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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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현량 작성일2018.11.16 조회5,673회 댓글0건본문
금사1 방면 선사 서현랑
(대순진리회복지재단 요양보호사)
평소에 마음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보곤 한다. 마음이란 신이 드나드는 추기이고 문이며 도로라는 교화를 듣고 문득 궁금해졌다. 마음을 가진 것이 사람이라면 과연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마음이란 내게 어떻게 작용하는가?
우선 다른 사람들이 내 얼굴을 볼 때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똑 부러져 보인다.”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생긴 것 하고는 다르게 나는 내 주장이나 생각을 말로 표현을 못한다.
누군가 내게 “네 눈을 보면 유리 상자가 있는데 그 속에 네가 들어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을 깨고 나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나 스스로를 가두어 두고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내면을 솔직하게 풀어 헤쳐 봐야겠다는 과제를 들고 수호를 섰다. 수호를 서다보니 연수와 수강은 자주 가게 되었는데 그때 강사분께서 “자기 자신을 예뻐해 주세요. 주위사람이 모두 떠나가도 자기 자신은 자신을 절대로 떠나지 않아요.”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 내 자신을 좋아하기 위해서 그때그때 나의 마음과 감정, 그리고 생각을 잘 느끼기 위해 나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막내라서 부모님이나 주위사람들이 귀여워해 주셨다. 하지만 정작 스스로는 하고 싶은 것, 성취하고 싶은 것이 딱히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생각이 깊은 편도 아니었다. 공부를 왜 해야 되지? 생각은 여기까지에 그쳤다. 그러고 보니 미래에 대한 꿈을 꾼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의 감정이나 생각의 표현 없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오게 되었다. 돌아보면 나는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고 살아 왔는데 그 시절에 나는 갑갑하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것이 극에 달해서였을까? 대학 1학년 말에 우연찮게 선각을 만나서 교화를 듣게 되었다. 지식적으로 알아듣지는 못했으나 교화에 이치가 있어서였을까? 집중을 하고 열정적으로 교화를 듣고 있는 나 자신을 보았다. 꿈도 없었고, 감정 표현도 하지 못했던 내가 무언가에 집중하고 열정을 가지고 듣는 것이 처음이었다.
이 계기로 나는 어떠한 사람인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떠한 마음의 소유자 인지, 어떠한 인생을 살고 싶은지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녔다. 이사람 저사람 만나보기도 하고, 혼자 많은 생각도 해보고 사람들과 부대껴 가면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여러 감정들을 경험하면서 도장에 올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도장은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그래서 도장을 무척 좋아한다. 수호를 서면서 많은 경험들을 해보았다. 임시조장을 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구령도 붙여보고 체육 대회 때 응원단도 해보고, 여주군에서 주최하는 마라톤이나 걷기대회도 참여했다. 또 도장에서 고구마 캐기, 감자 캐기 등 농사일도 해 보았다. 그리고 복지재단을 건설하는데 건물 청소도 하고 잔디와 영산홍도 심었다. 이것저것 하는 중에 도장에서 요양보호사 교육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지원해서 교육을 받았다.
복지재단이 완공될 때쯤 일할 사람을 뽑는다고 공고가 났다. 나 또한 서류를 넣어보고 싶었으나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에서 수호를 서고 있는 중이었고 서류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기간 내에 맞춰 준비하기도 어려웠다. 순간 ‘내가 갈 자리가 아닌가?’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추가 접수 공고가 났다. 기회다 싶어서 서류를 접수하고 면접을 보게 되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발표를 기다리고 새로운 것을 접하는 마음으로 근무를 서기 시작했다. 복지재단 개관식 하기 전에 근무란 청소와 정리였다. 돌아서면 청소, 또 돌아서면 청소…. 청소가 기본이라지만 몸이 많이 피곤했다. 개관식을 하고 나서는 어르신들이 한 분, 두 분씩 입소를 하셨다.
복지사업과 요양시설 운영체계, 모든 것들이 처음 자리를 잡아나가는 것이라서 그런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너무나 바쁜 시기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신경을 많이 쓰고 바쁜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으나, 시간이 흘러갈수록 어르신들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대해야 되는지 고민은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문득 우리 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내가 중학생 때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고 부모님께서 할머니 댁에 가신 걸로 기억한다. 증조할머니께서 중풍으로 쓰러지신 뒤 몇 개월간 할머니께서 증조할머니 수발을 다하셨다. 그때는 별생각 없이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증조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할머니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아기를 낳고도 바로 일을 해야 하는 고된 시집살이, 공부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농사만 짓고 사셔야 했기 때문에, 원과 한이 맺힐 만했을 텐데 할머니께서는 묵묵히 증조할머니의 모든 수발을 다들었다. 중풍 걸리기 전뿐만 아니라 중풍이 걸리고 나서까지도.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하셨을까? 힘들고 괴롭고 외로우셨을 것 같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사람을 얻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아픔까지 품어야 한다.”는. 우리 할머니도 그랬을까?
예전에 들은 이야기이다. 누군가가 금강산 연수 때 강사분께, 복지란 무엇인지 여쭤보았다고 한다. 그 강사분께서는 복지란 아무 사심 없이 주는 마음이라 하셨단다. 증조할머니께서도 할머니가 아무 사심 없이 마음을 써주셨기에 당신의 수발을 다 들어주는 할머니한테 너무 고마워서 눈물을 흘렸지 않나 싶다. 이처럼 사심이 없는 마음은 어르신들을 모시는데 있어서 기초가 될 것 같다. 하지만 사심이 없는 마음에 대해서는 아직도 궁리 하는 중이다.
3대 중요사업 중 하나가 사회복지사업이다. 아직 양위 상제님이나 도전님의 어떤 뜻이 담겨있는지 많은 공부를 해야겠지만 나 자신한테나 요양시설을 이용하는 어르신들한테 복지란 어떠한 개념으로 어떻게 실천해 나가야 되는지 궁리하고 또 궁리한다. 그리고 이제는 꿈을 꾸려한다. 아직은 미흡하지만 대순사상이 담겨있는 복지재단 속에서 복지를 실천하고 있는 나의 모습, 어르신들과 함께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꿈꾸려 한다.
<대순회보> 1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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