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의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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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금옥 작성일2020.06.23 조회5,085회 댓글0건본문
원평1-14 방면 평도인 이금옥
“상제님 저희 가게 음식을 드시는 분들 모두 건강하고 잘 되게 해주세요.” 김이 뽀얗게 오르는 하얀 쌀밥을 주걱으로 뒤적이며 심고를 드리고 하루를 시작한다.
입도한 지 십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치성을 모시니 가게로 도인들이 자주 왔다. 그땐 24시 분식집을 하고 있었는데 난 야근을 하고 아침에 퇴근했다. 그런데 도인들은 밤새도록 같이 있었다. 무슨 이야기든 다 들어주고 보듬어주었다. 물론 나도 처음부터 마음을 열었던 거는 아니었다. 밤마다 오니 부담스럽고 귀찮은 적도 있었다. 가게는 늘 바빴고 정말 바쁠 때는 아무 손이라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럴 때 도인들이 말없이 대가도 안 바라고 일을 도와주고 밝은 얼굴로 격려까지 하는 것이었다. 난 ‘저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오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좀 한가한 날에 교화를 듣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하루 이틀 연이어 듣다 보니 오히려 안 오면 궁금하고 교화가 듣고 싶었다. 자꾸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시나브로 내수라는 호칭이 익숙해져 갔다. 시간이 흐르고 들었던 교화가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게 재밌고 놀라웠다. 오랫동안 가게를 하니 몸 여기저기가 아프고 우울증도 생겼다. 그때 도인들은 늘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지켜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변치 않는 소나무 같은 분들이었다. 회관에도 열심히 가지 않고 열성적이지도 않은데 이렇게 내 마음을 알아주는 도인들이 너무 감사했다. 조건 없이 도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것에 난 늘 위로가 되었고 그게 하루를 살 수 있는 힘이었다.
어느 날, 30년 만에 중학교 동창을 만났다. 너무 반가워서 밤새 지나온 세월을 얘기하게 되었다. 친구는 죽을 만큼 힘들어 늘 술을 끼고 산다고 했다. 너무 안타까워서 같이 울어주고 웃어주고…, 도인들이 나에게 했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얼굴이 시커멓게 그늘이 가득해 보여 정말 이러다가 친구가 죽겠구나 싶어서 입도 치성을 권했다. 친구는 안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너에게 해가 되면 책임진다며 치성을 모시라고 했다. 그렇게 처음 포덕했다. 친구는 뭔가 빠져나간 것처럼 속이 후련하다면서 얼굴도 밝아지고 늘 머리 아프고 죽을 것 같던 증상도 사라졌단다. ‘이런 거구나. 포덕이 이런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는 얼마 전 딸을 시집보내고 아주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사위를 맞았다.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 후로도 난 포덕할 때면 너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권한다고 진심으로 교화했다. 늘 도인들은 우리의 일이 남 잘되게 하는 일이랬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내 옆에 힘들어하는 가족, 친구, 지인들이 잘되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으랴. 상제님을 몰랐을 땐 난 늘 장사를 시작하며 하얀 쌀밥을 주걱으로 저으면서 속으로 기도했다. “내가 아는 신이시여, 나를 아는 신이시여, 부디 저희 가게 음식을 드시는 분들 모두 건강하고 복되게 해주세요.” 도를 알고는 심고를 배웠다. 도인들이 가게에 오면 커피를 타주는 데 더 맛있기에 이유를 물었더니 음식을 할 때 태을주를 읊으면서 하면 맛있어진다는 것이다. 단, 좋은 마음으로 좋은 기운으로 해야 한다고. ‘오, 세상에 그런 비법이!’ 심고, 마음으로 고하는 것, 진심으로 마음을 전하면 안 이루어질 게 있을까 싶다. 이제는 음식을 할 때 바쁜 와중에도 태을주를 읊으면서 한다.
6년 전에 친정 아버지께서 생사의 갈림길에 몇 번의 고비를 넘기셨다. 설날 가까이 위독하셔서 가족들이 다 긴장하고 있었다. 난 그때 잠드신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간절히 심고를 드렸다. ‘평생을 바르게 살아오신 아버지 저승 가시는 길, 많은 사람의 배웅 속에 떠나게 해주세요. 명절 전후로 가시면 누가 문상을 올까요. 상제님, 아버지를 데려가시더라도 이 추위가 지나고 따스한 봄날이면 좋겠습니다. 자식의 욕심이야 더 사시길 원하지만…. 마지막 소원으로 간절히 심고 드립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벚꽃 흩날리는 사월, 아주 좋은 날에 가셨다. 더욱이 그날은 시골 동네 어르신 모두 봄나들이 가는 날이어서 한 분도 오지 못 할 거라 기대도 안 했다. 그런데 관광을 서둘러 마치고 예정보다 일찍 오셔서 동네 어르신들이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관광버스에서 내리시는 거였다. 어르신들은 옷차림에 양해를 구하면서 조문을 오게 됐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많은 분의 배웅 속에 떠나셨다.
사는 게 뭐라고 나는 일만 하느라 쉬는 날 없이 살았다. 24시간 가게를 10여 년 동안 하루도 문을 닫아본 적이 없었다. 아니 가게를 쉬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때론 너무 지치고 아프고 힘들다고 도인들에게 하소연을 했다. 그랬더니 “업보가 풀리면 야근을 안 할거에요.” 이러는데 내 복에 무슨 그런 일이 있겠냐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가게 근처 상권이 바뀌는 바람에 우리도 24시 영업을 접고 주간만 운영하게 되었다. 난 그럼 업보가 풀린 건가?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낮에 일하고 밤에 잘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가. 자연의 이치를 거역하고 살았으니 건강이 안 좋을 수밖에.
지금은 아주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 경기가 어렵다 해도 아직은 별 탈 없이 장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싶다. 또한 어찌 좋은 일만 있을까마는 어려운 일이 생겨도 교화를 들은 덕분에 지혜롭게 헤쳐나갈 용기도 생겼다. 난 사실 개인 과외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찾아와서 교화해주었으니 개인 교습을 받은 거다. 상제님의 덕화로 선각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주셔서 지금까지 무탈하게 와 있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교화가 늘 신기하고 재미있고 좋아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자꾸 잊어버리게 된다. 언제 시간이 허락하면 더 자세히 교화를 부탁해봐야겠다.
너무 미숙하지만 내 생에 상제님을 알고 우리 도인을 안 것만으로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심고 드릴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지 않은가! 내 마음을 비춰주는 선각분들이 계시지 않은가. 너무나 모르는 게 많으니 심고라도 열심히 드린다. 이제 막 입도한 수반들이 많아져서 선각분들 바쁘다니 감사하다. 그 바쁜 와중에도 잊지 않고 전화나 문자를 주신다. 한자리에서 16년째 분식집을, 장인정신은 아니지만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루를 심고로 시작하고 심고로 마무리한다. ‘상제님, 오늘 우리 가게 음식을 드시는 분들 모두 건강하고 복되게 해주세요. 상제님께서 늘 살펴 주시고 도와주심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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