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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통정신 정읍운회(天下通情神 井邑運回)
정읍은 호남의 큰 두 도시인 전주시와 광주시의 중간에 위치하여 순창, 고창, 장성, 김제, 부안군들과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지로서 전체 땅 27.5평방킬로미터로 약 7만 명이 살고 있다. 정주시를 포함하고 있는 정읍은 다음의 몇 가지 큰 특징을 지닌다.
첫째, 가을단풍은 내장이라고 불려왔듯이 호남의 금강 ∙ 대한팔경의 하나인 내장산(內藏山:763m)의 산용(山容)과 폭포(금선, 몽계폭포)가 있고, 계류가 흐르는 많은 계곡과 비자림(榧子林), 굴거리 나무군락 등 천연기념물을 포함한 수림의 아름다움이 뛰어난데, 특히 그 수림이 이루는 단풍이 유명하여 단풍철에는 정읍군에서 주최하는 다채로운 단풍제(丹楓祭)가 연례행사로 베풀어진다.
둘째, 한글로 기록된 고가(古歌)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고려와 조선시대를 통하여 삼국속악(三國俗樂)의 하나로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전해 내려오는 단 하나의 백제 가요인 정읍사(井邑詞)가 있다. 따뜻한 애정과 깊은 믿음으로 가득 찬 이 노래의 세계는 청정과 순결의 표상으로 우리 겨레의 순박성을 그린 것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달님이시여, 높이 높이 돋아서 멀리 멀리 비치옵소서. 지금쯤은 어느 저자(市場)를 향하여 가고 계실 임이시기에 혹시 진곳(위험한 곳)을 잘못 딛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아무리 먼 곳에 있는 임이라도 달님만 높이 뜨시면 밤길 가는 님의 발부리는 안전할 것입니다.」
셋째, 반외세, 반봉건의 기치를 높이 들고 우리 민족사상(民族史上) 민주주의(民主主義)의 기원을 이룩한 갑오동학혁명지(甲午東學革命知)라는 사실이다. 특히 성리학(性理學)적인 봉건사회가 붕괴되고 새로운 근대 사회로 진전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든 동학농민전쟁의 첫싸움터인 황토현(黃土現)은 불의(不義)앞에 굽힐 줄 모르는 정읍인(井邑人)의 자부심이 깃들인 곳이다.
이상과 같은 특징을 가진 정읍(井邑)은 땅을 한자만 파도 물을 한 동이 길어 올릴 수 있을 만큼 지하수가 풍부하다는 데서 비롯되었는데 백제 때는 정촌(井村)으로 불렸다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인 경덕왕 22년부터 정읍으로 불리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정읍(井邑)이라는 글자 중 우물:정(井)자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주역48장 정(井)의 괘상(卦象)을 풀이해보면, 물(坎) 밑에 나무(巽)가 있고, 우물에 두레박을 드리운 형상이다.
우물은 겉모양이 잠잠해져 있는 것 같지만 길어내도 마르지 않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고 지나가는 나그네도 그 은혜를 받는다. 우물은 때때로 퍼내고 새 물을 고이게 해야 한다. 신진대사가 필요한 것이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먹고 마시며 배설해야 신체기관을 유지할 수 있듯이 우물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우물에는 두레박이 없어서는 안 된다. 맑은 물도 길어내지 않으면 헛되이 썩고 말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두레박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편 물은 항상 변화해야 하지만 바깥의 구조물은 이동하지 않는다. 고요히 십년이고 백년이고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이러한 흔들리지 않는 성질은 인간이 본받아야 할 것이다. 안과 밖에 따라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공존하면서도 항상 우물의 기능은 그대로이니 中正의 道가 우물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정읍을 전경(典經)과 관련시켜 본다면 상제께서는 몸소 탄강하신 정읍에 대하여 천하통정신 정읍운회(天下通情神 井邑運回)(공사 3장 39절)라 칭하여 운회 공사를 보셨다. 이는 천하의 통정신을 정읍에 운회케 하는 것으로, 우물에 정(情)의 기운(氣運)을 붙이는 것으로 생각된다. 위의 내용과 연관되는 구절로는 교법 3장 47절이 아닌가 추측된다.
「非人情不可近 非情義不可近 非義會不可近 非會運不可近 非運通不可近 非通靈不可近 非靈泰不可近 非泰統不可近」 마지막의 비태통불가근(非泰統不可近)의 泰는 주역에서는 음양이 조화되어 사물이 통리(通利)하는 괘상이라고 되어있다. 그 시발점은 人情에서 비롯되어 情義, 靈泰까지를 모두 거느리게 된다. 이렇게 모든 요소들을 동반하여서는 변혁을 시작해야 되는데 특이하게도 주역의 井괘 다음이 革괘이다. 『혁』이란 「바로 잡는다」는 뜻으로 선천의 모순된 상극에서 화합된 상생으로의 전이를 나타낸다. 혁신, 개혁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는 단순한 변화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추악한 수단으로서 목적을 더럽히지 말고 이(離)가 나타내는 명지(明知), 용기로써 보다 높은 단계로 비약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개벽을 부르짖는 현실 자체가 혁괘에 해당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혹자는 주역에서 49장까지를 선천세상이라하고 50장부터는 후천세상인데 후천변혁의 기운이 정읍에서부터 운회를 하여 혁괘 다음인 정괘(鼎卦)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한다. 정(鼎)이란 세발달린 무쇠솥을 말하는데 이는 삶고 익히는 그릇으로서 크게 뻗어 발전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만약 이치가 이와 같다면 우리는 상제께서 정읍에서 탄강하셨고 조정산(趙鼎山) 도주께서 만동(萬洞) 김기부의 집에서 선돌부인으로부터 봉서를 전해 받았다는 것과 대흥리 차경석의 집에서 포정소(布政所) 공사를 보신 것에 대해 예사롭게 여겨서는 안 될 무언가의 의미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대순회보》 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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