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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에 담긴 간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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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정숙 작성일2019.05.01 조회5,2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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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림 방면 보정 박정숙

 

 

지난 4일 금강산토성수련도장에서 수호를 서고 숙소에서 쉬고 있었다. 어두운 시각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예사롭지 않아 숙소 밖으로 나오니 도장 종의원 담장 너머로 시뻘건 불길이 보였다. 산불은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며 도장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것 같았다.

젊은 사람들은 이미 도장 주변 산에 마련된 소화전으로 배치되었다. 불이 도장 가까이 오기 전부터 나무에 물을 뿌려 대비했다. 도장으로 불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방화선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멀리서 봐도 산불은 사람의 힘으로 끌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지난 이틀간 불었던 거센 바람이 불을 이끌고 오고 있었다.

정말 순식간에 불길이 도장 가까이 왔다. 다들 어쩔 줄 모르고 발만 구르며 도장이 무사하기를 심고 드리면서도 그저 눈물만 나올 뿐이었다. 불이 가까이 올수록 심장이 뛰고 무서웠다. 분위기도 비장했다. 각자 물병 하나씩 가슴에 품고 자기한테 오는 불은 책임지고 끄라고 할 정도로 다급했다. 급히 대피할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니 숙소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사람 머리만 한 불덩이들이 마치 살아있는 새마냥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불을 옮기고 다녔다. 나무에 불이 붙는 모양을 보니 이젠 끝났구나 싶었다. 그 불이 넘어올 곳은 도장밖에 남지않았다. 그 순간 불덩이 하나가 훌쩍 날아 도장 안에 들어왔다. 연수반이고 수호자들이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놀라 다 같이 “으악!” 하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우리도 놀랐다. 그 소리에 불덩이도 놀랐는지 담장을 도로 넘어갔다. 아찔한 그 사이 도장 담벼락에 불이 붙었다. 소방차는 다른 곳에서 불을 끄고 있고 담장 밖은 호스가 닿지 않는 곳이었다. 때마침 외수들 수십 명이 한꺼번에 도장으로 들어왔다.

도인들은 화장실에서 물을 받아 날랐다. 큰 고무대야에 물을 받아 식당에서 쓰는 끌차에 싣고서 도장 담까지 옮겼다. 어찌나 바람이 강한지 나이 많은 우리는 세숫대야는커녕 걸을라치면 바람에 발이 꼬여 넘어질 정도로 몸 가누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뭐라도 힘을 보태야겠기에 물 나르는 사람들을 대신해 화장실 문을 열어줬다.

그렇게 도인들은 몸으로 산불과 대치했다. 소방호스도 아니고 세숫대야에 받아 뿌리는 물이 무슨 힘이 되겠느냐마는 도인들의 마음은 그 정도로 간절했다. 줄을 서서 물 대야를 옮긴 지 한 시간쯤 되었을 때였다. 계속해서 도장으로 향하던 바람이 도장 담을 넘어오지 않고 휴양소 쪽으로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달려들던 열기가 주춤해졌다. 하지만 그 불을 그대로 살려 보낼 수는 없었다. 도전님 묘소 주변에 소나무며 영산홍을 어찌한단 말인가! 남은 힘을 다해 세숫대야로 물을 날라 불을 껐다. 불길이 기세가 꺾이더니 휴양소를 돌아 점차 사그라져갔다.

다급했던 상황이 정리되고 아침이 밝아왔다. 아직도 두근거리는 심장이 간밤 산불이 꿈이 아니었음을 상기시켜주었다. 돌아서 생각해보니 그렇다. 도전님께서 정해주신 장소이고 신명을 모신 도장이니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건 누구나 믿는다. 하지만 사람이 움직이지 않고 심고만 드린다고 불이 저절로 비켜 가겠는가. 그리고 능력이 있든 없든 부족한 힘이나마 주저없이 보태려는 한사람 두사람의 힘이 모여 이루어진 일이다. 도장에 소화전도 미리 마련해두고 평소에 소방 훈련도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그날 밤 간절했던 심고와 주저 없던 행동을 잊지 않겠노라는 다짐을 몇 번이고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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