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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나의 말이 곧 약(藥)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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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1.05 조회4,5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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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대순종교문화연구소

  

  1906[丙午]년 섣달, 함열에서 동곡으로 오신 상제님께서는 김형렬(金亨烈)의 집에 머무셨다. 그때 갑자기 형렬이 다리가 아프더니 오한(惡寒)이 들고 두통이 극심하여 음식을 먹지 못하고 눕게 되었다. 상제님께서 형렬에게 64괘를 암송하게 하셨더니, 즉시 두통이 그치고 오한도 사라지며 다리 아픈 것도 말끔히 나았다. 형렬이 신기하게 여겨 상제님께 어떻게 된 일인지 여쭈니, 상제님께서는 “팔괘 가운데 오행이 감추어져 있으니 오행의 기운을 응하게 한 것이 곧 약이 되었느니라.”고 알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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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서 새해[1907(丁未)년]를 맞으신 상제님께서는 계속하여 형렬에게 가르침을 내리셨다. “나의 말이 곧 약(藥)이라. 말로써 사람의 마음을 위안하기도 하며, 말로써 사람의 마음을 거슬리게도 하며, 말로써 병든 자를 일으키기도 하며, 말로써 죄에 걸린 자를 풀어주기도 하니, 이것은 나의 말이 곧 약인 까닭이니라. ‘충언(忠言)이 역이(逆耳)로되 이어행(利於行)’이라.(좋은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동에는 이로움) 나는 허망한 말을 아니 하나니 내 말을 믿으라.” 상제님의 말씀을 의심 없이 믿고 그대로 따랐기에 순식간에 급병을 고칠 수 있었던 형렬은 상제님의 다짐을 더욱 마음에 깊이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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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해 정월, 김광찬(金光贊)과 신원일(辛元一)이 상제님을 모시고 있을 때, 상제님께서는 “귀신은 진리에 지극하니 귀신과 함께 천지공사를 판단하노라.”고 하시며, 시천주와 경주용담보은신(慶州龍潭報恩神), 전주동곡해원신이라 쓰신 글을 벽에 붙이시는 일이 있었다. 

  이 공사의 내용에 대해 더 이상 전해지는 것이 없어 그 의미를 짐작하기는 어렵다. 다만 경주 용담(龍潭)이 최제우가 상제님으로부터 제세대도의 계시를 받은 곳이라는 점, 시천주 역시 최제우가 상제님께 받은 주문이라는 점01으로 인해 최제우와의 연관성을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또 이 글귀는 현재 입도치성 때 사용되는 녹명지(錄名紙)와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기는 하지만 내용 상 다른 점이 발견되고 있다. 여기에는 어떤 심오한 천지공사의 뜻이 들어있는 것으로 여겨지나 더 이상의 이해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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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쌀했던 날씨가 물러가고 화창한 봄이 되었다. 상제님의 성예(聲譽)02는 더욱 사방으로 퍼져갔고, 학동(鶴洞)03에 사는 문치도(文致道)도 그 소문을 듣게 되었다. 상제님께서 바로 건너 마을 불가지(佛可止)04 김성국(金成國)의 집에 계시다는 것을 안 치도는 상제님을 뵙고자 길을 나섰다. 치도는 이웃마을 이성동(伊成洞)05에 사는 송대유(宋大有)와 동행하려고 그의 집에 먼저 들렀다. 마침 대유의 집에는 손님이 와 있어서 대유는 상제님을 뵈러 갈 형편이 되지 못했다. 대신 대유는 치도에게 사촌동생이 폐병으로 아프니 자기 대신 상제님께 데리고 가서 치료를 간청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대유는 사촌동생에게 상제님께 술과 음식을 대접하라고 돈 두 냥06을 빌려 주면서 이자 없이 갚을 것을 일렀다. 그러나 사촌동생은 대유에게 한 냥만 있으면 충분히 대접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한 냥은 그냥 돌려주고 치도와 함께 상제님을 뵈러 갔다.

  사촌동생은 치도와 같이 상제님께 배알(拜謁)하고 자신에게 폐병이 있음을 아뢰었다. 듣고만 계시던 상제님께서 “인색한 자가 어찌 병을 고치리오.”라는 말씀을 던지시니, 사촌동생과 치도는 이미 상제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심을 알고 크게 놀랐다. 사촌동생은 스스로 부끄러워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상제님의 신성하심에 감복한 치도는 사촌동생에게 넘겨받은 한 냥을 성국에게 주면서 상제님께 대신 대접을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성국이 상제님께 술 한 상을 마련하여 올리자 상제님께서 “어찌된 음식이냐?” 물으시니, 성국이 치도가 올린 정성임을 아뢰었다. 상제님께서 “그 돈이 오늘 저녁에 많이 늘어날 것이었는데 부질없는 짓이라.” 하시니, 이를 전해들은 치도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대유의 사촌동생이 상제님께 치료를 빌지 못한 채 스스로 돌아갔으므로, 치도는 사촌동생에게 전해받은 돈 한 냥으로 상제님께 대접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 여겨 그 돈을 그날 저녁 노름 밑천으로 쓰려고 작정했던 터였다. 그러나 상제님께서 보통 사람이 아니심을 알고는 마음을 바꾸어 노름 대신 그 돈으로 상제님께 공양을 올려 드렸던 것이다. 치도가 당황하여 그저 물러가기만 여쭈니, 상제님께서 “오늘 저녁부터 병자에게 보리밥을 먹이라.”는 말씀을 내리셨다. 치도는 곧 대유의 사촌동생에게 달려가 상제님의 말씀을 전했고, 사촌동생은 그날 저녁부터 보리밥을 먹더니 곧 폐병에서 완쾌하였다. 이 소문이 퍼지자 상제님의 성예는 더욱더 퍼져나갔다. 

    <대순회보> 1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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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최제우가 상제님으로부터 계시를 받는 상황에 대해서는 『대순회보』 70호, pp. 10∼15 참고.

02 세상에 떨치는 이름과 칭송 받는 명예.

03 옛날에 황새가 많이 살았다고 해서 황새골이라고 불렸다. 現 전북 완주군 이성면 이성리 황새골 마을. 

04 現 전북 완주군 이서면 이성리 불가절 마을.

05 現 전북 완주군 이서면 이성리 원이성 마을.

06 당시의 2냥은 지금의 4만 원 정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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