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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암사

교무부    2017.01.25    읽음 : 1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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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암사

진표율사가 일심으로 수도하여 득도한곳

     

 

<전국대학 대진연합회>

        

  개암사는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에 있는 사찰로서 부안읍에서 줄포(곰소, 내소사)행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10km쯤 가다가 봉은리(감교리)에서 차를 내려 서쪽에 보이는 저수지를 거쳐 3km쯤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간 곳에 있다.

  개암사의 유래를 살펴보면 「개암사지(開岩寺誌)」에 현재의 개암사 터는 변한의 왕궁터라고 한다. 기원전 282년에 변한의 문왕은 진한과 마한의 난을 피하여 이 곳에 성을 쌓았다고 한다. 변한의 문왕은 우(禹)와 진(陳) 두 장수를 보내어 이 일을 감독케 하고 좌우의 계곡에 왕궁과 전각을 짓게 하고 東은 묘암(妙岩), 西는 개암(開岩)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의 개암사가 있는 자리는 당시에 자리 잡았던 왕궁터라고 한다. 지금의 개암사는 634년(백제 무왕 35년)에 묘련왕사가 변한의 궁전을 절로 고쳐 묘암의 궁전을 묘암사라 하고 개암의 궁전을 개암사라고 부른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40년 후인 통일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이 곳에 들어와 개암사를 다시 지었다고 전한다. 그 뒤 여러 선사가 중수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려 폐허가 되었다. 개암사가 본격적으로 재건된 것은 1658년(효종 9년) 밀영(密英), 혜징(慧澄) 두 선사가 계효선사(繼孝禪師)의 중창사업을 계승하여 대법당을 지음으로써였다. 보물 292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정면 3간, 측면 3간의 팔각지붕인데, 1783년(정조 2년)에 승담선사가 중수하였고 그 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개암사에서 보면 5백 미터 거리에 울금바위(우금암)라는 커다란 암벽이 우뚝 솟아 있다. 이 암벽에는 모두 3개의 동굴이 있고 그 중,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가 굴속에서 기거하며 수도했다 하여 원효방(또는 부사의방 : 不思義房)으로 불리는 굴이 있는데 그 굴 밑에서는 만년필 굵기의 도랑이 굴 안쪽으로부터 패어져 있고 어른 주먹 2개를 합친 것 정도의 조그만 웅덩이가 있어 여기에 물이 고인다. 바위의 밑 부분이고 산의 능선과 수평을 이루는 곳이니 물이 어디에서 흘러나오는 것인지 신기하다. 

  전하는 말로는 원래 물이 없어 곤란했는데 원효가 이곳에 수도하기 위해 오고 나서부터 샘이 솟아났다는 것이다. 이 울금바위 안의 불사의방은 금산사 미륵불을 창건한 진표율사의 수도장이기도 했다. 잠깐 그 이야기를 살펴보면 「진표율사는 나이 27세에 20두의 쌀을 쪄서 불사의방으로 들어가 하루에 5홉 중 1홉은 쥐에게 나누어 주고 4홉을 양식으로 삼으면서 미륵불 앞에 엎드려 날마다 지성으로 계법을 구하였다. 그러나 3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수기가 없자 진표율사는 너무 비통한 나머지 죽고자 수십길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그러자 그 때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나타나 율사의 몸을 받들어 다시 바위 위에 올려놓았다. 

  율사는 다시 발원하여 21일 동안 밤낮없이 손으로 바위를 때리면서 용맹정진하는데 사흘이 못되어 그만 팔이 부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 정진하니 7일째 되는 날 밤에 문득 지장보살께서 황금지팡이를 들고 나타나시어 팔을 어루만져 주시더니 팔이 씻은 듯 나았다. 지장보살은 진표율사에게 다시 가사와 발우를 건네주시고 어디론가 사라졌고 율사는 그 은혜에 감복하여 더욱 정진하였다. 14일 되는 날 무서운 형상의 악귀가 나타나 율사를 괴롭혔으나 구법(求法)을 계속하니 악귀의 형상은 사라지고 산봉우리 위에 흰 구름이 잔잔히 드리워 은빛세계를 이루었는데 향기로운 바람과 꽃비가 흩날리며 미륵불께서 지장보살과 함께 강림하셔서 율사의 구도를 칭찬하시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목간자 두개를 주시며 지장보살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지셨다.」 이 후에 진표율사는 그치지 않고 수도에 전념하여 후에 금산사의 미륵전을 지은 것이다. 

  개암사와 관련된 전경의 내용(공사 2장 27절)을 살펴보면 『무신년 칠월에 이르러 상제께서 원일을 이끄시고 부안 변산 우금암 아래에 있는 개암사에 가시니라. 그 때 상제께서 원일에게 삶은 쇠머리 한 개와 술 한 병과 청수 한 그릇을 방안에 차리고 쇠머리를 청수 앞에 진설하게 하신 후에 원일을 그 앞에 꿇어 앉히고 성냥 세 개비를 그 청수에 넣으시니라. 이 때 갑자기 풍우가 크게 일어나고 홍수가 창일하는도다. 상제께서 원일에게 「이제 청수 한 동이에 성냥 한 갑을 넣으면 천지가 수국(水國)이 될지니라. 개벽이란 이렇게 쉬우니 그리 알지어다. 만일 이것을 때가 이르기 전에 쓰면 재해만 끼칠 뿐이니 그렇게 믿고 기다려라」고 일러주시고 진설케 하신 것을 모두 거두니 곧 풍우가 그쳤도다』와 같다. 

  개암사에서 우리가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진표율사가 득도하기 위한 과정에서 나타난 일심이다. 우리가 수도하는 목적은 삼계를 개조하여 후천선경을 열기 위한 것이다. 모든 천지공사에는 상제님께서 원일에게 보여 주신 바와 같이 그에 따르는 때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진표율사와 같은 일심을 갖고 수도에 임하여야 할 것이다.

《대순회보》 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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