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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道里 淸道院(전북 김제군)

교무부    2017.01.25    읽음 :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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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道里 淸道院(전북 김제군)


세계 平和위해 儒佛仙정수 뽑아 공사 
『상제께서 니구 서역 고현의 글을 불사르셨도다』 
『天地大神門을 여신 후 淸國공사를 행하셨도다』

                   


하종필 <연구위원>

      
  김제군 금산면 용화동에서 북서쪽으로 도로를 따라 가면 우측에 하운동(夏雲洞)이 나오고 거기서 사당고개를 넘으면 다소 편편한 지형으로 된 청도리(淸道里)가 나온다. 청도리는 본래 전주군 우림면의 지역으로서 청도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두정리, 동곡리와 금구군 수류면의 용정리 일부를 병합하여 청도리라 해서 다시 전주군에 편입되었다가 1935년 김제군 금산면에 속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본고에서는 청도리에 있었던 청도원(淸道院) 즉, 조선조 때 역(驛)과 역사이에 출장 다니던 관원(官員)을 위한 국영 여관이 있던 청도부락에 관한 것이다. 청도리에 가보니 그곳은 높은 지대에 있어 바람이 잘 통하고 또 분지에 해당하기 때문에 살기가 퍽 좋은 곳이었다. 청도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여 있으며, 북쪽에는 높이 402m의 모기봉이 있고 서쪽에는 구성산이 있어 이 산 남쪽 중턱에 학선암이 위치하며 동쪽에는 깃대봉이 마을을 에워싸고 있었다. 이곳 청도리에는 상제님 재세시에 종도였던 김송환씨와 류찬명씨가 살고 있었다. 이 동리에 살고 있는 김순섬(72세)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김송환씨가 이 마을에 살다가 전주에서 죽었으며 지금은 아들 삼형제가 모두 서울에 있다 한다. 한편 상제님 재세시 많은 사람들이 한복을 입고 김송환씨의 집에서 치성을 드리는 광경을 목격했었다고 한다. 김 할머니가 가르쳐 준 대로 길을 올라가니 김송환씨의 집은 다 없어진 채 기와 파편만 군데군데 놓여 있었으며 그 터는 지금은 밭으로 변해 작물이 자라고 있고 집터 뒤에는 우물만이 놓여 있었다. 오직 이 우물만이 당시의 일들을 기억나게 해주며 말이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러면 상제님께서 청도원에서 보신 공사를 알아보자. 김송환의 집에서 상제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공사를 보셨다. 『상제께서 六월 열흘께는 심기가 불편하셔서 동곡으로 돌아오시는 길에 청도원 김송환의 집에 들러서 유숙하시니라. 마침 신경원이 상제를 배알하기에 상제께서 그에게 「네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하시고 양지 한 장을 주어 유(儒) ㆍ불(佛)ㆍ선(仙) 석자를 쓰게 하시니라. 상제께서 유자(儒字)곁에 니구(尼丘), 불자(佛字)곁에 서역(西域), 선자(仙字)곁에 고현(古懸)이라 쓰시고 그 양지를 불사르셨도다.』(행록 5장 20절) 유ㆍ불ㆍ선의 글자 옆에 니구, 서역, 고현이라고 쓰신 것은 각 종교를 낸 사람들이 태어난 지명을 일컬음이다. 이것은 각 종교의 정수를 모으기 위한 공사가 아닌가 추측된다. 그리고 김송환씨의 집에서 다시 마을 입구의 다리 앞 우측 길로 내려와 백보 정도를 걸어가면 류찬명씨의 집이 나온다. 류찬명씨의 집에는 그 후손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상제님에 대해 잘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 이 집에서 상제님께서 보신 공사를 살펴보자. 『상제께서 청주 만동묘(萬東廟)에 가서 청국공사를 행하려 하나 길이 멀어 왕래하기 어렵고 불편하므로 청도원(淸道院)에서 공사를 행하리라 하시고 청도원 류찬명의 집에 이르러 천지대신문(天地大神門)을 열고 공사를 행하셨도다. 그 때에 김송환이 시중을 들었도다.』(공사 2장 6절) 여기에서 혼란한 세상을 바로 잡으려면 황극신이 이땅에 옮겨야 하는데 황극신이 옮겨 오게 될 인연은 송 시열이 만동묘를 세움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한편 그 황극신은 당시 청국 광서제(光緖帝)에게 응기 되어 있는데 광서제에게 응기 된 신명을 부르려면 어음(語音)을 취하여야 한다. 『상제께서 어느날 고부 와룡리에 이르사 종도들에게 「이제 혼란한 세상을 바르려면 황극신(皇極神)을 옮겨와야 한다.」고 말씀하셨도다. 「황극신은 청국 광서제(淸國光緖帝)에게 응기하여 있다」 하시며 「황극신이 이땅으로 옮겨 오게 될 인연은 송 우암(宋尤庵)이 만동묘(萬東廟)를 세움으로부터 시작되었느니라.」 하시고 밤마다 시천주(侍天主)를 종도들에게 염송케 하사 친히 음조를 부르시며 「이 소리가 운상(運喪)하는 소리와 같도다.」 하시고 「운상하는 소리를 어로(御路)라 하나니 어로는 곧 군왕의 길이로다. 이제 황극신이 옮겨져 왔느니라」고 하셨도다. 이때에 광서제가 붕어하였도다.』(공사 3장 22절) 한편 상제님께서는 만동묘까지는 길이 멀어 왕래하기가 불편하므로 동곡약방(東谷藥房)에서 가까운 청도리에서 행하시게 된다. 청국공사를 청도리의 청도원(淸道院)에서 보신 것이다. 청도원이란 청도리에 있는 관원을 위한 국영여관이다. 이곳에 천지대신문을 열어 놓고 대신명이 머물게 한 것이다. 그 결과 황극신이 이 땅에 옮겨 오고 대신 광서제는 붕어하게 된다. 청도리에서 공사를 보신 것은 혼란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유ㆍ불ㆍ선의 정수를 뽑으시고 황극신의 기운을 우리나라로 오게 하여 세계화평을 이루고 조선을 천자국으로 만드시는 의미가 내포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순회보》 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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