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 수호에서 느끼는 행복한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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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혜영 작성일2018.03.28 조회5,107회 댓글0건본문
원평1-15 방면 선무 남혜영
작년 여름, 나는 하지 치성을 모시고 여주본부도장에 수호를 서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 또 여름이 다가오니, 작년 여름부터 올 봄, 그렇게 사계절을 도장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내게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다시 올 수 없는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처음 도장 수호를 올 때 몸이 좋지 않은 상태였는데, 방면 선감께서 기도 모시고 수호를 서면서 정성을 드리면 몸에 좋겠다고 하셔서 오게 되었다. 몸도 몸이지만 내 마음의 근력도 너무나 약해져 있었다. 왠지 모르게 움츠려들고 날카롭게 마음의 날을 세우고 있던 때였다.
작년 여름의 일이다. 풀매기 작업을 나갔는데 그렇게 크고 넓은 밭은 처음이었다. 온통 푸르고 향긋한 풀, 그 내음을 맡으며 작업을 하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참 드시고 하세요.”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숨이 턱턱 막히고 목이 바짝바짝 말라올 때쯤 들려오는 너무도 반가운 소리였다. 빨갛게 잘 익은 수박과 물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이 갈증을 시원하게 날려 버렸다.
삼채밭, 감자밭 등 가는 곳마다 여러 명이 함께 웃음 짓는 재미난 일이 있었고, 또 다음날 식당에서 반찬으로 올라온 것들을 보면 매우 반가웠다. 또 이불 빨래를 할 때는 다 같이 이불을 발로 밟고 “으샤 으샤” 하면서 다음으로 넘기고, 그렇게 여러 번 헹군 이불을 빨래줄에 너는 순간에는 기분이 상쾌해졌다. 작은 일도 혼자보다 여럿이 함께하면 훨씬 쉽고 즐겁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우리 수호 조에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는데, 그 중 몸이 좋지 않은 사람과 아기엄마도 있었다. 또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도를 잘 모시는 사람, 요리를 해서 남에게 베푸는 사람, 몸이 좋지 않음에도 이를 핑계 삼지 않고 작업을 같이 하려는 사람, 인터넷 검색을 통해 꼭 필요한 물건을 싸게 잘 살 수 있도록 유익한 정보를 주는 사람, 60대 연세에도 항상 주변 정리와 정돈을 잘하고 도움을 요청하면 무조건 달려가서 도와주는 분, 재미난 이야기로 분위기를 밝게 해주는 긍정적인 성격의 사람도 있었다. 처음에는 밴댕이 같은 좁은 마음 때문에 종종 사람들과 분란도 생겨났지만 시간이 가면서 이처럼 누구나 한 가지쯤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모두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수호 서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지도….
처음에는 너무 게을러서 기도 모실 때는 이불 속에서 뒤척이며 이불을 박차고 나오기가 힘이 들었다. 그러다가 기도를 못 모시는 날이면 “난 도인도 아니야.”라며 자책 모드에 빠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조 사람들이 내손을 잡고 “기도를 모시러 가자”고 하여 횟수가 차츰 늘어나게 되었다.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天高馬肥’의 계절 가을을 맞이하였다. 하늘은 푸르고 높은 가을, 결실 맺은 곡식들을 수확하느라 바빴다. 밤나무의 밤송이들은 입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떨어진 밤송이들을 주우며 아이처럼 기뻤다.
우리 조원들은 돌아가면서 비닐하우스에서 국화꽃 재배하는 작업을 하였는데, 내가 갔을 때는 국화의 모종을 밭에 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함께 일을 하였다. 한 비닐하우스 안에 세 고랑의 밭이 있었는데, 일을 많이 해보았거나 잘하는 사람이 구멍을 뚫고 그 안에 국화모종을 심으며 척척 앞으로 나갔다. 나는 평소에 행동이 좀 느리고 적극성이 부족한 편이라 남들이 볼 때는 게으름을 피우는 것처럼 보였다. 이날 따라 나도 일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행동은 느린데 빨리 하려다보니 그만 탈이 나고 말았다. 발목이 완전히 꺾어져 버렸다. 혼자 조바심을 냈던 것이다. 계속 치료를 받았지만 생각보다 쉽게 낫지 않았다. 작업하기가 어렵고 수호를 설 때도 30분 이상 서있기가 힘들어 15분씩 번갈아 서야만 했다. 기도 모시러 가서는 법배가 안되어 한동안 기도도 잘 모시지 못했다. 그러면서 같이 할 일을 누군가가 더 해야 해서 힘든 것은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두세 달 지나 겨울로 접어들 무렵에야 겨우 발목을 조금씩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생겨났다. 그러다가 토성도장으로 수호를 교대하는 차례가 와서 가게 되었다. 토성도장은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며 포근함이 느껴졌다. 토성도장 미륵불 앞에서 수호를 서고 있노라면 동해바다 푸른 물결이 저 멀리 보이고, 미륵불 뒤로는 선녀가 일만 이천의 도통군자를 낳고 있는 형상을 한 금강산 제일봉우리 ‘신선봉’이 있었다. ‘누가 이렇게 산을 멋지게 조각해 놓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신선봉은 오랜 세월 상제님, 도주님, 도전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며, 수도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알아봐 줄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을 것이다. 상제님, 도주님, 도전님으로부터 이어 내려온 ‘종통’이 확실한 우리 대순진리회에서 도통군자가 나온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이리도 ‘如合符節’인가! 정말 이렇게 큰 도를 만났는데 그 동안 너무 수도를 게을리하고 있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고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작년 겨울 토성도장에는 유달리 눈이 많이 왔다. 그때 아이들에게 인기 폭발이었던 영화 ≪겨울왕국≫을 떠올리게 할 만큼 도장은 온통 눈으로 둘러싸였다. 도장은 눈 속에 파묻혔고 미륵불에는 눈 콧수염이 생겼다. 이런 표현은 그렇지만 너무 귀여우셨다. 생전 그리 많은 눈을 본 것은 살면서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눈을 보는 것이 어린아이마냥 너무 좋았지만 매일 눈 치우는 작업을 하면서 징그러운 눈이 되어 버렸다. 추운 겨울 눈보라가 치는 어느 날, 새벽 수호를 서는데 그때 모두 함께 눈 치우는 작업을 하다가 추워서 라면을 끓여 먹게 되었다. 계란이나 특별한 재료가 없어도 뽀글뽀글 냄비에서 끓은 라면을 김치와 함께 먹었는데, 그 맛은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른다’는 바로 그 맛이었다. 정말 꿀맛이었다. 그렇게 새벽 수호가 끝나갈 무렵 아침 해가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밤새 내린 눈 위에 비치는 햇살이 반짝거렸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촉촉한 봄비가 여주도장 전체에 내렸다. 처마 끝으로 떨어지는 빗물, 나무와 풀잎들이 생기를 되찾는 따뜻한 봄이 찾아왔다. 그리고 알록달록한 영산홍이 피어나기 시작하여 도장 전체로 활짝 피어나 꽃동산을 만들어 무릉도원이 따로 없는 것 같았다.
얼마 후 임원분들이 논에 모를 심고 밭에는 씨를 뿌리기 시작했다. ‘춘계체육대회’를 위해 율동연습을 하는 ‘율동팀’에게 저녁 참으로 오뎅국과 비빔국수를 준비해 주었는데 다들 맛있다고 잘 먹었다고 해서 너무 뿌듯하였다. 그리고 청소년 수련원에서 방면 도인들이 다 같이 모여 열심히 체육대회 응원 연습을 하였는데, 몸치여서 몸은 마음대로 안 따라 주었지만 모두들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고 ‘화합’이 이렇게 크고 가슴 뭉클한 것인지 미처 몰랐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사고와 함께 사회 분위기는 침체되었고 모든 행사는 줄줄이 취소되고 말았다. 아쉽지만 체육대회도 가을로 미뤄지고 말았다. 하지만 뜨거운 열정과 모두가 하나 되는 그런 체육대회가 될 것을 기대해 본다.
이제 또다시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었다. 대순회관 입구에서 수호를 서고 있노라면 끊임없이 지저귀는 새들을 볼 수 있었다. 마음대로 도장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행복해 하는 모습이었다. 너무도 편하게 오가는 새들처럼 우리의 모습도 그런 것 같았다. 상제님, 도주님, 도전님, 연원이신 세 분께서 계시고 덕화를 끊임없이 내려 주시기에 마치 숨을 쉴 때 공기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편안히 숨 쉴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수도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평소 조금 엉뚱하고 의지도 약하고 노력도 부진한 민달팽이처럼 느릿느릿한 못난이 같이 수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장 수호를 서면서 상제님께서 ‘春無仁이면 秋無義’라 하신 것처럼 심은 대로 거두게 되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다.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것, 마음 먹었던 것, 행동했던 모든 것들이 이미 이 천지 우주에 다 기록이 되어 있고 씨로 뿌려졌을 것이다. ‘내가 한 일을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좋겠지만 하늘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지나간 것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도주님께서 ‘改過하면 족하리라’ 하셨고 ‘나는 오직 마음을 볼 뿐이로다’라고 하신 상제님 말씀처럼 마음을 어떻게 먹고 어떤 마음으로 행하느냐가 중요한데 나는 들어나는 것들만 보았던 것 같다. 이제 내 마음의 밭에도 희망과 감사함,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남을 잘 되게 하는 마음의 씨앗을 새로 뿌리고 도통의 열매를 맺을 그날까지 열심히 수도해야겠다. 도장 수호 서는 시간이 나에게는 상제님께서 주신 선물 같이 느껴진다.
<대순회보 1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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