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님신배 화재와 백남신의 관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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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1.03 조회4,883회 댓글0건본문
글 대순종교문화연구소
1904[甲辰]년 2월, 상제님께서는 볼일이 계셔서 태인(泰仁) 신배(新培)01에 가셨다. 그런데 갑자기 동네에 불이 났고 불어오는 바람에 불길이 강해져 온 마을이 위험해졌다. 상제님께서는 마을 사람들이 쉽사리 불을 끌 수 없으리라 여기시고 “불을 피워 동리를 구하리라.” 하시면서 김형렬을 시켜 번져가는 불길을 마주보게 하면서 조그맣게 한 곳에 섶나무02를 쌓아 불을 피우게 하셨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동네를 집어삼킬 듯 맹렬하게 타오르던 불길이 갑자기 힘을 잃으며 꺼져버렸다.
이해 5월, 백남신(白南信, 1858∼1920)의 축재(蓄財)와 관련된 민원이 발생하여 조정으로부터 그를 체포하라는 공문이 전주부(全州府)03에 내려왔다. 원래 백남신은 가난한 지방 아전 출신인데다가 무과에 급제하였지만 벼슬도 그리 높지 않았다.04 그럼에도 그는 전라도의 거부(巨富)로 유명했는데, 그가 엄청난 재산을 단기간에 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궁내부 주사, 전주진위대 향관, 탁지부 감관 등의 직위를 겸직하면서 ‘외획(外劃)’을 이용했기 때문이었다.05
과거에는 지방 관리가 그 지방의 치안과 행정을 담당하면서 조세 징수까지 겸했다. ‘외획’이란 국가에서 지방 관리가 거둔 세금을 제3자에게 넘겨주라고 하는 명령을 말한다. 조선후기에 화폐로 널리 유통된 상평통보는 그 무게가 만만찮았으므로 지방관이 거둔 세금을 서울로 가져가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세금을 서울로 옮기는 방법으로 창안된 것이 외획이라는 것이었는데, 여기에는 여러 방법이 있었다. 그 중에는 상인 혹은 관리가 국가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여 국가에 지급하고 그 물품 대금을 지방관이 징수한 세금으로 받는 방법, 또 지방관이 세금을 거두고 그 세금으로 물건을 구입하여 서울로 가져가서 물건을 판 후 그 판매대금으로 세금액수에 맞추어 국가에 납입하는 방법이 있었는데,06 백남신이 이용한 외획이 바로 이 두 방법이었다.
1893년 무과에 급제하고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 진압군으로 참전하여 공을 세운 백남신은 1897년 8월, 궁내부(宮內府)07 주사(主事)에 임명된다. 그리하여 그는 궁궐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여 궁궐에 상납하고 그 대금을 전라도의 각 지방관들이 징수해놓은 세금으로 받게 되었다. 이것은 국가의 외획을 이용한 것으로, 1903년까지 이 일을 도맡은 백남신은 물품의 실제 구입가와 액면가 사이의 차이를 이용하여 상당한 이익을 챙겼다.
또 백남신은 1897년 12월에 전주진위대08의 향관(餉官)09으로 승진하여 전주진위대의 군량, 급여 지급 등을 담당했다. 그는 전라도 각 지역으로부터 군량 명목으로 식량을 사 들였기에 다른 상인들보다 먼저 또 훨씬 싼 값으로 쌀을 구매할 수 있었고, 이로부터도 많은 이익을 남겼다. 그런데 그는 궁궐에 바치는 물건 구매 업무도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때때로 전주진위대 병사들에게 줄 월급을 전용하여 궁궐 물건 구매에 쓰는 일이 잦았고, 이 때문에 군율에 따라 여러 번 ‘중근신(重勤愼)’이라는 처벌을 받기도 했다.
백남신은 향관으로서 직무 수행에 문제가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1900년에는 탁지부(度支部)10 감관(監官)11까지 겸임하게 되어 전북 전주·임파·부안의 둔전(屯田)12에서 생산되는 곡물과 그 세금을 중앙에 상납하는 일까지 맡았다. 백남신은 이 지역의 세금을 서울에 옮기는 과정에서, 현지에서 세금으로 물건을 사고 그 물건을 서울에 가져가 팔아서 세금 금액을 맞추어 내는 외획을 이용하여 역시 많은 이윤을 취하였다.
이렇게 백남신은 국가의 외획제도를 통해서 활발하게 부를 쌓고 있었다. 한편 당시 탁지부는 재정이 고갈되어 관료들의 월급을 지불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1901년부터 탁지부는 내장원에서 자금을 빌리게 되었고, 내장원은 1902년부터 삼남지방(三南地方=충청, 전라, 경상)의 토지세를 외획하여 상환금을 돌려받게 되었다. 백남신은 1902년 10월부터 내장원(內藏院)13의 전라도 검세관(檢稅官)14도 맡게 됨으로써 1904년 봄까지 더욱 막대한 부를 거머쥐게 된다. 백남신이 전주진위대에 있던 자신의 부하 김병욱의 천거로 상제님의 종도가 되었을 때가 1903년이니 바로 이 무렵이었다.15
이제 전주진위대 향관일 뿐만 아니라 내장원 검세관까지 한꺼번에 하게 된 백남신은 전라도에서 거둔 세금으로 쌀을 구입하고 그 쌀을 서울로 이송하여 팔아서 국가에 세금을 맞추어 내게 되었다. 그가 취급한 세금의 규모는 매우 컸고, 또한 자기의 부하를 전라도 각 지역에 파견하여 국가의 명령이라는 점을 내세워 강제적으로 시가보다 낮은 헐값에 쌀을 대규모로 매입하였다. 거기에 개인적인 상업 활동까지 겸하였기 때문에 그가 얻는 이익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특히 헐값에 많은 양의 쌀을 강제적으로 매입하다 보니 자연히 민원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민원을 접한 전라도 각 군의 군수들은 백남신의 심한 패악을 고발했고, 그는 1904년 5월에 원수부(元帥府)16 검사국(檢査局)에 체포되고 만다.
수년간 아무 거리낌 없이 재물 축적에 열을 올리던 백남신은 이제 관액(官厄)을 당하게 되었다. 이를 지켜보던 김병욱은 감옥에 갇혀있던 백남신에게 자신이 작년 박영효의 일당으로 연루되어 화를 당할 뻔하였을 때 상제님께서 그 화를 막아주신 적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백남신은 김병욱에게 상제님의 도움을 요청하였고, 이를 들으신 상제님께서는 “부자는 돈을 써야하나니 돈 십만 냥의 증서를 가져오라.”고 이르셨다. 김병욱이 백남신에게 달려가서 상제님의 말씀을 전하자 그는 곧바로 십만 냥의 증서를 만들어 상제님께 올리도록 하였다.
과연 7월이 되자 그는 미결수로 석방이 되었다. 게다가 12월 5일에는 다시 내장원의 전라도 독쇄관(督刷官)17이 되어 계속 재물을 축적할 수 있었다.18 그 후 상제님께서는 백남신으로부터 받은 십만 냥의 증서를 불사르셨다.
<대순회보> 1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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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現 전북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 신배마을.
02 잎나무, 풋나무, 물거리 따위의 땔나무를 통틀어 이르는 말.
03 지금의 전주는 조선 초기인 1403년 이후부터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될 때까지 ‘전주부(全州府)’라고 불렸다.
04 백남신은 수원 백씨 문경공파(文敬公波) 27대 손으로 백진수(白晋洙)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족숙(族叔)인 백현수(白顯洙)에게 양자로 입양되었다. 그의 본명은 낙신(樂信)이며 족보에는 고종이 남신(南信)이란 이름을 하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05 백남신의 재물 축적과 관련된 구체적인 기록은 오미일, 「한국자본주의 발전에서 政商의 길」 『역사와 경계』 Vol 57, 부산경남사학회, 2005, pp.121∼130 참고.
06 그 외에도 국가가 서울에 거주하는 상인들에게 돈을 빌리고 특정 지방관들에게 외획을 주어서 그 상인들에게 지방에서 거두었던 세금으로 돈을 갚는 방식도 있었고, 또는 상인이 지방에 돈을 송금할 일이 있을 때 국가에 그 돈을 납부하고 국가는 지방 관리에게 외획을 주어서 상인이 그 지방에 직접 가서 지방 관리로부터 돈을 수령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07 조선 후기에 왕실에 관한 모든 일을 맡아보던 관아. 1894년에 설치되어 1910년까지 존속했다.
08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1895년에 지방의 질서유지와 변경수비를 목적으로 설치된 근대적 지방군대를 진위대(鎭衛隊)라 한다.
09 한말 육군 각 부대의 회계관으로 급여출납·예산결산·식량관리 등의 경리업무를 맡아보았다. 오늘날 위관급(尉官級: 소위, 중위, 대위) 장교에 해당.
10 국가 재정을 맡아보는 관청.
11 회계를 맡아보는 직책.
12 고려·조선 시대에 군량을 충당하기 위하여 변경이나 군사 요지에 설치한 토지.
13 조선 후기 왕실의 재산을 관리한 관청.
14 세금을 걷는 관리.
15 <전주 부호 백남신과 오선위기 공사>, 『대순회보』 97호, p.12 참고
16 한말의 최고 군통수(軍統帥) 기구.
17 세금을 독촉하여 받아들이는 관리.
18 1년 뒤인 1905년 12월, 지방관이 세금을 거두는 제도는 폐지되었고 외획도 사라지게 된다. 백남신이 외획을 이용하여 재물을 축적한 것은 1905년 말까지였고, 그 이후에는 토지와 농장 경영으로 부를 축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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