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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님2013년 종단 역사 사진전(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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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7.01 조회 5,75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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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님께서 공부하신 장소를 주제로 전시하였습니다.  

  

 

도주님 공부처 

 

 

  『전경』「교운 2장」에 나오는 도주님의 공부처는 대략 20군데입니다. 그 중에는 위치가 확인된 곳도 있지만 근거로만 추정해야 하거나 전혀 확인할 수 없는 곳도 있습니다. 이번 사진전에서는 명확히 확인된 곳과 근거로 추정 가능한 곳을 선정하여 준비하였습니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곳(만주 공부처, 청도 유천 박동락 집, 보수동 산정)은 조사를 더 진행하여 다음을 기약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이 전시된 순서는 『전경』에 나오는 도주님의 공부 장소 차례에 맞추었습니다. 

 


 

  

 

19. 안면도 홍일우 터 

 


안면도 홍일우 터 (2010. 11. 17 촬영) 

 

주소: 충남 태안군 안면읍 창기리 349 

참고: 교운 2장 35절 

도주님께서 안면도와 원산도 간척사업을 하실 때 안면도 창기리의 홍일우에서 공부를 하셨다. 지금은 건물이 없어지고 비닐하우스(사진 오른쪽)가 설치되어 있다.

 

 

  

20. 멀리서 본 홍일우 터 

 


멀리서 본 홍일우 터 (2010. 11. 17 촬영) 

 

전봇대 오른쪽의 검은 비닐이 덮여 있는 비닐하우스가 홍일우 터이다.

 

 

 

21. 서울 도염동(都染洞) 위성지도와 도염서 터 표석 

 


서울 도염동(都染洞) 위성지도와 도염서 터 표석 
(출처: 다음지도) 

 

주소: 서울시 종로구 도렴동 

참고: 교운 2장 39절 

1926년경에 도주님께서 태인 도창현 도장과 서울 도염동을 왕래하시면서 공부를 하셨다. 정확한 장소는 확인할 수가 없어서 현재 남아있는 도염동(도렴동)의 위치만 표시하였다. 도염동은 조선시대에 도염서(궁중에서 사용하는 염료 제조와 염색을 맡아보던 관청)가 있었던 것에 유래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지금은 위성지도에 붉은 선으로 표시된 지역이 해당구역이다.

  

 

 

22. 회문리 회룡재 

 


회문리 회룡재 (2013. 04. 19 촬영) 

 

주소: 경남 함안군 칠서면 회산리 197-2 

참고: 교운 2장 44절 

일제의 종교단체 해산령에 의해 무극도장이 일본 총독부에 기증된 후에 도주님께서는 회룡재를 중심으로 수도을 하셨다. 현재의 회룡재는 1950년 6.25 전쟁때 소실되었던 것을 2004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23. 회룡재 주춧돌 

 


회룡재 주춧돌 (2013. 04. 25 촬영) 

 

옛 회룡재 건물에 쓰였던 주춧돌. 새로 지은 회룡재 뒤편 화단에 남아 있다.

  

 

 

동래 마하사 

 


(출처: 다음지도)

 

  ‘마하’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한 말로 ‘훌륭한’이라는 뜻입니다. 마하사는 1965~1970년 대규모 보수공사가 이루어지면서 대웅전ㆍ응진전ㆍ대방(大房)ㆍ요사(寮舍)ㆍ식당 등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보수공사 때 대웅전과 나한전에서 발견된 상량문(上樑文)에 의하면 마하사는 5세기에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하였다고 합니다. 1500년 가까이 된 사찰이지만 1995~1996년에 대웅전과 삼성각(三聖閣)도 새로이 중건하면서 1000년이 넘는 고찰의 운취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도주님께서 1949년 겨울에 현재 요사채가 있는 곳의 방에서 49일 공부를 하셨습니다. 공부가 끝날 무렵 응진전(지금의 나한전)에 있었던 불상이 고개를 숙였는데, 이 불상(마하사 응진전 목조여래좌상)은 현재 범어사 성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교운 2장 47절 

  도주께서 기축년 겨울에 동래 마하사(摩訶寺)의 방 한 칸에서 정화수 스물네 그릇을 받들고 四十九일을 한 도수로 정하시고 공부를 하셨도다. 이 광석(李光石)이 대웅전에서 도주를 위해 발원 염불을 올리니라. 四十九일이 거의 될 무렵에 도주께서 승려와 시종자에게 “법당의 불상을 자세히 보았느냐.”고 물으시므로 그들이 달려가 보니 불상이 머리를 숙이고 있는도다. 도주께서 四十九일을 다 채우신 새벽에 공부실 위에 학이 울며 날아가고, 시종자에게 그동안 모아 놓은 글씨 종이를 태우고 그 재를 시냇물에 띄우라고 이르시므로 시종자가 그대로 하니 시냇물에 무지개가 서는도다. 

 

  

 

24. 마하사 요사채 

 


마하사 요사채 (2013. 04. 18 촬영) 

 

주소: 부산 연제구 연산동 2039 

참고: 교운 2장 47절 

도주님께서 1949년 겨울에 이곳에서 49일 공부를 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의 요사채(스님들의 생활공간)는 새로 지은 것이다.

 

  

 

25. 마하사 나한전(羅漢殿) 

 


마하사 나한전(羅漢殿) (2013. 04. 18 촬영) 

 

옛 응진전 건물로 대웅전 옆에 있으며, 도주님께서 49일 공부를 마치실 무렵 머리 숙인 불상이 있었던 법당이다.

  

 

 

26. 마하사 응진전 목조석가여래 좌상 

 


마하사 응진전 목조석가여래 좌상 (2013. 07. 26 촬영) 

 

머리를 숙이고 있는 여래좌상이다. 원래는 마하사 응진전에 봉안되어 있던 목불로, 지금은 부산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27. 보수동 도장 

 


보수동 도장 (2013. 07. 26 촬영) 

 

주소: 부산 중구 보수동 1가 21-2 

참고: 교운 2장 52절 

도주님께서는 광복 이후 종교 활동을 부활하시고, 1948년 9월에 보수동 도장을 마련하셨다. 이후 도장을 감천으로 옮기기 전까지 보수동 도장과 산정을 중심으로 공부하셨다. 현재 이곳에는 ‘보수도정’이라고 현판이 붙어있다.

  

 

 

28. 보수동 도장 입구와 치마바위 

 


보수동 도장 입구와 치마바위 (2013. 07. 26 촬영) 

 

보수동 도장도 무극도장처럼 치마바위 아래 터를 잡았다.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치마바위)

  

 

 

가야산 해인사 



(출처: 다음지도)


  1954년 10월경에 도주님께서 해인사에 방문하셔서 관음전 뒤편의 다로경권(승려들이 차를 마시는 방)에서 3일 동안 공부를 하셨습니다. 1954년은 도주님께서 “앞으로 신도들의 동(動)이 두 번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해이기도 합니다. 이 공부를 마치시고 나서 종도들에게 사명당 입적실이 있는 홍제암에 다녀오라고 하신 후, 백련암과 그 외 여러 암자를 둘러보셨습니다. 

  해인사는 신라 제40대 애장왕(哀莊王) 때 세워진 1200년이 넘는 고찰입니다. 해인사는 화엄경에 나오는 해인삼매(海印三昧)에서 딴 이름입니다. 해인삼매란 영원한 진리의 세계, 있는 그대로의 세계, 청정한 우리의 본마음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도주님께서는 이 해인에 대하여, 구체적인 사물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있는 상제님에 대한 믿음을 말씀하셨습니다. 해인은 바다의 상징적 표현입니다. 이 바다는 모든 삼라만상의 근원인 수기이며 천지만물을 지배 자양하는 전기로써, 상제님께서 이것을 통솔하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교운 2장 54절 

  도주께서 다음 달에 박 한경(朴漢慶)과 김 용화(金容和)ㆍ김 해구(金海九)ㆍ오 치국(吳治國)ㆍ류 철규(柳喆珪)ㆍ이 윤섭(李允燮)ㆍ류 한규(柳漢珪)ㆍ김 영하(金永河)ㆍ오 영식(吳永植) 등을 데리시고 인사(海印寺) 경내에 있는 관음전(觀音殿)이자 심검당(尋劒堂) 뒤편의 다로경권(茶爐經卷)에서 사흘 동안 공부를 하셨도다. 그러나 공부에 관한 말씀은 없으시고 “사명당(四溟堂)의 입적실에 가서 불공이나 드리고 가리라.” 말씀하시니 박 한경과 그 외 세 사람이 먼저 그곳을 돌아보고 와서 가시기를 청하니 “너희들이 다녀왔으면 되었다.”고 말씀하시고 근처에 있는 백련암과 그 외 여러 암자를 돌아보시고 길에 오르셨다. 

 

  

 

29. 해인사 관음전과 심검당 



해인사 관음전과 심검당 (2013. 07. 26 촬영) 
 

 

주소: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10 

참고: 교운 2장 54절 

이 건물 왼쪽 뒤편에 다로경권이 있었다. 

  



30. 다로경권이 있었던 곳 



다로경권이 있었던 곳 (2013. 07. 26 촬영) 


정면에 보이는 방이 도주님께서 1954년에 여러 종도들을 데리고 3일 동안 공부를 하신 곳이다.

 

 


31. 다로경권에 걸려있던 현판 



다로경권에 걸려있던 현판 (2010. 04. 08 촬영) 


다로경권(승려들이 차를 마시는 곳)에 걸려있던 현판. 수행공간으로 바뀌면서 지금은 현판이 걸려있지 않다.


 


32. 홍제암(弘濟庵) 전체 모습  



홍제암(弘濟庵) 전체 모습 (2013. 07. 26 촬영) 


해인사에 속해 있는 암자로 사명대사가 수도하다 입적한 곳이다. ‘홍제암’이라는 이름은 사명대사 입적 후 광해군이 내린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 라는 시호에서 따왔다. 


 


공주 동학사 



(출처: 다음지도)


동학사는 충남 공주 계룡산 국립공원에 있는 절로, 여승들이 수행하는 비구니 사찰입니다. 이곳은 박제상을 모신 동계사와 고려 말의 충신인 포은ㆍ목은ㆍ야은을 모신 삼은각, 그리고 단종을 모신 숙모전이 있어 유명합니다. 박제상은 신라 눌지왕의 신하로 일본에 인질로 가 있던 왕의 아우 미사흔을 구출하고 순절한 충신입니다. 신라 성덕왕 때인 724년에 상원조사가 입적한 후 동학사의 전신인 상원사가 창건되었고, 고려 개국공신인 류차달이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박제상을 기리기 위해 동계사를 지은 후에 절을 확장하여 동학사라 하였습니다. 동학사의 명칭은 절 동쪽에 학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붙여졌는데, 이렇게 유서 깊은 동학사도 1950년 6.25전쟁을 피하지 못하고 건물이 전부 불타 없어졌다가 1960년대 이후 다시 중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도주님께서 행차하신 1956년 3월은 6.25전쟁으로 절의 건물이 거의 불타 없어졌던 때 입니다. 7일 동안 공부하셨던 염화실은 현재 포교를 위해 주지승이 머물고 있는 곳입니다. 


교운 2장 57절 

병신년 三월에 박 한경은 도주의 분부를 좇아 류 철규ㆍ박 종순과 함께 정하신 바에 따라 공주 동학사(東鶴寺)에 이르셨도다. 이 절의 경내에 동계사(東.祠) 삼은각(三隱閣)과 단종왕의 숙모전(肅慕殿)이 있고 생육신과 사육신을 추배한 동묘 서묘가 있으니 신라 고려 조선의 삼대 충의지사를 초혼한 곳이로다. 이곳의 관리자는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 팽년(朴彭年)의 후손이고 정기적으로 청주에서 내왕하면서 관리하고 있었도다. 그러므로 평상시에는 문이 닫혀 사람들이 출입할 수 없는데 이날따라 그 후손이 도주께서 불러 나온 듯이 미리 와서 문을 여니 도주께서는 배종자들을 데리시고 이곳을 두루 살피셨도다. 그리고 동학사 염화실(拈花室)에서 이레 동안의 공부를 마치시고 말씀하시길 “이번 공부는 신명 해원(神明解.)을 위주한 것이라.”고 이르셨도다. 


 

 

33. 동학사 염화실 



동학사 염화실 (2013. 07. 18 촬영) 


주소: 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789 

참고: 교운 2장 57절 

1956년 도주님께서 ‘신명해원(神明解.)’을 위주로 한 공부를 7일 동안 하신 곳이다.



  

34. 동학사의 동계사, 삼은각 



동학사의 동계사, 삼은각 (2010. 04. 10 촬영) 


동계사에는 신라의 박제상의 위패가, 삼은각에는 고려의 충신인 포은 정몽주ㆍ목은 이색ㆍ야은 길재 세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지리산 쌍계사 



(출처: 다음지도)


삼신산 중에서 방장산으로 불리는 지리산 남쪽 자락에 있고, 계곡에서 내려온 시냇물이 절 양쪽으로 흘러서 쌍계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이 절은 선종(禪宗)을 일으킨 육조 혜능스님의 정상(머리)을 중국에서 모셔와 봉안하면서 유래되었습니다. 현재도 혜능대사의 정상이 모셔진 쌍계사 금당(金堂)은 아주 유명합니다. 금당 좌우 건물은 동방장과 서방장이고 금당 앞의 건물이 팔상전이며, 팔상전 맞은편 건물이 『전경』에 나오는 청학루입니다. 청학루 정면을 기준으로 왼쪽이 봉래당, 오른쪽이 도주님께서 공부하신 영주당입니다. 방장ㆍ봉래ㆍ영주라는 삼신산의 명칭을 따서 건물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독특합니다. 그래서인지 일주문 현판이 ‘삼신산 쌍계사’라고 되어 있습니다. 


교운 2장 60절 

박 한경이 이해 八월에 충청도 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교화에 힘을 다하고 있던 중에 급히 도장으로 귀환하라는 도주의 분부를 받고 류 철규와 함께 돌아오니 도주께서 지리산 쌍계사(智異山雙磎寺)에 갈 터인데 배종할 것을 분부하시니라. 다음날에 박 한경ㆍ류 철규ㆍ한 상덕ㆍ김 재복이 도주를 모시고 절에 이르러 정하신 바에 따라 청학루(靑鶴樓)의 뒷계단 위에 있는 영주각(瀛洲閣)의 정결한 방으로 주지의 안내를 받았도다. 도주께서 이레 동안의 공부를 마치시고 생각하였던 바와는 달리 쉽게 마쳤다고 하시고 “趙鼎山來智異應 一布衣來白日寒 (조정산래지리응 일포의래백일한).” 이라고 말씀하셨도다. 

 


 

35. 쌍계사 영주당 



쌍계사 영주당 (2010. 04. 09 촬영) 


주소: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참고: 교운 2장 60절 

1956년 8월에 도주님께서 7일 동안 공부를 하신 곳이다. (영주각에서 영주당으로 명칭이 바뀜) 



  

36. 영주당 옆 청학루 



영주당 옆 청학루 (2013. 07. 25 촬영)

  



37. 1960년대 태극도 도장 전체 모습 



1960년대 태극도 도장 전체 모습 (출처: 강석환 제공) 


주소: 부산 사하구 감천동 13-1111 

참고: 교운 2장 66절 

도주님께서 대강전(大降展)과 정사(精舍)에서 공부하셨다고 한다.

 

 


38. 감천동 전체 모습 



감천동 전체 모습 (1991. 05. 23 촬영) 


 

1950년대에 보수동과 전국 각지에서 이주해온 도인들이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태극도마을이 생겼다. 지금은 도주님 능소 위쪽으로 보이는 구역만 감천문화마을(태극도마을)로 지정되어 있다. (사진 중간에 도주님 능소가 보이고, 왼쪽 아래에 보이는 청기와 건물이 태극도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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