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님공사에 바쁘신 와중에도 많은 병자들을 구휼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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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1.05 조회4,923회 댓글0건본문
글 대순종교문화연구소
1904[甲辰]년이 저물어 갈 무렵 동곡에서 살고 있던 김창여(金昌汝)가 상제님을 찾아뵙고 자기의 병을 고쳐주시기를 애원하였다. 그는 체하고 소화가 안 되는 병인 체증(滯症)으로 여러 해 동안 고생하고 있던 터였다. 상제님께서는 창여를 평상에 눕히고는 김형렬(金亨烈)로 하여금 다음의 시를 읽게 하셨다.
調來天下八字曲 淚流人間三月雨 葵花細能補袞 萍水浮踵頻泣
一年明月壬戌秋 萬里雲迷太乙宮 淸音鮫舞二客簫 往劫烏飛三國塵
그러자 창여는 체증이 곧 사라져 병세에서 회복되었다.
또 그때 동곡에 사는 김갑진(金甲辰)도 얼굴이 붓고 눈썹이 빠지는 문둥병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상제님께 자신의 병을 고쳐주시기를 간청하였다. 상제님께서는 그를 문 바깥에서 방 쪽으로 서게 하시고 형렬을 비롯한 여러 종도들에게 『대학』의 경일장(經一章) 아래에 있는 글을 읽게 하셨다. 그리고 상제님께서는 갑진을 돌려보내셨는데, 그는 이로부터 몸이 상쾌하여지고 곧 병이 낫게 되었다.
▲ 『대학』의 경일장(經一章) 아래에 있는 글. 右經一章 盖孔子之言而曾子述之 其餘十章 則曾子之意而門人記之也 舊傳 頗有錯簡 今因 程子所定而更考經文 別有序次如左(오른쪽에 있는 경 1장은 대개 공자의 말씀으로 증자가 기록한 것이다. 나머지 10개의 장은 증자의 뜻을 그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다. 구본(舊本)에는 글이 섞이고 잘못된 것이 있어, 정자가 정한 바에 따라 다시 경문을 살펴 차서를 나누어 두니 왼쪽의 장절과 같다)
이와 같이 상제님께서는 공사에 바쁘신 와중에도 많은 병자들을 제생(濟生)시켜 주셨다. 전주 용머리 고개에는 김 모라는 앉은뱅이가 살고 있었는데, 그도 상제님을 찾아와 걸어 다니게 해 주시기를 청원하였다. 상제님께서는 그를 앞에 앉히시고는 담뱃대를 들어 올리심에 따라 점점 일어나도록 애를 쓰게 하시고 형렬에게 ‘예고신 예팽신 석란신 동서남북중앙신장 조화조화운오명령훔(曳鼓神 曳彭神 石蘭神 東西南北中央神將 造化造化云吾命令)’을 읽게 하셨다. 그리고 상제님께서는 다시 그를 뜰에 세우시고 김광찬(金光贊)으로 하여금 그의 종아리를 쳐서 빨리 걷도록 만드셨으니 과연 그는 앉은뱅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는 감격하여 상제님께 삼십 냥을 공양하였고, 상제님께서는 그 돈으로 지나가는 행인들을 부르시어 술과 음식을 나누어 드셨다. 또 박순여(朴順汝)는 어머니를 모시고 동곡에서 살던 사람인데, 그의 어머니가 병세가 악화되어 임종이 임박하였으므로 가족들이 장례를 치를 준비를 하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으신 상제님께서는 순여의 집에 가셔서 순여에게 시장에 나가 ‘장례에 제물로 올릴 술을 쓰지 않도록 해 주십사’하고 지성으로 심고(心告)하고 돌아오게 하셨다. 상제님께서는 사물탕 한 첩을 달여서 순여의 어머니가 누워있는 방에서부터 열두 걸음이 되는 마당에 관이 들어갈 만한 크기가 되도록 땅을 파서 그 달인 약을 묻으시고는 “오래된 병이니 약을 땅에 써야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상제님께서는 당신의 분부를 시행하고 돌아오는 순여를 보시고 “누구에게 심고하였느뇨?” 물으시니 순여가 “선생님께 심고하였나이다.”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들으신 상제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고 그가 빚은 술을 가져오게 하시어 이웃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드셨다. 과연 순여의 어머니는 곧 병이 나아 회생하였다.
얼마 후에는 순여가 왼쪽 다리에 부종(浮腫)01이 생겨 다리가 기둥과 같이 부어올라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순여가 상제님께 사람을 보내어 치병(治病)을 간청토록 하자, 상제님께서는 김자현(金自賢)에게 “순여의 병을 다스려 그를 살게 함이 옳으냐? 또는 그대로 두어 죽게 함이 옳으냐? 네 말 한마디에 달렸느니라.”고 물어보셨다. 원래 순여는 자신의 나이가 자현보다 많다 하여 항상 자현을 무례하게 대하였고, 자현은 말은 하지 않았으나 이를 불쾌하게 여기고 있던 차였다. 이미 이 사실을 알고 계시던 상제님께서는 자현의 의중을 떠보시고자 하신 것이었다. 자현은 조금 주저하다가 “살려주심이 옳을까 하나이다.” 대답하니 상제님께서는 “박순여는 불량한 사람이니라. 너에게 매우 무례하였으니 너와 함께 가서 치료하리라.”고 하셨다. 상제님께서는 자현을 앞세워 순여의 집에 가시고는, 손수 순여의 부어오른 다리를 주물러 내리시며 물 한 그릇을 끓여 마시게 하셨다. 그 후 순여는 다리의 붓기가 빠지고 부종에서 제생되었다.
동곡의 주막 주인이었던 전순일(田順一)은 오랫동안 병에 시달리다가 상제님께 치료를 애원하였다. 상제님께서는 한공숙(韓公淑)을 데리고 순일의 집으로 가신 뒤 순일에게 죽 한 그릇을 먹도록 이르셨다. 그리고 공숙에게 그의 주머니 속에 있는 은행 한 개를 방 안에 있는 거울 조각 위에 얹어 으슥한 곳에 두게 하시고는 순일에게 술 한 상을 치병에 대한 답례로 올리도록 하셨다. 얼마 후 “의원이 떠나니 병자는 문 밖에 나와 전송하라.” 하시니 순일은 자리에서 가까스로 일어나 상제님을 전송하였다. 물론 그는 곧 병에서 완쾌되었다. 그러나 그 후 순일은 자신이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고 상제님께 술 한 상을 올리지 않았다. 상제님께서는 “이 사람은 입맛을 잃고 신고(辛苦)하리라.” 말씀하셨는데, 과연 순일은 상당한 기간 동안 입맛이 없어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고통을 받았다.
순일의 경우와 같이 대개 상제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낭패를 당하곤 했으니, 김덕찬(金德贊)의 경우도 그러했다. 덕찬이 모친상을 입어 장례를 지내려고 하다가 전주 용머리 고개 주막에서 상제님을 배알하게 되었다. 상제님께서는 그에게 “오늘 장사는 못 지내리니 파의(罷意)02하라.”고 하셨으나 덕찬은 상제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장례를 치르려고 하였다. 그는 모친을 안장(安葬)하기 위하여 묘소로 정해진 땅을 팠는데 큰 개미굴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수 없이 다른 곳을 팠는데 그곳 역시 개미굴이었다. 그제야 덕찬은 상제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는, 부득이 땅을 파지 못하고 모친의 관을 흙으로만 임시로 덮어두는 토롱(土壟)을 하였다. 이 일도 갑진년에 있었던 일이다.
<대순회보> 1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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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몸이 붓는 증상. 몸 안에 체액이 머물러 있어 얼굴, 팔다리, 가슴과 배, 심하면 온몸이 붓는 병증이다. 음식을 잘못 먹는 등의 원인으로 인하여 몸 안의 수액을 조절하는 폐·비·신이나 방광·삼초에 이상이 발생하여 생긴다.
02 하고자 하던 의사(意思)를 버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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