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님김형렬이 진묵과 율곡 이야기를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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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0.25 조회4,834회 댓글0건본문
글 대순종교문화연구소
▲ 김형렬이 살았던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하운동에는 그의 선산과 재실(齋室)인 영사재(永思齋)가 있다. 1902년 김형렬은 이곳 혹은 이 주변에서 상제님을 모시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02[壬寅]년에 김형렬이 상제님을 모시고 있을 때의 일이다. 형렬은 상제님께 조선 중기의 고승(高僧) 진묵(震, 1562~1633)과 관련된 이야기를 아뢰었다.
“전주부(全州府)01에 진묵과 친한 아전이 있었는데 그는 무척 가난했습니다. 그 아전이 진묵에게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더니 진묵은 사옥소리(司獄小吏=獄吏)02가 되라고 일러주는 것입니다. 옥리는 아전보다 낮은 직책이었으므로 아전은 진묵의 말에 실망하였지만 얼마 후 옥리가 되었답니다. 마침 그때 전주부의 부자들이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진묵은 신통한 도술로 밤마다 북두칠성을 하나씩 그 빛을 가두어 7일 만에 북두칠성을 모두 숨겨버렸습니다. 이것을 보고 놀란 태사관(太史官)03이 이 변고가 하늘에서 재앙을 내렸기에 일어난 일임을 상고하자, 나라에서는 대사면 령을 내렸고 이에 전주부 감옥에 갇힌 부자들도 모두 출옥할 수 있었습니다. 그 부자들은 그간의 은혜에 보답코자 많은 재물을 옥리에게 주었고 결국 그 아전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형렬이 아뢴 이 일은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관변 기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지만, 전라도 지역에서는 설화로 구전되어 내려오고 있던 이야기였다.04 형렬의 말을 들으신 상제님께서는 “진실로 그러하였으리라. 내가 이를 본받아 한 달 동안 칠성을 숨겨서 세상 사람들의 발견을 시험하리라.” 하시고 그날 밤부터 한 달 동안 칠성을 다 숨기시니 세상에서 칠성을 발견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또 한 번은 형렬이 상제님께 “고대의 명인(名人)05은 지나가는 말로 사람을 가르치고 정확하게 일러주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고 여쭈면서 “율곡(栗谷)06이 이순신(李舜臣, 1545~1598)07에게는 두률천독(杜律千讀: 두보의 시를 천 번 읽음)을 이르고 이항복(李恒福, 1556~1618)08에게는 슬프지 않는 울음에 고춧가루를 싼 수건이 좋으리라고 일러주었을 뿐이고 임란에 쓰일 일을 이르지 아니하였습니다.”고 아뢰었다. 그의 말을 들으신 상제님께서는 “그러하리라. 그런 영재(英才)가 있으면 나도 가르치리라.”고 말씀하셨다.
조선 중기의 유명한 유학자이자 정치가인 율곡은 이순신보다 9살이 많았다. 율곡은 죽기 수개월 전에 정적들의 탄핵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인 파주와 처가가 있던 해주 석담에 머물고 있었는데, 이 무렵 이순신을 만났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순신은 낮은 벼슬자리를 전전하던 무명의 관리에 불과했지만, 율곡은 장차 그가 쳐들어 올 왜군을 막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인물임을 알고는 훗날 쓰일 방책으로 두보의 시를 천 번 읽을 것을 권유하였던 것이다. 안사(安史)의 난09을 직접 겪었던 시성(詩聖) 두보(杜甫, 712~770)는 전쟁의 참상과 백성들의 처절한 삶의 모습, 그리고 애국애민(愛國愛民)의 마음을 시를 통해 잘 표현해 두고 있었다. 율곡은 이순신으로 하여금 두보의 이러한 시를 읽게 하여 앞으로 이순신이 임진왜란 와중에 겪어야 할 엄청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강인한 정신력을 키우게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율곡은 이순신에게만 아니라 이항복에게도 임진왜란 때 쓰일 비책 하나를 일러주었는데, 그것은 울어야 하는데 눈물이 안 나올 때는 수건에 고춧가루를 싸서 눈을 문지르면 된다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방법이었다. 이 비책은 훗날 임진왜란이 터졌을 때 명나라에 구원군을 요청할 때 사용된다. 임진왜란 개전 초기 병조판서였던 이항복은 여러 신하들의 의견과는 달리 명나라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국난을 타개하기 어렵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적극적으로 신료들을 설득하여 명나라에 구원군을 요청하자는데 그 뜻을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항복은 명나라에 청병 사신으로 가게 된 정곤수(鄭壽, 1538~1602)를 불러 그에게 율곡의 비법을 전해주었다. 정곤수는 명나라 황제 앞에서 고춧가루로 싼 수건을 눈에 문질러 눈물이 펑펑 솟아나게 만들었고, 이를 본 명 황제는 나라를 걱정하는 그의 마음에 감동하여 결국 구원병을 보내주게 되었다.10
율곡과 이순신, 이항복 사이에 얽힌 일화는 대인(大人)들 사이에서 가르침이 어떻게 전해지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대순회보> 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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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지금의 전주는 조선 초기인 1403년 이후부터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될 때까지 ‘전주부(全州府)’라고 불렸다.
02 형옥(刑獄)에 관한 일을 맡은 하급 관리.
03 일식 등 천문이나 기상에 관한 일을 담당한 관리. 오늘날로 보면 기상청과 천문대의 직원에 해당한다.
04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구비문학대계』 6집 3책, 고려원, 1984, pp.488∼490 참고.
05 어떤 분야에서 기예나 재주가 뛰어나 그 명성(名聲)이 높은 사람.
06 이이(李珥, 1536~1584).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
07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
08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상(子常). 호는 백사(白沙).
09 중국 당(唐)나라 중기에 안녹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 등이 일으킨 반란(755∼763).
10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구비문학대계』 2집 5책, 한은문화사, 2002, p.123 / 『한국구비문학대계』 5집 1책, 한은문화사, 2002, pp.398∼400 / 『한국구비문학대계』 7집 13책, 한은문화사, 2002, pp.71∼72 / 임철호, 『임진록 연구』, 정음사, 1986, pp.76∼78 / 정명기, 『한국야담자료집』, 태학사, 2002, p.127 / 이광주, 「고대의 명인 율곡과 임란 일화」 『대순회보』 66호, pp.7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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