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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大院寺)
상제님께서 천지 신명을 심판하시고 도주님께서 백일도수 보신 곳
대원사는 전라북도 완주군 구의면 항가리 학천곡에 있고, 모악산 동쪽 기슭 해발 420m에 자리 잡고 있는 조그마한 사찰이다. 전주에서 응암으로 가는 길을 따라가면 구이죽교 근처에 안내판이 보이고 안내판에서 대원사 입구까지 약 2.8㎞의 산길을 오르면 사찰이 나오는데 도중에 합천마을이 있고 선녀폭포, 사랑바위 등이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대원사는 상제님께서 신축(辛丑)년 5월 중순부터 주지승 박 금곡(朴錦谷)으로 하여금 방 한 칸을 치우게 하시고 49일간 불음불식으로 공부하신 곳이다.(행록 2장 12절) 상제님께서 공부하신 내용은 교운 2장 12절에『‥그들을 보시고 도주께서 「이곳이 바로 상제께서 천지신명을 심판하신 곳이니라. 아직 응기하여 있는 것을 내가 풀었노라」고 말씀하셨도다.』라고 나오며 도주님께서도 대원사에서 백일도수를 보셨다.
『상제님께서 공부를 마치신 후에 옷을 갈아입고 방에서 나오시니 대원사 골짜기에 각색의 새와 각종의 짐승들이 갑자기 모여들어 상제님께 후천해원을 구하여 상제님께서 이를 응낙하시어 모였던 금수들이 믿고 물러갔다.』(행록 2장 15절) 또 상제님께서 인간의 존귀함과 더불어 다른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신 부분이 전경상에서 여러 군데 보이고 있다. 경석이 벼논에 날아드는 새떼를 굳이 쫓을 때 상제님께서『한 떼의 새가 배를 채우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니 어찌 천하 사람의 배를 채워주기를 뜻하리오』라고 말씀 하신 것과 장 성원의 아기가 병에 걸렸을 때 상제님께서 성원에게 말씀하시기를『비별(飛鼈)이니 낮이면 나와 놀고 밤이면 들어와 자니라. 불가불 다른 곳으로 옮겨야 나을 것인바 산으로 옮기려하나 금수도 또한 생명이요. 바다로 옮기려 하나 어류도 또한 생명이니 부득이 전선으로 옮겨야 하리라‥』라고 하신 것, 그 외에도 많은 부분을 대원사에서의 금수 해원에 대한 상제님의 행적과 연관시켜 볼 때 창생에 대한 구제가 인간만이 아닌 금수들에게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불교와 관련된 내용도 전경에 나오는데 전생에 관한 것과 진묵에 관한 것을 들 수 있다. 전생에 관한 부분은 상제님께서 대원사의 주지승 금곡이 저의 일을 말씀하여 주시기를 청원할 때 『그대는 전생이 월광대사(月光大師)인 바 그 후신으로서 대원사에 오게 되었느니라. 그대가 할 일은 이 절을 중수하는 것이고 내가 그대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리니 90세가 넘어 입적하리라』고 하셨다. 전생의 인연에 따라서 오게 되어 대원사의 중수를 맡게 된 주지승 금곡과 수명을 연장시키시는 상제님의 말씀은 새롭게 지어 만드는 운수(대원사 중수)와 그에 필요한 여건(수명의 연장)으로 개벽을 위한 공사와 상제님의 약속을 보여주신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대원사는 진묵대사의 일화로도 유명하다. 문헌상으로는「震墨禪師遺積考(진묵선사유적고)」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그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진묵은 1562년부터 1633년(영종17~인조11)의 승려로서 이름은 일옥(一玉)이며 7세에 전주 봉서사(鳳棲寺)에 출가하여 불전을 공부하였는데 신이(神異)와 영행(靈行)이 어린 진묵의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진묵은 비록 출가는 하였으나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의지할 곳이 없는 어머니와 누이를 일출암(日出庵) 아래의 왜모실(倭募室)이란 마을로 모셔 극진히 봉양했다. 그 밖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로는 진묵은 유ㆍ선(儒ㆍ仙)에도 능통하였고 석가모니불의 후신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전경상에 나오는 진묵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진묵이 시기심이 강한 김봉곡으로부터 성리대전을 빌려가지만 나중 일을 생각하여 한 권씩 읽고서는 길가에 버리니 사원동 입구에서 모두 버리게 되었다. 봉곡은 책자를 빌려주고 후회하여 사람을 시켜 찾아오게 하니 그 하인이 길가에 떨어진 책을 주워 돌아간다. 그 후에 진묵이 봉곡을 찾아갔을 때 봉곡이 빌린 책을 돌려달라고 하자 진묵은 그 글이 쓸모가 없어 길가에 다 버렸다고 대꾸하니 봉곡이 노발대발한다. 진묵은 내가 외울터이니 기록하라고 말하고 잇달아 한 편을 한자도 틀리지 않고 외우니 봉곡이 더욱 더 시기하게 된다. 그 후에 진묵이 8일을 기한으로 인도국으로 범서와 불법을 더 익히러 갔을 때 봉곡이 이 사실을 알고 진묵의 몸을 화장하니 진묵이 이를 알고 돌아왔다가 봉곡과 척이 맺쳐 동양의 모든 도통신을 이끌고 서양으로 옮겨가게 된다. 진묵은 사후(死後)에 동양의 도통신을 이끌고 서양에 가서 문화계발에 역사(役事)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건너간 진묵을 상제께서 공사로써 해원시켜 고국에 데려와 선경건설에 역사하도록 초혼(죽은 사람의 혼을 불러들임)하셨다.
이상을 간략히 요약해 보면 대원사는 창생을 구제하기 위해 상제님께서 49일간 불음불식으로 공부하셔서 천지신명을 심판한 곳이며, 김봉곡과 척이 맺힌 후 동양의 도통신을 이끌고 서양으로 건너가 서양의 문화계발을 일으킨 주요 인물이었다가 상제님의 해원공사에 의해 불교의 종장으로 참여하여 고국의 선경건설에 역사하게 된 진묵이 있던 곳이기도 한다.
《대순회보》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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