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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수로 가족을 지키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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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귀순 작성일2018.04.11 조회5,1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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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동해1 방면 차선감 성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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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가는 길은 너무나 멀고도 먼 길이었습니다. 울산에서 이른 아침에 출발할 때는 도로 사정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중간쯤 갔을 때부터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고속도로에는 중간중간 사고가 나 있었습니다. 길은 막히고, 시간은 계속 지연되었습니다. 산소통의 산소는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은 정해진 시간에 못 들어가면 환자가 위험할 것 같다며 병원에 응급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아무리 응급차라도 빨리 올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산소통만 번갈아 쳐다보며 초조하게 서울 방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건너편에는 큰 트럭이 저만치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가 탄 차가 뱅글뱅글 돌았습니다. 우리는 급하게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반사적으로 환자 몸을 안았습니다. 눈 깜박할 사이였습니다. 우리를 태운 구급차는 빙판 위에서 3바퀴 돌아 길 가장자리에 가서 박히고 말았습니다. 조금만 더 갔으면 절벽에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또 대형트럭이 우리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간담이 싸늘했습니다. 1초만 늦었어도 우리는 대형트럭에 깔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다 사색이 되어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서로의 안전은 생각지도 않고 환자의 안전을 확인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이마를 부딪쳐 피가 얼굴을 덮어 앞을 볼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손으로 피를 훔치면서 환자의 안전을 확인했습니다. 남편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숨만 쉬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유별나게 겁이 많은 나를 남들이 볼 때 정신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실성한 사람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나는 쉬지 않고 태을주를 중얼거렸습니다.

 

“상제님, 살려주세요. 상제님, 살려주세요. 상제님, 살려주세요….”

 

이렇게 반복해서 심고를 드려도 불안해서 제 두 손은 쉴 시간도 없이 계속 무릎을 비비고 있었습니다. 기사는 긴급구조요청을 계속하고, 우리는 구급차가 올 때까지 사고 차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산소가 떨어지기 직전에 구급차가 도착했습니다. 환자를 옮겨 태우고 서울에 있는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하루 꼬박 고속도로에서 시간을 보낸 것입니다. 서울에 있는 친척이 모두 병원 앞에서 가슴 조이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친척들을 보는 순간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링거를 매달고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하루가 지나갔나 봅니다.

 

서울에 사는 시누이가 물었습니다.

“언니, 정신이 들어요?”

“오빠는요?”

“언니, 오빠 살아있어요. 언니 몸부터 좀 추스르고요.”

 

나는 벌떡 일어나 링거를 빼버리고 응급실로 남편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응급실 땅바닥에 시체인지 환자인지 빼곡하게 널려 있어 발을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나는 내 남편을 찾아 겁도 없이 환자들을 막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남편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매트 한 장 깔린 바닥에 시체처럼 누워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대형 사고가 많이 났다고 합니다. 응급실 안은 응급실인지 시체실인지 분간이 되질 않았습니다. 응급환자가 너무 많다 보니, 예약한 병실도 위급한 환자에게 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그때부터 바닥에 주저앉아 울면서 예약한 병실 달라고 소리쳤습니다.

 

“차가운 바닥에 두면 우리 신랑 죽어요. 병실 주세요.”

 

옆에 따라온 시누이가 물었습니다.

 

“언니, 진정하세요. 그런데 사고가 어떻게 난 거예요? 언니 양쪽 무릎과 허벅지 피부가 다 벗겨졌네요.” 

 

나는 울면서 다리를 내려다보았습니다. 피부가 다 벗겨져서 빨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남편이 죽을까봐 너무 불안해서 쉴 시간 없이 두 손으로 무릎을 비볐던 것입니다. 얼마나 손바닥으로 비볐으면 피부가 벗겨져서 새빨갛게 되었을까? 나도 의아했습니다. 그런데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처음부터 다시 치료를 받았습니다. 병원에서는 우리나라에서 한 명밖에 없는 희귀한 환자라며 실험대상자로 삼았습니다.

 

“이런 유독가스를 맡으면 바로 죽든지 아니면 3일 안에 깨어나는데? 참 이 환자는 도대체 알 수가 없네? 죽지도 않고 살지도 않고 식물인간이 되어 있으니….”

 

병원에서는 외국병원의 의사들과 환자 상태를 상의까지 하면서 연구하는데도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남편은 살아날 희망도, 치료할 방법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남편을 끝까지 살리겠다고 버텼습니다. 나는 남편을 간호하면서 서울의 병원에서 여주에 있는 본부도장으로 치성을 드리러 다녔습니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넉 달째 되던 날 의사 선생님이 조용히 나를 불렀습니다.

 

“사모님, 이제 해볼 건 다 해보았습니다. 그만 고생하시고 보살펴야 할 자식들도 생각하셔야지요. 환자분 모시고 내려가십시오.” 안간힘을 다해 부여잡고 있는 병원에서 희망을 무참히 잘라버렸습니다.

 

‘진짜 희망이 없다고?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아. 상제님께서 지켜 주시는 동안은 괜찮다고 했는데….’

 

병원에서 자꾸만 내려가라고 하니까 서러워 울면서 어쩔 수 없이 울산으로 내려갈 준비를 했습니다. 남편을 헬기에 태우고 울산 동산병원으로 내려왔습니다. 친정가족들이 병원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또 한바탕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모두 장례를 준비하는 마음 같았습니다. 남편은 목에만 숨이 붙어 있었으니까요. 산소 호흡기만 떼면 영원한 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막냇동생만이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언니, 형부 안 죽어요. 살릴 수 있어요.”

      

상제께서 하루는 공우에게 마음속으로 육임(六任)을 정하라고 명하셨도다. 공우가 생각한 여섯 사람 중 한 사람이 불가하다 하시어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정하였더니 이 사람들을 부르사 불을 끄고 동학 주문을 외우게 하여 밤새도록 방안을 돌게 하다가 불을 켜 보게 하시니 손씨가 죽은 듯이 엎어져 있느니라. 상제께서 “나를 부르라”고 그에게 이르시니 그는 겨우 정신을 돌려 상제를 부르니 기운이 소생하니라. 상제께서 이 일을 보시고 종도들에게 “이는 허물을 지은 자니라. 이후에 괴병이 온 세상에 유행하리라. 자던 사람은 누운 자리에서 앉은 자는 그 자리에서 길을 가던 자는 노상에서 각기 일어나지도 못하고 옮기지도 못하고 혹은 엎어져 죽을 때가 있으리라. 이런 때에 나를 부르면 살아나리라”고 이르셨도다.(예시 41절)

 

  동생은 위에 있는 상제님 말씀을 들려주며 격려해 주었습니다.

“괴병에 걸려도 상제님을 부르면 살아난다고 하셨어요. 언니가 기도 모시면 상제님을 모실 수 있으니까 상제님께 살려달라고 해요. 형부 살릴 수 있어요. 포기하면 안 됩니다. 기도 모신 법수 마시면 살 수 있어요. 내가 약속해요. 언니 포기하지 마세요.”

 

동생은 나를 안고 울었습니다. 막냇동생의 진심이 내 가슴에 둥둥 북처럼 울려왔습니다.

 

‘그래 맞아. 아직 포기하면 안 돼. 우리 은진이도 법수로 상제님께서 치료해 주셨잖아.’

 

갑자기 용기가 나면서 힘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중환자실에 남편을 두고 집으로 갔습니다. 4개월 비워 둔 집은 엉망이 되어 있었습니다. 자식들은 학생들이라 제대로 밥도 못 먹고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없는 힘을 내서 청소부터 시작했습니다. 정화수를 준비해서 새벽 1시 기도를 모시며 심고를 드렸습니다.

 

‘상제님 우리 남편 꼭 깨어나게 해주세요. 우리 남편 용서해 주세요.’ 이렇게 빌고 또 빌었습니다. 대순진리회 한다고 싫어하고 반대를 했기 때문에 벌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용서해 달라며 남편이 땀 흘린 돈으로 공을 올렸습니다.

 

병원에서 남편을 간호하면서도 매일 밤 집에 와서 법수를 정성껏 준비해서 기도를 모시고 남편에게 먹이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에게 뭘 그리 정성스럽게 갖다 먹이냐고 병원 사람들은 궁금해 했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에게 욕창이 생겨서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썩어들어갔습니다. 병원 처방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너무 속이 상해서 중환자실 앞에 앉아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얀 옷을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 한 분이 다가와서 물었습니다.

 

“젊은 새댁이 무슨 일로 차가운 바닥에 앉아 울고 있나?”

“제 남편이 욕창이 생겨서 다 썩어가요.”

“이리 가까이.” 하시더니 제 귀에다 대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습니다.

“개고기를 삶아서 그 물을 먹여 봐. 괜찮아질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슬픈 마음이 싹 사라졌습니다. 생각할 시간도 없이 바로 일어나서 시장에 갔습니다. 개고기를 사서 삶은 물을 남편에게 먹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새살이 돋아나면서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야 할머니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찾아보았습니다. 병원에 있는 분들께 할머니를 본 사람이 있는지 여기저기 알아보았지만, 그 누구도 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남편의 욕창은 할머니 덕분에 깨끗하게 치료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어떻게 치료했는지 무엇을 먹였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왜냐하면 남편의 욕창이 제일 심했는데 가장 빨리 치료가 되었고, 다른 분들은 오히려 치료가 안 되고 심해져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침 소문을 들은 의사 선생님께서 급하게 나를 호출했습니다.

 

“보호자 분, 소문에 듣자 하니, 몰래 환자에게 무얼 갖다 먹인다고 하던데, 뭘 가져다 먹이는 것입니까?”

 

겁이 많은 난 깜짝 놀라 질색한 표정으로 두 팔을 번쩍 들고 내 저으면서 말했습니다.

 

“아~아무것도 안 먹였어요.”

 

나는 딱 잡아뗐습니다. 의사 처방전 없이 먹이면 병원에서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호자 분, 환자분께 뭘 먹였습니까?”

 

나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머리를 숙이고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이 정중하게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저씨만 치료하시지 말고, 다른 분도 치료 좀 해 드립시다. 욕창으로 고생하시는 분이 많아요.”

 

나는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말이 나와 버렸습니다. 남편 같은 환자분들을 생각하니 너무나 안타까웠나 봅니다. 그 이후 동산병원은 욕창 치료 잘한다는 소문이 나서 환자들이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신기합니다. 신명이 도와주시고 간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거울도 안 보던 여자가 거울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곱게 단장하고 남편을 간호했습니다. 치료에 좋다고 하면 무엇이라도 다 했습니다.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또 넘기면서도 남편을 포기하지 않고 간호하였습니다. 하루 중에 첫 번째로 챙기는 것이 남편에게 법수를 마시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산재 회사에서 5억에 합의를 보자고 찾아왔습니다. 5억을 받고 숨 쉬고 있는 남편을 돈하고 바꾸라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합의를 보면 남편 산소 호흡기를 당장 빼라고 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합의를 안 보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16년 전에 그 돈은 적은 액수가 아니었습니다. 이 일이 화제가 되어 그다음 날 SBS방송국에서 취재를 하러 왔습니다.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남편을 살리겠다고 5억이란 돈이 싫다고 도망을 간 아내가 있다.”, “요즘 각박한 세상에 보기 드문 아내다.” 하면서 취재팀이 왔다고 했습니다. 나는 또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취재팀은 기다리다 할 수 없이 남편 사진만 찍어 가서 뉴스에 방송했습니다. 또 병원 신문에도 대문짝만하게 나오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세상에 이런 일도 있나 싶었습니다. 남편이 사고 났을 때 9시 뉴스에서 죽는다고 나오더니, 이제는 살아 있다고 뉴스에 나오는 것입니다. 애가 타서 녹아내리는 사람을 두고 뉴스거리라고 쫓아오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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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법수를 마신 후, 중환자실에서 2년 만에 일반병실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일반병실로 옮기면서 남편은 더 많은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희망 없는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더니 살려 놓았다고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그때부터 간병하는 사람과 같이 간호를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너무나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남편이 축시기도 시간(새벽 1시) 즈음 되면 일어나서 눈을 뜨고 있다고 했습니다. 기도 모시고 법수를 들고 가니 간병하는 사람이 말했습니다.

 

“사모님, 환자분께서 밤 12시 넘어서 일어나면 새벽 2시가 될 때까지 잠을 자지 않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남편도 나랑 같이 기도를 하는구나.’ 그래서 간병인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 시간이 제가 집에서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내가 들고 오는 물이 정성을 드려 기도한 물입니다.”

“사모님 정성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 이후부터 간병인은 법수를 나보다 더 열심히 챙겼으며, 법수가 부족하면 바로 전화를 주었습니다.

“기도물이 다 떨어졌어요. 환자분이 힘없이 축 처져 있어요. 기도 물만 떨어지면 환자분이 생기가 없어요. 사모님, 기도 물 빨리 가지고 오세요.”

 

혹 빨리 못 갖다 줄 때는 무슨 큰 난리가 난 것처럼 말을 합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기도를 모시고 법수를 가져갔습니다. 이렇게 주위사람들 덕분에 빠지지 않고 더욱 정성을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치성물도 빠지지 않고 매달 올렸습니다. 그러면서 남편의 피부색도 점점 좋아지고 눈동자도 맑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언제 일어날지는 미지수였습니다.

 

남편은 큰딸이 대한항공에 합격했을 때도 멀리 가는 것이 싫다고 허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당신은 왜 이러고 계신가요?”

“은진이는 은경이보다 키가 더 크고 공부도 잘해요. 대학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아 저를 도와주고 있어요. 병주는 당신을 닮아 키가 1m 83cm가 넘어요. 사춘기도 없이 잘하고 있는데, 당신만 왜 일어날 생각을 안 해요?”

 

누워있는 남편을 잡고 푸념도 했습니다.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온 가족이 한마음으로 정성을 드리면 남편이 빨리 깨어날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복잡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안정이 안 되고 불안할 때 막냇동생이 찾아 왔습니다.

 

“언니도 보고 싶고 형부도 뵙고. 언니, 오늘 맛있는 식사 대접해 드릴게요. 바람 쐬러 가요.”

“바쁜데 시간이 어떻게 났니?”

난 너무나 반가워서 몸이 그냥 일어서졌습니다. 같이 저녁 식사를 하면서 말했습니다.

 

“너도 알다시피 형부가 병상 생활을 한지 오래되었잖아. 그간 수많은 고비가 있었지만 그 힘든 시간을 오롯이 이겨내고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길 수 있었던 것은 상제님 덕화라고 생각해. 그래서 말인데 온 가족이 마음을 모아 상제님 전에 정성을 들일 생각인데, 도장치성 때 치성물도 올리고 다 같이 치성에 참석 하는 게 어때?

 

“언니, 정말 잘 생각했어요. 애들도 어릴 때에 입도하고 사회생활 하느라 바빠 상제님 전에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이참에 애들도 같이 마음을 모아 정성드리면 더 좋지 않겠어요? 온 가족이 정성 드리면 남편이 더 빨리 깨어날 것 같아 우리 가족은 한 마음으로 정성을 드렸습니다.

 

한편, 치성 드리고 난 뒤 큰딸이 결혼을 하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큰 딸아이의 갑작스런 결혼발표가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딸아이는 자신의 남자친구를 데리고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남자친구 생길 때가 되었구나 하고 가볍게 넘겼는데 남자친구 집에서 빨리 결혼을 하길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결혼 시켜 주세요.”

“아버지가 병원에 있는데 어떻게 할 수 있나?”

“지금은 못한다. 아버지가 일어나시면 하자.”

“아버지께서 언제 일어나시는데요?”

“곧 일어나신다.”

“무작정 기다려야 해요? 언제 일어나 실지도 모르잖아요.”

 

딸이 그런 말을 할 줄 몰랐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들으니 화도 나고, 혼인시킬 자신도 없었습니다. 무조건 안 된다고 했습니다. 큰딸은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아버지 사고 이후 남동생과 여동생을 다 챙겨준 사람이에요. 저도 이 오빠가 없었으면 너무 힘이 들어 버티지 못했을 거예요. 착한 사람이에요. 엄마가 아버지만 바라보고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지냈을 것 같아요? 밥도 제때 못 먹고 울면서 지냈어요. 오빠가 우리 안 챙겨주었으면 나도 버틸 수 없었어요. 저희도 좀 생각해 주세요. 엄마, 허락해 주세요.” 큰딸이 울면서 하소연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연을 듣고 나니,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정신이 차려졌습니다.

 

‘왜 딸아이 생각은 한번도 못 했을까? 내 입장만 생각했구나.’

 

그동안 큰딸에게 너무 많은 의지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딸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딸아이 결혼 준비하려고 상견례를 하러 갔습니다. 사돈 내외분을 마주하고 앉았는데 남편 생각이 너무 나는 것입니다. 가슴으로 눈물을 삼키면서 남편은 지금 병원에 있다고 했습니다.

 

“무슨 병환으로 계시는지요?”

“사고로 입원해 있습니다.”

 

서로 간단하게 상견례를 하고 돌아온 후에 시어머니 될 사람이 반대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병원에 계시니, 맏사위가 되면 힘들어서 안 된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남편이 병원에 누워있는 것도 가슴 터지는 일인데, 그런 이유로 내 딸을 받아들이기 싫다고 하니 너무 서러워서 혼자 목 놓아 울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결혼 허락을 못 하겠다고 했습니다. 딸과 사위 될 사람은 허락해달라고 계속 간청했습니다.

 

사위 될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정말 내 딸이랑 결혼하고 싶으면, 먼저 자네 부모님께 허락을 받아오게나. 그러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지.”

 

나는 냉정하게 거절해 버렸습니다. 딸과 사위 될 사람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야위어만 갔습니다. 3개월이 흘러갔을 때쯤에 사위 될 사람과 큰딸이 함께 찾아왔습니다.

“장모님, 허락받아 왔습니다. 저희 허락해 주십시오.”

“정말 자네 부모님이 내 딸 허락했는가?”

“네.”

“그러면 나도 한 가지 당부할 것이 있네, 할 수 있겠는가?”

“네.”

 

나는 사위 될 사람과 큰딸에게 상제님께 치성을 드리고 난 뒤에 결혼을 허락해 줄 수 있다고 말하고 남 잘되게 하는 공부와 부부 화목에 대해 말했습니다.

 

“어머님께서 믿고 계시는 대순진리에 관해서는 따님에게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어머님께 꼭 한번 듣고 싶었는데 어머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나보다 남을 잘되게 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화목하게 살아야 하네.”

“네. 어머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맏사위 될 사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큰딸이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는 대순진리를 제대로 알지 못해 수도를 게을리 했었는데 이제부터라도 바르게 수도해 볼께”

“장모님, 입도치성을 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우선 자네가 입도치성에 올릴 음식 장만 비용을 마련해 오게.”

그다음 날. 사위 될 사람과 큰딸은 흰 봉투를 내밀며 치성 음식 장만 비용이라며 정성스럽게 나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의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준 큰 사위와 큰딸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렇게 해서 큰 사위와 큰딸은 나란히 치성을 모시고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큰딸 결혼식 하는 날, 생각지도 못한 눈물이 비 오듯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남편은 식물인간이 되어 병원에 혼자 누워있는데, 첫 혼인을 시키는 심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울음으로 축하를 대신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큰딸을 보냈습니다. 지금은 작은딸과 결혼한 작은 사위도 입도치성을 모셔 온 가족이 대순진리를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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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두 딸에게는 아들이 둘씩이라 손자가 네 명입니다. 현재 우리 가족 모두는 상제님 덕화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저는 딸 둘을 혼인시키면서‘남편을 지금까지 지켜 주셔서 상제님께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아버지 없다는 소리도 안 듣고, 남편 없다는 말도 안 듣게 해주신 것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이승에 살아있어 준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정말 든든하고 힘이 되었습니다. 딸과 아들도 우리 아버지는 살아계시고 병원에서 치료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도 안 죽고 병원에만 계시는 아버지라도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무슨 행사가 있을 때마다 아버지에게 꼬박꼬박 인사를 다녀갑니다.

 

남편은 자식들이 오는 날이 최고로 기분 좋습니다. 이제는 실명했던 눈도 보이고 가족을 알아봅니다. 우리 방면의 많은 임원께서 쉬지 않고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그런데 나는 많은 사람을 살리지 못하고 남편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항상 죄송합니다.

 

남편의 건강이 많이 좋아진 것은 다름 아닌 상제님께서 주신 법수입니다. 작은딸을 지켜주셨고, 남편도 지켜 주셨습니다. 그 치료 약은 법수였습니다. 병원에서는 치료 약도 치료방법도 없다고 했으니까요. 남편의 건강이 어떻게 좋아졌는지 의학으로는 도저히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현대 의학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의사들도 살리지 못하고 포기한 남편입니다. 그런 남편이 꾸준히 마신 법수가 유독가스를 해독시켰다고 생각합니다. 법수로 살렸다고 저는 믿습니다. 딸, 사위, 아들 모두 이렇게들 말을 합니다.

 

“어머니께서 대순진리회에 정성을 들인 덕분에 아버지께서 좋아지셨습니다. 그리고 저희도 어머니께서 매일 기도해 주시는 덕택에 건강하게 잘살고 있습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자식들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며 정성금 모시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손자들도 집에 오면 말합니다.

“할머니 기도 물 주세요. 더 많이 주세요.” 컵을 들고 서로 많이 먹으려고 따라 다닙니다.

“할아버지 드실 것은 남겨 주세요.” (끝)

<대순회보 1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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