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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하는 조상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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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소연 작성일2018.03.12 조회5,3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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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9 방면 선무 주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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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 윈프리가 자신의 25년간의 TV 토크쇼 경험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언제나 무대에 올라 청중 앞에 설 때면 난 혼자가 아니라 수백 명의 존재가 내 뒤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오래전 흥행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뮬란이 아버지를 대신해 남자로 변장해 전쟁에 나가게 되는데 그런 뮬란의 행보에 그 집 조상신들이 대책 회의를 한다. 그리고 뮬란을 도와 집안을 일으킬 대표 조상신을 선출해 뮬란을 따라가게 한다.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뮬란뿐만 아니라 뮬란을 도운 조상신 뮤슈도 그 공을 인정받아 잃어버렸던 수호신의 지위를 되찾는다.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였지만 당시 난 이 부분을 무덤덤하게 지나쳤다. 조상을 잘 모셔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였기 때문이다.

 

방황하던 20대 초반, 선각과 인연이 되어 입도치성을 하고 수련을 시작한 것은 ‘조상님’과 ‘집안’에 대한 알 수 없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종단의 명칭이 대순진리회라는 것을 안 것이 입도하고 1년 후이니 나의 대책 없는 무지는 물론이고 당시 내가 얼마나 내 삶에 무관심했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3여 년간 포덕을 하고 수도한다고 열심이었던 것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하늘에서 잘 되시고, 내가 수도를 잘해야 집안이 잘 된다는 선각들의 말 때문이었다.

 

내가 집안의 대표자라고 했기 때문에 난 왠지 빠져나갈 수 없는 미로 속에 갇힌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그때는 나와 조상님은 별개였다. 난 왠지 하기 싫고 어려운 일을 떠맡은 희생양이 된 기분이었다. 무당들이 처음 내림굿을 받을 때도 그런 기분일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따로 있는데 조상과 집안을 위해 싫어도 꾹 참고, 또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도 ‘아버진 몰라서 그러셔, 나중엔 날 인정하실 거야.’라며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 그대로 ‘대순(大巡)’의 ‘대’ 자도 모르면서.

 

그런 무지와 무관심의 대가는 혹독했다. 희생양이라고 생각하며 나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의로 하는 일은 당연히 오래가지 못했을뿐더러 그 후유증도 컸다. 연락소에서 도망치다시피 나온 후 15여 년간은 공자께서 말씀하신 ‘곤이지지(困而知之)’의 세월이었다. 학이지지(學而知之)가 안 되니 몸으로 고생해봐야 했던 것이다. 조상신들께선 아마도 그러셨을 것이다. “아이구, 저놈이! 데려다주고 사람을 붙여 가르쳐줘도 모르니 답답하네... 어쩔 수 없지, 기다려봅시다.” 베란다 이중 창문 사이에 갇힌 벌레를 밖에 나가게 해주려고 이리저리 안내를 해줘도 자꾸 안으로 들어가는 ‘저 바보 같은 벌레’를 바라보는 나처럼 말이다.

 

벌레는 비유가 좀 심하지만 이것은 유튜브에서 봤던 ‘2차원과 3차원’ 영상과 같다. 2차원의 평면 원이 3차원 입체에서 온 사람의 존재가 무서워서 놀라며 ‘귀신이다’라고 외치며 도망간다. 2차원의 평면 원에게 3차원의 입체는 생각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조상선령신의 세계 또는 신명의 세계는 사람의 이면에 존재하지만 3차원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명의 세계를 막연한 두려움이나 판타지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상제님께서 괴롭기 한량없으나 어쩔 수 없이 인세에 내려오신 것도 바로 이 인간 세계와 신명 세계의 연계가 어그러졌기 때문이 아닌가.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곤이지지’라도 할 수 있던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몸으로 겪어도 몰랐으면 아마 기약할 수 없는 다음 생을 기다려야 할 극단적 상황에 몰렸을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인내심을 가지고 나를 이끌어주시고 지금도 내 옆에 계실 조상선령신과 한결같이 그 자리에 계셔준 선각께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또한 나의 곤이지지를 위해 내 인생에 참여해준 분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곤이지지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가 그렇게 위대한 말인 줄을 이제야 조금 알겠다.

 

의무로 느껴졌던 대순진리회 수도 말고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일이 이 지구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여 그렇게 속세로 나아갔다. 아버지 회사의 부도, 학업 중단, 빚더미로 인한 부모님의 도미(渡美), 직장생활의 시작, 도피에 가까운 결혼으로 이어졌다. 소용돌이 같이 흐르는 세월을 내가 누군지 모른 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다른 사람들이 원하니까, 또는 그렇게 사니까 나도 그렇게 묻혀서 살았다. 그런 시간이 쌓이자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했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아무것도 잘하지 못한다는 나에 대한 좌절감이었다. 인간관계도 그랬다. 직장 동료나 친구, 심지어 가족과 있어도 난 항상 뭔가 기름처럼 둥둥 떠서 진정으로 그들과 마음을 나누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난 어딘가에 끼고 싶어서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 바로 내 마음을 숨기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었다.

 

나를 속임으로써 가장 큰 원을 지은 것은 배우자였다. 인륜지대사라는 결혼을 그렇게 도피하듯 해버린 것은 나와 남편에게도 큰 잘못이지만 이 세상 전체에도 좋지 않은 일이었다. 행복하지 않은 결혼은 행복하지 않은 가족을 낳고 행복하지 않은 가족은 행복하지 않은 사회를 낳는다는 것을 난 몸소 겪으며 배워야 했다. 음양합덕 중 부부간의 음양합덕이 첫 번째라는 것을 뼈아프게 느낀 점은 특히 아이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였다.

 

아이를 키워야 하니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해도 남편은 반대했다. 매일 아침 우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저녁에 헐레벌떡 찾으러 가는 워킹맘 생활을 10여 년 넘게 전쟁처럼 하면서 가장 고생을 한 것은 딸이었다. 매일 엄마가 없이 혼자 밥을 챙겨 먹고 학원을 가는 것도 모자라 엄마 아빠는 심심하면 싸웠던 것이다. 싸움의 정도도 심해져서 나중에 어린 아들은 이불 속으로 들어가 울고 조금 커서 익숙해진 딸은 혀를 끌끌 차며 “그냥 이혼해.”라고 할 정도로 냉소적이 되었다. 우린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는 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교육은 애들이 아니라 어른이 다시 받아야 한다.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고 하늘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부모가 자식을 낳아 키우는 상황이 얼마나 황당하며 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지나온 나를 보면서 뼈저리게 느낀다. 내가 다시 대순진리회에 돌아오고 나서도 아이들은 내가 만들어놓은 문제들을 푸는 과정에서 또 고생했다. 자식도 부모와 같이 수도를 한다는데 내 아이들로 온 존재들은 이런 일을 감내하며 살아가니 나보다 훨씬 기국이 큰 것 같다.

 

되돌아보면 그래도 그 과정에서 남편은 늘 나를 안주하지 않게 하는 자극제 역할을 해주었다. 즉, 우리는 서로를 가장 힘들게 하며 적나라하게 상대방을 비춰주는 거울이었다. 어쩌면 남편은 내가 대순진리회를 다시 찾고 내가 원하는 것을 알게 해준 최고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다. 나를 힘들게 하면 할수록 난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스스로 나를 더 나아지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역회사를 그만두고 학교에 다녔고, 나이제한이 없는 조건 때문에 공무원시험을 보아 행정직 공무원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목적이 단지 돈 버는 것이었으므로 내가 진정 원하는 것 또는 내 사명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곤이지지의 과정은 더욱더 심각해졌다. 나의 삶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삶의 목적이 없었기 때문임을 그때까지도 몰랐던 것이다.

 

남편과의 관계, 직장에서의 문제, 재정적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 모든 상황이 나에게 적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개명을 하면 좋아질까 해서 이름을 바꾸었는데 남자 이름 같았는지 인사이동을 하면서 보통 남자가 했던 노숙자 관리와 무연고 사망자 처리를 하게 되었다. 물론 이름 때문만이 아니라 유능한 직원으로 꼽히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냄새가 10미터 이상까지 진동하는 병든 노숙자를 데리고 병원을 돌아다니며 수술을 시키고 연고자를 찾아내기도 하고, 길에서 죽은 사망자가 나타나면 장례식장 담당자와 함께 사진을 찍어 보고서를 쓰고 처리했다. 난 왜 이럴까 하면서도 그 일을 하는 동안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면서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모든 상황이 완전히 바닥이라고 느껴지던 때 선각께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여 년간 연락을 하지 않았는데 머릿속에 전화번호가 떠올랐다. 선각은 내 하소연을 들으시고는 ‘흥부와 놀부’ 이야기를 해주셨다. 지구라는 연극판에서 이 역할 저 역할을 하는데 누구나 피하는 놀부 같은 악역을 기꺼이 해주는 사람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일 거라고 하셨다. 그 이야기가 정말로 이해되기까지는 1년 정도가 더 걸렸던 것 같다.

 

선각을 만나긴 했지만 그냥 마음의 위로만 받고 싶었지 도담은 듣고 싶지 않았다. 그 뒤로 선사께선 2년 동안 매주 내가 일하는 직장으로 찾아와서 “제발 하지 마세요!”라는 나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도담을 해주고 자료를 주셨다. 우리 선사의 그런 조건 없는 정성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 선사의 정성이 없었다면 난 어둠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 말라는데도 그렇게 계속 내게 도담을 해주시더니 어느 날은 드디어 효과가 있었다. 방면의 어느 상임원께서 자막을 번역해 소개하셨다며 데이빗 윌콕의 ‘황금시대’ 과학영상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것을 본 나는 바로 선각께 내색은 안 했지만 완전히 커다란 망치로 머리를 ‘땅’ 하고 맞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 자신의 공부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 누가 하라고 해서가 아니라 내가 정말 알고 싶어서 하게 된 공부는 정말 재미있었다. 데이빗 윌콕의 웹사이트를 찾아 그 사람의 책을 읽으면서 하늘의 현상이 땅과 인간의 삶에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천지 대신명의 이름을 다 담은 대순진리회의 주문이 대단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데이빗 윌콕도 보지 못하는 측면이 있는데 그 당시엔 나를 일깨워준 고마운 분이었다. 각자가 무언가를 알게 되는 계기는 다 인연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할 때 멀리 계신 그분과도 어떤 인연이 있을 것이다.

 

회관에 와서 매주 주일 기도를 모시는 것으로 다시 대순진리회에 오게 되었다. 그때는 걷다가 길 한복판에 서면 정말 모든 것이 나를 향해 ‘일러주고 가르쳐주고’ 있는 것 같았다. 겨우 어둠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는 상태였지만 어렴풋이 불교에서 말한 ‘돈오점수’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소리, 이미지들, 책이든, 드라마나 영화든 모든 것이 다 내게 “깨어나라.”고 오래전부터 외치고 있던 것을 그제야 알아차린 것이다. 그것이 다 나의 조상선령신들과 여러 천지신명께서 마련해 놓고 안내해주신 것임을 그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도 서서히 실감하는 중이다.

 

하지만 조금 알게 된 것과 현실로 풀어나가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가장 크게는 가족 관계의 문제부터 내가 어둠 속에 있을 때 만들어놓은 여러 문제를 선각들께선 대순진리로 푸는 법을 알려주셨다. 대순진리회의 수도법방이 다른 종교와 다르다고 느낀 부분은 실천 법방이다. 모든 문제는 어떤 대단한 형이상학의 원리로 푸는 것도 아니며, 저 높은 4, 5차원이 아닌 바로 이 3차원 인간의 세계에서 ‘인간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이면을 생각하여 남을 이해하고, 서운하게 하지 말고 사랑과 친절로 대해줘서 잘 되게 하고, 받은 은혜는 반드시 갚고 살면 서로 잘살게 된다는 ‘해원상생’과 ‘보은상생’의 원리는 정말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혼자가 아니라 반드시 인간관계 속에서 가끔은 지지고 볶기도 하면서 상생으로 풀어가는 것이다. 『전경』에 나타난 상제님의 인간적 행적들이 그 모범 답안이었다.

 

방면 선감께서는 ‘호오포노포노’의 원리를 알려주셨다. 책을 읽고 배우며 조금씩 연습해 보면서 알게 된 것은 “다 내가 한 것이고 또 푸는 것도 나”란 사실이었다. 난 전혀 누구의 피해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호오포노포노를 개발한 휴렌 박사가 문제를 해결한 방법은 다른 누가 아닌 ‘나’를 향해 “미안합니다, 용서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말해서 ‘나’를 정화시킨 것이었다. 이것은 해원상생의 첫 번째 단계, 즉 나에 대한 해원상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보고 배웠던 것들은 막상 상황을 맞닥뜨리면 생각이 나지 않기 일쑤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매번 잊어버렸다가 다시 생각나서 ‘아차’ 하며 이마를 때렸다.

 

그리고 돌아온 탕자처럼 사람이 되는 법을 다시 처음부터 배웠다. 수도인들이 회관을 청소하는 모습, 식사할 때나 설거지할 때도 쌀 한 톨 안 떨어뜨리는 것 등을 하나하나 보면서 이제까지의 생활 태도를 반성했다. 그전까지 청소는 가장 귀찮은 일 중 하나였고, 밥은 다이어트 한다면서 늘 남겨 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소림사 영화에서 항상 신참에게는 청소를 시키고, 『소학』에서도 교육의 첫 번째를 마당을 쓰는 것으로 삼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반성했다. 그전까진 겉으로 친절하지만 속으로는 “난 너와 달라.” 하면서 분리를 시켰었다. 하지만 끼리끼리 모이게 되어있으며, 만날 사람은 만나는 것이고, 난 상제님의 도를 알리는 사람이었기에 더 이상 이중적일 필요가 없었다. 또한, 개미 한 마리도 밟을까봐 조심하시고, 방에 들어온 벌레는 조심스럽게 종이로 떠서 밖에 보내시는 선사를 보면서 모기 외에 벌레는 죽이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여러 상황 끝에 남편과 법적으로 헤어지게 된 후 둘 다 각자의 이유로 한참 동안을 괴로워했다. 아이들이 힘들어 한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부부간의 음양합덕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것에 난 대순진리회 수도인으로서 자격이 없을 뿐더러 앞으로 포덕도 못할 것이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런 나에게 누군가 “끊으려고 해도 이어지는 인연이 있고, 이으려고 해도 끊어지는 인연이 있다. 다 인연의 시간이 있다”는 말을 해주셨다.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있으면서 예전 일은 그만두었기 때문에 새로 일을 해야 했는데 갑자기 언니가 정수기 코디를 해보라고 권했다. 엉겁결에 교육을 받고 정수기 코디가 되었다. 무거운 필터를 자전거 뒤에 싣고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며 정수기 필터를 갈고 비데 청소를 하러 다녔다. 그런데 그 일은 월급제가 아니라 물건을 팔아야 돈을 버는 일이었다. 영업을 못하는 난 결국 번 것도 없이 선감께서 빌려주신 자전거만 잃어버리고 그만둬야 했다. 하지만 가끔은 바퀴벌레도 나오는 집, 엄청난 화장실이 있는 집에 가서 정수기와 비데를 열심히 닦으면서 내가 배우자에게 잘못한 것들을 뉘우치고 닦는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그러면서 드라마틱한 상황들은 점차 사라져 갔다. 조금씩 내가 하고자 했던 일을 찾아가게 되었고 회관 일을 보면서 새로운 후각 분들을 만나게 되었다. 선사께선 외수셨지만 친정엄마처럼 나를 도와주셨고, 선감의 남다른 배려로 우리 방면에서 훌륭한 진리 교화를 많이 듣고 배울 수 있었다. 막연히 알고 있던 대순진리를 『전경』, 『대순진리회요람』 등 기본 경전들을 통해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배우면서 내가 정말 대순진리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대순진리회의 수도를 하는 것이 내겐 가장 기쁘고 즐거운 일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알기까지 그 먼 길을 돌아온 것이다. 그 길은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기쁨’이 내 갈 길을 정하는 기준이라는 어느 강사분의 교화가 가슴에 남았다. 어떤 기로에서 내가 진심으로 기뻐하는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 맞는 말이었다. 그 기쁨은 영의 마음이라고 하셨다. 영은 나를 구성하는 가장 근원적 본질이며 수도의 목적이 영통의 통일이듯, 영은 결국 상제님으로 연결된다. 상제님께선 혼과 백으로 된 사람은 죽으면 혼은 하늘로 올라가 신이 되고 백은 땅으로 돌아가 귀가 된다고 하셨다. 수천 년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 수많은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동안 그 혼과 백도 그렇게 순환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손은 조상 선령신이 60년 공을 들여 타내며, 이제 해원시대를 맞이하여 선자 선손을 내세우신다고 하셨고, 각 성의 선령신이 한 명씩 천상 공정에 참여하여 기다리고 있다고 하셨다. 대순진리회만큼 인간사를 음양으로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곳이 없다는 것을 보았고, 왜 조상 선령신을 예우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 오랜 역사 속에 수없이 많은 사람의 혼과 백이 순환하며 쌓인 경험과 지혜가 현재 선령신들이 타내시고 내세운 자손, 즉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배워야 할 것은 끝도 없어 보이고 수도의 길도 까마득하다. “여천지동(如天地同)”이 되는 경지가 어떨지는 『대순진리회요람』과 『전경』에 있는 글귀로 보긴 하지만 상상하기 쉽지 않다. 또한, 다른 아이들처럼 행복하고 사랑 넘치는 어린 시절을 주지 못한 딸과 아들에게 그 쌓인 원도 계속 풀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정말 다행인 것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조상선령신과 함께한다는 점이다. 내가 이만큼 온 것, 아이들이 그 속에서도 건강한 것이 조상들의 도움이라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수많은 존재가 자기 뒤에서 함께 서있다는 오프라 윈프리의 말에 완전히 공감한 것은 이제 나도 조상님과 내가 별개가 아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화관에서 어느 스포츠웨어 광고를 보았는데 서로 다른 옷을 입은 여러 사람이 한 사람으로 합쳐지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선 사람들이 하나로 합쳐진다기보다는 그 얇은 옷 한 벌이 그만큼 여러 기능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장면을 본 나는 오랜 시간을 거치며 다양한 역할을 맡아 많은 일을 해오신 수많은 조상들이 현재 인간의 몸으로 온 나에게 합쳐져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하는 생각,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내가 가진 몸의 특성, 유전자도 그 모든 시간 속을 살아온 조상들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휴대폰을 새로 사면 처음엔 최초의 기본 구성 외엔 아무것도 없다. 그러다가 살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필요에 따라 새로운 앱을 깔고, 자료도 저장하면서 핸드폰은 수많은 정보를 지니게 된다. 그렇게 휴대폰은 그 사람의 역사가 된다. 휴대폰 용량이 부족하거나 고장이 나면 업그레이드된 휴대폰을 사서 기존의 정보를 옮기고 또 새로운 정보가 추가된다. 인간의 역사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을 거듭하며 정보를 업그레이드시켜 온 것이다. 그리고 거기엔 나 이전 조상들의 발자취가 다 들어있다.

 

최고로 업그레이드된 휴대폰이 이젠 완전히 다른 형태로 나오는 것처럼 인간도 상제님의 공사로 이제 완전히 새롭게 개조되는 시점에 있다. 이렇게 나란 존재는 상제님의 주재하에 그 오랜 역사와 세월을 살아온 조상들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조상이 하고 싶으신 것이고 조상이 원하시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다. 조상들이 나를 볼모로 잡아 억지로 무엇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 선사께선 자판기 커피를 마시기 전에도 20초 동안 식고를 드려서 ‘너무 오버하신다’고 생각도 했지만 덕분에 나도 자연스럽게 식고 드리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식고를 드릴 때 ‘조상님, 함께 흠향하십시오’라고 하고, 치성이나 기도를 모실 때도 조상들과 함께한다고 생각하라는 선각 말씀을 이제야 조금 알게 되었다.

 

실제로 최근의 진화론은 사회학, 심리학, 생물학, 유전학 등 여러 분야로 확대 연구되고 있는데, 인간의 DNA는 과거의 모든 조상들의 흔적을 다 담고 있다는 내용을 어느 책에서 본 적이 있다. 또한 그 DNA는 단지 생물학적 또는 육체적 특성이 아니라 심리적, 의식적 특성까지 다 담고 있다. 인간은 육체만 가진 존재도 아니고 몸과 마음, 영으로 된 존재라고 한다. 따라서 한 사람의 데이터베이스라고 할 수 있는 DNA는 당연히 육체적, 의식적 특성을 다 담고 있을 것이다. 내 안에 주(朱) 씨 집안의 조상들이 계시고, 더 위의 조상이 계시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상제님의 씨앗이 내게 담겨 있다는 것이 이제는 생물학적, 유전학적으로도 증명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다 그럴 것이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오늘 내 곁을 스쳐가는 모든 사람이 그 엄청난 시간과 역사를 담고 있는 위대한 존재들인 것이다. 해원상생은 그 모든 시간을 정리하고 새로 시작하는 이 시점에 반드시 우리가 해내야 할 역사적 사명이 아닐까 싶다. 그 사명을 위해 “저 별은 나의 별”이란 노래 가사처럼 정말 우리 각자는 한 행성을 대표해서 여기 온 것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처럼 이 세상에 백만 송이 사랑의 꽃을 피우는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대순회보 1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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