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 제생병원 공사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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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성기 작성일2018.11.20 조회5,355회 댓글0건본문
구의8 방면 선감 전성기
무더웠던 지난여름, 실로 오랜만에 대진대학교 대순종학관 건물을 짓는 공사에 다녀오니 땀 흘려 공사를 받들었다는 생각에 나름대로 마음이 뿌듯해짐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입도 후 수도에 큰 변화의 계기가 되었던 동두천 제생병원 공사가 떠올랐다. 그때의 체험과 그로 인해 변화된 도에 대한 마음가짐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았다.
94년 7월 무덥던 여름, 늦게 군대를 다녀와서 입도하였는데 얼마 후 동두천 제생병원 공사에 작업을 가게 되었다. 특별한 생각이나 목적의식이 없이 어찌 보면 선각이 가라니까 가는, 조금은 타의적인 상황에서 공사에 참여하였다. 방면에서 지원해준 차량으로 동두천 병원 공사장에 도착하였다. 공사장은 병풍처럼 늘어선 산을 뒤로 하고 앞으로 탁 트인 전망이 마음속의 답답함을 털어 내게 하고 왠지 모를 신비감마저 드는 곳이었다.
첫 날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운반 팀에 배속되어 큰 각목과 임시 철제 기둥 등의 자재를 날랐다. 처음엔 몸에 익숙치 않아 부대끼고 힘들고 고되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그날 저녁 우연히 다른 방면 선무와 지금까지 수도를 한 과정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선무는 수도를 한지 몇 년이 되었지만 포덕을 많이 못해서 항상 죄송한 마음으로 병원공사에 자원했단다. 그와 얘기를 나누면서 수도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되었다.
작업 나흘째,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세 시간씩만 잠을 자니 잠이 부족해 망치질을 하다가도 졸고 나무를 나르다가도 서서 조는 것이었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가끔 큰 각목을 들고 가다 멈추어 서서 나무를 어깨에 맨 채로 졸고 있었고 콘크리트 타설을 위해 받쳐둔 건축용 임시 철제 기둥 사이에서도 짐을 나르다 멈추면 졸곤 하였다.
하루는 큰 각목 3개를 짊어진 채 깜박 졸다가 다리에 서늘함과 함께 몸이 공중에서 붕 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니 배 모양으로 생긴 전체 건물에서 뱃머리 좌측편의 중간쯤 되는 곳에 왼쪽 다리는 콘크리트 바닥에 오른쪽 다리는 10미터 이상 절벽인 허공에 있었다. 정말 아찔한 상황이었다. 10월 중순이었지만 더위와 갈증 속에서 순간이나마 허공의 바람에 시원하고 상쾌한 청량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위태로운 상황이어서 몸을 건물 쪽으로 옮기며 당황하고 놀란 마음에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도 잠시뿐 빨리 움직이라는 작업 지시 소리에 방금 전의 놀란 가슴을 뒤로 하고 12자 큰 각목 3개가 전혀 무겁지 않은 듯이 날랜 걸음으로 자재를 옮겼다. 이 일을 통해 이곳에 무언가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 있고 저 아래로 떨어지지 않은 것이 상제님 덕화라고 느꼈다.
작업 닷새째, 임원 한 분을 조장으로 조원 8명이 한 조가 되어 기둥에 거푸집을 올리는 작업을 했다. 조장의 지시에 따라 조원 전체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다소 거칠고 일방적이어서 부담스럽던 말과 행동들도 이젠 편안하게 느껴졌고 못 알아듣던 건축용어도 차츰 알아듣고 작업내용도 이해되었다. 그런데 한낮 하늘에 먹구름이 몰리고 비가 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꽤 지나고 계속 내리는 빗물이 밧줄과 나무 사이에 스며들어 기울어진 채로 높이 올라 있던 거푸집이 밧줄 사이를 스르르 빠져 나와 우리 머리 위로 떨어졌다. “쿵” 하는 소음과 함께 머리를 짓누르는 육중한 무게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가속도에 의한 충격을 못 이기고 우리 조 전원은 밑에 깔린 채 털썩하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목이 부러지지나 않았는지 걱정되는 상황이었으나 “어서 빨리 일어나서 거푸집을 걸어” 하고 외치는 조장의 고함소리에 좀 전의 상황은 잊고 벌떡 일어나서 “하나 둘 셋” 하는 구령 소리에 맞춰 “영차” 하며 다 같이 힘을 합쳐 단번에 거푸집을 걸어 올렸다. 너무 순식간에 쓰러졌다 일어나 작업을 마무리하니 일을 해낸 나 자신도 신기하고 놀라웠다.
더욱이 놀란 것은 오전 작업이 끝나고 점심을 먹을 때까지도 몸에 신경 쓸 겨를도 없다가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야 잊고 있었던 조금 전의 장면이 떠올라 몸을 살펴보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참으로 다행하고도 신기한 일이었다. 그 정도의 충격이면 분명 어디가 부러져도 단단히 부러졌을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도에서는 상제님 덕화로 이러한 신기하고 기적 같은 엄청난 일들이 많이 일어났던 것을 내가 잘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로서는 참 의아했고 상제님 덕화를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큰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도에 대한 강한 의지가 조금씩 생겨났다.
여섯째 날, 육체 피로도 많이 줄었고 마음도 한결 가벼워져서 공사를 받들며 신명 기운을 많이 받아 심신의 기운이 맑아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일이 전반적으로 순조롭게 진척되어 나도 어느 정도 능숙하게 일을 할 수 있었다. 저녁때가 되었고 보통 새벽 1시에서 2시쯤에 모여 일을 끝냈는데 그날은 다른 날보다 훨씬 이른 저녁 식사 후 저녁 10시쯤 모였다. 속으로 나는 “그동안 고생했으니 오늘은 푹 쉬라고 일찍 끝내나 보다” 하고 마음껏 상상하고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전원이 모이자 공사 책임자께서 하신 말씀은 “도전님께서 내일 아침 8시에 콘크리트를 타설하라고 하셨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내일 아침 8시에 콘크리트를 타설할 수 있도록 밤을 새워서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모든 일꾼들이 도전님 명을 받들려고 엄청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어 빨리 움직였다. 하지만 당시 작업이 많이 부진한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건물의 가장자리에는 안전망도 없어서 조심해야 되는데도 건물의 끝이건 안이건 위치를 가리지 않고 각종 자재를 운반하는 조와 설치하는 조 모두들 빠르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더구나 산간의 심야는 낮에 내리쬐는 땡볕과는 대조적으로 깊은 어둠 때문에 조명을 해도 다소 어두운 상태였다. 그러나 다들 개의치 않고 혼연일체가 되어 쉴 틈 없이 일을 하며 날이 밝아 올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다른 건축현장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도인들은 오직 일심으로 일을 하니 몇 백 명이나 되는 인원이 아무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일을 끝마쳐 제시간에 콘크리트를 타설하게 되었다.
일을 마치고 아침에 모였을 때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동안 목욕을 하고 오라는 말과 함께 지원반은 방면으로 돌아가라고 하였다. 그래서 짐을 꾸려 방면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외수인 내가 다른 방면 교감과 이런 저런 그동안 느낀 점에 대해 자연스럽게 얘기하고 있었다. 그 이후 방면에 돌아와서 수도에 대하여 다시금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도통이라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수도하기로 결심하였다.
동두천병원 공사는 나로 하여금 도인다운 도인의 모습으로 성큼 다가서게 하였고 나의 수도과정에서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가슴 벅차고 좋은 기억으로 마음속에 깊숙이 남아 때때로 나태해지려는 내 자신을 채찍질하는 강한 자극제 역할을 한다. 공사나 포덕이나 어떤 일을 하든 마치고 나면 아쉽고 정성의 부족함에 후회가 남지만 도의 일을 일심으로 받들고 나면 늘 나에게 새로운 깨달음과 유형무형의 복이 주어졌고 한층 더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하늘에서 동두천 제생병원 공사를 통해 도에 일심이 되게 일깨워 주셨다고 느껴지며 무척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앞으로도 새로운 변화가 생길 때마다 항상 상제님께서 무엇을 깨닫게 하시려는지를 바르게 알아서 한 발 한 발 ‘도즉아 아즉도’의 경지로 가고자 한다.
<대순회보> 1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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