도처에 명혈대지(名穴大地) - 충남(忠南) 대덕군(大德郡) 구측면(九側面)에 소재한 금반하엽형(金盤荷葉形)과 계룡산하(鷄龍山下)에 마화위룡(馬化爲龍)혈 등 - 여러 곳을 파괴한 사례(事例)가 흔히 있었다 하니 참으로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이곳만은 상제님께서 공사를 보신 곳이니 다행스러움을 느끼며 대혈(大穴)의 진기(眞氣)가 태동하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대순회보》 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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