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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의 영산 금강산
연구위원 이승목
어느 한 곳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고, 예로부터 여러 명산 가운데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혔던 금강산. 그런 금강산에 5월 21일부터 22일까지 1박 2일간 답사를 다녀오게 되었다.
첫날 아침, 북녘 땅을 밟기 위해 남측출입사무소에서 간단한 수속을 마치고, 북측출입사무소로 이동하여 또 한 번의 수속절차를 거쳤다. 이 두 관문을 통과하니 비로소 금강산 답사가 시작되었다. 이제 버스는 북녘 땅으로 향했다. 버스로 이동하면서 저 멀리 북녘 들판을 바라다 보았다. 학교와 마을, 곡괭이와 호미를 쥐고서 논밭으로 향하는 주민들, 그리고 멀리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풀밭에는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런 모습들이 마치 우리나라의 6~70년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왔다는 느낌을 들게 했다.
또한 금강산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서니 각 봉우리의 수려함은 어떤 수식어를 다 동원하여도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땅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물들 중 금강산처럼 다채로운 극찬을 받는 것도 드물 것이다. 그래서인지 금강산에는 이름도 많다. 봄에는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게 빛난다고 하여 금강산(金剛山), 여름에는 녹음이 무성하다고 봉래산(蓬萊山), 가을에는 온 산의 단풍이 아름다워 풍악산(楓嶽山), 겨울에는 눈 덮인 바위들만 우뚝우뚝 솟아 있어 뼈만 남은 것 같아 개골산(皆骨山) 혹은 설봉산(雪峰山)으로 불리고 있다.
금강산의 아름다운 광경에 넋을 잃다보니 이미 버스는 온정리 온정각에 도착하였다. 온정리(溫井里)는 강원[북측] 고성군 외금강면(外金剛面)에 있는 곳으로, ‘더운 우물’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금강산의 각 지역으로 옮겨 가려면 이곳에서 셔틀버스를 갈아타야 된다. 그래서 온정각은 금강산 관광의 출발점이자 중심지이다. 우리도 첫 답사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이곳을 경유하게 되었다.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면서 고개를 들어 온정각 주변을 둘러보니, 수정봉, 세존봉, 관음봉, 채하봉, 집선봉 등 크고 웅장하면서도 드높은 봉우리들이 온정리를 중심으로 빙 둘러서 있었다.
아홉 마리의 용(龍)이 머물렀던 못,
구룡연(九龍淵)
구룡연으로 가는 셔틀버스에 올랐다. 구룡연은 구룡폭포 아래에 있는 못에 아홉 마리의 용이 머물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구룡연은 먼저 온정각에서 신계사·목란관주차장까지는 셔틀버스로 이동하고, 나머지 옥류동과 구룡동 두 지역은 산행으로 이루어진다.
우선 구룡연으로 가면서 처음 만나는 곳은 신계사(神溪寺)다. 이곳은 6·25전쟁 때 불에 타 모두 손실되다시피 하였다가, 최근 남과 북이 손을 잡고 복원 작업을 한창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대웅전 우측에 유독 눈길을 끄는 봉우리가 있었다. 바로 붓끝을 세워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하여 이름 붙인 문필봉(文筆峰)이다. 한 신계사 관계자는 이 봉우리에 대해 “문필봉의 정기를 받으면, 글을 짓거나 글씨를 쓰는 일이 더 뛰어나게 됩니다.”라는 말을 건네주었다. 이 말을 듣게 되니 왠지 많은 정기를 받아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들었다.
신계사를 지나면 목란다리 뒤에 목란관(木蘭館)이 나온다. 구룡연으로 올라가는 실질적인 출발지는 목란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목란관을 지나치면, 길 왼쪽 바위틈으로 맑은 물이 흘러내린다. 산삼과 녹용이 녹아 흐른다는 삼록수(蔘鹿水)다. 가이드가 이 물에 대해 “한 모금 마시면 10년이 젊어집니다.”라고 하여, 물병에 담아 마셔 보았다. 정말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가이드는 “젊어지려는 욕심에 많이 마시면, 어머니 뱃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라는 너스레도 잊지 않았다.
여기서 좀 더 위쪽으로 오르면, 옥류동(玉流洞)에 접어들게 된다. 옥류동 주변은 어느 것 하나 흘려버릴 수가 없다. 위로는 인위적으로 깎은 듯한 봉우리와 기암절벽들이 솟아 있고, 아래에는 에메랄드 빛깔의 맑고 투명한 물줄기들이 쉼 없이 흘러내리고 있다.
옥류동에 들어서 제일 처음 눈에 띄는 것은 흐르는 개울 한가운데 놓인 반반한 큰 바위이다. 바로 선녀들이 내려와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는 무대바위다. 옛날에는 수많은 시인들과 화가들이 이 무대바위에 올라앉아 옥류동의 절승을 노래하고 그림을 그렸다 한다. 이곳에서 몇 걸음 옮기면, 옥류담이 나온다. 옥류담은 수정을 녹여서 쏟아 부은 듯 맑고 푸른 곳이었다. 그곳을 보노라면 동심으로 돌아가 물장난을 치고 싶은 욕구가 절로 솟는 듯했다. 그리고 물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쌍둥이 못이 나타난다. 두 개의 파란 구슬을 연달아 꿰어 놓은 듯하다고 해서 연주담이라 불리는 곳이다.
연주담을 지나면 바위벽들이 더욱 험준해지다가 언덕 전체가 돌층계처럼 된 한 장의 거대한 바위가 나타난다. 바위의 긴 석벽을 타고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데 그 모습이 마치 봉황이 날개를 펴고 꼬리를 휘저으며 날아오르는 것 같다고 하여 비봉폭포(飛鳳瀑布)라고 한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또 하나의 폭포가 뭇사람들을 매료시킨다. 이것이 무봉폭포(舞鳳瀑布)이다. 봉황이 춤을 추는 듯하다 하여 무봉폭포라 하는데, 비봉폭포와 짝을 이루고 있어 이 둘을 부부폭포라 부르기도 한다.
이곳을 지나서 한참 가면 벼랑 위에 구룡폭포의 경관을 바라볼 수 있게 지어놓은 관폭정(觀瀑亭)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우리나라 3대 폭포 가운데 하나이며, 구룡연 코스의 절정인 구룡폭포(九龍瀑布)가 보인다. 깎아지른 절벽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물줄기는 일대 장관을 이룬다. 폭포 밑에는 높은 절벽 위에서 수정같이 맑은 물에 의하여 깊이 패인 돌절구와 같은 모양의 못이 보인다. 바로 아홉 마리의 용이 머물렀다는 구룡연(九龍淵)이다. 특히 구룡연은 이 코스의 정상에 근접하고 있으며, 그 못의 너비가 4m에 지나지 않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깊이가 무려 13m나 된다. 이 깊은 산중 그리고 그 높은 산봉우리에 이렇게 깊은 못이 있을까 하는 의문점을 자아낼 정도이다. 가히 아홉 마리의 용(龍)이 머물만한 곳이었다. 또한 그 못을 형성하게 하는 구룡폭포는 천하의 명산 금강산에서도 제일가는 폭포이기도 했다.
그리고 구룡폭포 위로는 상팔담(上八潭)이 있다. 새파란 물을 담은 크고 작은 여덟 개의 못들이 마치 푸른 구슬을 꿰어놓은 것처럼 층층으로 연이어 있다. 이 크고 작은 여덟 개의 못들을 팔담(八潭)이라 하고, 구룡폭포 위에 자리 잡고 있다 하여 상팔담이라고도 한다. 더구나 하늘에서 선녀가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서 목욕을 하고 올라갔다는 옛 전설이 전해질 만큼 경치가 좋고 물이 맑다. 그리고 바로 이 맑은 물이 흘러 만들어진 것이 구룡폭포이다.
이제 구룡연 코스를 마무리하고서 숙소인 장전항으로 이동하였다. 원래 장전항은 북측의 군사항구이며 어항이기도 하고, 또 남·북간 처음 육로관광이 시작되기 전에는 이곳을 통해 금강산으로 갔던 곳이다. 그런 곳에서 짐을 풀고서 북녘 땅에서의 첫날밤을 맞이하였다.
삼일포(三日浦)와 해금강(海金剛)
다음날 아침, 금강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삼일포(三日浦)로 향했다. 삼일포는 관동팔경(關東八景) 가운데 하나이다. 신라(新羅)시대 때, 영랑 ·술랑·남석랑·안산랑 네 국선(國仙 : 화랑)이 하루만 놀자고 왔다가 절경에 취해 사흘을 넘겼다 해서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저마다 수려한 산봉우리들과 기묘한 암석들이 마치 병풍처럼 호수를 둘러싸고 있어 웅장하면서도 아늑한 정취가 느껴진다.
또한 이곳은 육지 쪽으로 잘록 들어간 바다였지만, 그 부분이 여러 해를 거치면서 지금과 같은 호수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호수 가운데에는 와우도(臥牛島 :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의 섬)를 비롯한 4개의 바위섬이 있고, 호수 서남쪽 기슭에는 연화대가 있다. 연화대는 호숫가에 핀 연꽃처럼 보인다고 하여 그렇게 이름 붙여진 것으로, 연화대 정자(亭子)에서는 거울처럼 맑은 호수 전체가 내려다보인다. 수면위에 비춰진 산 그림자의 경치를 계속 바라다보니, 왜 네 국선들이 사흘씩이나 머물다 가게 되었는지 공감이 갔다.
삼일포에서 두 시간을 소요하고, 버스로 마지막 답사지 해금강(海金剛)으로 향했다. 이곳은 위 두 지역과는 달리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주위경관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내륙에 위치한 만물상(萬物相)이 천태만상의 기암괴석을 뽐내고 있다면, 해금강은 바다의 만물상이라는 표현이 서슴없이 사용될 정도로 갖가지 형상을 한 수많은 기암들이 즐비하여 경탄을 자아낸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천하에는 금강이 모두 여덟 개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지금의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이고, 나머지 일곱 개는 동해의 깊고 푸른 물속에 잠겨 있으면서 모습을 드러낼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바닷속의 기암괴석들을 들여다보노라면, 드러난 것이 극히 일부분일 뿐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이것으로 1박 2일간 금강산 답사를 마무리 하였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진한 여운을 남겼다. 그리고 21세기를 달리고 있는 지금까지도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어 있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꼈다. 또한 상제님께서 “도는 장차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을 응기하여 일만 이천의 도통군자로 창성하리라.”(예시 45절)고 하셨듯이, 앞으로 다가올 후천(後天)에 저 일만 이천 봉우리 중 내 자리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생각으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일만 이천 봉의 정기를 받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기 위해 수도에 더욱 매진(邁進)하리라 다짐을 해본다.
《대순회보》 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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