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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산바다와 칠산도

교무부    2017.03.28    읽음 : 1769


본문

칠산바다와 칠산도

 

 

 종단역사연구팀

 

 

  상제께서 종도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가라사대
“칠산(七山)에서 잡히는 조기도
먹을 사람을 정하여 놓고 그물에 잡히며
농사도 또한 그와 같이 먹을 사람을 정하여 놓고
맺느니라.” 하셨도다. 
                                            
(교법 1장 14절)

   

  

 

칠산바다의 전설
  칠산바다는 전라남도 영광군의 임자도, 송이도에서 전라북도 부안군의 위도에 이르는 서해바다를 말한다. 이곳은 6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조기가 많이 잡혔던 어장으로 수백 척의 배들로 꽉 차 대성황을 이루었던 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에는 일곱 고을이 있었다. 어느 날 이 고을에 사는 서씨 성을 가진 사람의 집에 한 과객이 찾아와 하룻밤 대접을 잘 받고 떠나며, 그에게 “앞으로 이 칠산고을이 바다가 될 터인데 그 시기는 저 산 위에 있는 돌부처의 귀에서 피가 흐른 뒤가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서씨는 과객의 말을 명심하고 매일 산에 올라 돌부처에 무슨 변이 없나 살피고, 이웃 사람들에게 이 얘기를 해주었으나 사람들은 그를 미쳤다고 하였다. 어느 날 이 고을의 백정이 서씨를 골려주려고 짐승의 피를 귀에 발라놓았다. 산에 올라갔던 서씨는 혼비백산하여 마을로 뛰어 내려오며 마을 사람들에게 “돌부처 귀에서 피가 났다. 바닷물이 밀려오기 전에 빨리 높은 산으로 올라가자.”라고 외쳤다. 이를 지켜보던 백정은 마을 사람들에게 자기가 피를 발라 놓았다며 서씨의 행동을 비웃었다. 그러나 서씨는 과객이 일러준 대로 가족을 이끌고 높은 산으로 올라갔다.
  이 소동이 고을 원님에게 알려졌다. 관속들은 고을을 혼란에 빠뜨린다며 서씨를 벌을 주자고 청원하였으나 원님은 관속들의 상을 살펴보더니 “그 영감 말이 옳으니 살고 싶은 자는 빨리 산으로 오르라.”고 이르고는 서씨가 오른 산으로 달려갔다. 서씨가 가족을 이끌고 얼마쯤 산을 올랐을 때 천지가 개벽하듯 천둥이 치며 비가 쏟아졌다. 뒤돌아 아래를 내려다보니 원님이 내달려 오르고 있었고, 이미 고을은 바닷물이 밀어 닥쳐 물속에 잠기고 있었다. 서씨는 산 중턱에 한 소금장수가 있기에 빨리 산으로 오르자고 재촉했다. 그러자 소금장수는 “영감, 걱정 마오! 바닷물은 이 지게발목 바로 밑까지 차고 그칠 것이니 더 오를 필요 없소.”라고 말했다. 그렇게 노도처럼 차오르던 바닷물이 칠산 일곱 고을을 삼키고 소금장수 지게 밑까지 차올랐다.

  현재 우리가 쓰는 칠산바다의 유래는 전설 속에서 한 과객이 서씨에게 “칠산고을이 바다가 될 터인데.”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칠산바다에 있는 일곱 개의 섬을 칠산도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 칠산도 전경

 

칠산바다의 곡우사리조기
 

어이! 우리 돈 실러 가세, 돈 실러 가.
칠산바다에 돈 실러 가세.
그러세, 그려. 칠산바다에 돈 실러 가세.
돈 실러 얼른 가세.
가세, 가세 얼른 가세.
배에 가득 돈 실어 오세.

  

  이 칠산바다 뱃노래를 보면 이곳에서 조기가 얼마나 많이 잡혔는지 짐작이 간다. 조기 떼가 많아 배 위로 뛰어 오르는 조기만 잡아도 배 한가득 실을 정도였다고 한다.
  조기는 몸길이가 1년에 15cm까지 자라고, 5년이면 40cm에 달한다. 머릿속에 단단한 뼈가 있어 석어(石魚) 또는 석수어(石首魚)라고도 불렸다. 우리나라의 연안에서 잡히는 것으로 민태, 꽃조기, 참조기, 보구치, 강달어 등의 종류가 있다. 조기 떼는 제주도 남서쪽에서 겨울을 나고 2월이면 흑산도 근해를 따라 북상한다. 이들은 3월경 칠산바다에 이르러 산란을 시작, 5~6월엔 연평도와 대화도 근해에서 종족 번식의 대장정을 마친다.
  음력 3월 곡우(24절기 중 하나, 양력 4월 20일경)무렵이 되면 영광 칠산바다 근해에 어장이 형성되는데 여기서 잡히는 조기를 “곡우사리조기”라고 한다. 이 무렵에 세시풍속인 칠산어장 놀이가 행해진다. 어선이 칠산어장에서 출어할 때 먼저 구수산 기슭[백수읍 소재] 해안의 기암 암반에다 각시모양의 인형을 만들어 모시고 고기가 가득 잡히게 해 달라고 기원하며 수신제(水神祭)의 고사굿을 지낸다. 그리고 찬란한 오색, 칠색기를 꽂고 선원들이 농악소리에 춤을 추며, 풍선(風船)에 돛을 달고 물때를 따라 바람을 타고 칠산어장으로 뱃노래 부르며 행선한다.

  


▲ 풍어제 토속신앙 재연

 

 

칠산도를 향하여
  곡우 무렵에 조기 어장이 형성되었던 칠산바다는 남으로는 임자도에서 북으로는 위도에까지 넓게 위치하고 있으며 그 중간 지점에 칠산도가 있다. 이곳 칠산바다는 상제님의 행적지는 아니지만 상제님께서 몇 차례 언급하셨던 곳이다. 칠산바다 전체를 답사하기보다 칠산바다를 대표하는 곳이자 지명유래지인 영광군 서해 앞바다에 있는 칠산도를 찾아가기로 하였다.
  우리는 여주에서 출발하여 네 시간 만에 영광군 땅에 들어서게 되었다. 칠산도를 관망할 수 있다는 구수산 서북방에 위치한 칠산정으로 향하였다. 칠산정에 이르는 도로는 우리나라 해안도로 중 ‘10번째 안에 든다’는 백수해안도로로 경관이 아주 훌륭했다. 칠산정 주차장에 도착하여 주변을 살펴보다가 위쪽에 위치한 칠산정에 오르게 되었다. 칠산정에서 바라본 칠산도는 해무가 끼어 운치가 있었지만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장소를 옮겨 좀 더 잘 보려고 남쪽으로 1.4km 떨어져 있는 노을정으로 가서 살펴보았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행은 다음 날 배를 타고 가면서 칠산도를 살펴보기로 하고 계마항(桂馬港) 근처 숙소로 돌아와 여정을 풀었다. 이곳에서 식사 후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40여 년 전에는 칠산바다에 불을 밝힌 조깃배들로 가득 찼으나 그 후로는 조기잡이가 거의 없어졌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 노을정에서 바라본 풍경


  다음 날 아침 일찍 칠산도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송이도행 배를 타기 위해 계마항으로 갔다. 그런데 우리가 타야 할 배인 신해 9호 차도선[차를 실어 나르는 배]은 이미 차들로 가득 차 있어 우리 차를 선착장에 주차시켜 놓을 수밖에 없었다. 승선한지 얼마 안 되어 선원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이곳은 수심이 얕기 때문에 파도가 거세지면 배가 위험해집니다. 또한 어망들이 많이 깔려져 있어서 항로를 벗어나도 위험합니다. 지금 이곳에서 조기가 안 잡히는 것은 수온과 조류의 변화에 원인이 있습니다.”
  칠산바다를 상징하는 저 칠산도는 영광군 낙월면 송이리에 위치한 섬들로 일곱 개의 섬으로 되어 있다. 여섯 개의 섬은 조수간만에 따라 수위가 달라지지만 나머지 한 섬은 유독 작아 조수가 들면 완전히 묻혀버릴 것 같은데도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이 섬을 뜬 섬 또는 부도(浮島)라 하며 영광 팔괴(靈光 八怪)의 하나로도 유명하다.

  


▲ 칠산정에서 본 백수해안도로

 
  어제와 같이 날씨가 안 좋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였으나 다행히도 해무가 걷혀 있었다. 배를 탄 지 30여 분이 지났을 때 칠산도의 일부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바다에서는 선선한 바람을 타고 갈매기들이 유유히 날기도 했고 큰 고기가 물 위로 뛰어오르기도 하였다. 우리는 칠산도를 사진에 담기 위해서 카메라 셔터를 분주히 눌렀다. 바로 전날 칠산정과 노을정에서 희미하게 본 칠산도를 1~2km 내에서 보니 더 잘 보였다. 이 배가 칠산도의 북쪽을 지나가기 때문에 제일 먼저 가장 길게 늘어선 육산도가 눈에 들어왔다. 육산도의 좌측에는 칠산도, 우측으로는 사산도, 오산도, 삼산도, 일산도, 이산도가 보였다. 칠산도는 바위와 풀과 나무들로 이루어진 무인도로 괭이 갈매기들이 둥지를 틀고 이곳 주변을 날아다닌다. 현재 영광군에서는 생태계 보존을 위하여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시키고 있다.

 

▲ 선상에서 보이는 송이도 모습 (영광군 송이리)

 


칠산바다에서 사라진 조기 
  칠산도의 여러 섬을 살피다보니 배에서 하선할 장소인 송이도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출항한 지 1시간 30여 분 정도 지나 송이도에 도착하였다. 송이리에서 마을 이장과 노인회장과 어촌계장을 만날 수 있었다. 어촌계장께서 칠산바다와 관련된 얘기를 다음과 같이 해주셨다.
  “예전에는 송이도 주변 칠산바다의 수심이 15m 이상이었는데 지금은 7m 정도로 수심이 낮아졌어요. 칠산바다의 수심이 깊을 때에는 조기가 서식을 하고 알을 부화시켰기에 그 조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깊은 바다에서 겨울을 나고 산란을 하러 칠산바다에 왔을 때 잡은 것이지요. 그래서 알을 가진 칠산 조기가 특히 유명해진 것입니다. 그런데 수심이 낮아지고 수온이 떨어져 변화가 생겨서 부화를 못하게 된 것이지요. 수심이 낮은 곳에서 부화를 하는 꽃게나 민어 종류의 어종들만 오게 된 것입니다. 잡히는 어종이 완전히 변했어요. 그리고 예전에는 음력 3월 말쯤에 바다에 들어가서 수영을 했는데 지금은 이때 물속에 들어가면 추워서 큰일 납니다. 지금은 3월에 아주 덥다가도 4월에 겨울옷을 입을 정도입니다. 어종은 기온이 안 맞으면 생활을 할 수 없으니까 못 오는 것입니다. 2000년도만 하더라도 이곳에 병어가 굉장히 많이 왔는데 요새는 못 옵니다. 남해안에서 병어가 귀할 정도였지만 지금은 남해안 쪽에서 잡힌다고 합니다. 아주 더운 여름의 어종이 되는 고기는 이곳에서 잡히지만 조기와 같이 봄에 나는 고기들은 못 올라오고 있습니다.” 
  
  송이도행 배편은 하루에 딱 한 번 운행을 하는데, 계마항에서 출발하여 송이도를 지나 서북쪽에 위치한 안마도를 돌아서 다시 송이도를 거쳐 계마항에 도착한다. 그래서 송이도로 배가 다시 돌아오는 시간까지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두 시간 정도였다. 이곳에서 이장, 노인회장과 어촌계장을 만나서 잠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칠산바다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지만 칠산바다에서 조기가 사라진 이유를 조금이나마 들을 수 있었다.

  


▲ 계마항 주변 풍경

 
  돌아오는 배에서 칠산도를 바라보며, 칠산바다의 전설에 나오는 칠산도에 발을 내딛지는 못해 아쉬웠지만 가까이서 짧게나마 직접 살펴볼 수 있던 것에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상제님께서 곡식과 마찬가지로 칠산바다의 조기도 먹을 사람을 정하여 놓고 그물에 잡힌다고 하셨던 말씀 속에서, 민생을 걱정하며 살피시는 상제님의 마음을 되새기며 다음 답사지로 향하였다. 

 《대순회보》 176호

 

 

 

참고문헌
영광군지개정판발간 편찬위원회,『영광군지 상권』, 영성문화사, 1998.
부안군기획실, 『부안향리지』, 전주정화사, 1991.
영광군, 『영광이야기 Ⅰ』(신령스런 천년의 빛 속을 거닐다), 새빛기획,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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