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님차경석이 상제님을 배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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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1.07 조회4,594회 댓글0건본문
글 대순종교문화연구소
1907[丁未]년 5월, 정읍(井邑) 사람 차경석(車京石, 1880∼1936)이 처음으로 상제님을 배알하게 되었다. 경석의 부친은 차치구(車致久)로서 갑오농민전쟁 때는 농민군 내 지도자급으로 활약하다가 잡혀 죽었던 인물이었다. 경석은 부친의 뒤를 이어 동학운동을 하다가 22세에는 일진회의 동학운동에 참여하여 전라남북도 순회관(巡廻官)의 직책까지 맡았다. 그러다가 손병희와 뜻이 맞지 않자 그와 결별하고 새로운 삶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01
그 무렵 경석의 아우 윤경(輪京)이 주판례란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주판례의 부친 주종호는 지주를 대신하여 소작권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경석 일가가 찢어지게 가난한 것을 알고는 시집보낸 딸이 불쌍하여 다른 사람이 소작하던 논을 사위 윤경에게 넘겨주었다. 이로 인해 시비가 일어 송사(訟事)가 났으니, 이 송사는 소작 관리권을 가진 주종호가 자기의 권한으로 논을 사위에게 소작하도록 준 상황이었으므로 경석 일가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경석은 전주에 송사하러 가는 도중, 점심을 먹으려고 용암리(龍岩里) 주막에 들렀다. 바로 이때 상제님께서 김자현(金自賢) 등 몇 종도들을 데리고 그 주막에 이르셨다. 경석은 상제님께서 비범한 분이심을 알아차리고 정중히 예를 갖추어 “무슨 업을 행하시나이까?” 하고 여쭈었다. 상제님께서는 웃으시며 “의술을 행하노라.”는 말씀과 함께 술을 드셨고, 경석에게 닭국 한 그릇을 권해주셨다. 경석이 고맙게 닭국을 받았는데, 그 그릇에 벌이 한 마리 빠져죽는 것이 아닌가! 경석이 먹던 숟가락을 놓고 상서롭지 못한 일이 아닌가 걱정하니, 상제님께서는 “벌은 규모 있는 벌레니라.”고 일러주셨다. 경석은 감복하여 상제님께 송사 서류를 꺼내 보여드리고는 가르침을 구했다. 상제님께서 “일의 곡직(曲直: 시시비비를 따지는 일)은 여하 간에 원래 대인(大人)의 일이 아니라. 남자가 마땅히 활인지기(活人之氣: 사람을 살리는 기운)를 찾을지언정, 어찌 살기(殺氣)를 띠리오!”라는 말씀을 던지시니, 경석은 깨닫고 소송 서류를 불살라버렸다. 그리고 상제님께 스승이 되어주시기를 간청하며 어디에 머물고 계신지 여쭈었다. 하지만 상제님께서는 “나는 동역객 서역객 천지 무가객(東亦客西亦客天地無家客: 동쪽에서도 손님이고 서쪽에서도 손님이며 천지에 집이 없는 손님)이다.”는 말씀만 하실 뿐, 응낙을 하지 않으셨다.
경석은 지금 상제님과 헤어지면 다시는 배알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상제님을 좇아 상제님께서 묵으시는 숙소까지 따라갔다. 당시 상제님께서는 용암리에 있는 김사유(金士有)의 물방앗간 집02 좁은 방에 머물고 계시던 중이셨다. 경석은 상제님께서 식사하시는 것과 주무시는 것이 너무 소략 한데 당황했고, 그 힘든 생활에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경석은 그곳에서 열흘 간 묵으면서 상제님께 정읍으로 가시기를 간청하였다. 그러나 상제님께서는 응하지 않으시고 경석을 쫓아내려고 하셨다. 그래도 경석이 끝끝내 떠나지 않으니 상제님께서는 “그럼 네가 나를 꼭 따르려거든 모든 일을 전폐하고 내가 하라는 일에만 전력하여야 할지니, 너의 집에 가서 모든 일을 정리하고 유월 초하루에 다시 이곳으로 오라. 그러면 함께 가리라.”고 일러주셨다.
경석은 곧 집으로 돌아가 집안 일을 대략 정리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상제님께 정읍으로 가시기를 거듭 청하니, 상제님께서는 사흘이 지나서야 겨우 허락하시며 “내가 목이 잠기는 깊은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 헤엄쳐서 겨우 발목이 닿는 물에 이르렀는데 이제 다시 깊은 물로 끌어들이려 하는도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정태문(鄭泰文)이 상제님과 같은 방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토질(土疾)로 앓고 있던 태문은 상제님께 자신의 병을 고쳐주시기를 간청하였다. 토질은 폐흡충(肺吸蟲=폐디스토마)에 감염되어 생기는 병으로 사람이 감염되면 기침과 혈담이 일어나기에, 태문은 매우 고통 받고 있던 터였다. 상제님께서는 허락만 하실 뿐 고쳐주지 않으시다가, 하루는 태문에게 “네가 병을 고치려 하느뇨?” 하고 물으시니, 태문은 소원이라고 아뢰었다. 상제님께서는 “내가 이틀 후에 정읍으로 가리니 이제 고쳐주리라.” 말씀하시고 글을 써 주시며 “이 글을 네 침실의 베개 위에 두고 자라. 그리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방문을 열라. 그러면 개가 방문을 향하여 두 앞발을 모으고 혈담을 토하리라. 곧 네 병을 개에게 옮겼느니라.”고 이르셨다. 태문은 상제님의 말씀을 좇아 시행하였더니 과연 다음 날 아침 자신은 병이 낫고 개가 혈담을 토하는 것이었다.
감복한 태문이 상제님을 술집에 모시고 가서 술을 올리니, 태문에게 술값이 없음을 아신 상제님께서는 “술을 마시고 술값을 바로 갚지 않으면 먹지 아니함만 못하리라.”고 하셨다. 태문이 “내일 틀림없이 갚으려 하나이다.” 여쭈니, 그제야 상제님께서는 술을 드셨는데 술값이 모두 일곱 냥이었다. 다음 날 상제님께서는 정읍으로 떠나셨고, 태문은 술값을 천천히 갚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랬더니 별안간 복통이 크게 일어났다. 놀란 태문은 뉘우치고 바로 술값을 갚아야겠다고 마음을 고치니 복통이 금세 가라앉았다. 태문이 당장 술값을 갚았음을 물론이었다.
<대순회보> 1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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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차경석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대순회보』 68호, 17∼29쪽 참고.
02 現 전북 김제시 금산면 쌍룡리 금평 저수지 아래 쪽. 자세한 위치는 『대순회보』 76호, 35쪽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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