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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상제님의 유년시절(幼年時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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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7.26 조회5,3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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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증산의 부친께서 기울어가는 집안의 생계를 위하여 정읍에 사는 박 부자로부터 수백 냥01의 돈을 빌려 쓴 일이 있었다. 약속한 기일이 지나도 돈을 갚지 못하자 정읍 박 부자는 빚을 빨리 갚기를 독촉하였고, 부친께서는 이 일로 근심이 깊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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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초엽 정읍 시내의 모습. 상제님 재세시에도 이 모습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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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지켜보시던 소년 증산께서는 부친께 오십 냥이라도 마련해 주실 것을 청하시고 정읍에 사는 박 부자를 찾아가셨다. 당시 박 부자는 자신의 집에 사숙(私塾)03을 설치하여 자기 자식과 조카, 이웃의 학동들을 모아 글을 가르칠 만큼 큰 부자였다. 소년 증산께서는 박 부자에게 오십 냥을 갚으시고, 사숙에 모인 학동들과도 우정을 교류하셨다.

 

이때 사숙의 훈장이 학동들에게 시(詩)를 짓게 하였는데, 소년 증산께서도 불러주는 운자(韻字)에 따라 시를 지으시니[낙운성시(落韻成詩)] 그 시격(詩格)의 절묘함에 훈장과 학동들이 크게 놀랐다. 그렇잖아도 증산이 신동(神童)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던 박 부자는 이를 보고 감탄하여 소년 증산께 자신의 아들·조카[자질(子姪)]와 함께 글을 읽기를 부탁하였다.

 

청을 받으신 소년 증산께서는 마지못해 박 부자의 집에 며칠 머물게 되었다. 그 며칠 사이에도 부친께서 빚에 대한 괴로움으로 걱정하시는 것을 근심하셨으니, 이를 본 박 부자는 소년 증산의 마음에 감동되어 드디어 증서를 불사르고 부친의 빚을 탕감하여 주었다.

 

세월이 흘러 상제님께서 17세가 되셨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전라도 고부군 답내면(畓內面) 서산리(西山里)04에 있는 외가에 다니러 가셨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술주정꾼이 나타나서 아무 이유 없이 상제님께 행패를 부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상제님께서는 아무런 대항도 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만 보고 계셨는데, 갑자기 큰 돌 절구통이 하늘에서 날아와서 술주정꾼을 덮어 씌워 버리니 그는 절구통 속에 갇혀 꼼짝을 못하였다. 비로소 상제님께서는 몸을 돌리시고 가던 길을 계속 가셨다.

 

그 시절 상제님께서는 이곳저곳을 다니시며 세상에 전해오는 책들을 두루 섭렵하시고 이야기를 전해 들으셨으며, 또한 한적한 곳에서 종종 명상에 잠기기도 하셨다. 하루는 전북 완주군 종남산(終南山) 남쪽 기슭에 있는 송광사(松廣寺)05에 가 계실 때의 일이다. 당시 송광사에 살던 중들이 무례하여 상제님을 함부로 대하자, 상제님께서는 “산속에 모여 있는 이 요망한 무리들이 불법(佛法)을 빙자하고 혹세무민(惑世誣民)을 일삼고 있으니, 세간(世間)에 해독만 끼치고 있는 이 소굴을 뜯어버리리라.” 하시고 법당(法堂) 기둥을 잡아 당기셨다. 이에 그 기둥이 한 자06나 물러나니 그제야 놀란 중들이 달려와서 백배사죄를 하였다. 훗날 송광사 측에서는 물러나 버린 법당 기둥을 원상대로 회복하려고 여러 번 수리하였으나 그 기둥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상제님께서 잡아당기신 법당은 송광사의 대웅전이었다. 원래는 2층이었으나 건물이 쇠락하여 점점 기울자 철종 8년(1857년)에 1층으로 다시 중창하여 새로 지어진 상태였다. 그러나 중들의 잘못으로 건물이 다시 기울게 되었고, 그 후 여러 번 수리를 해도 별 소용이 없었다. 100여 년이 지난 1996년에 대웅전은 보물 제1243호로 지정이 되었는데, 그때도 꼼짝도 하지 않는 기둥 때문에 대웅전을 바로 세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2002년이 되자 문화재청에서는 아예 대웅전을 해체하고 다시 재조립하는 최후의 방법으로 건물을 수선하였다. 대웅전을 재조립할 때 새 기둥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둥을 그대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현재 대웅전을 살펴보면 기둥 몇 군데에서 땜질한 듯한 흔적을 볼 수 있는데, 결국 이 기둥들이 과거 수리를 한 흔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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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엽전의 단위. 지금의 화폐가치로 볼 때 1냥은 대략 2만 원 정도에 해당한다.

02 『사진으로 보는 근대한국 上 산하와 풍물』, 서문당, 1986, p.149

03 국가나 관이 아닌 개인이 설립 운영하는 사설 교육기관으로 비교적 규모가 작은 글방. 서당(書堂).

04 현재의 전라북도 정읍시 이평면(梨坪面) 팔선리(八仙里) 서산(書山)마을. ‘팔선리’라는 이름은 팔부 또는 팔선이라고 불렸던 여덟 부자가 이 지역에 살았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고, ‘서산마을’은 이 마을에 서산사(書山祠)가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서산사는 권극중(權克中, 1560~1614) 등을 배향하기 위해 헌종 11년(1845)에 건립되었으나 고종 5년(1868)에 헐려버려 지금은 그 터만 남아있다.(한글학회, 『한국지명총람』 12, 1988, p.437 참고)

05 전북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569번지에 위치한 절이다. 신라 진평왕 5년(583년)에 처음 터가 닦였고, 경문왕 7년(867년)에 보조국사 체징(804~880)에 의해서 개창되었으며, 그때의 이름은 백련사(白蓮寺)였다고 한다.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현재의 송광사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임진왜란 때 폐사되었다가 조선 광해군 15년(1622년)에 다시 중창되었다.

06 길이의 단위. 한 자는 한 치의 열 배로 약 30.3cm에 해당한다.

 

 

 

<대순회보 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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