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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세천과 이동면 전룡리

교무부    2017.03.28    읽음 :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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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세천과 이동면 전룡리

 

 

 종단역사연구팀

 

 


▲ 세네교에서 본 세천, 멀리 모악산이 보인다.

  

  상제께서 김 익찬(金益賛)을 데리고 전주 세천(細川)을 지나실 때 일본인 포수가 냇물 위에 앉아있는 기러기 떼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것을 보시고 가라사대 “차마 보지 못하겠노라” 하시고 왼발로 땅을 한 번 구르시고 그 자리에 서시니라. 그 찰나에 기러기 떼가 날아가는지라. 그 뒤에 상제께서 발을 옮기시더니 그제야 총소리가 들렸도다.(권지 2장 5절)

  

  전주는 서울, 평양과 함께 조선 3대 도시 중 하나였으며, 제주를 포함한 전라도 전역을 관장하는 중심도시였다. 이 때문에 전주의 배후도시인 김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전주가 주 생활권이었다. 당시 김제 넓은 평야에 사는 사람들이 전주를 오가는 길은 금구면에서 대화리를 지나는 국도 1호선과 금산면에서 독배마을을 지나는 국도 712호선이었다. 김제 사람들이 전주를 왕래하는 길목에 세천이 있다. 상제님께서도 김제 금구나 금산면 동곡에서 전주를 왕래하실 때 세천을 건너셨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세천과 그 하류 지역에 위치한 이동면 전룡리 지역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세천은 전주를 관통하며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하천이다. 세천이라는 이름은 세 개의 하천이 합쳐서 흐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삼천(三川), 세네 등으로 불린다. 그 세 개의 하천은 계월천, 광곡천, 독배천이다. 세 개의 하천 중 가장 먼저 발원하는 긴 줄기는 계월천이다. 계월천은 완주군 구이면 백여리의 모악산 남쪽사면과 오봉산의 경계에서 발원한다. 이 계월천은 모악산 동쪽의 구이저수지를 지나면서 경각산 북쪽 왜목재에서 흘러내린 광곡천과 합류한다. 그리고 전주시 완산구 삼천동에서 모악산의 다른 줄기를 타고 흘러내린 독배천을 만나면서 세천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전경』에는 이 세천과 관련된 구절이 두 번 나온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김 익찬을 데리고 전주로 가시는 길이었다. 상제님께서 전주 세천에 당도하여 일본인 포수가 기러기를 잡으려고 총을 겨누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상제님께서는 이것을 보시고는 “차마 보지 못하겠노라”01고 하시면서 발을 한 번 구르시고 그 자리에 멈추어 서시는 순간 기러기 떼는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는 상제님께서 다시 발을 옮겨 가시자 일본인 포수의 총에서 총소리가 났다. 짐승의 생명도 살리시는 상제님의 두터우신 호생(好生)의 덕, 그 덕으로 이 땅의 모든 생명들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 이것이 상제님의 덕화이며, 상생의 의미일 것이다.

  

▲ 세천의 오리와 기러기

 
  그리고 또 한 번은 상제님께서 동곡에서 사기(沙器)를 옮기는 공사를 보신 후 공우와 함께 전주로 향하셨는데 점심때가 되어 세천에 당도하셨다. 공우는 상제님께 점심을 대접하기 위해 고송암의 친구집으로 모시고 가서 점심상을 받게 하였다. 상제님께서는 이곳에서 서양 기운을 몰아내는 공사를 보셨다. 상제님께서 문득 “서양기운을 몰아내어도 다시 몰려드는 기미가 있음을 이상히 여겼더니 뒷 골방에서 딴전 보는 자가 있음을 미쳐 몰랐노라.”고 하시며 공우에게 고송암에게 가서 물어보고 오라고 하시고는 칠성경의 문곡의 위치를 바꾸어 놓으셨다.02
  이러한 일화가 전해지는 세천은 지금의 효자4동, 중화산2동, 서신동 등의 지역으로 옛 이동면 지역이다. 이동면은 이서면의 동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상제님께서 이서면 이성리에서 김덕찬과 함께 고개를 넘어가시다가 고사리를 캐는 노인에게 양식을 구하던 그 신령(神嶺)고개를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나뉜다. 신령고개는 상제님께서 불가지(佛可止)의 공사를 보신 곳이기도 하다.

  

▲ 세천을 건너는 징검다리

 
  세천과 전주천이 만나는 곳에 이동면 전룡리가 있었다. 어느 날 전룡리에 사는 이직부의 부친이 상제님을 초빙하여 가시게 되었는데, 그 집의 훈장이 상제님의 재주를 시험하려 하였다. 상제님께서는 이를 미리 아시고 그 동네의 호구와 남녀 인구의 수를 정확히 맞추고, “사흘 안에 한 사람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도 적중하였다.03 그리고 전룡리는 상제님께서 앞날에 세상에 닥칠 큰 재앙을 해소하기 위하여 장흥해의 난을 직접 겪으시고 난 후 이곳에서 월여를 머무신 곳이기도 하다.
  이직부가 살았던 이동면 전룡리의 지명은 이제 전주에서 보이지 않는다. 다만 서전주중학교 옆에 건설된 이동교라는 다리의 이름에서 그 부근에 이동면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전룡리는 지금의 전주 서신동에 해당하는데, 서신동과 진북동을 연결하는 서신교에서 서쪽으로 연결된 도로에 전룡로라는 도로명으로 남아 있어 그 위치를 짐작하게 한다.
  오랫동안 전주의 주된 하천은 전주천이었다. 전주천은 전주인들의 질곡의 삶과 숨결을 함께해 왔다. 그러나 2005년 전북도청이 세천 서쪽의 효자동으로 옮긴 후 도청을 중심으로 신시가지가 형성되면서 세천은 전주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 이동교 전경

 
  세천의 천변 뚝길을 자동차로 달려보았다. 왕복 4차선의 넓은 도로다. 도로변의 가로수는 오래되지 않은 듯 비교적 키가 작다. 길옆으로 아파트, 상가, 주택들이 스치듯 지나간다. 얼마 쯤 달리니 이동교의 표지석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천변 둔치를 따라 세천을 걸어보기로 하고 적당한 곳에 차를 세웠다.
  세천의 뚝과 둔치를 연결해놓은 계단을 따라 천변 둔치로 내려간다. 하천의 폭이 생각보다 넓게 펼쳐진다. 100m는 족히 넘어 보인다. 저 멀리 남쪽으로 어머니 품속같이 넉넉한 모악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무성하게 자란 갈대숲, 옛날 방식으로 복원된 징검다리, 물속에는 잉어가 세천을 거슬러 오른다. 그리고 수풀을 헤치며 물고기 사냥에 열중하는 오리들, 스치는 바람소리, 흔들리는 갈대숲,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여유롭다. 수풀 사이로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자전거가 달린다. 인기척에 놀란 기러기들이 날아오른다. 이제 세천을 떠나야 할 시간이다. 가는 길에는 전룡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전룡로를 돌아서 가야겠다.

  


▲ 세천에서 바라본 모악산

《대순회보》 1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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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권지 2장 5절.
02 공사 2장 21절.
03 권지 1장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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