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님2013년 종단 역사 사진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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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1.12 조회 2,452 댓글 0본문
상제님(上帝任)의 발자취가 가장 많은 곳인 전북을 중심으로
『전경(典經)』에 나온 김제(금산면 금산리, 쌍용리, 원평리)와
군산 지역에서의 상제님과 종도들의 행적지를 담은 사진들을 전시하였습니다.
김제시
1. 모악산(母岳山) 용안대(龍眼台)
모악산(母岳山) 용안대(龍眼台)(2009.10.19 촬영)
주소 :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심원암 부근
참고 :『전경』 권지 1장 31절
내용 : 상제께서 종도들을 이끌고 여러 날을 머무르셨다는 곳이다.
2. 모악산(母岳山) 모악정
모악산(母岳山) 모악정 (2009.10.19 촬영)
주소 :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산1
내용 : 모악산 용안대로 가는 길에 있는 모악정이다.
3. 금산사(金山寺) 청련암(靑蓮庵)
금산사(金山寺) 청련암(靑蓮庵) (2009.10.20 촬영)
주소 :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참고 :『전경』 행록1장 37절
내용 : 상제님께 명당을 원하며 종도가 된 김현찬(金玄贊)이 승려였을 때 머문 곳이다.
4. 금산사
임진왜란 이전의 기록은 모두 소실되어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등을 인용하여 사적기(事蹟記)가 만들어졌는데, 금산사의 창건은 599년(백제 법왕 1)에 왕의 자복(自福)사찰로 세워진 것이라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지금까지 전하는 바는 진표율사(眞表律師)가 762년(신라 경덕왕 21)부터 766년(신라 혜공왕 2)까지 4년에 걸쳐 중건(重建)하였으며, 1069년(문종 23) 혜덕왕사(慧德王師)가 대가람(大伽藍)으로 재청하고, 그 남쪽에 광교원(廣敎院)이라는 대사구(大寺區)를 증설하여 창건 이래 가장 큰 규모의 대도량(大道場)이 되었다.
모악산 금산사 건물 배치도 (출처: 다음지도)
4 - ① 금산사(金山寺) 미륵전(彌勒殿)
금산사(金山寺) 미륵전(彌勒殿) (2008.10.31 촬영)
문화재 지정번호 : 국보 제62호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39
참고 :『전경』 행록 1장 37절, 행록 2장 16절, 행록 5장 29절,
공사 2장 11절, 교운 1장 9절, 교운 2장 15절,
예시 1절, 예시 14절, 예시 15절
내용 : 상제님께서“내가 금산사로 들어가리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너라.”라고 하신 금산사가 바로 이곳이다.
4 - ② 금산사(金山寺) 미륵불(彌勒佛)
금산사(金山寺) 미륵불(彌勒佛) (2012.05.10 촬영)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39
참고 :『전경』 행록 2장16절, 공사 2장11절, 교운 1장9절, 예시1절, 예시15절
내용 : 상제님께서“… 내가 서양(西洋) 대법국(大法國) 천계탑(天啓塔)에 내려와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모악산((母岳山) 금산사(金山寺) 삼층전(三層殿) 미륵금불(彌勒金佛)에 이르러 三十년을 지내다가 ….”라고 하신 그 미륵불이다.
* 금산사 미륵불 교체 내력
진표율사가 금불로서 창건한 이후 정유재란 때 소실로 1601년 수문대사에 의해 목불로 재건되었다. 1934년에 원인 모를 불로 미륵전 주불(主佛)만이 소실되었으며 성열대사에 의해 토불로 조성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4 - ③ 미륵불 좌대로 쓰인 솥
미륵불 좌대로 쓰인 솥 (2008.10.31 촬영)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39
참고 :『대순지침』p.14~15
내용 :“금산사도 진표율사가 용추(용소)를 숯으로 메우고 솥을 올려놓은 위에 미륵불을 봉안한 것은 증산(甑山)ㆍ정산(鼎山)의 양산의 진리를 암시하여 도의 근원을 밝혀 놓은 것이다.”하셨듯이 미륵불 아래에는 실제 좌대로 쓰인 솥이 있다.
4 - ④ 금산사(金山寺) 대장전(大藏殿)
금산사(金山寺) 대장전(大藏殿) (2012.05.10 촬영)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827호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39
참고 :『전경』 공사 2장 11절
내용 : 원래 대장전은 미륵전 앞에 있었는데, 마당 서쪽인 현재 위치에 옮겨졌다.
5. 만인교(萬人橋)
만인교(萬人橋) (2010.06.15 촬영)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482
내용 : 금산사 가는 길목에 있는 만인교. 이 다리는 안필성이 만인교를 건립할 때 희사금을 많이 내었으며, 그 옆에는‘태운 김형렬 선생 등 팔십팔인 애국지사 충혼비(太雲金亨烈先生等八十八人愛國志士忠魂碑)’가 있다.
6. 모악산 금산 돌무지개문
모악산 금산 돌무지개문 (2008.10.31 촬영) 현 사진(2012.05.10 촬영)
주소 :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99-2
내용 : 故 김현식(김형렬 손자) 씨의 증언에 따르면 상제님께서 이 돌무지개문 위에서 김형렬을 부르곤 하셨다고 한다.
7. 환평리(環坪里)
환평리(環坪里) (2007.06.26 촬영)
주소 : 전주부 금구군 수류면 환평리 (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함평마을)
참고 :『전경』 행록 3장 19절
내용 : 정괴산(丁槐山)이 상제님께 솥을 받고 가세가 늘었으나 이사할 때 환평리에 사는 정동조(鄭東朝)에게 팔고나서 다시 가난해졌다고 한다.
8. 팥거리 팽나무 주막 터
팥거리 팽나무 주막 터 (2010.10.06 촬영)
주소 :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377-1
참고 :『전경』 행록 2장 24절
내용 : 안필성 증손자의 증언에 따르면 상제님께서 안필성에게 쉬어가며 일하라고 씨나락(볍씨)을 땅에 뿌리셨던 곳이 팽나무 주막 터라고 한다.
9. 용암리(龍岩里) 수침막(水砧幕) 터
용암리(龍岩里) 수침막(水砧幕) 터 (2010.06.15 촬영)
주소 : 전주부 금구군 수류면 용암리 (현 김제시 금산면 쌍용리)
참고 :『전경』 행록 3장 37절, 행록 3장 38절
내용 : 차경석(車京石)이 1907년 5월에 상제님을 처음 뵈러 온 곳이다.
10. 용암리(龍岩里) 주막 터
용암리(龍岩里) 주막 터 (2010.06.15 촬영)
주소 : 전주부 금구군 수류면 용암리 (현 김제시 금산면 쌍용리)
참고 :『전경』 행록 2장 24절
내용 : 상제님께서 김자현(金自賢) 외 몇 종도를 데리고 이 주막에 들렀을 때 차경석(車京石)이 상제님의 비범함을 알고 쫓았다고 한다.
11. 원평시장
원평시장 (2010.10.14 촬영)
주소 : 전주부 금구군 수류면 원평리(현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
참고 :『전경』 행록 5장 4절, 공사 2장 1절
내용 : 상제께서 1909년에 원평시장에 있는 김경집(金京執)의 음식점에 오랫동안 왕래하셨다.
또 상제님께서 말점도로 가시면서 김갑칠과 김형렬에게 정성백의 집에 가서 짚신을 삼게 하시고 말점도에서 나오신 후 원평시장에서 짚신을 팔게 하셨다.
12. 군산(群山)
- 군둔마을, 군산항, 말점도
군산항, 말점도, 군둔리 위치도
12-1. 군둔(軍屯) 마을 전경, 김성화(金性化) 집
군둔(軍屯) 마을 전경 (2007.04.22 촬영)
주소 : 전주부 임피군 군둔리 (현 군산시 나포면 장상리 군둔마을)
참고 : 『전경』 행록 3장 32절, 제생 15절
내용 : 이곳은 김성화(金性化)가 살았던 마을로 예전에 군대가 주둔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김성화(金性化) 집 (2012.04.14 촬영)
주소 : 전주부 임피군 군둔리 (현 군산시 나포면 장상리 군둔마을)
참고 : 『전경』 공사 1장 16절
내용 : 이 집은 김성화가 살았던 곳으로 30여 년 전까지는 후손이 거주했으나 지금은 빈집으로 남아 있다.
12-2. 군산항
군산항 위성사진 (출처: 다음지도)
주소 : 군산시 장미동
참고 :『전경』 행록 3장 32절, 공사 1장 17절, 공사 1장 18절
내용 : 군산항은 상제님께서 한 달 정도 머무신 곳으로 서울로 가시기 위해 종도들에게 기선과 기차를 타게 하신 후 수륙병진((水陸竝進)이라 하신 곳이다. 군산항은 군산시 장미동 금강하구에 있는 무역항으로 1899년 5월 1일 일본에 의해 강제로 개항되었다. 개항 당시 군산항은 세관을 중심으로 넓지 않은 어촌이었으나 개항 이후 물류유통의 중심지로서 호남 일대의 쌀 수탈 전진기지가 되었다.
① 군산항 개항 이전 군산 전경
군산항 개항 이전 군산 전경 (1890년대 촬영)
주소 : 군산시 영화동 일대
출처 : 군산근대역사박물관
② 군산항 개항 이후 군산 전경
군산항 개항 이후 군산 전경 (1900년대 초 촬영)
주소 : 군산시 영화동 일대
출처 : 군산근대역사박물관
③ 옛 군산 세관
옛 군산 세관 (2012.04.14 촬영)
주소 : 군산시 장미동
내용 : 이 건물은 군산항을 통해 드나들던 선박과 물품에 대하여 세금을 거두던 곳이다. 1899년 군산항을 개항한 조선은 인천세관 군산지사를 설립하고 1908년에 대한제국 자금 8만 6천원을 들여 이 청사를 준공했다.
④ 군산항 부잔교
군산항 부잔교 (2012.04.14 촬영)
주소 : 군산시 장미동
내용 : 부잔교(浮棧橋)는 수출입화물 하역에 꼭 필요한 다리로 물 수위에 따라 다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여 ‘뜬다리부두’라고도 하며 효과적인 쌀 수탈작업을 위해 설치되었다. 부잔교는 1905년부터 1933년까지 3기(機)가 준공되었으며 현재는 총 4개의 부잔교가 있다.
12-3. 말점도(末店島)
말도(末島) 위성사진 (출처: 다음지도)
주소 : 군산시 옥도면 말도리
참고 :『전경』 공사 2장 1절
내용 : 말점도는 상제께서 김광찬과 함께 공사를 보시기 위해 들어가신 곳으로“내가 지금 섬으로 들어가는 것은 천지공사로 인하여 정배됨이니 너희들은 성백(成伯)의 집에 가서 그와 함께 四十九일 동안 하루에 짚신 한 켤레와 종이등 한 개씩을 만들라. 그 신을 천하 사람에게 신게 하고 그 등으로 천하 사람의 어둠을 밝히리라”고 하셨다.
말점도(末店島)는 섬 둘레가 3km에 불과한 작은 섬으로 고군산군도의 끝에 위치하고 예전에는 ‘끝도’ 또는 ‘끝점’이라고도 불렀다. 마을 위에는 이 섬을 개척한 ‘심판서(沈判書)’를 모시는 영신당(靈神堂)이 있는데 이곳에서 지냈던 당산제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 말도로 귀향 온 선비가 조정에서 혐의가 풀려 다시 돌아오라는 통보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배를 타고 나가려고 하면 풍랑이 일어 되돌아오기를 10여 차례 했다고 한다. 어느 날 꿈에 어떤 노인(심판서)이 나타나 자신이 가지고 있던 단검을 모시고 사당을 지으라는 것이었다. 그의 말대로 사당을 지어 단검을 모시고 제를 올리니 풍랑이 일지 않고 무사히 육지로 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말도에는 마을에서 가장 청렴한 사람을 뽑아 영신당을 관리하고 제사용 돼지를 새끼 때부터 손수 기르게 했다고 한다. 일 년에 두 번 동짓날과 봄에 200근이 나가는 돼지를 잡아 당산제를 지냈다고 한다.
① 말도 등대
말도 등대 (2009.11.09 촬영)
주소 : 군산시 옥도면 말도리
② 말도 등대에서 본 섬 전경1
말도 등대에서 본 섬 전경1 (2009.11.09 촬영)
주소 : 군산시 옥도면 말도리
③ 말도 등대에서 본 섬 전경2
말도 등대에서 본 섬 전경2 (2009.11.09 촬영)
주소 : 군산시 옥도면 말도리
④ 말도 천년송
말도 천년송 (2009.11.09 촬영)
주소 : 군산시 옥도면 말도리
⑤ 해변가 도로에서 본 습곡단층
해변가 도로에서 본 습곡단층 (2009.11.09 촬영)
주소 : 군산시 옥도면 말도리
내용 : 이 습곡단층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습곡지형으로 중생대 쥐라기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습곡은 원래 얕은 바다에 쌓여서 이루어진 퇴적암이 지각운동으로 융기하면서 압력을 받아 파동상으로 주름이 생기게 된 것이다.
⑥ 말도 마을 전경
말도 마을 전경(2009.11.09 촬영)
주소 : 군산시 옥도면 말도리
⑦ 영신당(靈神堂)
영신당(靈神堂) (출처: 『옥구지역의 문화유적』 군산대학교박물관, 1985년경 촬영)
주소 : 군산시 옥도면 말도리
내용 : 영신당은 이 섬을 개척한‘심판서(沈判書)’를 추모하며, 마을의 액운을 몰아내고 풍어를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냈던 곳이다. 건물은 2005년경 모 교회 목사가 부셔 버려 지금은 터에 잔해만 남아있고 당산제의 전통은 끊긴 상태이다.‘고군산 말도 영신당 중수 상량문’을 보면 1907(丁未)년 4월에 중수 상량한 것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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