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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님무극도의 조직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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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9.05.30 조회6,8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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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께서 그 후 주선원(周旋元)과 주선원보(周旋元補)란 두 직책을 마련하고 전교의 임무를 담당하게 하시니라. 이해 六월 치성일 전날에 밀양의 이우형·김용국·최창근·안병문 그리고 부산의 박민곤과 안동의 권태로와 의성의 조원규와 예천의 이종창·신용흠 그리고 봉화의 박붕래·김천의 김규옥과 풍기의 조진명과 청도의 장득원 외 여러 사람들이 회문리에 모인 자리에서 도주께서 “금년이 이재신원(利在新元) 계해년이라”고 말씀을 마치고 전교를 내리시니라. (교운 2장 26절)


위의 『전경』 구절은 도주님께서 “금년이 이재신원(利在新元) 계해년이라”고 말씀하신 1923년에 있었던 일의 내용이다. 여기에 종단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기록이 있는데, 바로 도주님께서 주선원과 주선원보라는 두 직책을 마련하신 일이다. 이것은 1925년 무극도(无極道) 창도 이전에 이미 교단이 성립되어 조직체계가 정비되었음을 말한다. 이때 마련된 교단 조직체계는 과연 어떤 형태였을까? 그리고 그 조직에서 주선원·주선원보는 어떤 위상이었고, 담당했던 임무는 무엇이었을까? 무극도 창도 초기의 무극도 조직체계를 통해 이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무극도의 조직체계에 관한 기록은 1925년경 일제에 의해 작성된 『무극대도교개황(無極大道敎槪況)』01에 잘 나타나 있다. 『무극대도교개황』은 일본 도쿄(東京) 소재 학습원 대학 동양문화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는 우방문고(友邦文庫) 자료로 일제강점기인 1924~1925년에 전라북도 도청에 의해 만들어진 내부 보고용 비밀문건이다. 이 문서는 전반부에 일본어로 기록된 무극도의 연혁, 조직, 주문, 치성, 간부씨명(幹部氏名) 등이 있고, 후반부에 한국어 및 한자로 기록된 강령과 도규, 취지서, 간부 일람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전반부 항목은 그 어투나 부정확성으로 볼 때 탐문 및 정보원에 의한 정보 수집을 통해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후반부 항목은 탐문만으로는 입수하기 어려운 내부 정보가 자세히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무극도에서 의무적으로 도청에 제출한 자료를 근거로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전반부 자료는 일부 사실이 부정확하고 악의적으로 왜곡된 것으로 보이지만, 후반부 자료는 1925년을 전후로 한 시기의 무극도 관련 사실에 대해 상당히 정확한 정보가 기재되어 있어 연구자료로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02 실제로 『무극대도교개황』은 문서 내용이 분석되어 「대순진리회 조직의 특성」이라는 주제의 논문에 활용되기도 하였다.03

『무극대도교개황』의 무극도 도규에 따르면, 도인들의 수도와 포덕을 위하여 마련된 무극도 조직은 크게 본소조직(本所組織)04과 지방조직(地方組織)으로 나뉜다. 그중에서 본소조직은 중앙조직으로 무극도장을 중심으로 도주님의 시종(侍從), 종교행사 및 종무, 지방조직의 포덕 업무 지원 등을 담당했는데, 여기에는 주선원·주선원보·찰리(察理)·순동(巡動)·종리(從理) 등의 직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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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극도장 터(2016년 촬영) 

 

『무극대도교개황』의 무극도 도규를 통해 본소조직의 주요 임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본소조직의 최고위직인 ‘주선원’은 도(道)의 전반적인 업무를 총괄하여 관리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바로 아래 ‘주선원보’는 주선원을 보좌하며 대리하는 일을 수행하였다. 주선원보 밑에는 주선원보를 보좌하는 찰리순동이 있었다. 이중 ‘찰리’는 도장 내 일반 사무와 관련된 일을 담당하였고, ‘순동’은 각 지방의 도무(道務)를 장려하고 시찰하는 일을 수행했다. 그 외에도 앞서 언급한 직책들과의 위계는 알 수 없지만, ‘종리’가 있었다. 종리는 본소임원이면서 지방에 파견되어 지방임원인 연락(連絡)을 도와서 해당 지방을 관리하는 일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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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조직은 해당 지방을 중심으로 도인들의 수도와 포덕 업무를 주로 담당하였는데, 여기에는 연락·차연락(次聯絡)·부분(府分)·포덕(布德) 등이 있었다. 『무극대도교개황』에 있는 무극도 도규를 통해 지방조직의 임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지방조직에서 최고위직인 ‘연락’은 [도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차연락 이하 임원들을 관리하는 한편 본소와 지방 도인의 연락사무를 담당하였다.06 바로 아래 ‘차연락’은 그 임무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조직상의 위계와 직책명으로 보았을 때 연락의 업무를 보좌하는 임무를 수행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차연락 아래의 ‘부분’은 도인 120명 이상을 이끌어 나가면서 관리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부분 아래에 있는 ‘포덕’은 포덕(布德) 업무를 담당하였다.07

위의 무극도 조직을 중앙조직인 본소조직과 지방조직으로 분류했다고 해서 본소조직과 지방조직이 반드시 서로 상하관계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다음 두 가지 점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첫째는 『무극대도교개황』의 ‘간부 일람표’ 내용을 보면 지방조직인 ‘연락’ 가운데 김용국·박병국 두 명이 본소조직인 ‘찰리’를 겸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지방임원인 연락이 승진하여 본소임원이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간부 일람표’에서 지방임원의 인적사항 기록란에는 그 임원이 관리하는 신도들 규모가 기록되어 있지만, 본소임원의 인적사항 기록란은 공란으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지방조직에 속한 임원은 그 직위가 관리하는 신도들 규모와 관련이 있지만, 본소조직에 속한 임원은 그 직위가 관리하는 신도들 규모와 관련이 없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즉 본소조직과 지방조직은 그 구성원리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08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무극도 조직에서 본소조직의 최고 혹은 부책임자 위치에 있던 주선원·주선원보는 도의 전반적인 업무를 총괄하여 관리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여기서 도의 전반적인 업무로는 종무행정·지방의 포덕 사업 지원과 같은 대내적인 일과 도주님을 대리하여 대외업무를 수행하는 일 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무극대도교개황』에 주선원으로 나오는 조용서(趙鏞瑞)는 도주님을 대리하여 많은 대외활동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주선원·주선원보는 도주님을 시종하거나 도주님께서 설법하시는 자리에 참석하여 그 말씀을 직접 듣고 도인들에게 전해주는 역할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역할이 당시 지방조직의 포덕 업무를 지원하던 한 형태로 보인다. 『전경』에 나오는 종도 중에서 이런 역할을 했던 대표적인 인물로 이우형과 권태로가 있다. 이 두 사람은 기미(1919)년부터 갑자(1924)년까지 도주님을 계속해서 시종한 행적을 찾을 수 있다. 또한 『무극대도교개황』에 이우형은 주선원으로, 권태로는 주선원보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계해(1923)년에 교단 조직이 마련될 때 이우형·권태로는 주선원과 주선원보 혹은 본소조직의 중요 직책을 담당했을 것으로 보인다.09

『전경』에서 이 두 사람의 구체적인 행적을 살펴보면, 먼저 계해(1923)년 6월 23일 도주님께서 「전교」를 내리실 때 이우형과 권태로 모두 그 자리에 참석하여 도주님의 말씀을 들었다. 같은 해 9월에 도주님께서 청도 적천사 도솔암에서 단도수를 보셨는데 이때 이우형이 시종을 들었다. 갑자(1924)년 11월에는 태인도장에서 도주님께서 “경(庚)은 변경지이시(變庚之伊始) 하고 … 아역여시경신(我亦如始庚申)이라”10는 말씀을 하셨을 때도 이우형과 권태로가 그 자리에 참석하였다.

그렇다면 교운 2장 26절에 언급된 두 직책이 담당했던 ‘전교의 임무는 무엇일까? ‘전교’의 사전적 의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교리를 널리 전함’이고, 둘째는 ‘임금이 명령을 내림, 또는 그 명령’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주선원ㆍ주선원보는 지방의 포덕 업무 지원의 일환으로 도주님의 명이나 설법 내용을 도인들에게 전하는 일을 하였고 도주님을 대리하여 대외업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전교’는 ‘교리를 널리 전함’의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전교의 임무’는 ‘도주님의 가르침을 대내외에 널리 전하는 임무’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도주님께서는 종단의 형태를 갖춘 무극도 창도를 앞둔 1923년에 교단 조직체계를 정비하셨다. 이 조직에서 주선원과 주선원보는 도의 전반적인 업무를 총괄하여 관리하면서 ‘전교의 임무’를 담당하였다. 두 직책이 마련된 후 도주님께서 “금년이 이재신원(利在新元) 계해년이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전교」를 내려주셨다. 여기에는 인류 역사 속에서 도(道)의 가르침이 전해지는 과정을 밝히고 장차 새로운 도인 무극도가 세상에 출현할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러한 「전교」의 가르침은 새롭게 마련된 무극도 조직을 통하여 세상에 널리 전해졌다.

 

01 전라북도도청, 『무극대도교개황』, 일본학습원대학동양문화연구소소장(M2-87), 1925.

02 대순종교문화연구소에서 작성한 “《무극대도교개황》 번역에 붙이는 말” 내용 참고.

03 박상규가 쓴 논문 「대순진리회 조직의 특성」은 2013년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와 종교연구소에서 편찬한 『한국종교교단의 조직』에 실려 있다. 이 논문은 대순진리회의 전반적인 조직과 특성을 논함에 있어 대순진리회의 창도주이신 도주님께서 대순진리에 감오득도하신 후 종교로서의 형태를 갖추어 창도하신 무극도의 조직체계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무극도의 조직체계를 서술하는 데 있어서 무극도 당시의 역사 사료인 『무극대도교개황』과 그 내용을 분석하여 연구자료로써 활용한 박상규의 글을 주로 참고하였다.

04 『무극대도교개황』에서는 중앙조직에 속한 직원을 본소직원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본소는 태인 무극도장을 가리킨다.

05 무극도 조직도는 『무극대도교개황』의 내용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으나, 이에 대한 사실 여부 확인은 다른 문헌과 비교하여 더 심층적으로 연구할 필요성이 있다.

06 연락은 부분 2명~125명(도인 240명~15,000명)을 이끌어가는 직위였다.

07 『무극대도교개황』의 ‘조직’ 항목에는 ‘부분’ 아래에 지부원(支部員)ㆍ해방원(該方員)ㆍ포덕원(布德員)ㆍ포덕가(布德家)ㆍ포덕보(布德補) 등이 있다고 되어있다.

08 박상규, 「대순진리회 조직의 특성」,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와 종교연구소 편, 『한국 종교교단의 조직』 (경기: 한국학술정보(주), 2013), pp.150-151 참고.

09 『무극대도교개황』의 기록에 따르면, 무극도 조직 구성원 가운데 주선원으로는 조용서ㆍ이우형ㆍ이창구가 있었고, 주선원보로는 권태로ㆍ조송제ㆍ안용수가 있었다.

 

10 교운 2장 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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