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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부
올 들어 여름은 유난히 빠르게 느껴진다. 엊그제 봄 비 맞아 꽃 피우던 나뭇가지에 초록 잎이 가득 차있는 것을 보니 벌써 한여름 무더운 뙤약볕 아래에 서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우리 일행은 전북 정읍시 이평면 팔선리 서산마을을 찾아 차에 올랐다. 서산마을은 구천상제님의 외가가 있는 곳으로 상제님께서 잉태되신 곳이기도 하다. 『전경』에서 서산리를 처음 보았을 때 상상으로 그리며 동경하던 그곳에 간다고 하니 사뭇 기대감에 부풀었다. 한편으로 이번 답사에는 상제님께서 잉태하신 외가의 집터를 찾는 것과 『전경』에 서산리의 유래에 대한 현지 자료 조사를 하고자 출발하게 되었다. 상제님 생가가 있는 객망리 앞의 덕천사거리에서 이평면으로 가는 고개를 넘어가니 오른편으로 가마등 능선을 넘어 솥을 엎어놓은 형상을 하고 있는 부정리와 왼쪽으로 쪽박골이 나타났다. 10여 분을 달려가니 들판 가운데 있는 서산마을이 보였다.
서산마을은 이평면(梨坪面) 팔선리의 여러 마을 중 한 마을로 팔선리 주위는 넓은 배들평야가 둘러싸고 있는데 시루봉 앞의 달천리 기름들에서부터 정읍천을 따라 팔선리를 지나 동진강으로 끝없이 평야가 이어져 있다. 서산마을을 찾아가니 나즈막한 능선이 마을을 감싸안은 지형으로 동남쪽에는 큰질가든이란 등성이가 있으며,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가망골이 있고, 가장 높은 언덕에 큰 느티나무와 그 아래 서산경로당이 있어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 쉬는 장소가 있었다.
우리 일행은 먼저 서산경로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경로당 앞의 느티나무는 수백 년은 되어보였으며 여기가 서산리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 오랜 세월 동안 마을을 지키며 서 있었다. 경로당으로 들어가서 인사를 드리니 어르신들께서는 젊은 사람들이 찾아가니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셨다. 준비해 간 자료를 보면서 여쭈었더니 서로 앞 다투어 자랑하듯 마을의 내력에 대해 알려주셨다. 자료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서산리는 상제님께서 강세하실 당시에는 전라도 고부군 답내면 서산리(全羅道 古阜郡 畓內面 書山里)라고 부르다가, 일제강점기에 1914년 행정구역 개편하였는데 팔선리, 서산리, 석정리, 용전리, 현동, 예동, 수금면 신복리, 오신리, 오금면 각목리, 오신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중심마을의 이름을 따서 팔선리(八仙里)라 하고 전라북도 정읍군 이평면 팔선리(全羅北道 井邑郡 梨坪面 八仙里)에 편입되었다.
ㆍ구천상제님 강세당시 - 전라도 고부군 답내면 서산리
(1870년경)(全羅道 古阜郡 畓內面 書山里)
ㆍ1914년 - 전라북도 정읍군 이평면 팔선리 서산마을
(全羅北道 井邑郡 梨坪面 八仙里 書山)
ㆍ1995년 - 전라북도 정읍시 이평면 팔선리 서산마을
(全羅北道 井邑市 梨坪面 八仙里 書山)
1914년에 일본이 우리나라의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지명을 잘못 기록한 것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이평면(梨坪面)이다. 상제님께서 “일본인이 산 속만이 아니라 깊숙한 섬 속까지 샅샅이 뒤졌고 또 바다 속까지 측량하였느니라.”(교법 3장 39절)고 하신 것처럼 당시 일본인들은 전국의 모든 지명을 개편하였다. 이평(梨坪)이란 말은 ‘배나무 들’로 풀이되는데 끝없이 넓은 평야에 배나무는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이평면으로 된 유래를 알기 위해 이평면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더니 전(前) 이평면장 이었던 김봉길씨가 잘알고 있을거라면서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그 분께 전화를 드렸더니 자상히 설명해주셨다.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지명을 잘못 표기한 것이고, 배들평야는 배가 들어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일본인들이 한문으로 표기를 하면서 배나무 이(梨), 들 평(坪)으로 잘못 기록한 것이다”라고 하셨다. 배들평야란 ‘배가 들어오는 평야’라 하여 유래된 것을 일제가 ‘배나무 들판’인 이평(梨坪)으로 잘못 기록한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어르신들께 서산마을의 유래에 대해서 여쭈었더니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셨다. 이 마을에서 많은 인물이 나왔는데 그 중에서도 조선 중기 청하(靑霞) 권극중(權克中)01과 강증산(姜甑山) 상제님에 대한 자랑을 많이 하셨다. 지금도 그 흔적을 볼 수 있다고 하시면서 경로당에서 나와 장소를 이동했다.
먼저 이동한 곳은 권극중의 사우(祠宇)가 있었던 곳으로 마을 뒤편 솔밭 언덕으로 올라가니 숲속에 비석이 하나 나타났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사우는 없어지고 후대에 기념하기 위하여 그 자리에 서산사유허비(書山祠遺墟碑)를 세웠다 한다. 서산사(書山祠)는 권극중을 기리고 인재를 양성한 곳이었다고 한다. 비석 옆에는 서산사가 시작될 무렵 심은 것으로 보이는 오래된 배롱나무(나무백일홍)가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는 듯 서있었다. 서산리는 한때 권극중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후 방에 ‘산더미 같이 책을 쌓아놓고 공부를 했다’고 해서 ‘서산(書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마을 유래를 보면, 서산마을은 ‘책 서(書)’의 서산(書山)이라 불리기 이전에는 ‘쥐 서(鼠)’의 서산(鼠山)이었다고 한다. ‘쥐 서(鼠)’라고 하면 쥐, 좀도둑, 간신배, 근심, 걱정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왜 좋지 않은 뜻을 마을지명을 했을까? 궁금하던 차에 상제님 모친의 가문인 안동권씨 집안에서 세운 비문에 노서하전형(老鼠下田形)이란 글을 보고 의문이 풀렸다.
마을의 지형이 노서하전형(老鼠下田形)으로 ‘늙은 쥐가 밭으로 내려오는 형상’의 명당이 있다 하여 ‘쥐 서(鼠)’의 서산(鼠山)이라 하였다고 한다. 풍수에 보면 노서하전형에는 볏집을 쌓아놓은 형상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예전에는 서산사 아래에 창집이라 하여 고을의 환곡을 저장하는 사창터가 있었다고 한다.
권극중 선생은 조선 중엽의 인물로 내단사상의 대가로 도교에서는 아주 유명한 분이었다. 서산마을에서 태어나 22세에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공부하였다. 이후 진사시에 합격하여 벼슬에 나갔다가 영창대군의 죽음 이후 낙향하여 은둔적 삶을 살며 일생을 학문탐구에만 몰두하였다. 그는 도학을 접하면서 단학에 저명한 남궁두, 북창 정염의 후손인 정두경 등과 교류하면서 선가의 최고경전이라 할 수 있는 『참동계(參同契)』를 주해하는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단학사상에 관한 권극중의 업적을 살펴보면 단학은 불교와 성리학을 융회시켜 유불선(儒彿仙) 삼교일치(三敎一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한다.
다음으로 상제님께서 잉태되신 외가의 집터를 찾아갔다. 마을 어르신께서 안내해 주신 곳은 빈 밭이었다. 상제님께서 무명의 약소민족을 찾아서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오시려고 잉태되신 곳이라 생각하니 풀 한포기, 나무 하나가 새로워 보였다. 『전경』을 보면 “모친은 권(權)씨이며 휘는 양덕(良德)이니 이평면 서산리에 근친가서 계시던 어느 날 꿈에 하늘이 남북으로 갈라지며 큰 불덩이가 몸을 덮으면서 천지가 밝아지는도다. 그 뒤에 태기가 있더니 열석 달 만에 상제(上帝)께서 탄강하셨도다.”(행록 1장 9절)라는 구절이 생각났다. 집은 사라진지 오래되어 밭이 되었지만 아직 주위의 집이 남아 있고 집의 흔적이 있어 집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집터를 보면 큰집은 아니고 아담한 초가집이었을 것이다. 집 뒤로는 나지막한 능선이 있고 앞으로는 논이 펼쳐져있으며 오른편으로 집들이 늘어서 있다. 집터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며 남북이 갈라지고 큰 불덩이가 내려오는 상상을 해보았다. 이 마을에서는 “후대에 세상을 구원할 큰 인물이 나온다.”는 말이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왔다고 한다. 그런데 상제님 모친께서는 권극중 선생의 9대손인 것을 보면 우연의 일치는 아닌 것 같다.
상제님 외가의 집터를 뒤로 하며 마을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오는 마음이 한편으론 착잡했다. 불과 1년 사이에 상제님의 행적을 아는 몇 분이 돌아가셨다고 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상제님의 행적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가는 것을 보면 답사에 대한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한다. 여느 시골마을과 다를 바 없는 이곳에서 상제님께서 잉태하시고 암울한 시대에 오셔서 천지공사로써 새로운 세상을 여셨으니, 상극의 세상 속에 상생의 진리를 알리는 군자가 되리라 다짐해본다.
《대순회보》 1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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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조선 선조 때 단객 청하(靑霞) 권극중(權克中, 1585년 [선조18]~1659년 [효종10]),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도교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정지(正之), 호는 청하(靑霞), 전라도 고부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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