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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상하신 태인운회 (天下上下神 泰仁運回)

교무부    2017.01.25    읽음 :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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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상하신 태인운회 (天下上下神 泰仁運回)

                  

 

<연 구 실> 

                

  정주에서 북동쪽으로 향하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태인이 위치한다. 태인(泰仁)은 본래 백제 때 대시산군(大尸山郡)의 지역인데 신라 경덕왕 16년(757) 태산군(太山郡)으로 고치고 고려 때에는 고부군(古阜郡)에 딸렸다가 공민왕 3년(1354)원・고려 관계에 공(功)을 세운 사람이 있어 군으로 승격되었다. 조선조, 태종 9년(1409) 인의현(仁義縣)과 병합되었으며 1914년 군면폐합에 따라 정읍군(井邑郡)에 병합되었다. 현재 신태인읍과 태인면으로 그 규모가 축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은 태인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인 유산이나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되어서라기보다 태인면 태흥리 도창현에 도주께서 세운 무극도장(无極道場)이 한 때 웅장한 위용을 갖추어 전북일대 민족종교의 자부심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상제께서는 재세(在世)시에 도창현이 있는 태인에 자주 머무셨으며 도창현에 있은 우물을 자주 가리켜 「이것이 젖샘이다」하시고 「도는 장차 금강산 일만 이천봉을 응기하여 일만 이천의 도통군자로 창성하리라. 그리고 후천의 도통군자에는 여자가 많으리라」하시고 「상유도창 중유태인 하유대각(上有道昌中有泰仁下有大覺)」(예시 45절)이라 말씀하셨다. 그리고 상제께서는 화천(化天)을 앞둔 기유년(己酉年) 정월 일일 사시(巳時)에 현무경 세벌을 종필하고 한 벌은 친히 품속에 지니고 한 벌은 도창현(道昌峴)에서 불사르고 나머지 한 벌은 경석의 집에 맡기셨다.(교운 1장 66절) 즉 도창현의 기운을 사용하시는 공사적인 의례를 행하셨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공우에게 「태인 살포정(현재의 장재등에 있음) 뒤에 호승예불(胡僧禮佛)을 써주리니 역군(役軍)을 먹일만한 술을 많이 빚어 넣어라」고 이르셨다. 이처럼 상제께서는 도주께서 도장을 차리신 구태인 일대에 기운을 묻었으니 두 분의 연결은 도주께서 만주에 머무르고 계실 때 「왜 조선으로 돌아가지 않느냐 태인에 가서 나를 찾으라」(교운 2장 8절)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된다. 그래서 도주께서는 태인 일대에 들어오셔서 상제께서 점지하신 도창현 치마바위 부근 5천5백여평을 계해년(1923) 정월 그믐까지 사들여 3월 1일 기공치성을 올렸다. 을축(乙丑, 1925)년 4월 15일 도장의 주요 건물인 영대(靈臺)와 도솔궁이 준공되고 그 밖의 건물과 시설은 다음해 섣달에 완공되었다. 건물의 구성을 보면 영대는 48간으로서 맨 위층에는 구천상제의 영위(靈位)를 모시고 1층과 2층은 집회장으로 내부는 3층이나 외부는 2층으로 되어 있었다. 도솔궁은 내부 4층 외부 3층 모두 72간의 건물로 맨 위층은 33천(天)을 봉안한 도솔궁, 3층은 칠성(七星)을 봉안한 봉령전(奉靈殿)이라 하였는데 아래층은 중궁(中宮)이라 하였다. 교당(敎堂)의 규모를 보면 영대와 도솔궁을 중심으로 하여 회관사무실, 거실, 주방, 창고 등이 19동(棟)에 간수(間數)는 240여간 이었으며 목조와가(木造瓦家)에 단청(丹靑)을 한 전통가옥이었다. 

  도장의 동서남북 4방에 4대문을 내고 담장을 둘러치니 공사기간 3년여에 동원된 인원이 12만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도창현에서 활발한 종교활동을 하다가 일본이 이차대전을 일으키고 종교단체 해산령을 내리니 도주께서는 전국 각지의 종도들을 모으고 인덕도수(仁德度數)와 잠복도수(潛伏度數)를 말씀하시며 「그대들은 포덕하여 제민하였도다. 각자는 집으로 돌아가서 부모 처자를 공양하되 찾을 날을 기다리라」고 선포한 후 도장은 일본 총독부에 기증되었다. 그래서 도주께서는 고향인 함안 회문리의 회룡재에서 공부를 하시며 종도들과 연락을 취하셨다. 

  한편 어원적으로 보아도 태인이라는 낱말은 큰 씨앗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큰 씨앗의 개화와 낙화가 숱한 시련을 겪으며 태인에서 이루어졌고 오늘날까지 그런 사실들이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큰 씨앗은 도(道) 자체일 수가 있다. 그것은 한 식물의 근본이 씨앗인 것처럼 道의 근본인 까닭이다. 씨앗이 싹을 틔우기 이전의 상태 곧 무극을 나타낸다. 그래서 구천상제의 일은 무극대운(无極大運)이고 도주의 일은 태극대도(太極大道)이므로 증정지간(甑鼎之間)이니 도로써 일체가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씨앗 자체가 우주의 기운을 지니고 있다면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개화하는 것은 태극의 기동함에 있는 것이다. 

  「상유도창 중유태인 하유대각」이라고 상제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은 폐쇄된 고등기술학교 뒤편에 치마바위가 옆으로 드리워져 있고 옛 우물(젖샘)은 땅속 깊이 묻혀 있으며 도창현과 하마가(下馬街)를 따라 놓여 있는 태인면과 그 아래로 기다랗게 서 있는 대각교(현재의 居山다리)가 상・중・하의 위치에 서 있으니 「천하상하신태인운회」(天下上下神泰仁運回)가 막힘없이 일렬로 운회를 하게 된다. 운회가 끊임없을 때 큰 씨앗은 결실을 보므로 결실을 위한 노력이 크게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대순회보》 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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