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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님도주님의 성과 존휘, 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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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7.22 조회5,7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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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흥 민씨(驪興閔氏)가 어느 날

하늘로부터 불빛이 밝게 자기에게 비치더니

그 후 잉태하여 한 아기를 낳으니라.

이 아기가 장차 상제의 공사를 뒤 이을 도주이시니

때는 을미년 십이월 초나흘(十二月四日)이고

성은 조(趙)씨이요, 존휘는 철제(哲濟)이요,

자함은 정보(定普)이시고 존호는 정산(鼎山)이시며

탄강한 곳은 경남 함안군 칠서면 회문리

(慶南咸安郡漆西面會文里)이도다.01

 

 

도주님의 성은 조씨(趙氏)

 

지난 달 연재의 마지막 부분에서, 상제님의 뒤를 이어 도의 주인[道主]이 되실 분은 조 씨(趙氏) 성으로 오신다는 ‘수종백토주청림(須從白兎走靑林)’에 관해 언급하였다. 다시 정리하면, ‘수종백토주청림’은 마땅히[須] 백토주(白免走) 청림(靑林)을 따르라[從]는 뜻인데, 이중 백토(白兎)는 소월(小月)이므로, 백토주(白兎走)는 소월(小月)에 주(走)를 합친 ‘조(趙)’가 된다. 즉 세상이 기다리는 청림(靑林)은 조 씨(趙氏) 성이라는 뜻이다.

 

‘수종백토주청림’의 백토를 소월로 해석해야 함을 알려준 『채지가』에는 조씨 성을 가진 분이 진인임을 암시하는 비결도 있는데 그것은 「초당의 봄꿈」에 있는 다음의 내용이다.

 

생사문(生死門)을 열어놓고 승부판단 하올적에

조개는 백기(白碁)되고 차돌은 흑기(黑碁)된다.

정지변(井地邊)에 마주앉아 천하통정 하였으니

너도한점 나도한점 허허실실 누가알까

초한건곤(楚漢乾坤) 풍진(風塵)속에 진위진가(眞僞眞假) 누가알고

한신진평(韓信陳平) 그때로써 현우우열(賢愚優劣) 몰라서라

조개이치 어떠한고 월수궁(月水宮)에 정기받아

오십토(五十土)로 개합(開閤)하니 양중유음(陽中留陰) 되었구나

어자(魚者)는 생선(生鮮)이니 생선복중(生鮮腹中) 을장(乙腸)이라

생문방(生門方)을 들어가니 중앙을성 분명하다02

 

이 비결은 생사가 결정되는 승부에서 조개와 차돌이 바둑의 백돌과 흑돌이 되는데, 조개는 달의 정기 즉 조석 작용으로 인해 입을 열고 닫는[개합(開闔)] 음양조화[오십토(五十土)]를 하고, 그 껍질은 굳건한 양의 형태이면서 속살은 유순한 음의 형태인 양중유음(陽中留陰)이며 또한 조개는 생선이고 생선 복중의 창자는 이를 상형한 한자 을(乙)03이므로 역시 도를 상징하기에, 조개는 그 이치로 본다면 생문방(生門方)이며 중앙을성이라는 뜻이다. 결국 이 비결은 정읍(井邑)을 사이에 두고 자리를 잡고 있었던 도주님의 구태인(북동쪽) 무극도와 차경석의 대흥리(남서쪽, 현재의 접지리) 보천교 중에서, 조 씨 성을 지닌 도주님의 무극도가 생문(무극도는 북동쪽이니 생문이요, 보천교는 남서쪽이니 사문(死門)이다)04이며 따라서 도주님께서 진인이시라는 사실을 바둑의 백돌을 만들던 조개를 통해 밝혀 주고 있는 것이다.

 

상제님께서 조을(鳥乙)의 이치로써 조 씨(趙氏)를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암시하셨음은 지난 연재에서 소개한 바 있는데, 선돌부인에게 봉서를 맡기시는 과정에서도 다른 상징을 통해 진인이 조 씨임을 역시 암시하셨다. 그것은 바로 선돌부인에게 봉서를 맡기신 장소인 마동(馬洞)을 통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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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읍 마동 김기부의 집터 / 2014년 4월

 

선돌부인은 상제님의 여동생이다. 그녀는 고부 입석리에 사는 박창국에게 출가하였으나 10년이 넘도록 아이를 낳지 못해 소박을 당했다. 이에 상제님께서는 마동(馬洞)에 있는 김기부의 집에 선돌부인의 거처를 따로 마련해주시어 살게 하셨는데, 그때 상제님께서는 선돌부인에게 봉서(封書) 하나를 맡기시며, 앞으로 10년 뒤에 을미생이 정월 보름에 찾아올 터이니 꼭 전하라고 당부하셨다. 상제님께서 봉서를 마동에 숨기신 이유를 도전님께서는 바로 마동(馬洞)의 마(馬)가 조 씨를 뜻하기 때문이라고 아래와 같이 일러주신 바 있다.

 

 

“도주님께서 만주 봉천에서 봉천명 봉신교하신 후, 상제님께서는 태인으로

가라고 하셨는데 태안에 닿으셨다. 그래서 안면도(安眠島)로 가셨는데,

안면도란 편안할 안(安), 졸 면(眠), 섬 도(島)이니 잠깐 쉬어가는 데라는 말이다.

그 다음에 마동(馬洞)에 가셨으니, 마동은 말 마(馬), 동리 동(洞)이다.

말[馬]은 조 씨(趙氏)를 가리키는 말이니, 봉서를 받으신 곳이 마동이

되는 것이다.” (음력 1984.11.5)

 

“정읍 마동(馬洞)에서 선돌부인에게 봉서를 받으실 때,

후에 소태산(少太山)[박중빈(朴重彬): 1891∼1943, 원불교 교조]의

제자가 된 이가 먼저 와 있었다. 종통의 봉서를 받으려고 했으나

주인이 아니므로 받지 못했다. 마동(馬洞)의 마(馬)는 조 씨(趙氏)를 말함이다.”

(음력 1988.9.28)

 

 

다시 말해서, 진인이 조 씨이기 때문에 상제님께서는 조 씨를 상징하는 말[馬], 즉 마동(馬洞)에 봉서를 비장시키셨던 것이다.

 

 

도주님의 존휘는 철제(哲濟)

 

도주님께서 탄강하신 날짜는 12월 4일이다. “십이월은 축월(丑月)이니 도(道)요, 또한 4일은 4계절을 응하였다.”(음력 1979.윤6.22)는 도전님의 훈시를 통해 본다면 4일은 춘하추동의 사철을 의미한다. 4일이 ‘철’을 상징할 때, 그 ‘철’은 도주님의 존호를 떠올리게 한다. 『채지가』에 이와 관련된 내용이 있다.

 

 

당나귀야 당나귀야 너의 꾀를 내가 안다

네 아무리 그러한들 천운을 어길소냐

어미 잃은 어린아이 유인하여 몰아다가

저의 운수 망쳐놓니 한심하고 가련하다

반구제수 알련마는 어이 그리 철도 몰라05

 

 

당나귀는 정 씨(鄭氏)를 장난삼아 부르는 말이다. 鄭(정)이라는 한자를 쓸 때, 가장 먼저 적게 되는 획인 ‘八’이 당나귀 귀처럼 아래로 축 쳐져 있다고 하여 우스갯소리로 정 씨를 당나귀라고 한 것이다. 정 씨들은 이 말을 듣고도 자신들이 당나귀처럼 성질이 온순하다고 하여 오히려 이 장난을 즐겼는데, 혹 누군가가 鄭 글자의 처음 획을 八 모양으로 늘어뜨리지 않고 모양으로 그으면 당나귀가 성질났다고 놀리기도 했다.

 

『채지가』에서 당나귀의 꾀라고 함은 정 씨가 왕이 되어보고자 일을 꾸미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후기에는 『정감록』이라는 비결서가 널리 유행했고, 그 주된 내용은 이씨 조선이 멸망한 뒤에 정 씨가 계룡산을 도읍으로 하여 새로운 나라를 연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제님께서는 우리 겨레에서 정 씨가 왕이 되는 운수를 없앴다고 하셨고,06 또 어떤 사람이 계룡산에 정 씨가 도읍하는 비결에 대해 여쭈자 “정씨가 몸을 붙여 일을 벌일 곳이 어디에 있으리오. 그런 생각을 아예 버리라.”고 일러주셨으며,07 장차 동서양이 통일될 시대에 계룡산에 건국하는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도 하셨고,08 ‘짚으로 만든 계룡’이라는 속담을 인용하시며 정 씨가 도읍지로 삼는다는 계룡산은 짚으로 만든 허황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주기도 하셨다.09 『채지가』의 내용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데, 당나귀(정씨)가 조선의 뒤를 잇는 나라를 세우려고 어린 백성들을 몰아가는 것은 자신의 운수를 망치는 일로서 한심하고 가련한 일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앞으로 열릴 중요한 운수가 정 씨의 새로운 나라 건국에 있는 게 아니라 ‘반구제수’와 ‘철’을 알아야 한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반구제수는 ‘半口齊水’를 말한다. 앞의 두 글자인 ‘半口’에서 ‘半’은 절반(折半)을 의미하고 여기에 口를 합치면 ‘哲(철)’이 된다. 또 반구제수의 뒤쪽 두 글자인 ‘齊水’를 하나로 합치면 ‘濟(제)’가 된다. 따라서 반구제수(半口齊水)는 철제(哲濟)가 되니, 이것은 바로 도주님의 존휘이다. 결국 ‘철’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도주님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 된다.

 

이처럼 『채지가』는 정 씨가 나라를 건국하는 운수가 없으며, 반구제수 즉 철(哲) 자와 제(濟) 자를 존휘로 하는 분이 나오니 그 분을 따라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상제님께서는 “시속 말에 절후(節候)를 철이라 하고, 어린아이의 무지 몰각한 것을 철부지라 하여 어린 소년이라도 지각을 차린 자에게는 철을 안다 하고, 나이 많은 노인일지라도 몰지각하면 철부지한 어린아이와 같다 한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10 즉 상제님께서는 ‘철을 모르는 철부지’라는 관용적인 표현을 빗대어 도주님을 반드시 알고 따를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신 것이다.

 

도주님의 존휘에 ‘철(哲)’이 들어간 것은 철(哲)이라는 글자에 밝고 지혜가 뛰어나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더 본질적인 이유는 12월 ‘4’일에 이 세상에 오심으로 해서 봄·여름·가을·겨울의 사시사철로 운행되는 1년 12달의 도(道)를 완성시키시게 되기 때문이다. 또 도주님 존휘의 ‘제(濟)’가 상징하는 바는 구제창생(救濟蒼生), 제생의세(濟生醫世)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 두 의미를 합치면, 도주님의 존휘에 담긴 글자 뜻은 도를 완성시켜 창생을 구제한다는 것이 된다.

 

      

도주님의 존호는 정산(鼎山)

 

도주님의 존호는 정산(鼎山)이시다. 이에 대해 도전님께서는 이렇게 훈시하셨다.

 

 

상제님께서 강세하신 곳은 손바래기, 객망리, 시루산, 증산이다. 시루에는 솥이 들어가야 한다. 이런 것을 비기(秘記)라 하는 것이다.(음력 1990.12.28)

 

상제님의 존호는 증산(甑山)이신데, 시루[甑]는 반드시 솥[鼎]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도주님의 존호는 정산이 되시는 것이다.

또 도전님께서는 이런 훈시도 내리셨다.

 

 

상제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강세하시기 전에 금산사 미륵불에 임하여 계셨다. 솥 위에 시루가 있는데 솥 위에 미륵불을 세우고, 좌우에 보호불을 세우고 또 그 옆에 작게 두 개 보호불을 더 세웠다. 그래서 출자(出字) 형상이니 양산(兩山)이고, 그게 증산, 정산이다. 상제님께서 화천하실 때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너라.”고 하신 말씀은 미륵금불을 보라고 한 것이 아니고 그 진리를 찾아서 오라는 말씀이다. 다른 데서는 모두 미륵금불에 계신 줄 안다. 그게 미륵을 따르라는 얘기지, 절에 오라는 얘기가 아니다.(음력 1990.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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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년 전, 진표율사가 계시를 받아 전북 김제의 금산사에 미륵불을 조성할 때, 깊은 물웅덩이[용추(龍湫)]를 숯으로 메우고 솥을 올려놓은 뒤에 미륵상을 봉안하였다.11 이 미륵상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1627년에 좌우로 하나씩의 협시불을 두어 뫼 산(山) 자 형상의 삼존불 모양으로 복원되었다. 상제님께서 강세하시기 전에 임어해 계셨던 미륵불이 바로 이 삼존불 가운데의 본전 미륵상이었다. 1934년에 원인 모를 화재로 미륵상이 소실되었는데, 그때 미륵전과 좌우의 협시불은 전혀 타지 않았다고 한다. 1938년에 다시 미륵불이 복원되었는데, 지금은 뫼 산(山) 자 모양의 삼존불에 좌우로 각각 하나씩의 보살상이 더 추가되어 전체적으로는 날 출(出)자 모양을 하고 있다.12 출(出)은 산(山)과 산(山)이니 역시 양산(兩山)이다. 상제님께서는 이 미륵금불을 양산도(兩山道)라고 이름 지으시고 세속에 전해지는 양산도와 비유하곤 하셨다.13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시속에는 양산도 타령이라는 유명한 민요가 전해지는데, 그 후렴구 중에는 ‘에라 놓아라, 아니 못 놓겠네, 능지를 하여도 못 놓겠네, 에헤이예’라는 구절이 있다. 그러니까 능지처참을 당해도 양산(兩山), 이 줄만큼은 절대 못 놓는다는 것인데, 그 양산이란 바로 시루와 솥인 증산(甑山)과 정산(鼎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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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 미륵전의 미륵불. 좌우 협시불과 보살상들을 합쳐 出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정(鼎), 솥의 의미

 

그런데 왜 솥인 것일까? 상제님께서 시루의 이치로 오신 것에 대해 시루에는 우주 모두를 담을 수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그릇이라는 상징이 들어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주님께서 솥의 이치로 오시는 것에도 어떤 상징이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무릇 시루가 그 쓰임새를 다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솥이 있어야 하는 법이니, 도주님께서 솥의 이치로 오심은 당연한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솥에는 중요한 상징적 의미가 더 있음을 다음과 같이 찾아볼 수 있다.

 

『주역』의 괘상에 정괘(鼎卦)가 있다. 리상(離上) 손하(巽下)의 정괘(鼎卦)는 화풍정(火風鼎)이라고 하는데 주역 64괘 가운데 50번째에 해당한다.14 정괘가 상징하는 바를 이해하려면 『주역』의 <서괘전(序卦傳)>을 통해 그 전 괘와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 필수적이다.15 정괘 앞의 괘는 49번째 혁괘(革卦)인데 『주역』의 <서괘전>은 그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井道不可不革 故受之以革 革物者莫若鼎 故受之以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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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우물의 도(道)는 변혁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16 혁(革)으로써 받았고, 물건을 변혁함은 가마솥 만함이 없으므로 정(鼎)으로써 받았다”는 뜻이다. 혁괘는 태상(兌上) 리하(離下)인데 태(兌)는 못이므로 물이고 리(離)는 불이므로 불 위에 물이 있는 모양이다. 결국 물은 아래로, 불은 위로 나아가 서로 멸(滅)하니 혁(革)인 것이다. 하지만 서로 상극인 물과 불을 통해 사물이 변혁되기 위해서는 이 둘을 서로 합해서 쓰임이 되면서도 서로 해치지 않아야 하는데 바로 여기에 솥, 즉 정(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상극인 물과 불을 상생으로 조화시키는 것이 바로 정(鼎)이다. 실제로 솥 안에 물을 넣고 아래에서 불을 지피면 수화가 상생하여 실로 다양한 사물의 변화를 이룰 수 있었기에 인류의 삶에서 솥은 필수적인 용기였다. 그러므로 주역은 ‘변혁하는 데에는 솥만한 것이 없다’고 하여 정괘를 길하며 형통하다(鼎, 元吉, 亨)고 풀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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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솥과 시루

 

상제님께서 현무경에 쓰신 “水生於火 故天下無相克之理”17와 이치안의 집에 쓰신 ‘고견 원려 왈지(高見遠慮曰智)’의 “水生於火 火生於水 金生於木 木生於金 其用可知然後 方可謂神人也”18의 글은 ‘水生於火, 火生於水’의 수화(水火) 상생(相生)을 쓸[用] 수 있어야 가히 신인(神人)이라 할 수 있으며 천하(天下)의 상극(相克)을 없앨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수화(水火) 상생(相生)은 솥, 즉 정(鼎)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도의 진법을 짜신 도주님께서 정(鼎), 즉 솥의 이치로 오시는 것은 필연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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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에는 이외에도 다른 상징적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솥이 하늘과 통하는 왕권을 상징한다는 점이다. 고대의 동양에서는 하늘과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을 매우 신성하게 생각했고, 하늘에 제사하는 제기(祭器)의 대표는 솥이었다. 그러므로 솥은 곧 그 나라를 상징했다. 국운(國運)을 정운(鼎運)이라고 하는 것이나, 천문을 볼 때 솥별[鼎星]이 흔들려 보이면 나라가 불안하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솥이 나라를 의미하다보니 자연스레 왕권도 상징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왕권은 천자가 하늘에 제사를 지냄으로써 하늘과 소통하는 것을 의미했다. 옛날 은나라에서 7년 동안의 큰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고초를 겪자, 당시 임금이었던 탕이 세 발 달린 초대형 솥을 걸어놓고 하늘에 빌어 비를 얻어내었다는 이야기는 임금이 솥으로써 하늘과 소통한다는 것을 말해준다.19 이런 상징을 품은 솥이기에, 상제님과 계시로써 소통하며 상제님의 뒤를 이으실 도주님께서도 솥의 이치로 오신 것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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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교운 2장 1절.

02 『채지가』 「초당의 봄꿈」 (1978), pp.9-10.

03 둘째 천간 을, 굽을 을, 생선 창자 을(『漢韓大字典』, 민중서림, 2006판, p.116).

04 원래 팔문의 배치는 북동-생문(生門), 동-상문(傷門), 동남-두문(杜門), 남-경문(景門), 서남-사문(死門), 서-경문(驚門), 서북-개문(開門), 북-휴문(休門)이다.

05 『채지가』 「초당의 봄꿈」, pp.10-11.

06 권지 2장 29절.

07 교법 3장 39절.

08 교법 3장 40절.

09 예시 65절.

10 공사 3장 34절.

11 『택리지』에 따르면 모악산 남쪽에 있는 금산사는 본래 그 터가 용이 살던 못으로서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는데, 신라 때 진표율사가 이곳에 와서 용을 쫓아내고 터를 닦아 그 자리에 대전(大殿)을 세웠고, 대전 네 모퉁이 뜰 아래서 가느다란 간수(澗水)가 주위를 돌아 나왔다고 한다.

12 김성수, 「진표율사와 미륵신앙」, 『상생의 길』 3 (2004), pp.16-18.

13 예시 15절.

14 이것이 도주님의 ‘50’년 공부 종필을 연상시키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15 실제로 『周易傳義大全』에서는 모든 괘의 설명을 서괘(序卦)로 시작하고 있다.

16 혁괘(革卦) 이전의 괘는 정괘(井卦)인데 『周易傳義』는 우물은 놔두면 더러워서 못쓰게 되고 바꾸면 맑고 깨끗해지니 불가불 혁할 수밖에 없다고 두 괘의 관계를 설명한다.

17 교운 66절.

18 제생 43절.

19 『한국문화상징사전』 1 (서울: 동아출판, 1996), pp.443-446.  

<대순회보 1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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