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이겨 낼 수 있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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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영숙 작성일2017.02.03 조회4,348회 댓글0건본문
장 영 숙 선사 안동 자양 65방면
얼마 전 나에게는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이 있었다. 수도하면서 누구나 겁액 때문에 힘들어 하지만 내게 있어서는 너무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바로 선각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이렇다 할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선각이 너무 밉고 곁에 있는 것조차 싫었다. 내게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으면 도망치고 싶었다. 선각과 힘든 문제는 누구나 한번 쯤 경험하겠지만 평상시에 안 좋은 마음이 들 때마다 자신을 나무라면서 고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 나도 모르게 습관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 신은 내 안에서 조금씩 자라나 내 모든 것을 지배해 버렸다. 그것이 선각과의 갈등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동료나 후각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거의 매일 누워있었다. 미워하고 자책하고 또 원망했다. 내 기운이 후각에게 가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런 걱정 따위는 전혀 문제 삼지 않을 정도로 나는 급속도로 추락하고 있었다. 그런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이런 식으로 척은 계속 쌓여만 갔다. 결국 나는 왕따가 된 기분이었다. 스스로가 그렇게 만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을 가두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정성 드리느라 바빴는데 나는 할 일이 없었다. 혼자서 어두운 기운에 휩싸여 있었던 것이다. 화장실 거울에 비춰본 내 얼굴은 미움과 질투, 불만, 짜증, 슬픔 …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을 그대로 드러낸 너무 못난 얼굴이었다. ‘장선사가 왜 이렇게 되었나?’ 한숨 쉬며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다.
방면의 선각자 분들은 이런 나를 어떻게든 살려보고자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셨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기운을 주려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에는 내 생일날 방면선감께서 한복을 주셨는데 나는 그것을 받지 않겠다고 그대로 다시 장롱에 넣어두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나는 또 다시 죄책감에 괴로워했다. 모든 것이 이런 식이었다. 일을 저지르고 그것을 또 괴로워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보따리 싸서 확 집에 가버릴까를 백 번도 더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한동안 발길을 끊었던 후각 집에 가서 기도를 모셨다. 그날 나는 이렇게 심고를 드렸다. ‘상제님 저를 좀 살려주세요.’ 그날 나는 방면 교감께 가서 이렇게 이야기 하며 매달렸다. “교감요, 저 혼자서는 안되겠습니다. 저 좀 도와주세요.” 이미 교감께서는 수도 없이 내게 교화를 하신 바 있고 내 자신이 그 기운에 잠시 제정신을 찾았다가도 또다시 겁액에 휘말려 버리기를 수차례 반복했었다. 그런 내가 먼저 다가가서 이야기 하자 교감께서는 기쁜 낯으로 좋은 방법 하나를 말씀해주셨다. “밖에서도 가장 큰 복 중의 하나가 무엇이냐? 남을 먹이는 복이다.”라고 하시며 매일매일 선각들의 식사를 정성을 다해 준비하라고 하셨다.
나는 너무나 기뻤다. 내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날부터 나는 일찍 일어나서 바쁜 아침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콩을 넣어서 밥을 하고 인터넷을 뒤져가면서 반찬을 준비했다. 선감께서 좋아하시는 생양파 채를 썰면서 그렇게 손이 즐거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정성껏 준비한 밥상을 받으시는 선각들 표정이 환하게 웃으시며 밝아졌다. 식사준비야 늘 했던 일이지만 이번엔 질적으로 달랐다. 포덕을 하기 위해 하기 보다는 내가 다시 도(道)안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내 목숨과 직결되는 문제처럼 절대적인 것이었고 유일한 희망이었다.
며칠 후에 예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일인데 고향 집에 선각들을 모시고 가게 되었다. 낮에 조개를 캤는데 바닷물을 부어주어야 했다. 바닷물이 이미 너무 멀리 나가 있었기 때문에 동료 선사와 함께 가까운 해변으로 나가서 물이 고이면 떠가려고 모래를 파냈다. 천천히 파고 있는데 손끝에 미끈한 것이 느껴졌다. 조심조심 파내어 보니 빈 병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고 말했다. “병이 깊이 들었네…” 동료 선사는 “어! 그러게요.” 하다가 곧 말뜻을 알아차리고 웃었다. 그 선사도 내 증상이 심각한 것을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던 터였다. 나도 따라 웃었지만 마음이 무척이나 아팠다. 이후로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넓디넓은 모래사장에 깨끗하기로도 유명한 곳인데 그 한복판에서 병이 나오다니. 하필이면 그 곳을 파게 된 것이 결코 우연인 것 같지 않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난 이미 병이 깊이 들어있다고 신명이 이야기해 주시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서 모두 둘러 앉아 과일을 먹다가 그 선사가 이 이야기를 하자 모두들 크게 웃었지만 그냥 우스워서 웃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정말 수도를 하기 시작했다. 나쁜 마음을 방치해 두거나 키우지 않기 위해서 그럴 때마다 머리를 흔들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했다. 되도록 미소로써 사람들을 대하려고 했다. 그러자 나에게 감정이 있었을 법한 동료나 후각들이 나에게 다가와서 뭔가를 물어보기도 하고 나로 인해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다시 교화를 하고 포덕을 시작하면서 한동안 없던 포덕이 늘기 시작했다. 이제는 밤에 잠이 들면서도 아침이 기다려지고 아침에 눈을 뜨면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너무나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복을 쌓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시간이 나에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 시간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깨달음도 없었을 것이니 그 시간에 대해 감사한다.
물에 빠져서도 바닥까지 다 가라앉고서야 바닥을 박차고 밀고 올라갈 수 있다고 하듯이 갈 때까지 다 가고도 도저히 갈 곳이 없을 때 진정으로 신명을 찾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당연히 내가 다시 신명을 만날 수 있게 도와주신 선각자분들께 세상에서 가장 큰 감사를 드리고 싶다. 선각자분들의 끈질긴 정성에 내가 다시 태어났듯이 힘들어 하는 후각들에게 나도 그 이상으로 끊임없는 사랑을 베풀어주고 싶고 세상의 힘들어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
<대순회보 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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