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님2013년 종단 역사 사진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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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2.01 조회 2,876 댓글 0본문
상제님(上帝任)의 발자취가 가장 많은 곳인 전북을 중심으로
『전경(典經)』에 나온 김제(금산면 청도리, 만경읍 만경리, 백구면 반월리, 봉남면 내광리)와
부안 지역에서의 상제님과 종도들의 행적지를 담은 사진들을 전시하였습니다.
◎ 김제2 지역 약도
* 동곡마을
동곡(銅谷)은 1495년경 안동 김씨 일가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상제님께서는 1902년 제비창골 안동 김씨 재실에 사는 김형렬(金亨烈) 종도의 집을 왕래하시다가 1903년 김형렬 종도가 동곡으로 이사 오게 되면서 1909년 화천하시는 해까지 동곡에 머무시면서 많은 공사를 보셨다.
동쪽의 제비산(帝妃山)과 서쪽의 구성산(九成山)사이에 있는 동곡은 마을이 형성될 당시에 그릇골 혹은 도기촌(陶器村)이라 불렀다. 이 명칭들은 그릇을 굽는 가마가 있던 곳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동곡(銅谷)이라는 한자 지명은 그릇골의 그릇을 한자로 적는 과정에서 그릇을 ‘구릿(구리)’으로 하다가 구리 동(銅)자를 써 ‘동곡(銅谷)’이라고 한데서 유래한다.
* 동곡마을 - 상제님과 관련된 곳 (지도출처: 다음지도)
1. 동곡마을을 둘러 싼 구성산의 수리개봉과 제비산의 제비봉 (2013.05.22 촬영)
주소: 전북 전주군 우림면 동곡리 (現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동곡마을, 금산면 모악7길)
참고: 『전경』 권지 1장 23절(수리개봉, 제비봉), 행록 4장 13절(제비산).
내용: 상제님께서 김형렬(金亨烈) 종도의 집에서 강감찬(姜邯贊)의 벼락 칼을 시험 하실 때, 수리개봉과 제비봉에 번갈아 번개가 일어나게 하셨다.
2. 제비산에서 본 동곡마을 (2013.05.22 촬영)
주소: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동곡마을 (現 금산면 모악7길)
참고: 『전경』 공사 2장 7절 외 38개의 구절이 있음.
내용: 상제님께서 종도들과 함께 천지공사를 보시면서 여러 날을 머무르시다가 화천하신 곳으로 동곡약방이 있다. 그리고 안동김씨 집성촌으로 김형렬(金亨烈) 종도, 김갑칠(金甲七) 종도, 김준상(金俊相) 종도 등이 이곳에서 살았다.
3. 동곡약방 배치도
주소: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동곡마을 (現 금산면 모악7길)
참고: 『전경』 공사 2장 7절 외에 28개의 구절이 있다.
내용: 상제님께서 김준상 종도의 집에 동곡약방을 설치하신 후 천지공사를 보시면서 여러 날을 머무르시다가 화천하셨다. (현재 동곡약방 규모와 만유사 일부분의 규모에 옛날에는 김준상 종도, 김갑칠 종도, 김동식 집, 용화교 교주 서백일 집인 4채의 집이 있었다고 한다.)
4. 동곡약방 대문 (2003.10.22 촬영)
주소: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동곡마을 (現 금산면 모악7길)
5. 동곡약방 본채 (2003.10.22 촬영)
주소: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동곡마을 (現 금산면 모악7길)
6. 동곡약방 방2 실내 모습 (2003.10.22 촬영)
주소: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동곡마을 (現 금산면 모악7길)
7. 동곡약방 기둥에 걸린 상제님의 친필
주소: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동곡마을 (現 금산면 모악7길)
내용: 『전경』에 실린 상제님 친필
8. 동곡약방 우물 (2003.10.22 촬영)
주소: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동곡마을 (現 금산면 모악7길)
참고: 『전경』 행록 5장 35절, 공사 3장 12절.
내용: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보실 때 종도 최덕겸(崔德兼) 을 시켜 종이에‘용(龍)’자를 써서 약방 우물에 넣게 하셨으며, 상제님께서 화천하시기 전 수박에 소주를 넣어 우물에 담구게 하셨다.
9. 동곡약방 천계탑 (2003.1.22 촬영)
주소: 전주군 우림면 동곡리 (現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동곡마을, 금산면 모악7길)
내용: 상제님께서 화천하신 후 동곡약방에 지어진 것으로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10. 오동정(梧桐亭) (2013.05.22 촬영)
주소: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하운동 서쪽에 있는 마을 (現 금산면 우림로)
참고: 『전경』 행록 1장 27절, 행록 1장 28절.
내용: 전에 큰 오동나무가 있었다고 하여 오동정 마을로 유래되었으며, 신약전서를 가지고 있었던 기독교인 김경안(金京安)이 살았던 곳이다.
11. 하운동(夏雲洞) (2013.05.22 촬영)
주소: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하운동 (現 금산면 청도길)
참고: 『전경』 행록 1장 29절, 교운 1장 3절, 교운 1장 7절, 권지 1장 9절, 권지 1장 15절, 제생 4절.
내용: 하운동은 높은 산자락 아래 깊숙이 자리하고 있어서 바람이 잘 통하지 않아 여름처럼 무더울 뿐만 아니라, 안개 같은 구름이 골짜기에서 일어나 마을을 감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02년 상제님께서는 하운동에 살고 있던 김형렬 종도와 자주 내왕하셨다고 한다.
12. 김형렬의 누이동생 김성녀가 살던 곳 (2013.05.22 촬영)
주소: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327 (現 금산면 청도2길 32-2)
참고: 『전경』 행록 1장 29절.
내용: 김형렬 종도의 누이동생 김성녀(金姓女)가 이환구(李桓九) 종도와 결혼하여 하운동에서 살았던 곳이다. 김성녀가 49일 동안 떡을 쪄서 상제님의 공사를 받들던 곳으로 현재는 폐가로 남아 있다.
13. 하운동 안동김씨 재실 (2010.10.01 촬영)
주소: 전북 전주군 우림면 하운동 제비창골 (現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370, 금산면 청도1길 108-55)
참고: 『전경』 교운 1장 3절, 교운 1장 7절.
내용: 김형렬 종도는 하운동에 살 때 안동김씨 재실 옆 건물에서 지내며 상제님을 모셨다.
14. 안내성 종도 영정이 모셔진 백운동 (2012.04.19 촬영)
주소: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산55-1 (現 금산면 청도4길 126-14)
내용: 백운동(白雲洞)이라는 명칭은 이 마을이 높은 산의 기슭에 자리하고 있어 항상 흰 구름에 둘러싸여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안내성(安乃成) 종도가 이 마을에 정착할 때 지은 것이라 한다. 안내성 종도는 상제님을 모실 당시 정해진 거처가 없었고, 상제님 화천하신 후 백운동에 와서 살았다. 그의 아들 집 옆에 안내성 종도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15. 청도(淸道) 마을 (2013.05.22 촬영)
주소: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청도마을 (現 금산면 우림로)
참고: 『전경』 행록 5장 20절, 공사 2장 6절, 권지 1장 22절, 제생 3절.
내용: 『전경』에는 청도마을을 청도원(淸道院)이라고 하였는데, 청도원은 금산면 청도리 청도마을에 있던 옛 역원(驛院: 역로에 국가가 경영하던 여관)으로 김제 원평에서 전주로 넘어가던 길목에 위치하였다.
16. 청도 김송환(金松煥) 집이 있던 곳 (2013.05.22 촬영)
주소: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82-2
참고: 『전경』 행록 5장 20절, 제생 3절.
내용: 현재 귀신사(歸信寺) 입구에 위치한 주차장이 옛날 김송환 종도가 살았던 집이라고 한다. 상제님께서 동곡 마을로 가시기 전에 김송환 종도의 집에서 머무시곤 하셨다.
17. 청도 류찬명(柳贊明) 종도 집 (2013.05.22 촬영)
주소: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125 (現 금산면 우림로 285-18번지)
참고: 『전경』 공사 2장 6절.
내용: 상제님께서 청주(淸州) 만동묘(萬東廟)에 가서 청국 공사를 하려 하셨으나 행하기 어려워 대신 청도원(淸道院) 류찬명 종도의 집에서 공사를 하셨다. 근처에 살던 김송환 종도가 그 시종을 들었다고 한다.
18. 학선암(學仙庵) (2010.10.06 촬영)
주소: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747 (현 금산면 구성3길 522)
참고: 『전경』 행록 1장 21절, 권지 2장 7절.
내용: 학선암은 구성산 남쪽의 중턱에 위치한 암자이다. 금산사의 말사(末寺)로 통일신라 말기에 함월(含月)스님이 창건했다는 설과 고려 초기인 988년(성종7)에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예부터 학(學)을 사용하여 학선암(學仙庵)이라 부르다가 1980년 도웅(道雄)스님이 학(鶴)으로 변경하여 학선암(鶴仙庵)으로 전해오고 있다. 상제님께서 단오절에 김자현을 데리고 학선암에 오시어 권능을 보여주셨다.
19. 만경(萬頃) 삼거리(三巨里) 주막 터 (2013.05.22 촬영)
주소: 전북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
참고: 『전경』 행록 5장 6절.
내용: 1909년 2월 초에 상제님께서 공사를 보시기 위해 잠시 쉬고 가신 곳이다. 양쪽에 주막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터만 남아 있고 상제님께서 머무신 곳이 양쪽 중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20. 만경(萬頃) 들판 (2013.06.10 촬영)
주소: 전북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
참고: 『전경』 공사 1장 28절.
내용: 김제는 홍수와 가뭄을 이겨내기 위해 보(洑)나 저수지를 쌓아서 물을 관리하였다. 만경강 하류에 형성된 만경 평야 들판은 한국의 주요 곡창지대를 이루고 있다.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오주(五呪)를 수련케 하셨을 때 상제님께서 백지에 저수지와 물도랑의 도면을 그려 불사르시면서 “이 곳이 운산(雲山)이라. 운암강(雲岩江) 물은 김제 만경(金提萬頃) 들판으로 돌려도 하류에서는 원망이 없을 것이니 이 물줄기는 대한불갈(大旱不渴)이라. 능히 하늘을 겨루리라.”하시며 전북(全北) 칠읍(七邑)에 흉년을 없애겠다고 하셨다.
21. 반월리(半月里) (2013.05.22 촬영)
주소: 전북 김제시 백구면 반월리 (現 백구면 반월길)
참고: 『전경』 권지 1장 14절.
내용: 백구면의 소재지가 되는 마을이다. 원래 이 지역은 쥐의 모습과 유사하였으나 사람들이 넓은 평야가 펼쳐진 이곳에서 풍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란 희망으로 반월산(半月山) 주위에 집을 짓고 모여 살다 보니 마을의 형태가 반달 모습이라‘반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 마을에 상제님 재세시에 머무신 종도 김준희(金駿熙)의 집이 있었다.
22. 내주동(內住洞, 내주평) (2013.05.22 촬영)
주소: 전북 김제시 금구군 초처면 내주동 (現 전북 김제시 봉남면 내광리, 봉남면 내광길)
참고: 『전경』행록 1장 20절, 행록 2장 2절.
내용: 마을 앞으로는 내광들이라 부르는 너른 평야가 있어 비교적 부유한 마을로, 내광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라 하여 내주라 불리게 되었다. 또한, 옛날에는 마을 근처에 줄(또는 줄풀, 연못이나 냇가에 나는 다년생 풀)이 많아 주두리라 불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내광리로 고쳐 불렀다.
23. 내주동(內住洞) 정남기(鄭南基)의 집 (2013.05.22 촬영)
주소: 전북 김제시 금구군 초처면 내주동 (現 전북 김제시 봉남면 내광리 186, 봉남면 내광2길 67-24)
참고: 『전경』 행록 1장 20절, 행록 2장 1절, 행록 5장 6절.
내용: 1894년, 1897년에 상제님의 처남인 정남기 집에 글방을 차려 아우 영학(永學)과 형렬(亨烈)의 아들 찬문(贊文), 그리고 이웃의 서동들을 모아서 글을 가르치셨다.
24. 수각리(水閣里) (2013.05.22 촬영)
주소: 전북 김제군 백산면 하리 수각리 (現 전북 김제시 하동 수각마을, 하동길)
참고: 『전경』 행록 5장 6절.
내용: 상제께서 천지공사를 하실 때 수각리에 사는 임상옥(林相玉)과 김문거(金文巨)의 집에 들리신 적이 있다.
◎ 부안(扶安) 지역 『전경』과 관련된 곳 약도
1. 부안 변산(邊山) 위성사진
주소: 전라북도 부안군.
참고: 『전경』 행록 1장 2절, 공사 2장 27절, 3장 1절, 3장 6절.
내용: 변산은 예로부터 능가산(楞伽山), 영주산(瀛洲山), 봉래산(蓬萊山)이라 불렸고 호남의 5대 명산 중 하나로 꼽혀왔다. 제일 높은 곳은 변산면과 진서면 경계에 있는 곳으로 높이 510m이다. 변산은 서해와 인접해 있고 호남정맥 줄기에서 떨어져 독립된 산군을 형성하고 있으며, 1988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내변산에는 높이 20m의 직소폭포(直沼瀑布), 높이 30m와 40m의 2개 바위로 된 울금바위, 울금바위를 중심으로 뻗은 우금산성(禹金山城) 외에 가마소, 봉래구곡, 분옥담, 선녀당, 마소, 용소(龍沼), 옥수담(玉水潭) 등 명소가 있다. 또 내소사(來蘇寺), 개암사(開岩寺) 등의 사찰이 있으며, 서해를 붉게 물들이는‘월명낙조’로 이름난 낙조대(落照臺)의 월명암(月明庵)도 유명하다. 지명은 삼한의 변한(弁韓)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변산을 혹 변산(卞山)이라고도 했는데, 말이 돌아다니다가 변(邊)으로 되었다 한다.
2. 청림(靑林)마을에서 본 의상봉과 부사의방 (2012.04.22 촬영)
주소: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산1-62번지.
내용: 부사의방(不思議房)은 의상봉(義湘峰, 508.6m) 동쪽 기암절벽 중간에 있었던 암자이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험준한 ‘벼랑수행’ 장소였다. 원효, 의상, 진표, 부설거사, 진묵 등 고승들이 모두 이곳에서 수행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이 방에 대해 ‘신라의 승려 진표율사가 우거하던 곳인데 백 척 높이의 사다리가 있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면 방장에 이를 수가 있는데 그 아래는 측량할 수 없는 골짜기이다. 쇠줄로 그 집을 매어 바위에 못질을 하였는데 세상에서는 바다의 용이 한 짓이라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김제 만경에서 태어난 진표율사는 12살에 출가하였으며, 27살 때 부사의방으로 가서 3년 동안 고행 참회하였다. 그 결과 지장보살로부터 부처님의 계행(戒行)을 받아 바라고 바랐던 미륵보살을 만나고 점찰경(占察經)과 간자(簡子) 그리고 도솔천에 다시 태어날 것이라는 수기(授記)를 받고 이후 금산사를 중창했다.
3. 능가산(楞伽山) 개암사(開巖寺) (2007.04.22 촬영)
주소: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714번지.
참고: 『전경』 공사 2장 27절.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이다. 개암사의 사찰 유래를 살펴보면 『개암사지(開岩寺誌)』에 현재의 개암사 터는 변한의 왕궁터라고 한다. 기원전 282년에 변한의 문왕은 진한과 마한의 난을 피하여 이곳에 성을 쌓았다고 한다. 변한의 문왕은 우(禹)와 진(陳) 두 장수를 보내어 이 일을 감독케 하고 좌우의 계곡에 왕궁과 전각을 짓게 하고 동(東)은 묘암(妙岩), 서(西)는 개암(開岩)이라고 불렀다 한다. 지금의 개암사는 634년(백제 무왕 35년)에 묘련왕사가 변한의 궁전을 절로 고쳐 묘암의 궁전을 묘암사라 하고 개암의 궁전을 개암사라고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40년 후인 통일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이곳에 들어와 개암사를 다시 지었다고 전한다. 개암사는 상제님께서 성냥 세 개비를 청수 한 그릇에 넣어 풍우와 홍수를 직접 보여 주신 곳으로, 청수 한 동이에 성냥 한 갑을 넣으면 천지가 수국(水國)이 될지니 개벽이란 쉬운 일이나 만일 이것을 때가 이르기 전에 쓰면 재해만 끼칠 뿐이니 믿고 기다라고 하셨던 곳이다.
4. 우금암(禹金巖, 일명 울금바위) (2012.03.09 촬영)
주소: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우금산 정상부 바위.
참고: 『전경』 공사 2잘 27절.
내용: 우금암은 개암사의 뒷편 우금산 정상에 솟아 있다. 우금암에서 개암재 능선을 따라 가면 삼국시대 석축산성으로 알려져 있는 우금산성(禹金山城, 우진고성)이 있다. 『동국이상국집』에는 “신라 장군 위금(位金)이 이 바위에 와서 석성을 쌓아 적을 막았는데, 그것이 남아 있어 위금암이라 부른다”라고 기록하였고, 『여지고』(부안)에는 “우진고성(禹陳古城)은 일명 우금성(禹金城)이라고도 부르는데, 세간에 전하기를 삼한 때에 우(禹)ㆍ김(金) 두 장수가 성(城)을 쌓고 군사를 주둔했던 곳이라고 한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바위 아래로는 복신(福信)장군의 백제 부흥군이 마지막까지 항전했던 복신굴과 원효대사가 백제유민들의 아픔을 달래면서 수도했던 원효방(원효굴), 그리고 옷감을 지었다는 베틀굴이 있다. 특히 원효방에는 원래 물이 없었는데 원효가 수도하면서부터 샘이 솟았다 한다.
5. 성근리(成根里) 위성사진(이환구 종도 집터, 마을 표지석)
주소: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하장리 성근마을.
참고: 『전경』 제생 16절.
내용: 성근리는 지형이 나무를 거꾸로 세워 놓은 것 같으므로 뿌리가 있어야 한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변에는 흥덕천과 저수지(고마제)가 있고, 자연 마을로 동신리, 반월리, 해평리 등이 있다. 자연 마을로써 현재 동진면 하장리(下長里)에 속하며, 하장리는 본래 조선시대 부안군 상동면(上東面) 지역으로 장등 아래쪽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주변의 각 일부 마을이 병합하여 하장리에 편입되었다. 1905년 상제님께서 이환구의 집에서 여러 날을 머물고 계셨을 때, 이환구의 천거로 처음 신원일을 만났다. 한편 이환구는 김형렬의 여동생 김성녀와 결혼하면서 하운동에 잠시 살다가 다시 여기서 살았다.
6. 이치복 종도가 살았던 부안군 신기(新基)마을
참고: 『전경』 행록 5장 8절, 15절, 21절, 권지 1장 16절, 예시 53절, 54절, 57절.
내용: 언독리(堰毒里)에는 청서, 대포, 대교, 언독, 신기, 신지마을이 있으며, 신기마을은 이치복(李致福, 字는 致和) 종도가 태어나고 살았던 곳이다. 그는 상제님을 따르면서 여러 공사에 참여했으며, 상제님 화천후 제화교(濟化敎)를 만들어 활동을 했다. 이후 그는 아들 이중학이 처음 터를 잡음으로서 마을이 형성된 청호리 원중마을로 이사하여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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