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입은 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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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손영배 작성일2020.06.15 조회5,286회 댓글0건본문
온산5 방면 교령 손영배
나는 1996년 10월 27일 대순진리회에 입도하였다. 두 달 뒤에는 방면 포덕소에서 지내며 포덕사업도 시작하였다. 1997년에서 98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방면의 공사 현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때 아버지는 부산에서 시내버스 운전에 종사하고 있었다. 어느 날 모친을 통해 ‘아버지가 실수로 교통사고를 냈다’라는 소식과 ‘여동생이 자신의 부주의로 약사 자격증 시험에서 불합격했다’라는 소식을 동시에 전해 들었다.
아버지의 사고 경위는 이러했다. 아버지가 운전하는 버스에 탄 한 중년 여성이 급하다고 앞문으로 내렸다. 그때 아버지는 승객이 내렸다고 착각하고 자동문 스위치를 ‘닫힘’으로 올렸다. 그런데 사실 그 여성은 미처 다 내리지 못한 상황이었다. 결국, 아버지는 버스 앞문에 여성 승객을 낀 채로 운행하는 사고를 낸 것이다. 버스회사 측에서 피해자 가족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 주었다고 했다. 그러나 피해자 가족은 더 큰 보상을 원했다. 원하는 금액을 주지 않으면 합의하지 않겠다고 했다. 집에서는 형편이 어려워 그들이 원하는 합의금을 해 줄 수 없었다. 합의금 중 일부를 어렵게 구해 그들에게 주고 집안 사정을 말하며 합의해 달라고 사정했다. 그들은 돈만 가져가고 합의는 해 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아버지는 교도소에서 형을 살아야 했다. 교통사고 가해자의 가족이 겪는 고통은 피해자 가족 못지않게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리고 합의금을 해 주고 집안 경제는 더욱 어려워졌다.
그런 와중에 여동생이 약사 자격증 시험을 보았는데 수기로는 수험번호를 제대로 써놓고도 답안 카드의 수험번호 빈칸을 잘못 기재해 ‘불합격’ 처리되었다. 동생 말로는 합격할 수 있는 점수였다고 한다.
나는 집안에 연거푸 일어난 불행한 일로 가족이 매우 걱정되었다. 부모님과 동생들을 챙겨보며 어찌해야 할지 막막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정성도 수도도 마음에서 희미해져 갔다. 어느 날 불현듯 ‘구천상제님은 해원신(解冤神)’이라는 말이 나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조상 선령신들이 나를 깨우쳐 주신 것일까? 상제님에 대해 들었던 교화도 생각났다. 소가 여물을 되새김질하듯 계속 떠올랐다. 생각에서 생각이 나온다는 상제님 말씀처럼 ‘상제님께 심고를 드리고 정성을 들여야겠다’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마음의 변화가 생겼다. 다시 성심성의를 다하기로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았다.
일을 마친 늦은 저녁이면 어두운 하늘을 보며 상제님께 심고 드렸다. 1년 정도 일하고 1999년 초봄에 방면으로 복귀하여 포덕사업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7월 19일, 도장에서 수호를 서기 시작했다. 여주본부도장에서 수호를 선 지 한 달여쯤, 가족에게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김대중 대통령 임기 중에 ‘8·15 광복절 특별사면’이 진행되었는데 아버지가 특별사면 대상자에 포함되어 출소한 것이다. 게다가 운전면허 취소가 해제되었고 특별교통 안전교육만 받으면 언제든 다시 운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다시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그즈음에 ‘국가시험에서 수험번호를 잘못 기재해도 구제받을 수 있다’라는 방침이 실행되어 동생이 약사 자격증 시험에 추가 합격하였다. 연이어 일어났던 불행이 한꺼번에 해결되었다.
해원상생(解冤相生)으로 일이 잘 풀리게 될 것이라는 믿음과 상제님에 대한 신앙심이 쌓여 마침내 나의 소망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에 괴로웠으며 그 괴로움으로 육신도 함께 힘들었다. 피해자 가족이 잘되기를 기원하며 해원상생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들이다가도 때때로 괴로움 때문에 불평이 생기고 합의를 해 주지 않은 피해자 가족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원망하는 마음을 접고 스스로 다독여나갔다.
상제님께서 “바람도 불다가 그치나니 남의 시비를 잘 이기라. 동정에 때가 있나니 걷힐 때에는 흔적도 없이 걷히나니라.”(교법 1장 28절)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남의 시비로 일어난 바람은 아니지만, 나를 괴롭고 힘들게 했던 바람이었다. 정말로 그 바람은 때가 되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꼬여있는 실을 풀어 가지런히 실타래로 감아 놓은 것처럼 집안에 일어났던 나쁜 일들이 잘 해결되었다. 상제님의 덕화가 아니면 이 일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이후로 상제님에 대한 믿음은 더욱 굳건해졌고 ‘도생도사(道生道死)’라는 신념을 심어주는 계기도 되었다.
어느 수도인이 ‘악마는 달콤한 유혹으로 다가오고, 신명은 고통을 주며 다가오는 듯하다’라고 얘기해 준 것이 생각났다. 원망했던 나의 마음은 바로 신명이 시험하는 하나의 과정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전경』에 이선경의 빙모가 49일 동안 시루떡을 찌며 정성을 들이는 일화가 나온다. 이선경의 빙모는 부족한 면이 드러났을 때 반성을 통해 상제님의 덕화를 입고 목적한 바를 이룬다. 나는 이 일화를 보고 나의 부족한 마음을 반성하고 해원상생을 근본으로 인내하며 극복해 나아가야 한다고 깨달았다. 내가 부족하나마 정성을 들였기에 가족들에게 상제님의 덕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가족이 입은 덕화에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수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더욱 수행 정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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