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념교(一念橋) 위에 서서 남한강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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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장영 작성일2018.12.06 조회4,913회 댓글0건본문
신암2 방면 교령 최창영
수호를 선지도 어언 여러 해 주마등 같은 세월이었다. 그동안 무엇을 보고 들었든가 지워버리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와도 같은 시간들이 많았던 것 같다. 지난날의 자취를 더듬어 보니 언뜻 서산대사의 시(詩)가 뇌를 스쳤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는)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말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남기는 발자국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훗날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지난 억겁의 세월 꿈속을 헤매 듯 상념(想念)에 젖어들 때 신선한 한줄기 바람 일어 언뜻 깨어보니 선경을 노래하는 태을주가 천·지·인 삼계에 울려 퍼지고 운무(雲霧) 중에 가리워진 무릉도원은 선령신의 인도(引導)이련가. 한껏 모으신 두 손 끝에 맺힌 눈물, 이 몸 내어 자손 성공 바라시는구나.
언제나 그렇듯 일념교(一念橋) 위에 서면 왠지 나도 모르게 숙연해짐은 왜일까. 확 트인 남한강에서 불어오는 이 신선한 바람 잠자는 영혼을 일깨우듯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이 느낌. 온갖 잡념과 망상을 날려 버릴 듯 절로 일념을 갖게 만든다.
일념. 일념. 일념을 되뇌어 본다. 과연 나는 지금껏 일념으로 수호를 서왔던 것일까? 처음 수호에 임할 때의 초심은 자취를 감추고 마음의 날이 많이 무디어지지는 않았던가? 양위 상제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9년 공사와 50년 공부 종필. 여기에 위해(危害)를 가하는 자가 있다면 내 목숨을 던져서라도 지키리라 다짐했던 맹세. 또한 도전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도법을 수호해 왔었던가 하는 의구심과 함께 스스로 자성의 시간을 가져보게끔 만든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발길을 돌리려하니 바람을 가르고 대원종 소리가 울려 퍼진다. 언제나 그렇듯 살을 에는 바람처럼 마음 속 티끌 하나 용납하지 않을 듯 뼈 속 깊은 울림 되어 천지신명의 보금자리를 만든다.
얼마 전 수호를 서면서 허리통증으로 병원을 찾게 되었다. X-Ray 검사 결과 가벼운 디스크 증세였다. 예전에 입도했을 당시 허리디스크 중증 환자로 고생을 하고 있었는데, 2~3개월 수련 끝에 거짓말 같이 나은 경험이 있었다. 그래도 염려하는 마음이 장애로 다가왔다. 불현듯 『전경』에 상제님 말씀이 떠올랐다. “종도들이 걱정하는 일을 상제께 고하면 그 걱정은 항상 무위이화(無爲而化)로 풀렸도다. 그러나 고한 뒤에 다시 걱정하면 상제께서 ‘내가 이미 알았으니 무슨 염려가 있느냐’고 종도들을 위로하셨도다.”(행록 4장 52절) 이처럼 상제님께서는 수도인들이 각자 나름대로의 시련과 고충 속에서 상제님의 뜻을 받들고 있음을 잘 알고 계신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지켜봐 주는 것도 아니요, 이 우주의 주인이신 상제님께서 알아주시는데 무슨 의심이 있을 수 있고 무슨 염려가 있고 무슨 걱정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 얼마나 큰 영광이고 광명인가!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중용(中庸)의 도(道)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쓰시기 위해 주시는 시험의 단계라 생각하고 지혜롭게 잘 감내하고 극복해나간다면 신명들이 서로 뜻을 받들어 주고자 할 것이다.
보름이 지난 지금은 병원에서도 너무 좋아졌다고 한다. 현재는 일상생활에 별 불편을 느끼지 않고 지낸다. 이 모두가 상제님의 덕화다. 신념만 있다면 운도 바뀐다고 했던가.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상제님의 뜻을 받들 것을 새삼 다짐해본다.
또한 우리의 공부는 남을 잘 되게 하는 공부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냥 뭐 ‘잘 되면 좋지’, ‘축하합니다’, ‘잘 됐네’ 등의 겉치레 인사가 아니라 진정 남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함지사지(陷之死地) 치지망지(致之亡地)’ 속에서도 상제님의 뜻을 받들고자 고군분투(孤軍奮鬪)하는 모습, ‘아! 정말 저 사람이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상제님!’하는 마음. 이것이 진정 상생(相生)의 마음이요, 이러한 사람이 성공하는 상생의 도수를 상제님께서 짜 놓지 않으셨던가! “상대방을 이해하고 또 이해하고 하다 보니 나중에는 내가 바보가 되더라.”라는 도전님의 말씀처럼 이기적이고 편협한 생각을 버리고 모든 도우들과 아우르는 긍정적이고 원만한 사고를 가지도록 더욱더 노력해 보고자 한다.
귓불을 스치는 바람이 상쾌하게 느껴짐은 선령신의 손길이련가. 고개 들어 창공을 바라보니 평소에 좋아하던 윤동주 시인의 ‘서시(序詩)’가 그려진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에 대한 희구(希求) 그리고 당시 일제치하 속에서의 고뇌. 그러나 그 속에서도 사랑의 실천과 진실한 삶을 다짐하며 양심 앞에 정직하고자 했던 한 젊은 시인의 생애와 번민 그리고 시련과 고뇌의 현실 속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소명의식과 의지를 통해 나 역시 그렇게 수도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길을 가리라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그리고 『대순진리회요람』에 있는 “양심(良心)은 천성(天性) 그대로의 본심(本心)이요, …… 인간의 모든 죄악의 근원은 마음을 속이는 데서 비롯하여 일어나는 것인즉, 인성(人性)의 본질인 정직(正直)과 진실(眞實)로써 일체의 죄악을 근절하라.”는 말씀을 되뇌어 보게 한다.
수호를 서고 계시는 부전 내수들의 힘찬 교대 소리들 들으며 다시 한 번 수호에 만전을 기해보리라 결의를 다지며 일념교를 뒤로 했다.
<대순회보> 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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