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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좌충우돌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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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문주 작성일2020.06.20 조회5,0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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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1 방면 교정 강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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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대학 시절 낮에는 학교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고 야간으로 물리치료과를 다녔다. 3학년이 되자 국가고시 준비로 공부에만 전념했다. 여름방학 때 도서관에서 도인들을 많이 만났는데 내 또래로 보이는 도인이 있었다. 자주보다 보니 인사하며 지냈다. 가을 어느 날, 자판기 차 한잔하며 그 도인의 교화를 들었다. 그리고 날짜를 정해서 입도치성을 모시게 되었다.  

  나는 어느새 포덕을 하고 있었고, 분란한 마음에도 선각들의 교화 덕분에 도를 따라가고 있었다. 수도하면서 난 완전히 수마와 함께 살았다. 서도 졸고 앉아도 졸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몇 년은 졸음 때문에 고생했던 거 같다. 교화를 잘 듣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안 졸려고 서 있어도 깜박 졸아서 넘어진 적도 있다.  

  그러다 교정임명을 모시기 전후로 나에게는 큰 슬럼프가 찾아왔다. 집에서는 엄마가 아프니 직장을 그만두고 간호하러 오라고 했다. 당시 나는 세상 모든 게 삐딱하게 보이니 내 마음과 정신이 혼란스러워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여러 번 일어났다. 항상 얼굴에는 인상을 쓰고 다니고, 늘 흐림과 어두움이 가득하였다.  

  견디다 못해 선각에게 장문의 문자를 남기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때는 기운 감당이 안 되는 질풍노도의 시기였다고 생각이 든다. 이후 나는 월성을 모시며 선각과 연락하며 지냈다. 몇 달 동안  직장을 다니는데 문득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정말 강하게 들었다. 다른 지역에 기숙사가 있는 쪽으로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 대순진리회복지재단에서 물리치료사를 구한다는 것을 보고 바로 전화를 했다. 지금 급하게 구하는 중이니 방면 추천서 등 서류를 보내라고 해서 선각에게 전화를 드렸고,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그 주 토요일에 출근할 수 있냐고 해서 다니던 직장에 급하게 사람을 구해주고 간단한 짐만 챙겨서 여주로 갔다. 당시 남자친구는 내가 갑자기 타지로 간다고 하니 반대를 많이 했었다. 결혼자금을 마련하겠다고 설득을 하고 올라갔다. 

  출근하자 공단평가 준비 때문에 서류작업 등 일이 많았다. 아침에 출근해서 거의 매일 밤 11시, 12시까지 일을 했다. 내가 그동안 수도를 게을리했으니 이 일이라도 열심히 하자는 마음이었다. 남자친구는 내가 여주에 가더니 연락도 없고 통화를 하려면 밤 12가 되어야 간신히 통화할 수 있고 해서 다른 남자가 생긴 줄 알았다고 했다. 

  난 23살부터 복지재단 가기 전까지 일곱 군데도 넘는 직장을 옮겨 다녔고 1년 이상 일해본 데가 없었다. 사실 핑계겠지만 근무시간 초과, 점심시간이나 퇴근 시간에도 환자를 계속 보내는 등의 부당한 이유였고, 물론 나의 잘못도 있었다. 어딜 가도 오래 버티지를 못했다. 남자친구는 나랑 만날 때마다 직장생활의 문제점과 고충을 말하던 사람이 갑자기 여주 올라가서는 늦게 퇴근해도 불만 없이 하는 걸 보고 너무 놀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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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복지재단에서 오래 근무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 사람들이 조언도 많이 해주고 챙겨준 덕분도 있다. 나는 도인은 이래야 한다, 이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등과 같은 나름의 틀과 좁은 생각들이 많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유연하게 볼 수 있게 된 것도 여기 와서 많이 바뀐 부분이었다.

   “강교정요, 그거 몰랐어요? 심하게 조는 사람치고 도에서 떨어진 사람이 없어요.”

  누군가 해준 이 말이 나에게 힘이 되었다. 그리고 사시기도나 주일기도를 모시러 도장에도 가고, 도장이 가까이 있으니 도장 치성은 대부분 참석할 수 있었다. 시학 시법 공부에 들어가서 근무 설 때 상제님께 심고를 많이 드렸다. 도장에서 근무를 서면 상제님께서 바로 옆에 계시는 느낌이랄까 더 깊은 심고를 드리게 되는 것 같다. 

  차츰 마음이 안정되면서 나 자신이 조금씩 변화되는 것 같았다. 복지재단에서 요양시설의 물리치료사로 근무했는데, 입소 어르신 대부분이 치매, 중풍, 뇌졸중, 노인성 질환자로 도인도 많았다. 우리 방면에는 젊은 사람이 대부분이어서 수도인의 병과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을 거의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나로서는 도인도 나이가 들고 노인성 질환에 걸릴 수 있구나라는 것이 조금 충격이었다. 근무하면서 수도인의 고령화와 의료 부분에 복지재단이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머리로만 생각했었는데 우리가 입도해서 상제님의 덕화를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복지재단에 근무하면서 내 마음에 롤모델이 두 분 계신다. 이분들과는 따로 만나 개인적인 대화나 식사 한번 한 적이 없는 게 지금 생각해 보면 아쉽다.

  한 분은 사회복지사 유선생님이다. 원리원칙대로 일하고, 흔들리지 않는 올곧음이 돋보이는 멋진 분이라고 생각한다. 공명정대함, 올곧음, 이런 부분을 닮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유선생님이 아침 7시 반에 출근하셔서 서류작업 후 일과 시간 활용을 잘하는 부분을 보고 나도 스케줄 노트를 보며 근무시간 안에 일을 마무리하고 계획대로 하려고 했다. 어떨 때는 편하게 쉬엄쉬엄하고픈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오늘의 할 일을 꼭 지키려고 하다 보니 시간 안에 일이 되었다. 덕분에 나는 6시 퇴근 후에는 운동도 하고, 포토샵, 인디자인, 재봉 등 배우고 싶었던 다양한 것을 배우게 되었다. 지금 아니면 이런 기회와 시간이 안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참 열심히 배우러 다녔다. 그때 배운 것이 이후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다른 한 분은 사회복지사 김선생님이다. 수도인은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본보기가 되는 분이시다. 매사에 열정적이고 솔선수범하신다. 어떻게 하면 조직이 더 발전하고, 잘 운영이 될지만을 생각하고 실천하시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항상 먼저 인사하고 어르신에 대한 섬김의 마음이 대단하시다. 조직을 새로이 변화시키고 시스템을 만들고 적용하는 것은 선뜻 나서서 하기 힘든 부분인데 이분은 그걸 하신다. 

  백 명이 넘는 직원에 다양한 사람 속에 배울 점이 많은 분이 계셨다. 그러면서 나도 수도인으로 어떤 부분을 갖춰야 할지 생각해 보게 된 것 같다. 운수가 오는 날까지 여기서 근무하는 것도 좋겠지만, 내 마음 한쪽에 포덕에 대한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래서 상제님께 지난날 나의 무도했던 과거를 반성도 하고,  ‘제가 다시 방면으로 돌아가 포덕할 기회를 주신다면 체계에서 화합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며 심고를 드렸다. 

  복지재단에서 근무한 지 2년 정도 지나 남자친구와 결혼을 했고, 주말부부로 지내다 출산과 육아휴직을 했다. 난 반드시 복직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복귀할 때가 다가오자 이제 돌이 된 아이를 데리고 주말부부로 지내며 육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후 나는 퇴사하고 아이를 키우며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여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남는 시간을 활용하여 홈패션 등을 배웠다. 지금은 1인기업으로 작은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다. 아직은 시작단계인데 직접 운영해보니 재미있다. 일이 재밌다는 것을 복지재단에서 일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엔 가족에게 내가 대순진리회에서 수도 한다고 말씀드렸다. 22살 때 내가 종교에 빠졌다며 극심한 반대를 하셨던 아버지가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언젠가 가족들도 꼭 포덕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숙제가 조금은 해결된 것 같아 마음이 가벼워졌다. 남편은 내가 23살에 포덕한 사람이다. 남편 말이 20대의 나는 마냥 여리게 보이고 힘든 일 앞에 눈물만 뚝뚝 흘리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여장부 같다고 말한다.  

  2014년에  적은 노트를 보니 많은 부분이 이루어졌다. 상제님께서 다 들어주신다고 믿는다. 내가 노력하고 정성 들여 나간다면 말이다. 얼마 전 나는 새 노트를 꺼내 나의 30대, 40대, 50대의 계획을 써 내려갔다. 1순위는 포덕을 해서 도의 일을 할 일꾼을 키우는 것이다. 일꾼이 된 사람들은 어떤 부분에서는 나보다 정신이 서 있고 배울 점이 많다.  

  22살에는 마냥 놀고만 싶었다. 마음대로 못 놀고 정성 들이고 수도하는 것이 고생이다 싶었다. 들은 교화가 있으니 수도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걸 알았고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선각에 의지해서 가는 내 정신이 너무 약했다. 그러다 보니 고비가 올 때마다 많이 휘청거렸고 그나마 선각들이 이끌어줘서 도를 따라갈 수 있었다. 지금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좀 더 어른스럽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난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지금은 예전의 나도 아니고 현재가 감사하고 행복하다. 이제는 상제님을 모시려는 정신과 마음이 예전보다는 서 있다. 이후 40대, 50대 나의 모습은 어떨지 기대가 된다. 뭐든 다 때가 있지만 때를 준비하는 것은 내 몫이다.

  지침에 “모든 일에 그 목적을 달성하려는 과정에는 반드시 장애가 있으니 이것을 겁액이라고 한다.  겁액을 극복하고 나아가는 데 성공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 겁액에 굴복하여 자포자기하는데서 탈선이 되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중도에서 앞길을 막아버리는 사례가 많다.” 하셨다. 나는 힘들 때마다 지침의 이 구절을 외우고 있다. 

  나의 좌충우돌 성장기 같은 글을 적고 보니 부끄럽기도 하지만 열심히 도의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쓰고 있다. 모사재천 성사재인의 상제님의 말씀을 새기며 목표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오늘 하루를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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