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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진묵의 초혼(招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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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1.05 조회4,0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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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대순종교문화연구소

 

  1905[乙巳]년 8월, 상제님께서는 고부 입석리(立石里)에 사는 매제(妹弟) 박창국(朴昌國)의 집에 이르셨다. 이때 창국의 부인이자 상제님의 누이동생인 선돌부인(입석리에는 立石 즉 선돌이 있으므로 선돌부인이라 불림)이 맨발로 풀밭을 걸어 다니는 것을 보시고는 “이 근처에 독사가 있으니 독사가 발을 물면 어찌하느냐.”고 걱정하셨다. 그리고 휘파람을 한 번 길게 부시니 큰 독사 한 마리가 담장 밖의 풀밭에서 뜰 아래로 들어와 머리를 드는 것이었다. 마침 상(喪)을 치르고 있던 창국이 바깥에서 들어오다가 이 독사를 보고 크게 놀라 짚고 있던 상장(喪杖)01으로 뱀을 쳐 죽여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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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을 보신 상제님께서는 “毒蛇兮 毒蛇兮 喪人見之 喪杖打殺 道僧見之 禪杖打殺…02(독사여, 독사여, 장례를 치르는 사람이 보면 상장으로 때려죽이고, 수도승이 보면 선장[禪杖: 승려의 지팡이]으로 때려죽이는구나.…)”이라고 이르셨다. 또 “누이는 상장도 선장도 없으니 무엇으로써 독사를 제거하리오?” 걱정하시고는 누이가 맨발로 땅에 묻어있는 독사의 피를 밟으면 해를 볼까 손수 그것을 밟아서 독기를 제거하셨다. 이로부터 상제님께서는 며칠 동안 수둥다릿병03을 앓으셨다. 이것도 어떤 공사이지만 그 내용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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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뒤 동곡에 있던 김형렬(金亨烈)이 입석리에 계시는 상제님을 배알하고자 찾아왔다. 마침 상제님께서 회복되셨으므로 형렬의 안내로 하루 20∼30리씩 걸어 북쪽으로 약 150여 리 떨어져 있는 함열(咸悅) 회선동(會仙洞) 김보경(金甫京, 1860~1934)의 집에 가서 지내셨다. 

  상제님께서는 함열에 머무시던 가을 무렵 중요한 공사를 하나 처결하셨으니 바로 진묵( , 1562~1633)의 초혼(招魂)이었다. 이 공사가 시행된 장소는 회선동에서 남쪽으로 약 30리 떨어져 있는 익산군(益山郡) 만중리(萬中里) 정춘심(鄭春心)의 집이었다. 정춘심의 아들 정성백(鄭成伯)은 김형렬의 큰딸과 결혼하였으니, 정춘심은 김형렬과 사돈지간이 된다. 

  상제님께서는 춘심에게 선제(船祭)를 지낸다고 하시며 쇠머리 한 개를 사 오도록 하셨다. 그리고 글자가 없는 백지 한 권을 세로로 잘라 일일이 풀로 다 이어 붙이시고는 두 덩어리로 둘둘 말아 각각 그릇에 담아두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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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이 되자 상제님께서는 창문에 구멍 2개를 내시고 쇠머리를 삶아서 문 앞에 두신 후, 형렬과 김광찬(金光贊)이 문밖에서 종이 덩어리를 하나씩 풀어서 창구멍으로 들여보내게 하셨다. 상제님께서는 창구멍으로 들어오는 종이를 다시 마셨는데, 종이를 다 마시자마자 갑자기 천둥과 같은 큰 기적 소리가 터져 나와 마을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이어 상제님께서는 형렬의 맏사위 성백에게 젖은 나무 한 짐을 부엌에 지피게 하여 기선(氣船)처럼 연기를 내게 하시며 “닻줄을 풀었으니 이제 다시 닻을 거두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갑자기 형렬과 광찬, 성백, 소진섭(蘇鎭燮), 김덕유(金德裕), 김갑칠(金甲七)은 현기증을 느끼고 구토하거나 설사하며 쓰러졌고, 건넌방에 있던 성백의 가족들도 모두 쓰러졌다. 갑칠은 아예 의식을 잃고 숨도 쉬지 못하였다. 상제님께서 친히 청수를 갑칠의 입에 넣어주시고 그의 이름을 부르시니, 그는 곧 깨어났다. 이어 차례차례로 종도들과 성백의 가족들에게 청수를 뿌리거나 마시게 하시니 모두들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덕유는 폐병의 중기에 시달리던 몸이었으나 이 일을 겪은 후 폐병이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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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공사는 ‘진묵의 초혼’이라고 알려져 있다. 진묵은 조선 중기의 고승으로 많은 기행 이적을 남겨 석가모니의 화신으로까지 불렸으나, 김봉곡(金鳳谷, 1573~1661)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뒤로 동양의 도통신을 거느리고 서양에 건너가 문화 계발에 역사 한 인물이었다. 이제 상제님께서는 진묵의 혼을 다시 고국으로 불러들이시고는 후천 문명 건설에 역사케 하셨으니, 이것은 진묵의 원을 풀어주시기 위함이었다. 상제님께서는 선제(船祭)를 지내시며 닻을 거둔다 하셨는데, 닻이 거두어졌으니 이제 배는 출항을 할 것이었다. 신명이 서양에서 우리나라로 넘어오려면 배를 타고 오는 법이니,04 아마도 도통신들과 함께 서양에 가 있던 진묵은 상제님께서 출항시키셨던 배를 타고 도통신들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대순회보> 1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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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상례(喪禮) 때 짚는 지팡이. 대개 부친상에는 대막대기, 모친상에는 오동나무 막대기를 쓴다.

02 이때 상제님의 말씀은 ‘…禪杖打殺’까지만 전해지고, 뒤이어서 하신 말씀이 있다고 하나 전해지지는 않는다.

03 다리가 퉁퉁 붓는 병. 수종다릿병이라고 한다. 수종(水腫)은 신체의 조직 간격이나 체강(體腔) 안에 림프액, 장액(漿液) 따위가 많이 괴어 있어 몸이 붓는 병이다.

04 상제께서 매양 뱃소리를 내시기에 종도들이 그 연유를 여쭈니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우리나라를 상등국으로 만들기 위해 서양 신명을 불러와야 할지니 이제 배에 실어오는 화물표에 따라 넘어오게 되므로 그러하노라.”고 하셨도다.(예시 2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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