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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상제님의 성혼(成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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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8.03 조회6,0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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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辛卯]년의 일이다. 인간의 몸으로 21세가 되신 상제님께서는 세상의 풍속에 따라 성혼(成婚)할 때를 맞이하셨고, 주변 강씨 문중 어른들은 상제님의 배필을 찾기 위해 나섰다. 상제님께서 예사 사람이 아니라는 소문 때문인지 많은 곳에서 매파들이 나서 신붓감들을 추천하였다. 그러나 상제님의 부모님께서, 적당한 짝이 못 된다 하여 계속 거절하는 바람에 마흔여 군데가 넘는 곳에서 들어온 혼담이 모두 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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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4년 상제님께서 글방을 차리신 내주동의 정남기 집터. 원래의 집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다른 가옥이 들어서 있다. 현재 전북 김제시 봉남면 내광리 186번지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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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김제시 봉남면 내광리 내주동의 마을 전경. 상제님께서는 이곳에 살았던 정씨 가문의 처녀와 성혼하셨다.

 

아들 잘난 것만 생각하다가 혼사를 그르칠까 걱정이 된 상제님의 모친은 이제 들어오는 혼담은 무조건 승낙하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이때 마침 김제에 사는 정씨 댁에 적당한 처자(處子)가 있다는 중매가 들어왔고, 상제님의 부모님께서는 중매자의 말만 듣고는 혼사를 결정해 버렸다. 이 처자는 하동(河東) 정씨(鄭氏)로 이름은 치순(治順)이었으며 전라도 금구군(金溝郡) 초처면(草處面) 내주동(內住洞=內住坪)01에서 1874[甲戌]년 1월 30일에 태어났으니, 당시 상제님보다 세 살 어린 18세의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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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처녀가 장차 시부모가 될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러 왔는데, 보니 한쪽 다리가 짧은 것이었다. 상제님의 부모님들은 가슴을 쳤으나 이미 물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상제님께서는 신부의 모습에 전혀 개의치 않으시고 부모님들의 결정에 따르셨다.

 

상제님께서는 성혼하시고 나서 얼마간 금구군 내주동의 처가에서 지내셨다고 한다. 1894[甲午]년이 되자 처가 옆에 살던 처남 정남기(鄭南基)의 집에 글방을 차리셨다. 아우 영학(永學)과 이웃의 서동들을 모아서 글을 가르치셨는데, 그 교수법(敎授法)이 비범하여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송이 높았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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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평저수지에서 바라 본 동곡마을, 뒷산이 구성산이며 그 산 정상 부근에 학선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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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새로 창건된 구성산 기슭의 학선암 모습.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산309번지 소재.

 

그런데 이 해에 고부군수 조병갑의 폭정으로 인해 전봉준(全琫準, 1854~1895)이 동학도를 모아 동학농민운동을 일으키니, 세상은 큰 혼란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때 주변에 살던 김형렬(金亨烈)이 상제님의 성예(聲譽)02을 듣고 찾아 뵌 후, 당시의 소란을 피하여 한적한 곳에 가서 함께 글 읽으시기를 청하였다. 상제님께서는 글방을 폐지하고 전주군(全州郡) 우림면(雨林面) 동곡(銅谷) 뒷산인 구성산(九城山, 487.6m) 남쪽 기슭에 있는 학선암(學仙庵)03으로 가셨으나, 그곳도 번잡하기에 다른 곳으로 떠나셨던 바, 그곳을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그해 오월 어느 날 밤, 상제님께서 주무시고 계시는 중에 한 노인이 꿈에 나타나 “나도 후천 진인이라. 천지현기(天地玄機)04과 세계대세를 비밀히 의논할 일이 있노라.”고 아뢰는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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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선암 우측에 있는 칠성각. 상제님 재세시의 학선암은 원래 이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2001년에 건물이 중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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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곡주변.

 

한편 동학농민운동은 점점 커져갔고, 세상은 더 큰 혼란에 빠져들어 많은 인명 손상과 그로 인해 엄청난 원(冤)이 쌓이게 될 운명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에 대한 것은 다음 호에 다루도록 하고, 여기에서는 잠깐 상제님의 가족 관계를 살펴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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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께서는 정씨 부인(1874~1928)과의 사이에 일남 이녀를 두셨다. 그중 맏이인 딸과 둘째인 아들은 모두 용모가 비범하였고 문중의 어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으나, 상제님께서는 집안의 어른들에게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되지 못할 것이니 너무 정을 쏟지는 마시라고 말씀하셨다. 상제님의 말씀대로 맏딸은 열세 살에, 아들은 네 살에 세상을 떠났다. 그 뒤 막내로 태어난 아이는 강순임(姜舜任, 1904∼1959)이다.05

 

 

 

01 현재의 전북 김제시 봉남면(鳳南面) 내광리(內光理) 내주(內主)마을. 내주마을은 ‘내주리’, ‘내주평(內主坪)’, ‘쥐들’이라고도 하는데, ‘내주(內主)’란 내광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라는 뜻이다.(『한국지명총람-전북편上』, 한글학회, 2003, p.165)

02 세상에 떨치는 이름과 칭송 받는 명예.

03 현재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산 309번지에 위치한 암자이다. 학선암이 있는 구성산은 굴성산이라고도 불리는데, 아홉 개 봉우리에 성을 쌓아 적의 침입을 막았다거나 혹은 앉은뱅이가 이 산을 아홉 번 올라 소원을 빌고 병이 나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학선암의 창건과 관련해서는 구전으로 두 가지의 설이 전해진다. 첫째는 통일신라시대 말에 함월(含月) 스님이 창건하였다는 것이고, 둘째는 고려 초인 성종 7년(988년)에 창건되었다는 것이다. 유명한 진묵대사도 한때 이 암자에 머문 적이 있었다고 한다.

04 천지의 깊고 묘한 이치.

05 상제님과 정씨부인 사이에는 일남 이녀가 있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남 삼녀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증산의 생애와 사상』, 1994, p.40 / 『화은당실기』, 1989, p.18 참고)

 

 

<대순회보 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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