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페이지 정보
작성자 노청순 작성일2018.11.20 조회5,068회 댓글0건본문
대순진리회복지재단 노인병원
한방간호조무사 노청순
제가 그동안 수도를 하면서 상제님의 덕화가 있었고, 항상 나를 도와주려는 분들이 계신다는 것을 실감한 내용을 써보려고 합니다.
몇 년 전까지, 남편은 강원도에서 근무를 하면서 매월 제가 있는 전주에 한 번씩 오가며 월말부부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1998년 가을에 선각분의 도움으로 속초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형편이 어려워 작은 살림으로 시작했지만, 저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일했더니 1년여 만에 전셋집으로 이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 부부는 한 살 된 딸아이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2002년 어느 날, 저와 남편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저는 6개월 동안 입원하면서 치료를 받으면 되는 상태였지만, 남편은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퇴원 후에 제가 직면한 것은 그리 높지 않은 학력과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핸디캡을 안고 생계를 전담해야 하는 현실이었습니다. 살아갈 방법을 찾기 위해 이리 저리 알아보다가 면사무소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그곳에서 저처럼 한 부모 가정인 경우에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될 수 있어서 학원도 무료수강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03년 2월 28일부터 간호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친정인 장성에서 광주광역시에 있는 학원까지 가려면 꽤 일찍부터 서둘러야 했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아침밥을 먹고 30분 정도 걸어가면 사창에 있는 버스정류장에 도착합니다. 버스를 타고 다시 1시간 정도 가면 광주일고 앞에 내릴 수 있었는데, 여기서 다시 30분 정도 걸어가야 간호학원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1년 동안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수업을 받고 나서 다시 아침에 왔던 코스로 되돌아가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렇게 고생한 끝에 드디어 2004년 3월 14일, 간호조무사 시험을 치르고 4월에 자격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어린이집을 다니던 딸이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직장일이 바빠서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지만 다행히 딸은 할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밝고 건강하게 자라주었습니다. 그렇게 4년 정도 살다보니 이제는 저도 한 아이의 엄마로써 자립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딸과 함께 친정집을 나와 다시 속초로 이사를 갔습니다. 우선 딸아이를 근처 초등학교로 전학시키고, 저는 동우대학 간호학과에 입학신청 서류를 접수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입학 승낙을 받을 수 있었는데, 딸아이의 전학수속을 해주느라 첫날에는 학교에 가지 못했습니다. 다음날 지도교수 면담신청을 하고 장래에 대한 면담을 했습니다. 보통 제 나이에는 체력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에 간호사 업무를 소화해내기 어려울 테니 전과를 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지도교수의 조언대로 복지행정학부로 전과해서 2년 동안 열심히 노력하여 2007년 2월에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사회복지사 2급과 건강가정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취직을 준비하다가 마침 학교에서 졸업생을 대상으로 할인을 해주는 강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일이 두렵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얼른 강좌를 신청했고, 결국 웃음치료사와 심리상담사 자격증까지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지도교수의 주선으로 두 군데에서 면접시험을 봤었는데 아쉽게도 합격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 여주로 거처를 옮겨보라는 선각의 권유로 2008년 5월에 집을 구했습니다. 그때 저는 교통안전관리공단에서 제공하는 무료 임대주택을 선택했는데, 마침 도배와 장판을 미리 해두어서 깔끔하게 정돈된 상태였습니다. 마치 하늘에서 새 출발을 해보라고 이 집을 내려주신 것처럼 느껴져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딸도 전학한 학교에서 적응을 잘하는 것은 물론, 한자급수시험 6급에 합격하는 기분 좋은 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9년 3월부터는 여주본부도장에서 수호를 서게 되었습니다. 지정된 시간이 되면 수호를 서고, 그 외의 시간에 교통공단에서 실시하는 방문상담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들어보고, 상담원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저의 성격은 점점 밝아지게 되어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집중하는 사람으로 변해갔습니다. 당시 저의 집에 방문해주셨던 상담사는 교통사고를 당해 안타깝게도 평생 운신하는 데 불편함을 가지게 된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열심히 생활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셔서 그분 덕분에 저는 많은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수호를 선지 몇 달 정도 흘렀을 무렵, 대순진리회 복지재단에서 직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습니다. 저는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 분야에 복수 응시를 했고, 6월에 면접을 치렀습니다. 마침내 채용확정통지를 받았는데, 제가 응시했던 분야가 아닌 간호조무사에 채용되었습니다. 원래 제가 하고 싶어서 학교까지 갔었지만 여건 때문에 포기했었던 것인데… 너무나 기뻤습니다. 하늘이 사람을 쓸 때는 반드시 시험을 거치게 한다는 말처럼 작은 제가 큰 시험을 무사히 잘 치러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년 전, 괴로운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해서 학원에 갈 생각을 못했다면 지금의 이런 시간도 없었을 겁니다. 살아가면서 상제님의 덕화를 느끼지 못했다면 제 인생도 이렇게 달라지지 못했을 겁니다.
저는 지금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된 현실에 작은 행복을 느낍니다. 이 자리를 빌려 그동안 저를 염려해주신 선각분들과 물심양면 도와주신 교통안전관리공단과 상담사분, 그리고 상제님께 감사드립니다.
<대순회보> 109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