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님김형렬의 여동생이 들인 49일간의 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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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0.25 조회4,897회 댓글0건본문
글 대순종교문화연구소
1902[壬寅]년 어느 날, 상제님께서 김형렬과 함께 금산사 부근의 어느 마을에 계셨을 때의 일이다. 상제님께서는 형렬에게 기독교의 『신약전서(新約全書)』 한 권을 구해오게 하셨는데, 마침 그 부근의 오동정(梧桐亭)01에 살고 있던 김경안(金京安)이라는 사람이 그 책을 가지고 있어서 형렬이 빌려다 상제님께 올려드렸다. 그러자 상제님께서는 『신약전서』를 불살라 버리시는 게 아닌가!
얼마 뒤 형렬이 상제님을 모시고 오동정에서 음식을 올리고 있을 때 김경안이 찾아와서 지난번에 빌려준 『신약전서』를 돌려달라고 말하였다. 이미 불타 없어져버린 책이라 형렬이 우물쭈물하면서 딱한 표정만 짓고 앉아 있었는데, 마침 한 붓 장수가 이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상제님께서 그를 불러들이시고 음식을 권한 다음 그 붓 상자를 열어보라고 하시니 거기에는 『신약전서』 한 권이 들어있는 것이었다. 다시 상제님께서 “그대는 예수를 믿지 아니하니 이 책은 소용이 없을 터이므로 나에게 줄 수 없느냐?” 하시니, 붓 장수는 음식 대접을 잘 받은 터여서 기꺼이 상제님께 책을 올렸다. 상제님께서 그 책을 김경안에게 주시니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어리둥절하기만 하였다.02
상제님께서 종종 김형렬이 있는 하운동에 드나드시자, 상제님의 신성하심이 그 마을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때 그곳에는 이환구(李桓九, 1879~1952)가 김형렬의 여동생과 결혼하여 살고 있었다.03 상제님께서는 환구를 찾으시고, “그대의 아내가 49일 동안 정성을 들일 수 있는지 잘 상의하라.” 이르셨다. 환구는 상제님의 말씀을 듣고 아내와 상의하였는데, 그 아내도 상제님의 신성하심을 들은 바가 있었기에 정성을 들이기로 결심하였다. 상제님께서는 환구에게 그의 아내로부터 재차 다짐을 받게 하신 뒤 공사를 보시기 시작하셨다.
이로부터 환구의 아내는 날마다 머리를 빗고 목욕재계한 뒤에 떡을 한 시루씩 쪄서 상제님의 공사에 준비하기 시작했다. 처음 한동안은 성심껏 하였으나 여러 날이 지속되다 보니 그 아내는 심히 괴로워하며 불평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바로 그날 나무 한 짐을 다 땠건만 떡이 하나도 익지 않았기에 그 아내가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상제님께서는 환구를 불러 “그대 아내는 성심이 풀려서 떡이 익지 않아 매우 걱정하고 있으니 내 앞에 와서 사과하게 하라. 나는 용서하고자 하나 신명들이 듣지 아니하는도다.”고 분부를 내리셨다.
놀란 환구가 자기 아내에게 상제님의 가르치심을 전하니 그 아내가 깜짝 놀라 상제님께 가서 죄송함을 아뢰었다. 그리고 다시 부엌에 들어가 시루를 열어보니 떡이 잘 익어있었다. 환구의 아내는 다시 마음을 고쳐 잡고 한결같이 정성을 들여 49일을 마치니 상제님께서는 친히 부엌으로 들어가셔서 그 부인의 정성을 치하하셨다. 환구의 아내는 오히려 자신의 정성이 부족함을 송구히 여기니 상제님께서는 그 부인을 위로하시고 “그대의 성심이 신명에게 사무쳤으니 오색채운이 달을 끼고 있는 그 증거를 보라.”고 말씀하셨다. 실로 정성(精誠)이란 늘 끊임이 없이 조밀(調密)하고 틈과 쉼이 없이 오직 부족(不足)함을 두려워하는 마음04을 말하는 것임을 되새기게 해주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대순회보> 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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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現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하운동 서남쪽에 있는 마을. 전에 이 마을에 큰 오동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02 행록 1장 27절, 28절.
03 김형렬의 여동생과 이환구 사이에는 3남 4녀가 있었다. 그중 장녀 이대순(李大順)의 남편이 이선경(李善慶)인데, 『전경』 행록 1장 29절의 49일 정성 이야기는 김형렬 여동생의 맞사위 이선경의 구술에 의해 채록된 것으로 보인다. 이환구는 결혼하고 처갓집이 있는 하운동에서 살다가 얼마 후 자신의 고향인 부안군 성근리(現 전북 부안군 동진면 하장리 성근마을)로 갔다고 한다.
04 『대순진리회요람』,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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