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 깊은 단청 작업
페이지 정보
작성자 강승희 작성일2018.01.24 조회5,133회 댓글0건본문
금릉7 방면 평도인 강승희
대순회관 건물에 발판을 설치하고, 도인들이 직접 붓과 물감 담은 컵을 들고 단청 작업을 했습니다. 분주히 다니는 모습들로 회관 마당이 장식되던 날들도 이제 벌써 추억이 되었습니다. 단청작업은 보름쯤 했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저한테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단청 작업이라 해서 처음부터 색을 칠하는 건 아닙니다. 작업 시작 첫날 단청 작업을 한다고 해서 지원을 했는데 알고 보니 페이퍼(사포) 작업이었습니다. 일명 ‘뻬빠’-어감만으로도 힘이 많이 들것 같은 느낌입니다. 솔직히 저는 사포 작업을 하면서 뼈가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혹시 그 이름도 연관이 있지 않은가 싶기도 했습니다. 작업을 하면서 제가 계단 오르고 내릴 때, 잠깐 작업 구역에서 나와 도구 챙길 때, 아마 스무 번 정도는 벽이나 기와 또는 비계에 머리를 부딪혔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엔 이마에 상처가 볼록하게 날 정도였습니다.
사포 작업 자체가 손과 팔의 힘을 엄청 많이 요하는 거라서 체력이 좋은 저도 버겁게 느껴지고 10년 넘게 입혀 있던 단청이니 벗기기 힘들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깨끗이 하려면 할수록 더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묵은 것을 벗기고 새롭게 단장할 걸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도 저의 묵은 과거를 벗고 상제님의 뜻을 받들려는 마음으로 바꾸겠다고 심고 드렸습니다. 심고 드리면서 하는데 마음은 더 분란했습니다. 하지만 이게 복마의 작용이려니 생각하고 더 애를 썼습니다. 한편으론 언제 다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되도록 깨끗이 벗기려고 손에 힘을 주면서 했는데 한참 하고 있으니 작업을 그만하고 참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생각보다 작업이 빨리 끝나서 좀 섭섭했습니다. 그런데 힘든 와중에도 열심히 하려고 한 덕분인지 참을 먹으러 갔을 때 소중한 교화를 듣게 됐습니다.
단청반 임원분께서 “수고들 많았어요. 단청 벗기는 게 힘드셨죠? 사실 내수들은 이 작업 안 해도 되는데 이런 기회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요? 벗기다 보니 금칠한 부분을 벗기기 제일 어렵죠? 제일 화려한 것들이 벗기기 제일 어려워요. 장단 같이 잘 안 나타나는 건 쉽게 벗겨져요. 나중에 단청을 하게 되면 금칠이 또 제일 곤혹스럽습니다. 그건 우리가 수도를 하다보면 나중에 제일 밝고 순수한 것이 찾아지는데 그걸 찾으려면 엄청 고생을 해야 돼요. 정말 겁액을 벗기기 힘든 것을 오늘 열심히 한 사람들은 느꼈을 겁니다.”라고 교화해주셨습니다. 교화를 들으니 몸 힘들었던 건 사라지고, 머리로만 판단했던 저한테 이렇게 경험으로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3일째 되는 날에 단청 작업을 하는데 같이 수호 서는 내수랑 하엽 색채작업을 하였습니다. 타분만 되어 있어서 단청 색 샘플 갖고 있는 중체분한테 어디에 색을 칠할지 표시해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작업하다 보니 잘못 표기된 곳에 그대로 색을 칠했습니다. 나중에 책임자한테 얘기했더니 그 내수랑 저는 색채작업이랑 상관없는 힘쓰는 작업에 배치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책임자한테 표기한 사람이 잘못 했다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냥 그 상황을 받아들였습니다.
나중에 ‘척을 맺는 것도 나요, 푸는 것도 나’라는 『대순지침』의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정말 그 상황에선 이해 안 됐지만 제가 맺어놓은 척이 표기한 사람을 통해 작용한 것이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조금 서운한 마음에 방면 임원분께 전화로 그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그런 일 겪는 건 좋은 거야. 좋은 일만 겪으면 교만해 질수도 있지만 안 좋은 것도 겪다보면 겸손해지지 않겠어? 그리고 도장에서 단청 작업한다는 자체가 중요하지 어떤 일이라는 것이 무슨 상관이겠어?”라는 말씀을 듣고 일을 가리면서 하려고 했던 저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도에서 하는 그 어떤 일도 상제님의 뜻을 받드는 일인데 제가 쓰임이 된다는 자체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해야겠다고 다시 다짐했습니다.
마지막 며칠은 체력이 좋다는 이유로 추천되어서 선조(선 긋는 조)에서 작업하게 되었습니다. 3인 1조로 저랑 다른 한사람은 긴 자를 잡고 또 다른 한사람은 선을 그었습니다. 처음엔 선 긋는데 체력이 왜 필요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는데 막상 하다 보니 자를 바른 위치에 대고 선을 다 그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게 꼭 잡고 있어야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나마 앉을 수 있는 위치나 서 있는 위치에서 선을 그으면 다행이지만 쭈그리거나 엎드리는 등 평소에 취할 수 없는 자세로 작업하면서 정말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어느 구석 쪽은 천장이 낮아 머리를 들 수도 없는 곳에서 제 자세를 보더니 같이 자를 잡던 선무가 우스갯소리로 벌을 서고 있는 것 같다고 할 정도로 작업은 고난이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벌’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설 것 같습니다. 도장에서 복을 지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고마운 게 어디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만약 조금 힘들다고 불편해한다면 참 죄송스러운 일이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어느덧 마지막 날이 되었고 단청 작업도 거의 마무리 되었습니다. 조심성이 별로 없는 저는 그동안 연속 며칠 아시바든 벽이든 처마든 닥치는 대로 머리 박기를 했습니다. 마지막엔 기념으로 이마에 볼록한 상처까지 났습니다. 하루에 열 번 넘게, 그것도 갈수록 부딪히는 정도가 강해진다고 생각하면 아마 웃음이 안 나올 겁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많이 힘들어하는 저를 보고 같이 자를 잡던 선무가 한마디 해줬습니다. “많이 박아본 사람이 숙일 줄도 알아요.” 그 말을 듣고 나서는 힘든 게 싹 사라지고 활짝 웃을 수 있었습니다. 그 때 그 한마디가 얼마나 소중하고 고맙게 느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그 말을 들은 다음날엔 머리를 거의 안 박았습니다. 저는 경험을 통해 느끼게 되었습니다. 머리 박기도 피한다고 피해지는 게 아니라 항상 자세를 낮췄을 때 안 부딪히게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평소 삶에서도 마음의 자세를 낮추고 겸손하게 처신처세 했을 때 잘 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척이 없어야 잘 산다”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단청 작업은 끝났습니다. 작업은 끝났지만 그 시간동안 보고 듣고 느끼고 배웠던 부분은 제 마음에 소중히 남아있습니다. 앞으로 수도함에 있어서 상제님의 대순진리를 바르게 깨닫고 행하여 먹은 마음 다시 먹을 때마다 뒤돌아보게 되는 소중한 경험이 될 거라 믿습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매사에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상제님의 뜻을 받들려고 애써나가다 보면 저의 제일 밝고 순수한 부분도 언젠가는 찾아지리라 믿습니다.
<대순회보 107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