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님께서 가까이 계심을 늘 마음속에 새겨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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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경순 작성일2018.11.21 조회5,193회 댓글0건본문
근덕 방면 교감 윤경순
‘상제님, 오늘도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로 마음을 밝히며 기도를 모십니다. 얼마 전 다리를 다쳤을 때, 큰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이 상제님의 덕화였음을 불초한 도문소자는 오늘에서야 절감하고 이렇게 또 흐느낍니다. 많은 덕화를 입었음에도 상제님께서 가까이 계신다는 것을 잊곤 합니다. 하마터면 죽었을지도 모를 저를 오만 년 청화세계로 인도하시고, 수도과정에서 일어나는 겁액에 휩싸여 흐느낄 때마다 눈물을 받아주시며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도록 덕화를 내려주셨습니다. 상제님께서 가까이 계심을 잊지 않기 위해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며 상제님의 덕화를 마음에 새겨봅니다.’
도인은 연원에 따라 입도한다고 하지요? 입도하기 전, 저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입도하고 수도하면서 살아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것이 상제님의 인도하심이 아닐는지요. 아주 어릴 적, 물에 빠져 죽었다가 소 등에 얹혀 살아난 것도 우연은 아니겠지요.01
사랑하는 제 남편은 육군 항공대 경찰로 헬기 조종사였습니다. 건실하고 착해 표창장도 많이 받았는데 이러한 남편과의 행복한 결혼생활과 돈 쓰는 재미에 빠져 저는 일부러 아이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 교향곡처럼 남편이 헬기 추락사고로 느닷없이 죽고 말았습니다. 천주교 신자였던 저는 하느님이 계신다면 착하고 좋은 남편을 이렇게 죽게 하지는 않았을 거라며 망연자실했고 장례식이 끝나면 사랑하는 남편 뒤를 따르겠노라 마음먹었습니다.
헬기사고는 수습 기간이 6개월이었기에 사고를 해결하고 남편을 국립묘지에 안치시키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사이, 평소 저를 입도시키려고 했던 선각인 언니(현재는 보정)가 실의에 빠진 저를 구하기 위해 재차 입도를 권했습니다. 하느님께 회의를 느꼈기 때문에 처음엔 거절했으나 행여 저의 잘못으로 인해 착하디착한 남편이 천국에 가지 못할까 두려워 정성 드릴 것을 결심하고 입도했습니다.
입도치성을 모시고 여주도장으로 참배를 갔습니다. 참배를 다녀와서, 본전에 들어가기 전에 들었던 ‘국궁’이라는 소리가 인상 깊어 집에 돌아와 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몸을 활같이 휘라는 뜻인데 도대체 대순진리회가 뭐 하는 곳이기에 내 몸을 활같이 휘어서 영대에 올라가라고 하는지 의문이 생겨 제주연수도 가고 수강도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도의 일에 참여하다가 죽은 남편을 후천선경으로 인도하기 위해 도를 닦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손에 장애가 있는 3살 된 조카 이야기를 선감께 하게 되었고 선감께서 태을주를 외우면 낫는다고 하셔서 동생을 포덕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동생은 저로 인해 천주교인이 되었고 아들을 신부로 만들겠다고 하느님께 약속할 정도로 믿음이 독실했습니다. 그런 동생을 포덕하려니 처음엔 형부 돌아가시더니 언니 실성한 거 아니냐는 혹독한 말을 동생으로부터 들었으나 조카의 붙은 손을 낫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포기하지 않고 날마다 동생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이렇게 찾아다닌 지 1년 6개월쯤, 그날도 동생을 찾아갔는데 벨을 누르자 불을 꺼버리고는 문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돌아왔다가 며칠 뒤 다시 갔더니 정성이 돌아 닿아서인지 동생 부부가 문을 열어주고 제 말에 귀를 기울여 입도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선각인 언니집에서 친정 형제들의 모임이 있어 동생 부부가 조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마침 선감께서 오셨고 조카를 데리고 태을주를 몇 번 외워주셨는데 놀랍게도 붙어있던 조카의 손이 쫙 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놀란 동생 내외가 지금까지 열심히 도를 닦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동생의 시부모님을 비롯해 시댁 식구 모두 입도했습니다.
상제님의 덕화를 입고 나니 신앙생활에 탄력을 받아 열정이 생겼습니다. 이런 저의 신앙심을 시험이라도 하듯 갑자기 시어머니께서 위암말기로 3개월밖에 못 사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시댁은 아주 큰 규모의 사과농장을 운영했는데 때는 4월로 꽃을 따주는 시기였습니다. 시누이들이 사과 꽃을 따기에 바빠 시어머니를 돌볼 겨를이 없자 저에게 돌보라고 했습니다. 낙심한 저는 날마다 목욕재계하고 한복을 갖추어 입고 밤 한 시에 기도를 모시며 상제님께 ‘시어머니를 낳게 해주시면 평생 상제님 뜻을 받들어 포덕에 전념하겠습니다.’라고 간절하게 심고 드렸습니다. 이후 시어머니께서 재진료를 받으셨는데 오진이라는 판정을 받으셨고 오래도록 사셨습니다.
시어머니에 대한 오진을 수도하라는 상제님의 뜻으로 받아들여, 심고 드린 대로 포덕에 전념하였고 몇 년 내에 선사가 되었습니다. 이 시절 꼭 한 번 뵙고 싶었던 도전님께서 모습을 감추셨습니다. 남편이 죽고 선각자인 언니가 네가 믿는 하느님이 대순진리회 상제님이시라고 말했을 때, 도전님을 뵙고 내 남편처럼 착한 사람이 왜 죽어야 했는지 여쭤보려고 했던 기억이 떠올라 제 설움을 이기지 못해 울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도전님께 정성 들이고 싶은 마음에 간절히 기도 모시고 심고 드리며 포덕했는데 신명의 도움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신기한 일이 많이 생겼습니다.
용인에 있는 친구를 입도시킬 때의 일입니다. 그 친구 시댁은 아들이 귀한 집안으로 시아주버님은 알코올 중독으로, 시동생은 교통사고로 각각 죽고 남편은 노름에 빠져 있었습니다. 친구 또한 쌍둥이 딸만 있어, 아들 낳기를 원했습니다. 친구에게 왜 아들을 낳고 싶은지 물었더니 조상님들을 위해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시댁과 조상님을 위한 그녀의 마음이 진심임을 확인하고 소 한 마리를 정성 드리라고 했더니 그녀가 난색을 보였습니다.
다음 날 새벽 5시에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밤에 꿈을 꾸었는데 어떤 할머니가 나타나서 나는 누구누구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제가 시키는 대로 꼭 하라고 했답니다. 꿈에서 깬 뒤, 놀라 제게 전화를 했던 것입니다. 저는 친구에게 읍사무소에 가서 시댁 식구들 이름 나와 있는 서류를 떼어서 그런 분이 계신지 확인해보라고 했습니다. 친구가 읍사무소에 가서 확인해보니 그 할머니 이름이 실제로 있더랍니다. 친구는 정성을 드리는 것이 조상님의 뜻임을 깨닫고 입도치성을 모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지금은 중학생이 된 아들을 얻었습니다.
재작년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수반인 선무가 자신의 딸을 입도시키고 싶어 해서 그 집을 여러 차례 방문했습니다. 그러자 선무 딸, ○○가 저에게 이모라 부르기 시작했고 “이모! 정성 드리면 사람 명도 늘릴 수 있어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럼. 명부시왕께 매일 비니까.”, “저희 시아버지께서 입원해 계시는데 오래 사셨으면 좋겠거든요.” “○○야! 다른 사람들은 시댁이 싫어 시금치도 먹지 않는다는데, 넌 정말 시아버지가 오래 사셨으면 좋겠니? 너의 양심을 봐. 시아버지가 정말로 오래 살아야 하겠다 싶으면 들어주실 거야.”라고 했더니 양심에 비추어 볼 때, 시아버지가 오래 사셔야 하는 게 맞다며 정성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로부터 집에 와달라는 전화를 받고 갔는데 기막힌 일이 있었다며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녀의 시댁은 제주도이고 시아버지는 낚시로 자연산 고기를 잡아서 파는 일을 하셨습니다. 퇴원한 시아버지가 호형호제하고 지내는 동생과 통통배를 타고 낚시하러 갔답니다. 낚시할 지점에 내려 바위 꼭대기에 도시락 가방을 올려놓고 일을 시작하려고 낚싯대를 던졌답니다. 동생이라는 분은 잘 던졌는데 시아버지는 잘못 던져 낚시코가 그만 도시락 가방에 걸렸다네요. 시아버지가 투덜거리며 낚시코를 빼러 간 사이에 파도가 밀려와 동생을 휩쓸어 갔고 형님하고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동생은 이미 물속으로 들어가더랍니다. 시아버지께서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 것이 정성을 드린 결과라고 생각한 ○○는 얼마 전, 성금을 담은 봉투에 아이들을 염원해 달라며 아이들 사진을 붙여 보냈습니다.
이렇게 크고 작은 상제님의 덕화를 많이 체험했음에도 막상 일을 당할 때는 상제님께서 늘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망각하곤 합니다. 얼마 전 여주본부도장에 수호 들어가 작업을 하다가 발을 다쳤습니다. “뚝”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는데, 인대가 끊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리가 너무나 당겨 팀장께 말씀드리고 갈까 하다가 ‘작업량이 많지도 않은데 마치고 가자. 도전님 일을 받드는 것인데 죽어도 이 자리에서 죽자.’라고 굳은 마음을 먹고 작업을 마쳤습니다. 한 임원께서 제 다리를 보시고 그냥 두면 문제가 생길 것 같다며 병원에 가보라고 하여 여주 시내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병명은 근육파열이었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으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건드리면 아팠고 많이 당겨서 그날 수호는 쉬었습니다. 심고 드리며 찜질만 할 뿐인데 왠지 내일이면 다 나을 것 같아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원장 교화가 있어 절뚝거리며 갔습니다. 그리고 누가 수호반 점심 대접을 한다고 해서 함께 갔습니다. 이렇게라도 다니는 것이 상제님 덕화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고 내가 다친 게 맞나 하는 의문만 스쳤을 뿐입니다. 며칠 지나 치료도 받지 않고 다리가 다 나았을 때 비로소 상제님 덕화임을 알아차리고 병원에 전화해 보았습니다. 병의 코드를 알려달라고 해서 평소 제가 다니던 병원에 가서 물어보았더니 근육파열인데 아무런 아픔 없이 걸어 다니기까지 3개월에서 6개월이 걸린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무 치료도 받지 않았고 커다란 아픔도 느끼지 않은 채 며칠 만에 나은 것입니다. 그제야 상제님의 덕화를 절감했고 기도를 모시며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상제님께서 늘 가까이 계시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건 성심껏 일하면 상제님의 덕화를 입는다고 수반들에게 교화하면서도 정작 일을 당했을 때는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을 반성했습니다. 앞으로 더욱 상제님께서 곁에 계신다는 것을 늘 마음속 깊이 새겨 양위 상제님과 도전님의 일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 심신을 아끼지 않겠노라 다짐해봅니다.
마지막으로, 은혜로우신 선감과 보정, 사랑하는 후각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하며 만수도인이 어떤 역경과 고난도 이겨내어 대운이 열리는 그날 도통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대순회보> 1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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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대순회보》 118호, 「독자사연: 잠시 전화기를 꺼주세요」, PP. 66-67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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