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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이마두와 진묵의 사후 서양 문명의 발전과 그 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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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6.20 조회5,8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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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에서는 만물이 모두 상극에 의해 지배를 받았다. 이에 따라 시간이 흐를수록 천계(天界)와 지계(地界), 인계(人界)는 원한이 가득 차 나갔고, 천지(天地)는 상도(常道)를 잃어 갖가지의 재화(災禍)가 일어나 참혹하게 되었다.01 근세(近世)02 이후 서양에서 발달된 문명도 물질에 치우친 나머지 인간의 교만을 조장하여 삼계를 혼란하게 만들었으니 이것을 상제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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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두가 … 사후에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에 가서 문운(文運)을 열었느니라. 이로부터 지하신은 천상의 모든 묘법을 본받아 인세에 그것을 베풀었노라. 서양의 모든 문물은 천국의 모형을 본딴 것이라. … 그 문명은 물질에 치우쳐서 도리어 인류의 교만을 조장하고 마침내 천리를 흔들고 자연을 정복하려는 데서 모든 죄악을 끊임없이 저질러 신도의 권위를 떨어뜨렸으므로 천도와 인사의 상도가 어겨지고 삼계가 혼란하여 도의 근원이 끊어지게 되니 원시의 모든 신성03과 불과 보살이 회집하여 인류와 신명계의 이 겁액을 구천에 하소연하므로 … (교운 1장 9절)

 

 

서양문명이 수만 년이라는 장구한 인류 역사 속에서 불과 몇 백 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급속하게 발달하게 된 계기는 16세기에 동양으로 건너 온 서양인 이마두[利瑪竇, 마테오 리치(Matteo Ricci)]04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마두는 31세에 가톨릭의 해외 포교를 위해 중국에 온 뒤,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머물면서 중국과 서양의 상호 이해를 위해 노력한 선구자였다. 그는 불교와 유교까지 포용하면서 평생 가톨릭의 선교를 위해 불철주야 애썼지만, 자명종(自鳴鐘)·대서양금(大西洋琴 : 피아노의 전신) 등의 서양 문물과 『기하학 원본』 같은 학술서적 그리고 세계지도를 중국에 전해주었을 뿐,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다만 죽은 후에 동양의 문명신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가서 서양에 문운(文運)을 크게 열었다. 상제님께서는 “이마두가 동양에 와서 지상 천국을 세우려 하였으되 오랫동안 뿌리를 박은 유교의 폐습으로 쉽사리 개혁할 수 없어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도다.”(교운 1장 9절)라고 말씀하시고는 그를 위로하시기 위해 광주 무등산 상제봉조(上帝奉詔)에 초혼하여 장사지내 주시고(예시 66절), 서도(西道)의 종장(宗長)으로 세우셨다.(교운 1장 6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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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문명 개발에 힘을 보탠 이가 또 한 명 더 있으니, 바로 진묵(震黙, 1562~1633)이다.

 

진묵이 천상에 올라가서 온갖 묘법을 배워 내려 인세에 그것을 베풀고자 하였으나 김봉곡에게 참혹히 죽은 후에 원(冤)을 품고 동양의 도통신(道通神)을 거느리고 서양에 가서 문화 계발에 역사하였나니라.(권지 2장 3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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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묵05은 조선 중기의 고승으로 많은 기행 이적을 남겨 석가모니의 화신으로까지 불렸으나, 김봉곡(金鳳谷, 1573~1661)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뒤로 서양에 건너가 문화 계발에 역사했던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이러한 진묵의 원을 풀어 주시기 위하여 그를 다시 고국으로 불러들이시고는 후천 문명 건설에 역사하게 하시고 불교의 종장으로 세워주셨다.(교운 1장 65절)

 

이마두가 동양의 문명신을 거느리고 서양에 건너간 때가 대략 1610년 이후일 것이고 진묵이 동양의 도통신을 거느리고 서양에 건너간 때는 대략 1633년 이후일 것이다. 이로부터 서양에서는 문명이 급속히 개발되기 시작하였으니 화학의 새로운 문을 연 보일(Boil, 1627∼1691), 기계공학과 고체물리학의 초석을 다진 후크(Hook, 1635∼1703), 빛의 파동설을 제창한 호이겐스(Huygens, 1629∼1695), 고전역학의 완성자 뉴턴(Newton, 1642~1727), 전자공학의 기반을 조성한 쿨롱(Coulomb, 1736~1806) 등 속속 출현한 수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새로운 과학 지식과 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것이 배경이 되어 드디어 1760년에는 영국에서부터 산업혁명이 일어나 그야말로 서양문명은 획기적인 대 발전을 맞게 된다.

 

엄청난 속도의 기술적 진보는 서양인들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미쳐, 프랑스를 중심으로 계몽주의(啓蒙主義)라는 사조(思潮)를 일으키게 되었다. 이로써 인간의 합리적인 이성이 무시된 채 신의 의지에 복종하는 것만이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되던 시대가 가고,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객관적이고 ‘과학적 방법’을 적용하여 사회를 개혁하고자 한 사상적 흐름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이 계몽주의를 토대로 인권을 선언하는 프랑스 시민 혁명이 일어나고, 이 혁명 후 유럽 사회 전반은 의식과 제도에 많은 발전을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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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원래 서양에서는 모든 대상에 대한 관점을 두 가지로 분리해서 보는 이분법적인 사고 전통이 있어왔기 때문에, 이로 인해 서양의 문명은 정신과 물질 분야가 서로 격리되었고 결국 문명은 물질에 치우쳐 발달하게 되었다. 또한 자연도 인간과 분리된 별도의 세계로 인식됨으로써 자연은 조화의 대상이 아니라 정복의 대상으로 여겨졌고, 그 결과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서양문명은 자연의 파괴를 일삼았다. 물질에 집착한 인간들은 신(神)도 무시한 채 교만해져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문명이기(文明利器)를 이용하여 전쟁과 살육에 광분하였다.

 

이로써 신도(神道)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상도(常道)가 무너졌으며 삼계가 혼란하여 도의 근원이 끊어지게 되었으니, 신성·불·보살 등은 자신들의 통제범위를 벗어나 진멸의 지경에 빠져버린 인류와 신명계를 구원해주시도록 상제님께 하소연할 수밖에 없었다. 천상의 가장 높은 곳인 구천(九天)에서 구천대원조화주신(九天大元造化主神)으로 계시던 상제님께서는 이 하소연을 들으시고 천하를 대순하시기에 이른다.

 

 

 

01 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체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어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공사 1장 3절)

02 근세는 중세와 현대의 중간 시대로 유렵에서는 르네상스 이후를 말한다.

03 거룩하고 존엄한 존재인 신(神)과 성(聖)

04 이마두에 대한 상세한 생애와 사상은 「마테오 리치의 생애와 선교 활동」(이재호,『상생의 길』제1호, 대순진리회 출판부, 2004, PP.34~76)를 참조바람.

05 진묵에 대한 자세한 생애는 「진묵의 생애」(이승목, 『상생의 길』제3호, 대순진리회 출판부, 2005, PP.74~87) 참조.

 

<대순회보 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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