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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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상길 작성일2018.01.29 조회4,777회 댓글0건본문
구산 방면 선감 김상길
학창시절 집에서 오래된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하얀 종이에 쌓인 성경책을 발견했다. 구한 말 천주교가 전해졌을 무렵부터 신앙생활을 하셨던 할아버지의 유품이었다. 또, 그 옆에는 성모마리아의 그림이 들어있는 오래된 액자가 있었는데 그것을 만지작거리다가 우연히 액자가 열리면서 뒷면에 흑백사진이 한 장 나왔다. 호기심에 그 사진을 보니 첫눈에 할아버지인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 이미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뒤였고 시대가 시대인만큼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핏줄이 끌린다고 할까…. 한번도 뵌 적이 없지만, 어딘가 고집이 있어 보이는 모습에 나와 닮은 할아버지 사진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사실 할아버지는 지역에서 유명인사이셨다. 이곳에 천주교 성당을 짓고 전도회장을 역임하셨는데 깊은 신앙심으로 여러 일화를 남겼다. 내가 동네 어르신들로부터 몇 번이나 들었던 이야기를 해보자면 동네에 무당이 와서 마을 사람이 거의 다 모일 만큼 큰 굿판을 벌였는데 아무리 불러도 신이 오지 않자 앞집에 있는 분 때문에 신이 오지 않는다며 우리 할아버지께 와서 제발 자리를 비켜 주십사하고 통사정을 했다고 한다. 또 천주교에서는 사람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사제를 초청해서 임종 기도를 올리도록 하고 있는데 외진 곳에 살던 사람이 임종기도를 요청한 적이 있었다. 신부님을 대신해서 할아버지께서 가시는 도중에 그 집 가족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가족들은 이미 돌아가셨으니 임종 기도를 안 오셔도 된다고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렇게 보낼 수 없다며 반드시 임종 기도를 하겠노라고 고집을 부리셨고 결국 그 집으로 가셨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분명히 숨이 끊어졌던 사람이 할아버지가 도착하자 다시 숨을 쉬며 일어나 앉는 것이 아닌가! 그 사람은 임종 기도를 다 마치고 나서야 다시 편안히 눈을 감았다고 한다. 이 일로 인하여 할아버지가 죽은 사람도 살렸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이런 영향 탓에 나는 어려서부터 천주교회에 다녔고 심지어 부모님이 신부가 되기를 원해 가톨릭대학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천주교 교리에 대한 회의감으로 발길을 돌리게 되었고 일반 대학을 진학하면서도 마음속에는 언제나 참된 진리에 대한 갈망을 품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선각을 만나서 입도를 하게 되었고 교화를 들으며 내가 찾던 완전한 진리가 이것이구나 하며 수도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당연히 집에서는 난리가 났었고 아버지는 당장 나를 호출하셨다. 아버지는 나를 설득하기 위해 온갖 말씀을 하셨고 그것이 잘 통하지 않자 내게 한번도 한 적이 없는 할아버지 얘기를 꺼내셨다.
“상길아~ 너 할아버지에 대해서 들어서 잘 알고 있지.”
“네.”
“그런데 말이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한 달에 걸쳐 하늘의 계시를 받으셨단다. 두 가지 내용으로 음성이 계속 들린다고 하셨는데 첫째는 할아버지께서 덕을 많이 쌓았으므로 죽을 때 고통 없이 편하게 죽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아버지의 말씀에 따르면 실제로 할아버지께서는 한 달 뒤 주무시다가 편히 돌아가셨다고 한다.
나는 호기심에 귀를 쫑긋 세우며 물었다.
“네.” “다른 한 가지는요?”
“또, 진인을 찾아야 한다는 잘 알 수 없는 말씀을 계속하셨단다.”
“네!?”
나는 전기에 감전된 듯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대순진리회의 공부가 바로 진인을 찾는 것이 아니었던가? ‘아버지 바로 제가 그 길을 가고 있어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이치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워 참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말리기 위해 하신 말씀이 나에게 확신을 더욱 심어주게 되었고 나는 어떻게 하면 집안의 반대 없이 수도할 수 있을까 고심하다가 고향 마을 담당 신부님을 만나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였다. 신부님과의 대화에서 나는 천주교 교리와 대순진리의 교리를 비교하여 이야기했는데, 다행히 그 신부님은 무슨 말인지 알겠다며 내가 대신 부모님께 잘 얘기를 해보겠다고 하였다. 그 뒤 부모님은 여전히 천주교회에 다니시지만 더는 내가 수도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으셨다.
뒤에 들은 얘기지만 역대 신부님 사이에 우리 할아버지는 꽤 귀찮은 존재로 기억되고 있었다. 천주교 교리를 놓고 신부님들과 자주 토론을 벌였고 올바른 신앙생활에 대한 지적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마음 편히 도를 닦게 되었으니 다시 생각해 보면 이 모두가 할아버지 덕분인 것만 같아 더욱 고마운 생각이 든다. 나는 오늘도 마음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기도를 모신다. ‘할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있잖아요. 도통의 그 날에 우리 꼭 다시 만나요.’
<대순회보 1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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